200화 모든 걸 다 만든 자(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 개 사료라는 제품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여 이곳까지 올라온 자.
그 이름은 하진욱!
수많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그 모든 것이 성공한 데 있어서 그의 이름은 이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퍼지게 되었다.
“자~ 다들 준비 됐나~.”
“준비 됐다~!”
후다닥 달려오는 아들 은준이를 끌어안은 진욱이 미소를 지었다.
유치원에서도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체구라서 나중에 운동시키면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아들이었다.
“나왔어요~.”
오랜만의 가족 여행에 설레는 세화와 그 옆에서 디즈니 프린세스의 드레스를 입고서 방방 뛰고 있는 딸 은아도 활짝 웃으면서 아빠한테 달려왔다.
“읏- 차!”
“아빠, 제주도 할머니 보러 가는 거야?”
“응, 그래. 제주 할머니가 은아 보고 싶다고 하셔!”
“동물원도 가고?”
“그래 그래~ 갈 거야.”
부모님을 제주도 할아버지, 제주도 할머니라고 부르는 딸아이의 말에 진욱은 피식 웃으면서 나갈 준비를 했다.
“관리 잘해 주세요.”
“아이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장님.”
집 안에 10명이 넘는 고용인이 있었는데, 이번에 나가면서 진욱은 그들 모두를 통솔하는 안성댁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까지 저번에 그 겉절이 만든 것 좀 많이 만들어 주세요. 이거는 김장값으로 쓰시고.”
진욱이 품에서 지갑을 꺼내 안에 있는 수표 한 뭉치를 건네주자 생각 이상의 금액에 표정 관리를 못하는 안성댁이었다.
“다 같이 오순도순 반찬 만들면서 편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가정부 아주머니들의 인사를 받고서 진욱은 수행비서들이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올라타며 가족 여행을 떠났다.
* * *
[자~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아시아 사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저곳에 보이는 코끼리들은 아시아코끼리예요.]
“와아아-”
“대박! 엄청 많아!”
“시은이, 저거 무슨 동물이야?”
“코끼리!”
제주도 아성 월드주파크.
진욱이 모든 힘을 쏟아부어 만든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파리 월드에서는 수많은 코끼리가 무리 지어 자신들을 보러 온 트램을 보고 코로 손짓했다.
[여기 있는 코끼리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수마트라 코끼리예요. 수마트라는 지도에서 여기에 있는 섬이고요. 전 세계에 2,500마리 정도밖에 없는 희귀 동물입니다.]
젊은 여성 가이드가 하나하나 설명하니 트램 안의 LED 모니터를 통해 수마트라 코끼리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상아가 짧고, 작은 체구에 온순한 성격이지만, 서식지의 파괴로 인해 멸종 위기이다.
그리고 그래서 WWF(세계자연기금)에서 보호하는 종이며 현재 아성그룹재단이 보호종들을 데려와 이곳에 지내게 한다고 하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진짜~ 언제 봐도 대단하다니까.”
“딱 한 번 왔잖아?”
“그, 그렇긴 하죠. 처음 오픈했을 때랑 지금…….”
뒷좌석에 앉은 세화는 주변을 연신 둘러보면서 뒷좌석에서 조용히 딸 은아를 안아 창밖을 보여 줬다.
3살짜리 어린이가 보기에 지금의 사파리는 별천지와 같은 곳이었다.
수마트라 코끼리를 지나 다른 아시아코끼리들의 아종이 있는 곳으로 트램이 움직였고, 한때는 동남아 국가들의 정부에서 임대로 와서 각종 공연에 이용됐던 코끼리들이 보였다.
전부 진욱이 인수한 뒤로는 휘황찬란한 옷들은 겨울철에 실내에 있으면서 입는 거고, 지금은 그냥 평화롭게 풀숲을 헤치며 간간이 오는 왜가리나 비둘기 같은 새들이 위에 올라타거나 먹이를 같이 먹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 이제부터는 월드주파크의 랜드마크이자 우리나라 유일한 아프리카코끼리가 있는 곳! 아프리카사로 안내합니다!]
신이 난 가이드의 외침에 트램에서 기대를 잔뜩 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준비하는 관광객들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을 그대로 전시한 것 같은 분위기.
오아시스와 수많은 물새 속에서 커다란 엄니와 연신 펄럭거리는 귀로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아프리카코끼리를 보자 모두가 환호했다.
“대박! 엄청 커!”
“아시아코끼리랑 비교할 게 안 되네?”
“이거 유튜브 각이다!”
관광객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아프리카코끼리들을 보고서 감탄할 때, 그중 한 마리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트램을 이리저리 보고는 멈칫할 때 그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하하하- 여러분? 이 트램은 고정식으로 탱크의 무게에 필적하는 외부 충격에도 안전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코끼리들 역시 저희의 존재를 잘 알아서 이렇게 움직이는 건 간식을 달라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가이드가 앞좌석으로 향해서 운전석 근처에 있는 바나나 다발을 주고 톱 루프를 열자 바로 코를 집어넣은 코끼리가 다발째로 받아다가 그걸 휘감아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퍼졌고, 그 와중에 뒷좌석에 있던 은준이 크게 외쳤다.
“와, 아빠! 이거 진짜 아빠가 다 만든 것 맞지?”
“으, 응! 그래.”
순간 흠칫한 진욱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세화가 황급히 은준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눈치 없는 큰아들 녀석이 계속 외쳤다.
“아빠가 그랬잖아! 이거 다 아빠가 만들었고, 몇조 원 들었다면서!?”
“야, 야!”
그 순간 어린아이가 크게 외치는 목소리에 트램 안에 있는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뒤를 돌아봤다가 눈이 커졌다.
“어머? 어머머머!?”
“어, 어?!”
“저기 혹시…….”
진욱은 들어올 때는 괜찮았는데, 결국 아들 녀석의 외침 때문에 들킨 것을 보고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아성그룹 하진욱 회장님 아니세요?”
“대박! 진짜 재벌 회장이야?”
“어떡해? 회장님인가 봐.”
진욱은 연예인이 된 것도 아닌데 관광객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맘 편하게 동물원 구경도 못 했어.”
“회장님, 왜 미리 말씀을 안 하시고… 비서실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냥 가족 여행으로 조용히 온 거 였다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수행비서도 대동하지 않고 조용히 온 것인데, 은준이 덕분에 내리자마자 바로 아성 월드주파크의 소장과 직원들이 달려와 90도로 진욱에게 인사했고 모셨다.
“회장님, 최근 프로젝트에 대해서…….”
“휴가입니다. 그냥 본사 대표이사에게 맡기면 알아서 진행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요…….”
이제는 15대 기업까지 올라간 아성그룹이었으나 여전히 소탈한 분위기로 자유롭게 움직이던 진욱.
덕분에 지금 SNS에서는 가족들과 같이 사파리 탐험하다 뒤늦게 사진 찍힌 회장님으로 퍼지게 됐다.
그리고 제주도에 하진욱이 있다는 말에 도지사부터 해서, 이곳으로 이전한 IT 대기업들의 오너들이 프로젝트 같이 하자면서 직접 연락하고는 했다.
“완전 연예인이 다 됐다니까~ 바깥에 나와서 말 걸면 뭐든 될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진욱이 아버지의 집에서 바비큐를 구울 때 넌지시 한 말.
아들의 그런 푸념을 듣고 있던 상만은 껄껄 웃으면서 아들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도 행복하지?”
“뭐… 그렇긴 하지만요.”
“하하하, 그럼 됐어!”
아버지가 제주도로 온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어째 그 뒤로 더 젊어지시는 것 같았다.
반쯤 벗어졌던 머리도 나이 일흔이 넘어서 모발 이식을 해서 풍성함을 자랑했고, 백발도 염색까지 하고 살도 빼니 상록에서 공장 운영하던 시절에 비해 여유도 넘치고 신선이 따로 없었다.
“큰집하고도 연락 자주 하고?”
“그 연세에 기어이 2선 의원도 하시더라고요. 사무총장 하실 거라고 세력 모으신대요.”
“내 형님이지만, 진짜 대단하다니까. 하하하!”
진욱 외에도 가족 전체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진미가 이번에 학장 된 건 이야기 들었지? 거기서도 콜 들어온다고 하더라.”
“교육부 장관이요? 절대 안 할걸요. 큰아버지가 두 번 정도 왔다가셨다던데.”
큰누나네야 이제는 대학원생으로 시작해 연구원부터 생과대 교수에서 명인대 학장까지 이제는 교육인으로서 잘하고 있다.
큰누나에게 배운 제자들이 지금은 아성그룹을 넘어 수많은 대기업의 바이오 연구원으로 들어가 아웃풋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진영이 누나 요새 연애한대요.”
“진짜냐?”
“아이고~ 나이 마흔 넘어서 드디어? 걔 어떻게 시집은 갈 수 있으려나?”
“진성이 형이 소개해 줬대요. 뭐, 연예기획사 대표라나?”
“그거 괜찮은 거야?”
“알아서 잘하겠죠. 둘째 누나는 앞가림은 잘하니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 진욱의 두 아이들은 ‘제주 할머니’라고 불리는 어머니 원숙과 함께 놀면서, 그녀가 만들어 준 과자와 빵을 먹으면서 활짝 웃었다.
“제주 할머니가, 성북동 할머니보다 더 요리 잘하시는 것 같아요.”
“야! 외할머니랑 친할머니라고!”
“자~ 자~ 은준이랑 은아 싸우지 말고~.”
진욱은 그 모습을 보면서 기지개를 켰다.
“며칠 쉬고 올라가서 또 할 것 생각하니 좀이 쑤시네요.”
“요새는 뭐 괜찮은 프로젝트 있어?”
“그냥 현상 유지죠. 아까도 말했듯이 이거저거 하자고 제안하는 인간들은 많지만.”
진욱은 회장 자리라는 것도 하다 보니 이제는 반복되는 삶이라는 것에 쓴웃음이 나왔다.
“옛날에 역사책을 보면 무위지치(無爲之治)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천하를 다스린다고요.”
“옛날 같지가 않지? 혼자서 다 하려고 전권 가지고서 발로 뛰어다니고, 뭐든 하자고 내 앞에 서류 다발 가지고 왔을 때 말이야.”
“…킥! 하하하하하!”
아버지가 하는 말에 진욱은 옛날 생각이 나서 크게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 2회 차.
그것도 남의 몸을 가지고 어떻게든 기존의 하진욱을 가지고 뭐든 만들어 내기 위해서 남들의 배 이상으로 일을 해 왔다.
뭔가 하나를 한다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다음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이걸 합시다.’, ‘다음은 이겁니다.’, ‘이런 건이 있는데 맡겨만 주시면 다 하겠습니다.’ 등으로 기를 쓰고 아버지를 설득해서 맡은 바를 완성했다.
그렇게 성장을 시키다 보니 수도권 외곽의 작은 시골 공장이 국가와 지자체 지원을 받으면서 쑥쑥 성장하고, 코스닥 상장을 하고, 중견 기업까지 오르고, 그런 다음 재벌가 사위가 되어서 이너 서클까지 올라왔다.
그날 밤 진욱과 상만은 다른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상황에서도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을 나누고 낄낄거렸다.
“맞아! 그것도 기억난다. 너 무슨 IT 한다고 동사무소에서 취업 교육 갓 끝낸 애들 데리고 뭘 한다고~ 아이구~.”
“하하하! 그 양반들 중에 남은 애들이 지금 인트라넷 구축하고 있다고요.”
“요새 그때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긴 하더라고. 김 공장장, 이정열이, 미스 리까지 말이야.”
“다 그립네요~ 우리도 다른 대기업처럼 원로회라도 만들어야 할까요?”
“그건 뭐, 네가 알아서 하고~ 어이구, 술이 다 떨어졌네?”
“가져올게요.”
“저~ 기 창고 뒤쪽에 있다?”
“네~ 네~”
진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 저택 바깥에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
비틀거리며 창고 선반에 있는 각종 위스키와 전통주가 있는 곳에서 진욱이 한 병 챙겼을 때, 머리맡의 선반에 뭔가가 보였다.
“……!”
달그락-
진욱이 손을 뻗었을 때 거기에서 잡힌 것은 통조림 캔이었다.
안주로 삼으면 좋겠다 싶어서 내용물을 보려고 했을 때, 진욱은 순간 뿜었다.
[아성 펫푸드: 우리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택! 안심 따개로 되어 있어 다칠 위험이 없어요.]
강아지 얼굴이 그려진 참치 캔을 보고서 이게 왜 술 창고에 있는지 몰랐지만, 진욱은 ‘그때의 그날’이 떠올라 크게 웃었다.
“하하, 하하하하하!”
그리고 그 통쾌한 웃음은 아버지의 집을 지나 제주시 일대를 넘어 전국에 퍼질 정도로 커진 위상이 되었다.
자그마한 동물 사료 제조업 하나로 시작했던 공장.
그것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재벌 회장이 되어서 모든 것을 추억으로 만들어 줬다.
- 끝 -
에필로그 동물 애호가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뉴퀴즈~ 온 더 블록~ 유재식입니다!”
“정세호입니다!”
국민 MC가 진행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뉴퀴즈에서는 스튜디오에서 두 명의 진행 MC가 서로 간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의 게스트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오는 오늘의 게스트는 수많은 반려동물의 사진 그리고 그들을 안고서 찍은 진욱이 있었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동물의 왕이라 불린 CEO!]
[반려견 사료로 재벌까지!]
각종 수식어가 나온 다음에 유재신의 진행으로 진욱이 스튜디오로 천천히 나오자 큐 카드를 든 두 MC가 박수를 치면서 격하게 그를 환영했다.
“네, 저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는데요. 세계적으로 그 사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습니다. 요새는 펫푸드라고 한다죠?”
“저도 한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프렌치 불독인데, 아주 순해요.”
정세호의 반려견과 자료 화면이 나오고, 그 사이에 앉은 진욱이 활짝 웃으면서 게스트로서 자신의 사업과 시장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반려동물 펫푸드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102조 원가량 됩니다.”
“102조 원이요? 우와~ 보통 그 강아지들이 먹는 스틱이나 캔 그런 게 말이죠?”
“네, 맞습니다.”
“굉장하네요. 회장님은 반려동물 사업 말고도 희귀 동물 보전 운동이나, 비단잉어 분양 사업 같은 것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것에 대해서도 설명드리자면…….”
대중들이 알 수 있게 쉬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진욱의 말에 두 MC가 적절히 추임새를 넣고, 거기에 따라 마치 탁구를 하듯이 이리저리 토스하면서 티키타카가 맞았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뉴퀴즈?”
“네. 시작합니다.”
게스트의 소개를 한 다음 관련 있는 영역에 대한 퀴즈를 이제 보조 MC 정세호가 말한다.
“퀴즈 나갑니다. 1961년 스위스 글렁에서 창립된 단체로, 자연보호와 멸종 위기 동물 보호를 위해 움직이는 세계 최대의 비영리 기구인 이곳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세계자연기금, WWF.”
“네~ 정답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하진욱 회장님!”
문제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그것을 끝으로 촬영을 마쳤고, 서로가 악수를 하면서 피디가 컷을 외쳤다.
“네,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니에요. 편집 잘해 주셔서 방송에서 볼 수 있게 하자고요.”
“하하하, 물론입니다.”
진욱은 PD의 인사를 받은 뒤로 국민 MC 유재신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오늘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님.”
“제가 예전부터 유재신 씨 팬이어서요. 꼭 한번 같이 촬영해 보고 싶었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진욱이 두 MC와 악수를 하면서 사진도 같이 찍고, 사인도 서로 교환한 다음 스튜디오를 나왔을 때, 미리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 직원들이 그를 모셨다.
“회장님, 바로 상록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그러죠.”
방송국 사옥을 나온 뒤로 준비된 세단에 탄 진욱은 옆에서 비서실 직원에게 다음 스케줄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아성사료 제4 공장 완공식에 경기도지사와 상록시장 그리고 하상규 의원님이 참여하신다고 합니다.”
“큰아버지까지 와요?!”
“네, 바로 참여하신다고 30분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뭐, 안 오시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바쁘다고 하셨으면서…….”
진욱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는 사이 진욱이 탄 세단은 상암동에서 빠르게 상록시에 도착했다.
행사의 주인공이 도착하자 수많은 상록 지사 임직원들과 각종 단체에서 온 지역 유지들, 정치권의 사람들이 다가와 진욱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 회장님, 공장 완공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하 회장님 오셨군요? 지역 경제 활성을 위한 공장 설립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 회장~ 4공장도 진짜 잘 만들었어요.”
경기도지사, 상록시장, 그리고 큰아버지도 하 회장이라 부르며 너스레를 떨고는 진욱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잠깐 완공식 행사 이전에 갈 곳이 있습니다.”
“네?”
“1공장으로 가지요.”
“아, 네. 알겠습니다.”
비서실 직원들은 10분 정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어리둥절했지만, 근처에 있는 공장 전기차를 가져와 진욱을 모시고 1공장으로 향했다.
이번에 4공장을 지으면서 그 동력을 상실해서 폐쇄 처리 된 1공장.
하지만 이곳은 진욱에게 있어서 굉장히 각별한 곳이었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네.”
진욱은 내리자마자 안에 있는 낡은 기계가 철거 준비 상태여서 여기저기 테이프가 붙고 안의 컴퓨터와 자료들을 모두 빼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 상태가 아주 개판이었지… 솔벤트를 말통 단위로 뿌려 대야 겨우 스테인레스 색이 나왔고.”
진욱이 이곳에서 처음 일을 할 때, 정리 정돈이 기본이라는 마인드로 혼자 청소해서 이 기계들을 전부 닦아 냈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손을 뻗었을 때, 오래된 기계에 먼지가 쌓인 것이 손가락에 묻어났다.
“저것도 참… 다시 보니 추억이네?”
인근 재래시장에서 닭이랑 오리를 토막 내서 건조기를 직접 용돈으로 구매해서 수제간식을 만들어 내고 공방을 만들어 같이 만들던 것도 추억이었다.
그때의 공방 가건물이 보이자 진욱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김 비서님.”
“네, 회장님.”
“담배 있으십니까?”
“네? 아, 아! 네!”
비서실 직원들은 생전 담배 안 피우시던 분이 갑자기 담배를 요구하니 당황하면서도 주변에서 흡연자 직원의 것을 하나 꺼내 공손히 바쳤다.
진욱이 그것을 받아 들고 입에 물자 바로 불까지 붙여 드렸다.
“후우-.”
맛깔나게 한 대를 태우자 원래 저분이 흡연자였나 싶은 직원들이었지만, 진욱은 담배를 물고서 옛 공장의 추억이 가득한 곳을 이리저리 돌아봤다.
처음으로 조달청을 통한 서울대공원 동물원 납품을 했을 때, 가장 먼저 요청했던 것은 구내식당 설치였다.
돌고 돌아서 겨우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 이전에 인근 식당에서 함바 상자에 배달받아 먹던 것이 떠올랐다.
“이 건물, 어떻게 처리한다고 했죠?”
“지사장 말로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하나, 인근의 2공장의 야간 휴게소로 개조한다는 기획안이 있다고 합니다.”
“흐으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그렇게 된다면 이 건물을 헐어야 한다.
그래도 추억이 가득한 곳인데, 용도 폐기가 되어 다 날려 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물론 사진이야 많이 찍어 놨지만, 그래도 남은 것들을 이리 날리기는 그랬다.
“후우- 이제 가시죠.”
“네, 회장님!”
진욱은 다 피운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전기차 카트를 타고서 바로 완공식 현장으로 갔다.
[네, 이것으로 아성사료의 제4 공장 완공에 대해 선포합니다!]
펑- 퍼펑- 펑!
대화화약에서 받은 폭죽이 축포로 터지면서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리본 커팅을 한 다음 모두가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같이 찍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4공장에 대해서 축사를 해 주실 아성그룹의 하진욱 회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커팅식 이후의 축사를 끝으로 4공장이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다.
진욱은 그것을 알고서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예, 먼저 수십 년 전 (아시아합성사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작은 공장이 아성사료의 모태가 되었고, 그 공장을 확장한 제2공장, 그 이상 규모의 3공장을 넘어, 2, 3공장을 합친 규모보다 큰 4공장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진욱이 말하면서도 감회가 남다른 그 상황에서 아성사료에 대한 이력을 말하고, 기업의 영광과 발전을 위한 축사를 끝마친 뒤였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
모든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진욱은 아까 다녀왔던 1공장 쪽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지금은 은퇴해서 제주도에 계신 선대 회장님과 저에게는 추억이 가득한 1공장. 이제는 오래된 기계와 내구 연한이 지난 건물을 두고서 폐쇄될 위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 건물을 날리기에는 너무 추억이 많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을 때,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즉석에서 생각한 것을 말했다.
[이 자리에서 아성그룹 회장의 이름으로 발표하겠습니다. 기존 폐쇄 위기의 아성 제1공장은 기존에 있는 기계와 건물들을 개, 보수 한 다음 아성사료 박물관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아성사료 박물관으로 만든다는 말에 모두가 웅성거렸다.
하지만 눈치 빠른 임원이나 정치인들은 오히려 좋다면서 끄덕였다.
‘요새 애들 공장 견학이나, 체험 학습도 잘 안 한다는데, 박물관이라…….’
‘그래, 공장 박물관 나쁘지 않지. 안 그래도 공업도시 상록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있는데 저런 곳 하나 관광업으로 삼으면 땡큐고.’
‘진욱이 저 녀석이 제 아비랑 추억이 남달랐구만, 저 공장을 기어이 남기겠다고?’
진욱의 깜짝 발표에 맞춰 모두가 박수를 쳤고, 진욱은 바로 안전모를 번쩍 들어 올린 채, 이제 4공장 견학을 준비했다.
이후 아성그룹 회장의 발표로 수십 년간 함께했던 아성사료의 시초인 1공장은 박물관 개장을 위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그때의 자료를 모두 남기면서 관광 시설로의 용도 변경에 대해서는 역시나 아성산업개발이 삽을 펐다.
* * *
“애들 친정에 맡기고 데이트 오자고 하더니만, 또 일 때문에 온 거예요?”
“아니야, 데이트 맞아.”
진욱은 아내 세화를 데리고 송도신도시에 있는 수목원을 거닐었다.
아내의 손을 꽉 잡으면서 같이 걸을 때 그녀의 얼굴을 보며 웃다가 그 뒤에 있는 저 넓은 공사 부지도 한번 눈여겨봤다.
‘저 곳에 금융 타운이 지어진단 말이지. 아성금융사업부 본사도 저곳으로 이전하고 말이야.’
한때는 청담동 사옥에서 모두가 모여 통합 사옥을 가졌지만, 이제는 기업의 규모가 커져서 사료, 금융, 펫케어 모두 각자의 현장 경영을 위해 나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미 인천광역시청과 물밑 협상을 하고 있었고, 성사되는 순간 다른 제1금융권 타워와 마찬가지로 아성금융도 떡하니 유리궁전 마천루를 지을 것이다.
물론 제주와 상록에 있는 각기 다른 본사들과 동등한 대우로 말이다.
“휘유~ 좀 앉을까?”
“네.”
그래도 남편과 이렇게 온 데이트가 싫지만은 않은지 오붓하게 둘이 앉았다.
“이제는 편하게 지낼 거야.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낼 거고.”
“네~ 네~ 말로만 들어도 고마운 말이네요.”
진욱은 세화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제는 현상 유지지,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로 선두할 생각도 안 나고 말이야.”
진욱의 크리에이티브 함은 이제 수많은 계열사와 핵심 사업으로 성공해 세계적으로도 성장했으니 이제는 수성의 시대였다.
그때였다.
[도주자 더블 제타! 마지막 코너에서 끝까지 달립니다. 1마신, 2마신… 3마신까지 따돌렸다. 더 이상 추격하기 힘든 2번 마 콜드블루! 더 이상의 추격은 무리다!]
[울어라~! 더블 제타! 훌륭한 도주 성공!]
“뭐야? 저거 스마트폰으로 하는 거야?”
지나가던 청년이 스마트폰으로 크게 켜 놓은 자료.
잔디밭에서 미친 듯이 달려 대는 레이스에 독특한 이름들을 보니 경마였다.
“…경마?”
“네?”
“말?!”
그 순간 진욱의 눈이 번득였다.
아무래도 그는 은퇴할 때까지 계속되는 그 번득임으로 끝까지 사업을 위해 달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