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다시 해외로 나갈 때
진욱은 대한상공회의소에 초대를 받고서 새 정장을 갖춰입고 왔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국회의장 한병엽은 흰 눈썹을 깜빡이며, 진욱을 향해 상장을 건넸다.
R&D 우수경영인상.
국회의장이 직접 수여하는 표창을 받은 진욱은 다른 기업인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오늘 참여한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연달아 받았다.
수여식 이후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 그 주변으로 상공회의소의 경영인들이 박수를 치는 센터 샷의 영광을 누렸다.
시상을 마친 뒤로 가벼운 만찬 자리가 이어졌을 때, 상공회의소장인 김승열 회장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 옆자리에 앉았다.
“요새 우리 조카 사위가 아주 기특해?”
“하하하, 아닙니다. 큰아버님.”
“그래 다음 사업은 뭐야? 아주 기대하고 있어?”
자신의 그룹도 아니고, 조카사위의 회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 김승열 회장 주변으로 다른 10대 기업의 경영인들도 진욱을 관심있게 바라봤다.
‘젊은 친구가 확실히 대단하긴 해.’
‘IT도 아니고 제조업으로 저정도까지 성장시킨 거면 인정해야지.’
‘김 회장이 조카사위 하나는 잘 뒀어, 저 친구 결혼 안 했다면 나도 한 번 집안 애들 고려해 보는 건데…….’
여기에 있는 모두가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2, 3세들이었고 신흥재벌로 뜬 30대 청년인 진욱에 대해 칭찬의 눈길이 가득했다.
진욱은 시상을 마친 뒤로 바로 아성그룹 강남 사옥으로 도착했고, 오전에 못 했던 일을 하기 위해서 인트라넷에 있는 사업 기획안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대부분은 그냥 임원들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업 건이었고, 그 외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었을 때, 진욱은 지난번에 기획서를 받았던 해외 공장 사업 건에 대해서 흥미를 보였다.
“흐음, 그러고 보니 이것도 있었지.”
진욱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김인규 비서실장을 불렀다.
근처에 있어 바로 들어온 김인규 실장을 소파에 앉게 하고, 태블릿에 자료를 담아와 내밀었다.
“이번에 유럽 공장 설립에 대해서 논의하려고 왔습니다.”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조사단이 곧 도착해서 그 이야기도 회장님께 드리려 했습니다.”
김인규 실장은 현재 해외사업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회장님께서 설립하신 해외 공장들의 매출 역시도 상승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상해공장의 경우에는 조금 주춤하긴 하지만, 매출 대비 수익은 아직도 좋은 편입니다.”
중국, 대만, 미국, 베트남.
모두 진욱이 추진해서 만든 사료 공장들이었고, 특히 대만의 경우 인수하자마자 대형 화재를 입어서 피해가 컸지만, 보험사와 합의해서 받은 보험금으로 재건한 이후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미국이야 초반에 W마트의 갑질로 인해서 납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바로 오픈마켓으로 선회한 덕분에 미국 내에서도 아성의 이름은 펫푸드에 한해서 상당한 네임드였다.
그리고 베트남의 경우, 한국 기업들의 진출 러쉬 이전부터 추진했던 사업이 빛을 발휘해서 동남아 내에서도 신의 직장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이 유럽이었다.
현재도 반려동물 간식이나 사료 품질에 대해서는 미국보다도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과 프랑스 등이 상당한 강세를 보였다.
진욱이 예전부터 봐 왔던 슈투트가르트 국제 애견 박람회 때부터 그곳의 동결건조사료 기술까지 사 와서 만든 것이 지금의 부산 공장.
그리고 이제는 때가 되어 그쪽으로 진출해서 제대로 유럽 시장도 공략해 볼 생각이었다.
“일단 조건에 맞는 후보군이 세 곳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해외사업부와 임원회의에서 추천한 3개국은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였다.
셋의 공통점은 서유럽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떨어지는 국가이면서, 유럽연합 가입 이후로 적극적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진출하여 저임금에 기업 혜택 또한 많은 곳이었다.
“웬만한 곳들은 전부 다 땅을 찍어 놨으니…….”
동유럽 직전의 중부 유럽의 폴란드, 체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만 하더라도 이미 삼정이나 현기, KS 같은 국내의 휴대폰, 반도체, 자동차 생산 공장들이 모두 진출한 상황이었다.
진욱은 그 목록들을 보고서 김인규 실장에게 물었다.
“조사단이 돌아오면 그때 가서 또 회의를 해야겠지만, 실장님이 보시기엔 어디가 가장 나아 보이시나요?”
“흐음, 저 역시도 아직 판단이 잘 안 섭니다만…….”
김인규 실장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후보지를 말했다.
“아무래도 루마니아가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요?”
“현재 후보군인 세 나라 모두 제조업과 농업이 주인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루마니아는 유럽의 빵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밀과 옥수수 등이 세계적으로 많이 생산되는 곳입니다.”
“원자재에 대해서는 걱정 없는 곳이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또한 경제협력을 위해서 비자면제 혜택까지 주어진다고 합니다.”
“흐으음. 일리가 있네요?”
진욱은 김인규 실장의 이야기를 듣고서 자신 역시도 루마니아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해외사업부 조사단이 오는 것으로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유럽 공장 설립을 앞두고서 진욱은 얼마 뒤에 온 조사단을 맞이하면서 회의에 들어갔다.
* * *
“루마니아가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해외사업부장 서인후 전무의 입에서 나온 루마니아의 추천에 진욱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봤을 때, 다른 두 국가에서 주는 혜택도 나쁘지 않았으나 지금 진출할 때에는 루마니아가 굉장히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현재 루마니아에서는 한국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비자 면제 계약을 양국 간 체결했습니다. 또한 적극적인 세제 감면에 좋은 매물 또한 나왔습니다.]
“매물이요?”
[네, 그렇습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있는 두성그룹의 선박부품 사업부가 철수하여 그 부지가 매물로 나왔습니다. 4천만 유로 정도인데, 한화로는 532억 정도입니다.]
최근 두성그룹이 재정난에 빠졌다고 하더니, 해외 공장을 매각할 정도로 구조조정이 강도 있게 진행되나 보다.
진욱은 괜찮은 공장부지 매물에 세제 혜택 감면, 거기에 비자 면제까지 해 준다고 하니 일전에 김인규 실장에게 들었던 루마니아의 농업 상황에 대해서 딱 퍼즐이 맞춰졌다.
서인후 전무 역시도 루마니아를 강력 추천했고, 모든 임원들이 보더라도 그곳이 제일 적절한 사업지 같았다.
“좋습니다. 이사회 투표를 하고, 최종 후보지 루마니아에 대한 투표를 하겠습니다.”
회장이 직접 이사회 투표를 진행했고, 이미 오너의 마음도 기울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임원들은 만장일치로 루마니아를 결정했다.
그리고 해외사업부를 통해서 루마니아와 협상을 하는 동안에 진욱은 회장실로 향하면서 국내에 있는 약속을 잡았다.
“전화 돌려 주세요. 동대문 DS타워.”
[네, 회장님.]
진욱은 바로 연락해서 식사 약속을 잡았고, 그쪽 역시도 흔쾌히 승낙했다.
* * *
“자 받으시지요.”
“네~ 안 그래도 이런 자리를 한 번 가졌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현 두성그룹의 회장 박정국은 전 상공회의소장이자 전 회장의 조카였다.
형제상속제인 두성그룹은 초대 회장의 장남의 승계 이후 5년에 걸쳐서 회장 자리를 형제간 이어 가며 경영했고, 그 다음으로 장손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중공업, 플랜트, 건설 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 두성과 아성은 딱히 접점이 없었지만, 상공회의소가 경제인 연합 등에서나 오다가다 한 번씩 인사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저를 불러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좋은 사업 건을 알려 주시려는 건가요?”
넉살 좋게 말하는 박정국 회장을 향해 진욱은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고는 본론을 말했다.
“최근 저희가 유럽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호오, 그렇군요? 그쪽 시장에 대해서라면, 역시 사료 공장인 겁니까?”
“네, 맞습니다. 그것도 루마니아로 결정했습니다.”
“아하하하…….”
그룹 내에서 아픈 손가락인 곳인데, 거기를 콕 찝어 말하자 박정국 회장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상대가 안 좋은 것은 안 좋은 것이고 진욱은 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그걸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두성의 루마니아 공장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아, 그곳을 말입니까?”
“네.”
진욱이 공장 인수를 위해서 말하자 박 회장은 미소를 지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그곳은 저희가 공들여서 만든 선박 부품 공장입니다. 사업 개편을 위해 매각 대상에 올리기는 했지만, 부지가 아주 좋은 곳이지요.”
“하하하, 네. 그래서 더욱 거기를 인수하고 싶네요.”
“인수가가 4천만 유로가 되는데, 회장님과 첫 인연으로 거래를 하는 것이니…….”
“4천 5백만 유로를 드리죠.”
“……!?”
매각 금액보다 더 쳐준다는 말에 박 회장의 눈이 커졌다.
한화로 해야 600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 재벌가 사이에서 사업 논의를 할 때 그렇게까지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원래 금액보다 비싼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물론 더 쳐주는 거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죠.”
“하하하, 어떤 이유입니까?”
“루마니아 공장은 중공업 위주의 금속이 주가 되는 공장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식품 생산이니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아, 매각 공장에 대한 내부 청소와 리모델링… 그게 포함된 금액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거라면 마다할 리가 없었다.
어차피 공장을 인수한 다음에도 내부 수리를 해서 그것을 다시 운영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매각 준비를 하는 공장에서 내부 청소에 진욱이 원하는 컨베어 생산공장까지 구비해 달라는 것까지 요구해도 남는 장사였다.
“좋습니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바로 계약하시죠.”
“그럼 계약 성사 기념으로 한잔하시죠.”
진욱과 박정국 회장이 잔을 부딪혔고, 그렇게 유럽 공장에 대해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얼마 후 아성사료와 두성중공업 간에 계약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두성중공업이 철수하는 루마니아 선박 부품 공장, 아성사료가 인수한다.]
[전격 계약 체결, 이제는 아성가의 품으로 들어온 루마니아 공장.]
[하진욱 회장 ‘유럽에서도 사료 공장의 성공을 이끌 것’ 국내의 성공 이후 대담한 출사표.]
언론에서 나팔을 불어 대는 와중에 진욱은 루마니아에 대한 자료를 여행 책자로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는 루마니아라고 해야 옛날 공산권 국가, 드라큘라 전설이 있던 곳 정도만 알고 있었다.
김인규 실장이 말한 대로 농업 생산량이 상당했고, 육류 역시도 엄청난 시장이었다.
“으음~ 예전에 중안무역 통해서 들여온 말고기가 여기 것도 많았구만?”
법 개정으로 짐말들이 모두 살처분되고, 트럭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그때 만들어진 말고기는 모두 아성사료의 동결건조 사료로 재탄생했다.
알게 모르게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 곳에서 진욱은 공항으로 출발하며, 그쪽 사람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
“어디 보자, 첫 면담이 그 나라 총리고, 그 다음은 두성중공업 루마니아 공장장, 그리고 농림부장관, 부쿠레슈티 시장…….”
본격적으로 타국에 진출해서 사업을 한다고 하니, 정치인부터 현지에 있던 한국 기업 주재원들까지 모두 만나야 했다.
진욱은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이번 건에 대해 행운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