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정말로 진솔한 이야기
이사회에서 폭탄 발언을 한 아성그룹의 회장 진욱.
일부 임원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으나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회장실에서 현재 아성그룹을 향한 수많은 뉴스를 진욱이 확인하고 있을 때, 그 앞에서 김인규 비서실장이 하나하나 설명했다.
“최근 아성사료, 아성펫푸드, 아성펫케어 모두 주가가 상당히 내려간 상태입니다.”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 대니까 이걸 오너 리스크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재벌이라는 특수한 시스템을 운용하는 한국 경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재벌가의 회장과 그 일가에 대한 구설수가 나올 때마다 바로 주가가 떨어지는 상황이 잦았고, 지금 이 상황이 딱 전형적인 ‘오너 리스크’였다.
“그러니까 이럴 때는 정면 돌파를 해야 돼요. 비서실이나 홍보팀을 통해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해야 결국 제가 임직원 여러분들을 방패 막이로 삼는다는 이미지밖에 안됩니다.”
“회장님, 하지만…….”
“이미 이사회에서도 한 말이고, 정정할 생각 전혀 없어요. 그리고 지금 비서실장님이 하셔야 될 게 뭔지 아십니까?”
“네?”
진욱은 김인규 실장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언론사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촬영해 줄 수 있는 메이저 방송국에 연락을 해야죠. 내가 모든 걸 다 해명할 테니 다들 와서 찍으라고요.”
“아,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김인규 실장은 진욱의 명을 받고서 메이저 언론사를 통해 바로 연락을 돌렸다.
그렇게 해서 아성그룹 내의 신입 직원들 오리엔테이션으로 쓰이는 한 층의 건물을 기자 프레스실로 만들었다.
15일에 이 자리에 모든 기자가 모일 것이고, 거기에 진욱이 나서서 직접 기자회견을 할 것이다.
[다음 소식입니다. 연일 동물 관련 사고로 인해 구설수가 있었던 아성그룹에서 하진욱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최근 생기는 길고양이 급식소 철거와 개 물림 사고에 대한 안락사로 동물 관련 법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한편 국회에서는 야생동물로 규정된 비둘기나 길고양이 등에게 먹이를 주는 것에 대해 불법으로 규정하고,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을 두고 있습니다.]
연일 지상파와 종편 뉴스를 통해서 진욱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기자회견 그리고 관련된 법안에 대한 이야기가 논의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SNS에서는 진욱에 대한 극딜이 계속됐다.
- 동물(학대)왕. 결국 한다는 게 안락사에 고양이 밥그릇 치우기 ㅋㅋㅋ
- 퍼트려 주세요. 이번에 아성그룹에서 캣 맘들 벌금 물게 하는 법안 낸대요.
- 이제는 개들도 전부 살처분 한대요. 우리 아이들 구해 주세요.[K펫보호연대]
대부분은 시민 단체나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대다수였고, 인터넷상에서도 SNS 여론이 더욱 심해진 상황에서 진욱은 이것도 전부 지나가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미 주사위는 던졌고, 그로 인해서 여론을 돌리는 건 결국 자신의 몫이었다.
* * *
그렇게 15일.
아성그룹이 약속한 기자회견에서는 수많은 임직원이 본사에서 긴장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업이 된 뒤로 수많은 기자를 직접 초청해서 기자회견을 여는데, 많은 준비를 한 상황이라 임원들이 각자 한 명씩 붙기도 했다.
“아, 김 기자~ 그러니까 기사 좀 잘 써 주지 그랬어?”
“에이~ 저희야 뭐 그냥 이슈대로 쓰는 거죠. 이런 구설수는 금방 넘어갈 겁니다.”
“그래도~ 좀 둥글둥글하게 써 줄 수 있지 않아?”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다.
“정 기자, 우리가 뉴스연합통신 광고 준 게 얼마인데, 그렇게 갈겨 대?”
“하하하, 죄송해요. 데스크에서 이번 이슈 가지고 좀 말이 많아서 그랬어요. 아시잖아요?”
“이번 건 잘 좀 써 줘라. 오죽했으면 회장님이 직접 나서셔서 생방송으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나?”
“네~ 네~ 알겠습니다.”
아성 내의 임원들이 말하자 기자들은 오히려 건수가 생겼다면서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기자들이 기다리는 동안 지상파 3사 방송국은 아예 카메라까지 준비해서 지금 상황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하면서 방영하고 있었다.
유튜브 등에서는 실시간으로 댓글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임직원들이 그것을 봐도 어질어질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웅성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시간이 되자 문이 열리면서 김인규 비서실장이 나왔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찰칵- 차라라라- 찰칵-!
동시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미친 듯이 울리면서 프레스실이 플래시에 번쩍번쩍거렸다.
그리고 뒤이어 진욱이 모습을 드러냈다.
편한 캐주얼 정장 차림에 최근의 구설수 속에서 메이크업을 잔뜩 한 다음에 온 모습에 실시간으로 찍힌 사진이 포토 뉴스로 올라왔다.
기자들이 카메라와 노트북으로 실시간 기사를 올리고 있을 때, 진욱은 단상 위에 올라가 인사하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아성그룹의 회장 하진욱입니다.]
진욱이 첫 인사로 운을 뗀 다음 수많은 기자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황에서 진욱은 일단 준비한 것을 읽기 위해 천천히 입을 뗐다.
[먼저 이번 이슈에 대해서 많은 유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셔터를 보면서 진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단상 위에 있는 마이크를 그냥 뽑아 버렸다.
마치 연예 프로그램의 MC처럼 무선 마이크만 들고 있는 상태에서 단상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뭘 하는지 몰라 웅성거리는 기자들 속에서 조용히 단상 앞에 걸터앉았다.
세상 편한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는 마이크를 들며 기자들에게 손짓했다.
“자~ 여러분? 다들 앞으로 오세요. 그리고 편히 앉아서 이야기하죠. 응~ 거기요. 네~ 네~.”
진욱이 먼저 편하게 앉으면서 다리를 까딱이자 기자들은 뭐 하나 싶으면서도 좀 더 가까이 찍기 위해 다가왔다.
그 앞에서 카메라 셔터 플래시에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진욱은 계속 미소를 유지하면서 기자들을 편히 앉게 한 다음 다시 말을 틔웠다.
“이렇게 편한 자리에서 말하겠습니다. 최근의 일에 대해서도 인터넷상에서 유언비어가 많이 퍼지는데 그것 역시도 오늘 이 자리에서 다 털어 낼 생각입니다.”
진욱이 제대로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고 하자 기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이미 주변인들에게 모두 허락을 받은 이야기를 천천히 털어놨다.
“먼저 캣 맘 사건에 대해서 말해 보죠. 올해 집에 둘째가 생긴 이후로 아파트에서 살던 것을 이제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청담동으로요.”
그거야 수많은 경제지 기자가 가십거리로 ‘재벌이 여기 산다.’ ‘얼마짜리 집인가?’ 등으로 담벼락과 인근 동네 사진만 찍고서 보도한지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담벼락도 높고, CCTV도 있어서 보안에 편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집사람이 마당에서 화단을 꾸미고, 꽃을 가꾸곤 했습니다. 태교용으로요.”
진욱은 빌드 업을 위해서 거기에 대해 운을 띄운 다음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최근 집 근처로 고양이 캔이나, 물그릇, 사료들이 여기저기 나왔습니다. 뭐, 처음에는 별로 생각 안 했어요. 오히려 그렇게 주는 캔과 사료가 우리 회사 제품이어서 길고양이도 아성사료 픽 한다고 웃으면서 넘어갔죠.”
그러자 여기저기서 들리는 웃음소리. 하지만 진욱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가며 진중한 눈으로 말했다.
“문제는 그래서 생긴 고양이로 인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태교를 위해 가꾸던 화단 근처가 발정기 고양이들의 싸움터가 되고 그 일대를 헤집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심했던 것은…….”
일생에 가장 큰 트라우마가 될 뻔한 이야기에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 이게 중요한 핵심이라면서 기자들에게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아침 일찍 아내가 꽃밭에 물 주러 갔다가 그 속에 하나하나 숨겨진 쥐 사체를 보고 기절했어요. 길고양이들이 널어놓은 건데, 그걸 보고 놀란 아내가 임신 4개월째였습니다.”
“하아아-.”
“아아…….”
지금 이 말에 대해서는 생방송 중에서도 여기저기 탄식 소리가 들렸다.
스트리밍을 확인하던 비서실 임직원들도 그 말부터 갑자기 여론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회사 일이고 뭐고 바로 수행비서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고 천만다행으로 이상이 없었지만, 지금 아내는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요양 중입니다.”
기자들은 그것을 바로 적어서 데스크에 실시간으로 보냈다.
그들 중 몇몇은 이건 확실히 큰 떡밥이 될 거라며 아예 자사의 뉴스 프로그램에 토크 쇼에서도 이슈로 쓸 생각이었다.
“제가 고양이를 잡아 죽인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증오 범죄식 동물학대를 지양해서 WWF과 캠페인을 했어요. 공존의 길을 말이죠.”
WWF 이슈를 말하면서 공존을 원했지만, 그러면서도 한 가지는 못을 박았다.
“하지만 같이 살아간다는 거지, 한쪽에 대한 피해를 일방적으로 감수하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우리 동물과 자연과 같이 공존을 하는 거지, 숭배하는 게 아닙니다.”
동물과의 삶은 숭배가 아닌 공존.
그 한마디가 몇몇 기자들에게는 헤드라인이 되었다.
“다음으로 이번 개 물림 사건 안락사에 대해서도 말하겠습니다. 이전부터 드라마나 영화에서 특정 연예인들이 키우는 견종에 대해서 수많은 분양이 있었습니다.”
예능에서 나온 톱 아이돌이 치와와를 키우면, 그 뒤로 여자들 사이에서 치와와 키우는 게 유행이 된다.
웰시코기가 관찰 예능에서 대세로 나오면 여기저기서 나오는 웰시코기 분양.
장모종, 토이견, 진돗개 등등 미디어를 통한 유행에 무턱대고 데려왔다가 파양당한 애들을 전부 아성펫케어가 지자체에 보호소를 기부 채납 해서 운영했다.
“하지만 그렇게 평생 보호소에서 사는 것도 행복한 삶이 아니라 생각해 민간 분양을 추진했고, 불행한 사고가 생겼습니다. 이후 저희는 아무리 동물권이 소중하지만 사람을 습격해 중상을 입힌 개를 그냥 놔둘수 없어 안락사 처리 했습니다. 이미 행동 교정에 대해서도 여러 번 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을 알렸으니까요.”
오늘을 위해 기다리며 날을 잡고 그때의 이야기를 전부 하는 진욱.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고 담담하게 ‘이런 일이 있었으니 이런 이슈가 나온 것이다.’라고 말하여 사실 관계를 확실히 잡았다.
“그동안 이런 일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던 것은 기업 이전에 집안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민원으로 주변 길고양이 밥그릇 치우라고 한 게 오너리스크가 되고, 집에 대한 욕을 하며, 들어 본 적도 없는 사이비 동물 보호 단체들이 회사를 점거하는 것을 보고 말이죠.”
이때부터는 워딩을 세게 해도 상관없다.
이미 여론은 실시간으로 뒤집혔고, 이때부터는 분노를 쏟아 내도 그것에 대해 정당하다고 대중들이 인정할 것이다.
1시간 동안 단상에 편히 앉아서 기자들과 취중 진담을 하듯이 편하게 진행한 기자회견.
“회장님, 질문 있습니다.”
“하세요.”
“그럼 앞으로도 개 물림이나 야생 고양이 등에 대해서는 살처분에 대해 찬성하시는 겁니까?”
“처분이 아니라 처벌입니다! 그런 걸 보고 귀여운 강아지라고 하는데, 그런 애들이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기나, 힘겹게 밭일 나온 노인분들을 습격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감성에는 감성으로.
저쪽에서 철장 안에 갇힌 불쌍한 개의 프레임을 건다면, 이쪽은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 대한 위험을 강조했다.
모든 기자가 다 같은 성향은 아니어서 안락사 반대나,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살처분에 대해 논했지만, 진욱은 거기에선 단호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자연기금과의 캠페인과 환경보호를 위한 기부 그리고 유기견과 유기묘 보호소 운영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욱이 못을 확실히 박으면서 마이크를 기자들에게 내밀었다.
“그럼 또 질문 있으십니까?”
진욱은 이것으로 몇 주간 자신을 괴롭혔던 구설수를 전부 떨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