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이제는 그냥 앞으로 달릴 때
진욱이 주최한 생방송 기자회견의 파급력은 굉장했다.
- 임신한 와이프가 길고양이가 물어 온 쥐 보고 기절했다? 이건 ㅇㅈ이지.
- 와, 얘기 들어 보니까 진짜 하진욱이 부처다, 부처. 자기 돈으로 버려진 개들 데려다가 먹여 키웠는데, 사람 물어서 죽인 걸로 동물 학대범이니, 개 학살자니 무슨 이 지랄.
- 사이비 동물 단체들이 문제지, 아성이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해. 막말로 자기네 집 앞에 고양이들이 똥 싸 대고, 쓰레기봉투 헤집고, 쥐나 비둘기 물어다 죽인 사체 널브러뜨려 놔 봐라.
- 아몰랑, 개는 우리 친구라고욧!(집에서 족발을 뜯으며.)
- 리얼… 이번에 진짜 동물 단체들 패악질 제대로 봤음.
실시간 뉴스 스트리밍 반응이 이 정도인데, 실제 언론사들 입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안녕십니까? SBC 주 기자의 브리핑 뉴스!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최근 생긴 길거리 동물권 이슈에 대해 논의를 드리겠습니다.]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MBS 시사자키 정한용입니다. 최근 길고양이의 캣 맘 문제와 개 물림 사고에 대해서 많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지상파들이 하나둘씩 간판 앵커들을 데리고 현재의 사태에 대해서 전문가를 초빙해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게다가 진욱이 후원했던 ‘강아지 훈육 프로그램’이나, 반려동물 보호 공익 광고 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대다수는 진욱의 인터뷰 이후 여론이 바뀌어서 대부분이 아성그룹에 대한 지지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진욱은 잠시 모든 것을 잊고서 주말에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향했다.
* * *
“아이구~ 진작에 올 걸 그랬어.”
“요새 너희 아버지 얼굴에 기름 낀거 봐. 맨날 흑돼지 구워 먹으면서 살만 쪄.”
은퇴 이후 제주도에 과수원을 지으시고 시골 라이프를 즐기시는 아버지 상만과 어머니 명숙.
이 자리에는 아버지 생일에 맞춰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큰아버지 내외도 오고 싶어 했으나, 정치권에 계신지라 직접 갈 수는 없다고 하고 대신 화환과 선물을 진성을 통해 보냈다.
“요새 하 회장이 고생이 많겠어? 신문에서 왜 그렇게 갈겨 댄 거야?”
싱글벙글한 아버지의 말에 진욱은 조용히 맥주잔을 비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다 끝난 일이에요. 그거 가지고 더 이상 시달릴 일 없을 겁니다.”
“그래, 뭐~ 돌직구로 날리는 게 나은 것 같긴 하더라.”
진영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동안 오너 리스크로 떨어진 주식이 회복세에 들어가 안도했다.
“그나저나 동서가 진짜 고생했겠어요. 어떻게 집에서 그런 일이 생겼대요?”
진미 역시도 뉴스를 통해 들은 세화에게 큰일 날 뻔한 이야기에 대해 말하자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을 안고 말했다.
“이제는 괜찮아요. 그때나 조금 놀라서 그런 거죠.”
“하여튼 요새 고양이 놈들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는 것 싹 다 치워야 하는데 말이야. 데려가 키울 것도 아니면서 뭘 바깥에서 먹이나 주고… 그게 민폐지!”
아버지가 하는 생각에 진욱도 사실 공감은 했지만, 저런 게 또 어디에 알려진다면 구설수가 될 수 있으니 그냥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렇게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즐겁게 생일 파티를 하고, 과수원에서 재배한 과일도 잔뜩 챙겼을 때였다.
“휘유~.”
진욱은 아버지의 과수원 인근에 있는 제주도 길을 걸었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상태였는데, 이렇게 와서 보니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여기 와서는 사업 이야기 하지 말자고요.”
“흐으음.”
진욱은 왼손에는 아들, 오른손에는 아내를 잡고서 같이 거닐었고, 그러다가 이 일대에서 홍보하는 [엘리펀트 파크]에 대한 홍보를 봤다.
“요새 저기도 재정난이라 매각하네, 마네 하더니만.”
“하지 말라니까…….”
투덜대면서 한 말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진욱이 그곳을 유심히 보다가 오랜만에 한번 보러 가자고 했을 때 가족들은 모두 따라 줬다.
* * *
그렇게 제주도에서 제대로 힐링을 한 다음에 돌아온 뒤로 진욱은 전 계열사를 한 번씩 돌아봤다.
“고객과 매출이 꾸준히 오르고 있고, 특히 삼정카드와 제휴한 아성 펫카드가 매우 인기입니다.”
요크셔, 웰시코기, 러시안블루, 페르시안 등의 각각의 품종묘와 품종견의 디자인이 새겨진 진욱의 역작.
그 카드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으며, 아성그룹 금융사업부가 2금융이 아니라 1금융권이었다면, 지금의 배 이상의 고객을 유치한 메가 뱅크가 됐을 거라며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정 본부장님, 그 외에 또 문제 있습니까?”
융자사업부 본부장에서 아예 금융 전체를 합친 금융사업부 총괄본부장에 오른 정준모 부사장은 진욱의 물음에 하나하나 대답했다.
“이번에 생명보험사를 하나 인수하려고 하는데, 대화생명하고 같이 컨소시엄을 이뤘습니다.”
“경쟁자가 그 중국 푸단생명이라는 거기요?”
“네, 그렇습니다.”
1조 7천억 원 규모의 중견 생명보험사인 현기생명.
자동차, 금융, 건설로 유명한 국내 제2의 재벌가 현기그룹은 이번에 자동차 관련 손해보험만 남긴 채 생명보험사 매각을 타진했다.
하지만 네임드 대기업들은 대부분 금융업으로 보험사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수 대상을 구하는 게 시원치가 않았고, 몇 차례의 구조조정을 마치고 금감원과 산업은행이 나섰을 때, 중국의 푸단생명이라는 업체가 나왔다.
그리고 금융사업부는 그 틈을 노려 하이재킹을 시도한다는 프로젝트를 진욱에게 보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냥 인수 금액 제공하고 TF팀에 대한 전권을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쓰시고, 인수 확정이 되면 그때 사인을 하기로 하지요.”
“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정 본부장이 싱글벙글한 얼굴을 짓자 진욱은 몇 년 전까지 내부 고발로 쫒겨나 경비 일을 하던 사람이 제자리를 찾아서 그룹에 핵심 임원이 된 것에 대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자기한테 맞는 옷을 입어야 제대로 된 능력을 보일 수 있나 보다.
“그 외에 인터넷 금융하고, IT 시스템은 잘되고 있습니까?”
“네! 내년부터 아토스와 카카오와 같이 우리 아성금융 역시도 인터넷 뱅크에 대한 심사를 금감원에 제출했고, 통과 확률이 90%가 넘는다고 합니다.”
“실패 확률 10%의 이유는요?”
“정권의 성향에 따라 금감원장 교체 이슈 같은 것이 생길 가능성이겠지요.”
“흐음~ 뭐, 지금은 정권 말기니 어느 쪽이든 간에 경제 살린다고 규제 풀고 뭐 그럴 겁니다. 사실상 100% 라고 생각하셔도 돼요. 진행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진욱은 상호저축은행, 인터넷 뱅킹, 신용카드, 방카슈랑스 상품에 이어 보험사와 투자증권사까지 품을 큰 그림을 착실하게 그려 나갔다.
자신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그냥 쓰는 사람을 믿는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임명했을 때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이 진욱이 최근 들어 쓰는 일 처리 방식이었다.
“자~ 다음은 펫케어사업부.”
진욱은 바로 회장 집무실에서 김형식 부사장과 최대철 사장을 불렀다.
“두 분은 현장 일 요새 잘되십니까?”
“하하하, 무척 잘되고 있습니다.”
“이번 분기 미국 수출로만 10억 불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훌륭합니다.”
미래전략실, 비서실, 비상경영실 등을 통합하면서 난잡하게 있던 사업부를 전부 개편해, 컨트롤 타워의 비서실과 현장직으로 움직이는 임원들을 분리한 상황이었다.
“두 분이 저한테 보고할 요새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없습니까?”
“회장님, 다름이 아니라 최근 제품 개편을 좀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음, 개편이요?”
“그동안 아성펫푸드와 아성사료는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면서 거기에 고객 수요를 맞췄으나 안 팔리는 제품과 팔리는 제품의 간격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안 팔리는 것들은 생산 라인 정리하고 주력 상품 위주로 가겠다, 이거죠?”
“네, 맞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CEO들에게 전권을 줬으니 그냥 매출과 수익을 확인하고, 주가가 오르는 것만 체크하면 될 일이었다.
“자~ 그럼 한번 그 외의 프로젝트도 논의를 해 봅시다. 이사회 안건으로 올릴 만한 큰 건으로요.”
“해외 공장 증설에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만…….”
진욱은 소파에서 최대철 사장과 김형식 부사장이 내미는 제안들을 태블릿 PC로 확인하면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1시간 정도 마라톤 회의를 하면서 회장실에서 나온 두 명의 전문 경영인은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고,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전부 성공한 것에 대해 악수를 나눴다.
그 뒤로 진욱은 제조업과 금융업 계열사들을 한 번씩 돌아보면서 편한 삶을 보냈다.
간간이 회장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국내에 있는 공장들을 한 번씩 시찰하고, 지역구의 거물인 정치인들과 지자체장을 만나면서 사업장 확장이나 규제 완화 논의 등에 주력했다.
이제는 진욱이 뉴스에 나와도 긍정적인 반응이 주류였고, SNS발 괴담 같은 것은 악플러들의 지라시 수준으로 끝났다.
그렇게 한 발짝 물러난 뒤에 회장으로서 상왕스러운 모습만 보이며, 각종 단체와 재단 활동을 열심히 하는 그는 또 새로운 것을 준비했다.
* * *
“사업장을 하나 크게 만들 거야.”
“네? 근데 그걸 왜 저한테…….”
“우리 건강이 태어날 때 맞춰 가지고 선물로 생각하려고.”
“애 태어나는데, 당신 사업장 하나 추가돼야…….”
세화는 피식 웃다가도 이제는 제법 부풀어 오른 배를 보면서 살살 어루만졌다.
“공장은 안 돼요.”
“에이~ 자라나는 새싹을 그런 데 데려갈 수는 없지.”
진욱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첫째 은준이를 안으면서 그때를 떠올렸다.
“얘 생겼을 때는 아성펫푸드였으니, 둘째도 그만한 건 하나 가져야겠어.”
“흐으음~ 뭐 편한 대로 해요.”
진욱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것.
그런 사업장을 위해 회사는 물론이고 집의 서재에서도 생각에 잠겼고, 그러면서 뭔가 떠올린 것이 하나 있었다.
* * *
“어쩐 일로 나를 찾아왔냐? 청탁할 거라도 있어?”
“에이~ 청탁이라니요?”
“암튼 잘 왔다.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
큰아버지 상규의 국회의원 사무실에 찾아간 진욱은 비서관이 주는 커피를 받으면서 한 모금 마셨다.
“정치 활동은 어떻게 잘되세요?”
“나 재선 나가려는데 상록시장하고, 2선 국회의원 중에서 뭐 할지 모르겠다?”
“어느 쪽을 하셔도 당선은 되실 것 같네요. 지역구 지지율도 높으시다면서요?”
“상록에서는 내가 아주 이거지!”
엄지를 연신 올리면서 껄껄 웃는 큰아버지를 보고, 진욱은 칠순이 넘은 뒤에 처음 해 보는 정치 활동을 즐기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새 사업을 좀 해 보려고 합니다.”
“흐음~ 그래서? 나보고 규제라도 풀어 달라고?”
“되는지 안 되는지 따지려면 국토교통부나 환경부 쪽을 따져야 되거든요.”
“어이구? 뭐 큼지막한 거라도 만드나 보다?”
“네, 사파리요.”
“사파리이~ 그 용인에 있는 삼정에 그거? 버스 타고서 안에 있는 사자 호랑이 보는 거.”
“네, 맞습니다. 규모는 좀 더 크겠지만요.”
“커 봤자 얼마나 크다고. 그런 걸 나한테 물어?”
“EV랜드의 10배요.”
“……?!”
순간 상규는 그 말을 듣고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물었다.
“열 배~?”
“네, 맞습니다.”
“너 무슨 공룡 사파리 만들려고 하냐?”
“비슷하긴 해요.”
“……!?”
진욱은 아마 자신이 추진하는 것 중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