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회장님이 다 해 주리라
진욱이 서커스단 하나를 통째로 구매한 것을 두고 바로 김인규 비서실장이 숙소로 찾아왔다.
“회장님, 이야기 듣고 바로 본사를 통해서 화상회의를 마쳤습니다.”
“아, 그렇군요.”
여섯 시간 정도의 시간 차가 있으니, 곧바로 본사에서 회의를 마치고 거기서 테마사업부 쪽과 협업을 한 것이다.
“이번에 인수한 서커스 팀에 대해 알아보니, 오래전부터 동물 공연에 대해서 학대 논란이 있던 곳이더군요.”
“네, 그래 보였죠.”
“게다가 강제 폐업을 앞둔 상태였다고 합니다.”
가만히 놔뒀어도 알아서 망할 회사였는데, 진욱이 웃돈 좀 얹어 준 꼴이 됐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고통받는 걸 보느니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결재 금액은 제 개인 사재를 썼습니다. 이걸 다시 법인화해야겠죠.”
“네, 일단은 재편을 알리고, 제가 직접 협상을 해서 동물 공연은 중단하고, 거기에 동물원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김인규 비서실장의 말에 진욱은 괜찮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커스 팀 같은 경우는 개인 훈련을 한 다음에, 이번에 부쿠레슈티 공장 사옥 인근에 추가로 클럽 하우스를 만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이것 역시도 굿 아이디어였다.
어차피 진욱이 구매한 만큼 이건 루마니아에 대한 ‘투자’가 되는 거고, 이곳은 투자한 만큼 현금 인센티브로 지원을 해 주면서 법인세와 비자가 면제되는 나라였다.
진욱은 그 외에도 비서실장과 비서실 직원들과 함께 다른 건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자정까지 이어지는 회의에도 모두가 하나라도 더 뭔가를 알리기 위해 움직였고, 그날 밤이 되어서 진욱은 회장 이름으로 고생한 비서실 임직원들을 향해 명품 시계를 한 개씩 돌렸다.
“수고해 주세요.”
“네, 회장님. 유럽에서부터 우리 아성의 주파크 사업도 확실히 성공시키겠습니다.”
예정 기간보다 좀 더 늘어났던 출장에서 진욱은 비서실 직원들을 몇 남겨 놓고 서커스 공연과 동물원 설립에 대해서 마무리를 짓게 했다.
그들 또한 회장이 즉흥적으로 내건 회사 인수 건에 대해서 제대로 된 회사로 만들어 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후 진욱은 이스탄불을 경유하며, 한국에 오기까지 많은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경유지에서 김인규 비서실장은 회장님의 인천국제공항 귀국을 앞두고서 한 가지 이벤트를 준비했다.
* * *
비행기 안에서 김인규 실장이 국내 언론에 알린 것을 두고서 진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이벤트 좋아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이번 건은 크게 키울수록 오히려 미담으로 남아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겁니다.”
“아니, 뭐 죄송할 건 없죠. CEO가 하기 전에 먼저 해 주는 홍보라… 제대로 불이 붙었겠네요.”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짐을 챙기고 그리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성그룹의 회장이 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수많은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루마니아 건의 수억 달러 투자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커스단과 동물원까지 설립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진욱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물러나기로 했다.
다만 딱 한마디만 하기로 했다.
“자세한 건 홍보팀을 통해 정식으로 알리겠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바로 회사로 가야 합니다.”
워커홀릭의 모습을 보이면서, 오후부터 다시 본사로 가서 일하겠다는 진욱.
그리고는 품 안에서 꺼내 흔들거린 것은 ‘아성주파크’에 대한 여행 책자였다.
* * *
“다큐멘터리 방송에, 이번에는 또 공연 학대 당하는 동물들을 돈 주고 사 오셨어?”
“불쌍하더라고.”
“자선사업가 나셨네. 국내에서 도살되는 유기견이나 돕지.”
“그건 지금도 계속 하고 있어. 매년 기부금 늘려서.”
오자마자 둘째 누나인 진영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진욱의 기사들을 보여 줬다.
[동물왕 하진욱 회장, 서커스 동물 공연장 인수.]
[‘학대 공연은 없을 것’ 인수 이후 일반 동물원 전환 검토.]
[동물 학대인가, 예술 공연인가? 기로에 선 동물 공연 논란.]
최근에 돌고래 쇼가 국내에서 하나둘씩 종료되고, 물개 쇼나 호랑이 사자를 쓰는 각종 동물 공연들도 논란의 도마에 섰다.
이 와중에 진욱은 ‘동물권의 수호자’가 되었으며, 월드 디스커버리 다큐로 나왔던 별명 ‘동물왕’은 국내 언론에서도 먹히게 됐다.
여러모로 긍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상황이니 진욱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서 그거 알려 주려고 온 건 아닐 것 아니야?”
진욱의 이미지 마케팅이야 알았으니 잘 퍼진다는 건 인정했고, 그 외에 누나가 뭘 원하는지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베트남 공장 바꿔 줘.”
“음?”
진영은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알리는 게 낫다면서 직접 자신이 가져온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 놨다.
거기에 찍힌 건 과거 대화그룹과 같이 베트남 공동 진출을 하면서 있었던 아성사료의 공장, 그 옆으로 아성펫패션 봉제 공장의 제품들이었다.
과거 뛰어난 가성비에 마감 처리도 좋아서 매우 호평을 받았고 그룹 내 핵심 계열사로까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5년이 지난 뒤로 현재의 상태는 처참했다.
“야, 이건… 원단 망가트리려고 박음질을 이따위로 했냐?”
전문가가 아닌 진욱이 보더라도 어설픈 마감 처리에 불량품이 가득한 제품들이었다.
심지어 5년 전에 유행했던 의류와 지금 막 나온 의류를 봐도 그 차이가 확실했다.
“아니,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어?”
“딱 2년 잘나갔어. 그 뒤로 3년 차만 하더라도 숙련된 봉제공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라고.”
이후의 이야기는 똑같았다.
저임금에 인프라가 있는 동남아의 공장들을 찾아서 뛰어난 가성비로 성장세를 이끌었으나, 이후 인건비가 상승하고 숙련자들이 다른 곳으로 가거나 아예 독립해서 창업을 한다.
그 이후로 갈수록 품질은 떨어지고, 회사 이미지에 대해서도 타격이 생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바꾸긴 해야겠네.”
“내가 작년부터 지랄을 해서 어떻게 바뀌나 싶었는데, 아예 대놓고 다른 봉제 공장으로 가서 짝퉁들 만들고 있어. 특히 중국애들.”
중국 역시도 애견용품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펫패션에 관련된 의류가 전부 그쪽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아무리 품질에 신경 써도 결국 그쪽에서 제조업 물량빨로 몰아붙이는데 장사가 없었다.
“이건 바로 기획안 올라오는 대로 사인할게. 적당한 공장 있으면 바로 알려줘.”
“오케이. 역시 회장님이야.”
걸맞는 위상을 가지라고 해도 아직까지도 아성그룹은 오너 일가의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누나의 계열사 문제에 대한 해결 약속을 한 뒤로, 또 다른 친족의 방문이 있었다.
* * *
“드라큘라 동네 잘 다녀왔어?”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싱글벙글한 얼굴로 온 것은 사촌형 진성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직접 만나서 의논 할 게 있어서.”
“잠깐만, 차 준비할게.”
한국 복귀하자마자 갑자기 누나고 형이고 마구 와서 의논을 하는 통에 진욱은 바빠졌다.
그리고 진성이 가져온 것은 태블릿에 담겨 있는 아성재단 명인학원의 운영 내용이었다.
“이번에 수의대 유치하면서 다른 쪽도 투자하는데, 금융공학과하고 회계학과하고 통합 준비한 것 말이야. 일이 좀 커졌다.”
“신관 짓는다는 것에 대한 문제야?”
“어, 서울캠 대학 용지 늘이는 데 협상이 좀 길었어.”
이원화 캠퍼스 문제로 서울과 용인캠 모두에게 투자하는데, 추가 금액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번엔 얼마나?”
“최대한으로 깎아도 3,500억.”
“후우-”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못 낼 건 아니었다.
“회계팀 불나겠네.”
“그래도 착공 시작하면, 건물은 빨리 올릴 수 있어. 이미 디자인까지 정해졌거든.”
진성이 보여 준 것은 지난번 진욱도 봤던 대학교 새 건물에 대한 A 안과 B 안. 그리고 그 밑으로는 지하캠퍼스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어차피 손금 산입 처리할 거라, 그렇게 부담은 안 가겠지만…….”
손금 산입이란 기업이 1년 동안 사용한 금액 중, 법인세 과세표준에서 제한되는 금액이다.
주로 재계에서 사립학교 재단을 가진 곳들이 투자는 하면서 세금 문제로 회계 처리를 하는 제도인데 75%까지는 보존이 된다.
“사내 현금으로 처리 가능해. 대신에 우리도 해야 할 게 있어.”
“루마니아 건? 가서 동물원이랑 공장 지으면 되나?”
“그것도 예산 3천억짜리야.”
이제는 수천억 규모의 거래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하지만 그때와 다를 바 없이 진성이나 진영이나 진욱을 통해서 예산 권에 대해서 수월하게 요청하고, 회장인 그가 전부 해결해 줬다.
“일단 임원 회의에서 이것도 안건 올릴 테니까, 결과 나오는 대로 바로 연락할게.”
“오케이. 그리고 또 지금 확장 공사 하는 양산 공장 건 말인데.”
여기까지 와서 오너 대 오너로 최근 공사 문제와 거래 문제에 대해서 꽤나 길어지는 회의였고, 대부분은 진욱이 결정해서 조율을 마쳤다.
“후- 역시 하 회장, 집안에서 총괄 경영 맡길 만하네.”
“그냥 형이 이 자리에 있어도 될 것 같은데?”
진욱이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진성은 거기에 대해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진성 또한 돌아갈 때, 다시 집무실로 돌아온 진욱은 남아 있는 결재 안건들을 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중요 사항은 밑에 다 맡긴다고 해도 아직도 이 정도니…….”
대부분은 3개 사업부의 대표이사들이 정리한 것을 김인규 비서실장을 통해서 정리가 되나,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보다 월등히 늘어난 계열사와 각종 거래 건으로 인해 정시 퇴근은 요원한 상태였다.
결국 진욱은 집에 연락을 한 뒤로 뒤늦게서야 약속 장소로 갈 수 있었다.
* * *
“미안.”
“아니, 괜찮아요. 출장 다녀와서 바로 회사 일 한 다음에, 이제 온 거잖아요? 오히려 내가 다 걱정이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워.”
첫째를 키우면서, 둘째도 임신한 상태의 아내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덕분에 오늘 한국 온 기념으로 먹는 서라벌 호텔에서의 외식은 1시간이 늦었지만, 모두가 행복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를 마치고, 당분간은 좀 쉬엄쉬엄하려고 했는데 또다시 뭔가 일이 터졌다.
“네? 어디요? WWF요?”
[네, 그렇습니다.]
“프로레슬링… 단체는 아니죠?”
[하하하, 세계 자연 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입니다.]
WWF.
세계 최대의 환경 보호 단체이자, 야생동물 보호 단체로 유명한 그곳이 별안간 진욱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동안 회장님의 사회적 가치를 위한 동물권 보호 활동이 매우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환경보호를 위한 사업 논의를 요청했습니다.]
“아, 네. 뭐… 일단은 한번 스케줄 조율은 해 봐야겠군요.”
그동안 여기저기 많은 단체를 만나 봤지만, 비정부 기구라고 해도 엄연히 국제기구에서 진욱을 찾았다.
아무래도 또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았고, 진욱은 일단 이 건에 대해서 이사회를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