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국내 일은 그대들에게 맡기리
“당분간 출장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자리를 비우게 됐습니다.”
“……!?”
“……!”
“……?”
진욱의 말에 이사회가 웅성거렸고, 몇몇은 들은 적 있냐는 얼굴로 서로가 속삭였다.
“세계자연기금에서 추진하는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볼 생각입니다.”
“회, 회장님?”
“회장님, 지금 상황에 대해서 말입니까?”
3개 사업부에, 비서실장까지도 깜짝 놀라 되물었지만, 진욱은 느긋했다.
“어차피 3인 CEO 체제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거부권과 승낙이 전부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이미 지금도 반쯤 칩거에 가까운 상태에서 인터뷰에나 간간이 나오는 얼굴마담과 같은 분위기였던 진욱이다.
진욱은 전문 경영인 체제에 대해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룹의 오너가 직접 나서서 임원들을 믿는다고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회장님 없으면 안 됩니다.’라고 빠질 임원들도 아니었다.
만약 그런 존재가 생긴다면 그 즉시 잘려도 할 말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일단 다음 주부터 바로 떠날 예정입니다. 비서실과 홍보실팀에서는 관련 자료 준비해 주시고, 이제 구설수 없이 이미지 올립시다.”
“예, 회장님! 준비하겠습니다.”
“수행 인원은 최소한으로 하겠습니다. 수행비서 둘에 비서실 직원 한 명이면 될 겁니다. 장기적으로 움직일 것이니 이왕이면 미혼 직원으로 해야겠군요.”
김인규 비서실장은 일단 오너가 움직이는 대로 따르고, 거기에 대한 베스트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물밑에서 움직일 준비를 했다.
* * *
진욱이 회의를 마치고 올 때, 소식을 들은 진영이 회장실로 다가와서 물었다.
“갑자기 해외 여행?”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서.”
“큰집에서 연락 왔었어. 하 의원님이 전해 달래, 사파리 어디다 지을 거냐고.”
“바로 통과되는구만.”
“문광부에서 규제 풀린 지 2년 넘었고, 첫 스타트로 예시가 될 거라고 싱글벙글이더라.”
그동안 동물원 설립에 대한 규제가 상당히 많아서 국내에 새로 짓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서류 놀이가 많았다.
특히 동물원의 경우 기존에는 관광단지로 여겨졌으나, 이후 리조트나 호텔과 같은 전문 휴양업 단지로 풀린 것이었다.
기존에는 사파리 월드가 있어야만 전문 휴양업 단지가 되었으나 이제는 일반 동물원도 그 혜택을 받는 것.
“오히려 잘됐어. 제대로 크게 한번 만들어 볼 거야. 그 전에 세계를 돌면서 데려올 것들도 데려오고.”
“기부가 아니라 스카우트하러 가는 거였구만, 그것도 동물 스카우트.”
“다를 바 없지.”
진욱이 고개를 끄덕일 때, 진영은 활짝 웃으면서 손을 들었다.
“최근에 이사회에서 CEO들끼리 알아서 한다고 하는데, 나도 주주권 행사해도 되겠지?”
“어깃장만 놓지 않으면 뭐…….”
이제는 둘째 누나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경영인 중 하나로 성공했다.
처음 이 삶을 살면서 부모님을 졸라 유학도 다녀오고 세상 부족한 게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기분파 누나는 사라지고, 패션업계의 큰손이자,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여성 CEO로 이름이 오가는 셀럽이었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야 하는 법이지. 부탁할게.”
“오케이~ 걱정하지 마셔.”
진욱은 진영이 온 김에 관련 사업에 대한 결재 사인을 해 준 다음, 바로 인트라넷을 통해 보냈다.
* * *
진욱은 그렇게,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수많은 기자의 카메라 셔터 속에서도 인터뷰 없이 웃으면서 손만 흔들어 줬다.
그리고 전 세계를 돌 준비를 하면서 가족들에게도 화상 통화를 하다가 바로 비행기에 탔다.
맨 처음 간 곳은 베트남이었다.
한때는 기회의 땅이라 불리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많은 공장이 있었던 곳.
하지만 이후 개발도상국 투자 특유의 성장에 따른 원가와 인건비 상승 그리고 가격 경쟁률의 하락으로 인해서 지금은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회장님,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베트남 사업부 공장장인 정한규 이사는 진욱에게 하이바를 건네면서 아성사료 공장에 대해 소개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세계자연기금 동남아 사업부의 직원까지 동행했다.
“ESG 경영에 맞춰서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한 전기로 전환했습니다.”
“친환경이라면 연료는 뭡니까?”
“바이오매스로, 주 연료는 폐목재입니다.”
폐목재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를 통해서 그 에너지로 공장을 돌리는 시스템이었고, WWF의 직원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박수를 쳤다.
“훌~륭해요. 아주 훌륭힙니다.”
“하하하-.”
“재생에너지로 공장 에너지를 순환시키면서 불필요한 화석연료를 배재한 친환경 공장의 시스템은 환경보호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WWF의 파견 직원 테이 린은 연신 박수를 치면서 진욱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동남아에서 환경보호를 부르짖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많았고, 중국, 인도와 더불어 화석연료를 풀로 돌리고, 잦은 벌목과 개간으로 인해 환경오염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경영인이 알아서 ESG 시스템을 도입해서 앞장서는 환경 경영을 하자 그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공장은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수제간식을 만드는 생산 라인에서는 방진복에 마스크를 쓴 베트남 여공들이 컨베이어에 딸려 오는 핏물을 제거한 고기들을 분류해서 각각 손질하고, 스테인리스 쟁반에 담아 건조기로 날랐다.
거기에 맞춰 건조기에서 잘 익어 단단하게 굳은 수제간식을 날라 직접 포장했다.
과거 진욱이 직접 주민 센터를 통해 주부 사원들을 가르치고, 직원으로 고용한 다음에 공장 한편에 만들어 뒀던 것이 생각나는 광경이었다.
수제간식 라인을 지나고, 그다음은 일반 배합사료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위이이잉- 촤라라락-
사료기에 맞춰서 마대 자루에 담아서 인증 마크를 찍고 다음 컨베어에 나르는 공정을 보면서 진욱은 펫패션 사업부는 구설수로 인해 빠졌지만, 그만큼 사료 생산 단지의 규모를 늘려서 베트남 공장을 수출의 1티어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진욱은 처음부터 끝까지 라인을 잘 보고는 구내식당에서 식사의 퀄리티까지 하나하나 체크했다.
“케이터링 업체는 준수한 것 같네요?”
“네, 베트남 현지 식사와 한국인 직원들의 식사를 분리하고 있습니다.”
“흐으음.”
진욱은 현지에서 만든 케이터링 업체의 밥을 먹어 보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 시찰 이후에는 하노이와 호치민 일대를 돌면서 WWF가 주최하는 캠페인에 대해서 홍보 대사로 움직였다.
찰칵- 찰칵- 찰칵!
수많은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플래시 빛과 함께 베트남 공산당의 상무위원, WWF의 환경보호 캠페인을 위한 파견 직원 테이 린, 그리고 진욱까지 셋이서 서로 손을 잡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센터에 선 진욱은 그 상황에서 환경 보호 캠페인을 위해 움직였다.
진욱이 베트남어와 영어로 된 팻말을 들어 올린 것은 [상아, 코뿔소 뿔 거래 금지], [희귀 파충류 밀반출 금지], [무분별한 벌목 제한] 등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자리에서 말하겠습니다. 희귀 동물 보호에 대해서 막연히 금지를 한다고, 그것이 바로 근절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진욱은 무턱대고 막으면 더욱더 음지화되는 밀렵과 밀수 범죄에 대해서 한 가지를 확실히 말했다.
“우리 아성은 WWF와 함께 베트남 내에 자생 동물들을 위한 테마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대한 공사를 진행하리라 약속하겠습니다.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이 아닌 그 동물을 보러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것입니다.”
“좋소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베트남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돕겠소!”
작은 체구에 나이 지긋한 상임위원 례다오는 베트남 공산당 내에서도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물 중 하나라고 했다.
처음에는 환경보호 같은 캠페인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하면서 그냥 자리 메꾸기로 왔지만, 진욱의 자생종 밀반출 제한과 거기에 따른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의 복합 관광단지를 짓는다는 말에 바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당 독재의 정치 시스템에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서 양해 각서를 쓰면 이게 모두 자신의 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양해 각서를 쓰시겠소?”
“규제 논의와 부지를 정해 주신다면 조율해서 쓰겠습니다.”
“아~ 그거야 당연한 게지. 내 바로 전화 돌리리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바로 MOU를 체결하겠다고 본사에 알리자 그쪽에서도 바로 준비를 시작하겠다고 알렸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해외에서 환경 활동을 하고 있는 아성그룹 하진욱 회장이 희귀 동물 밀반출을 막기 위한 사회적 동물원 설립에 대해 MOU 체결을 맺었습니다. 총 규모 3억 5천만 달러의 금액으로…….]
진욱은 거기에 맞춰서 SNS에 글을 올리고 베트남을 넘어 다른 나라들을 돌았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필리핀이었다.
최근 불법 조업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해안가를 향해 양식업에 대한 투자와 어류 배합사료에 대한 공장 설립을 약속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존의 저인망 어업이나 생사료는 당장에는 수익이 될지 몰라도 종래에는 수자원 고갈에 바다가 황폐화됩니다.”
“허허, 우리 또한 잘 알고 있소. 그런 상황에서 양식업 증대와 생사료 규제에 대해서 내 힘을 써 보지요.”
필리핀 제1의 어업 도시인 민다나오에서 시장과 함께 관련 사업에 대해 논의를 한 뒤로 진욱은 동남아에 있는 구형 1, 2차 산업에 대해서 ESG 경영을 뿌려 갔다.
이후로 필리핀에서 인도네시아로 향해서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 대한 멸종 위기 희귀 동물에 대한 보호 캠페인.
그리고 태국으로 올라가 각종 병충해와 독사가 넘치는 지역에 대한 백신과 의료 인프라 확충 및 벌목 사업에 대한 안전 캠페인.
인도를 포함한 남태평양 환경보호와 그곳을 넘어 아랍으로 향하고, 이후 아프리카까지 넘어갔다.
진욱이 움직일 때마다 각국에 대해서 WWF와 같이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닌 길 이후로 본사의 아성그룹 임원들이 현지 방문을 하여 양해 각서를 체결한 나라들 중에서도 대형 프로젝트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아성그룹과 하진욱이라는 이름 석 자가 계속 알려지고 있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대기업 재벌 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해외 투자가 점점 더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 세계 일주에 가까운 움직임 속에서 돌아온 진욱은 예전보다 훨씬 건장한 체격에 피부도 많이 타서 현장을 오랜 기간 뛰고 온 기술자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한 사이즈를 올려서 새로 맞춘 정장으로 출입구에 나온 진욱 일행을 향해 수많은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해외에서 엄청난 스토리텔링을 만든 그를 보고서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회장님, 이번 장기 출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동남아에서 아프리카, 남미에 호주까지 수많은 대륙을 도셨는데, 추가 프로젝트가 있으십니까?]
[WWF와의 캠페인은 계속되는 겁니까?]
기자들의 수많은 질문 공세 속에서 진욱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상황에서는 분명 무슨 말이 나올 것이라는 걸 잘 아는 기자들이었고, 침묵 속에서 셔터 소리만 들릴 때 진욱은 크게 외쳤다.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하겠습니다!”
“……!?”
“그동안 국내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초대형 프로젝트! 지금 시작합니다!”
회장인 진욱이 직접 발표한 초대형 프로젝트의 시작!
아성사료의 영광을 위한 프로젝트를 이제 시작할 준비가 된 진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