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89화 (189/200)

189화 이젠 정리해야 할 때

진욱은 리펑을 보낸 뒤로 다시 올라왔다.

이미 그사이에 커피 두 잔을 준비한 박 사장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진욱에게 한 잔을 건넸다.

“회장님과의 약속 이후로 빨리 정리했어야 하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바이룽의 리 펑이 여기 왔다 갔다는 것을 대놓고 보여 준 것 같은 박 사장이었다.

“박 사장님, 우리 그동안 많은 인연이 있었죠?”

“네, 물론입니다. 아직까지도 저희를 찾아 주신다는 것에 대해서, 저 역시도 회사 운영하는 데 영광입니다.”

“이번에 중국 수출 건으로 와 봤는데, 어떠실까 싶습니다.”

“흐으음, 그 건에 대해서도 바이룽이 나왔지만…….”

“……!”

박 시장은 쓴웃음을 짓고는 현재 있는 상황에 대해 말했다.

“안 그래도 부산 일대의 향토 기업들도 지금 중국 수출 문제로 난리도 아닙니다.”

“아하하하.”

“이제는 회장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상공회의소와 관련 있으시고, 대기업 회장님이시니 말입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위상이 오른 진욱이었지만, 중안무역과의 거래는 언제나 함께했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박 사장은 진욱을 한 번 보면서 커피를 쭉 마시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회장님이 직접 찾아 주셔서 많은 것을 준비했습니다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네?”

“여기서 말하기는 그렇고, 지난번에 저에게 식사 한 번 사기로 하신 일이 있었죠?”

“아…….”

“어떻게 오늘 한번 사시겠습니까?”

“아, 지금이요?”

“네, 지금 말입니다.”

“술까지 해서요?”

“네, 잘 마실 수 있습니다.”

진욱은 사업 논의를 하다 별안간 그때 한 번 빚진 것에 대해서 식사를 사라는 박 사장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직감하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박 사장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한번 가 보죠.”

“회 좋아하십니까?”

“네, 회든 탕이든 찜이든 다 좋으니까 한번 안내해 주세요.”

졸지에 낮술 하게 생겼지만, 진욱은 그 상황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래도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고, 그러려면 확실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 * *

“경치 정말 좋군요?”

“하하하, 여기가 바로 숨겨진 부산의 맛집이지요.”

정말 천혜의 경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2층 창문 너머로 파도가 칠 때마다 뾰족한 바위들을 두들겨 대고, 밀물이 들어올 때 바로 옆에서 바다가 올라올 수 있는 구조였다.

“가끔 여기다 대고 낚시도 가능합니다. 저도 몇 번 해 봤죠.”

“오~ 그런 건 TV에서나 나오는 콘셉트인 줄 알았는데.”

잘 차려진 회 정식을 한 점 먹어 본 진욱은 생각 이상으로 부드러운 맛에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제 여기서 들을 수 있을까요? 식사야 전부 제가 사겠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식사를 사라는 것은 사실 농담으로 한 말입니다.”

“네?”

“이 식사 자리가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진욱은 박 사장이 하는 말에 눈이 커졌다.

설마설마했는데, 그동안 아성그룹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엄청난 정보통이 돼 줬던 중안무역과 박 사장이 이제는 자기 편이 아니라는 것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중안무역은 다음 달 이후로 법인이 해산됩니다. 저 역시도 이제는 야인으로 돌아가겠죠.”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밑에 있는 직원들이 전부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몇몇은 바이룽으로 향하고요?”

“그것은 아닙니다만… 대부분은 중국 수출입에 관련된 회사로 가게 됩니다.”

“으으음…….”

진욱은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그게 뭘 뜻하는 건지 잘 알았다.

사실 박 사장도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이들의 정체는 전직 ‘원’ 출신들.

국가에서 정보를 총괄하는 공무원 들이었으나, 지금은 현장에서 물러나 먹고살기 위해 당시의 해외 수집 정보를 통해 소규모 무역 회사를 만든 이들이었다.

박 사장 역시도 ‘전직’이라 소속되었던 곳에서 비밀 엄수 조항에 대해서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것마저도 안 될 것 같았다.

“혹시 상공회의소로 가는 직원도 있나요?”

“최근에 그분이 중국 수출입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신다는 말에 몇몇이 관심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이거… 상황이 하나하나 이어지는 느낌이군요.”

최근 중국의 한국 무역 수출 규제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 극심한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중 수출 비율이 높은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중국 정부와 협상을 해야 했고, 그 속에서 전직이건 현직이건 관련 공무원들 역시도 복귀시켜서 협상에 들어가는 로비스트로 양성하는 듯했다.

결국 그때의 일 이후로 중안무역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그러면서도 사업을 할 때 오다가다 볼 사람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웠고, 당장에 새로운 수출 루트로 중안무역의 도움을 받으려던 진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회장님의 위상도 있으시니 저희 같은 구멍가게 말고, 대기업 상사맨들을 마음껏 부리셔도 될 겁니다.”

박도영 사장의 말대로 이제는 대기업 무역 회사들과 움직여도 더 이상 꿇릴 게 없는 아성의 규모였다.

하지만, 진욱은 그동안의 무역회사들과 거래를 하면서 박 사장만큼의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그럼 박 사장님은 앞으로 그냥 은퇴하시는 겁니까?”

“뭐, 그래야겠죠. 이젠 써 줄 곳도 없으니까요. 하하하-”

“아예 우리 쪽으로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진욱은 때마침 여기 오기 전에 처백부 어른 대화그룹 김승열 회장과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박 사장에게 하자, 순간 그는 떨떠름한 얼굴에서도 뭔가를 생각했다.

“그러니까 대화그룹에 저를 추천하시겠다고요?”

“네, 맞습니다.”

“그쪽에서 구조 조정을 좀 크게 했다는 이야기는 압니다만, 흐으음……. 겨우 구멍가게 수준의 무역 회사 하는 사람이 갑자기 그곳에 간다면…….”

“만약 그런 게 문제라면 제가 나서서 말하겠습니다. 아성사료가 아주 작은 중소기업 시절부터 손발을 맞춰 오면서, 도와주신 분이라고 하면 대부분 납득할 겁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저도 고려는 해 보겠습니다만.”

“꼭 와 주십시오. 사실상 국가건 민간이건 수출 문제로 사장님만 한 분이 없지 않습니까?”

“으으음…….”

박도영 사장은 힘겹게 고민하다가 조용히 소주를 채웠다.

그리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작별 인사가 아닌, 아예 진욱 일가로 들어오게 되는 역제안에 많이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이건 바로 답변은 못 드리겠습니다. 대신, 최대한 빨리 연락을 드리죠.”

“전화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부산에 머물고 있죠.”

당신 영입 못 하면 그냥 여기 눌러앉을 수도 있다는 진욱의 의지에 박 사장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술잔을 채워 줬다.

낮부터 회 정식에 술 한잔을 기울였지만, 그날 저녁까지 진욱은 절대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 사장과 헤어진 뒤로 숙소를 잡아서 앞으로의 플랜에 대해 생각하고, 그러면서 실시간으로 아성사료 판매 현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중국 수출의 장벽이 점점 높아지며, 제조업의 불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부터, 가공식품까지 뭐 하나 규제에 안 걸리는 게 없다고 하는데요? 이정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네, 갈수록 심해지는 한중 무역 갈등에 이번에는 FTA 이후 55%의 제품이 무관세인데, 나머지 45% 수출입품에 대한 관세가 치솟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갈수록 무역수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나오고, 진욱은 그 상황에서 미국이나 호주, 유럽 등지에의 수출을 생각하면서도 차 떼고 포 떼는 지금의 시장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네, 그렇게 됐습니까?”

[그래, 상하이 아쿠아리움도 문 닫네 마네 하더라. 이것들이 치사하게 그 옆의 다른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는 허가를 내 준다는 거야!]

규완이 연락해서 현재 대화그룹과 아성이 투자했던 상하이 복합 리조트와 아쿠아리움 외에, 다른 관광 단지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옛날에야 중국이 안 되면, 일본이었는데…….”

[야, 거기는 더 심한 것 알잖아? 국가 단위로 무역협정 하는데 불매운동도 장난 아니라고!]

외교꾼들 덕분에 무역하는 기업인들만 피를 본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일본이 하는 짓거리 역시 절대 곱게 볼 게 아니었고, 이런 데서 괜히 돈 몇 푼 더 벌자고 손 뻗었다가는 내수 시장의 국민들에게 욕만 들입다 먹을 거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수출 쪽 알아보는데, 회장님 이야기도 그렇더군요.”

[어, 어떻게 괜찮은 사람이나 업체 좀 구했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 배경이 좀…….”

[배경? 왜, 설마 뭐 물밑에서 더러운 일 하는 사람은 아니지? 막 사과 박스 들고 다니고…….]

“하하하, 그건 아니고 그냥 중소기업 운영하던 오너예요.”

[뭐가 됐든 네 픽은 회장님도 좋다고 하시니 잘 추천해 봐. 혹시 아냐? 너희들 지금 중국 업체들하고 경쟁하는 게 수출에서 펴질지?]

“네~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진욱은 규완과의 통화를 마치고, 사흘째가 됐을 때도 연락이 없는 박 사장의 전화를 기다렸다.

사실상 본사의 자리까지 비운 상태에서 기다리는 것인데, 딱 오늘까지 기다려도 안 된다면, 아쉽지만 그동안의 인연은 그냥 여기서 정리될 것이다.

그렇게 화상 통화를 통해, 회사에 대한 임원 회의를 하고, 부산 공장에 머물면서 수출입에 대해 신경 쓰고, 부산시장과 지자체 공공 앱 개발에 대한 투자 논의도 하면서 절대 놀리지 않던 진욱의 움직임.

그리고 마침내 전화가 왔다.

내용은 매우 긍정적이었고, 얼마 후 대화그룹에서는 ‘전직 공무원 출신’이자, ‘부산 내에서 십수 년간 무역 업체를 운영했던 오너’가 대화무역의 임원으로 임명됐다.

그때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식품업체 한국바이룽에 대한 식약청 조사가 들어간 가운데, 리펑 대표이사는 성실히 조사에 임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국내 최대의 오픈 마켓 사이트인 쿠폰팡에서 물류 센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인 김 씨는 작년 6월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이후 새벽 근로를 하던 중…….]

“갑자기 이쪽 기사들이 엄청 나오는구만.”

진욱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쟁하는 도중에 벌어지는 라이벌 연합의 이어지는 구설수에 쓴웃음을 지었다.

언론에 보도된 이후로 단순 사건 사고가 늘어나던 쿠폰팡과 바이룽은 인터넷상에서도 엄청난 규탄을 받고 있었다.

-쿠폰팡 알바 때려치운다. 차라리 그 돈으면 노가다를 가고 말지.

- 요새 쿠폰팡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이번에 시급 동결인 거 실화?

- 거기 예전에나 꿀 빨았지, 지금 개빡셈.

- 바이룽 배달 못 해 먹겠다. 시간당 20개 배달이 사람이 할 짓이냐?

- 차라리 돈 덜 줘도 공공 앱이 낳음.

- -낳음이 아니라 나음이겠지.

내부에서부터 일하는 근로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그 와중에 물량을 털어 내다 못해 그 일대에서 나오는 갑질 또한 만만치 않았다.

[바이룽의 밀어내기! 도저히 못 참겠다! 거리에 나선 대리점주들.]

급기야 대리점 밀어내기와 소매점주들의 강매 이야기가 나와서 바이룽의 민심은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국 기업이라고 해도 못 넘어갈 판에, 중국에서 온 한국 법인인 바이룽이 반중 감정에 따라서 더욱 극딜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진욱은 대화무역에서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영업 1부 박도영 전무입니다.]

이제는 중안무역 박 사장이 아닌, 대화무역 영업 전무라고 밝힌 박도영의 연락에 진욱은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이번에 인도네시아에서 아성펫푸드 1억 5천만 불 수출 수주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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