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뿌린 것이 돌아오리
진욱이 포문을 열고, 바이룽과 쿠폰팡의 응대로 시작한 사료 배달 전쟁.
아성사료와 아성펫푸드는 배달 대행 서비스 이후로 공격적으로 지점을 늘리고, 생산량을 2배씩 올려서 점유율을 차근차근 올려 나갔다.
거기에 맞춰 쿠폰팡의 배달 앱, 쿠폰팡 딜리버리로 바이룽의 사료를 바로바로 배달할 수 있게 만들어, 마치 인터넷 편의점처럼 운영했다.
그렇게 둘의 전쟁이 불타오를 때, 살판난 것은 다른 쪽이었다.
- ㅋㅋㅋㅋㅋ개밥 배달 하고, 일당 40 벌었다. ㅅㅌㅊ임?
- ㄹㅇ… 요새, 일반 음식 배달보다 개밥이랑 츄르 배달이 더 쉬움. 보관도 편하고 시간 내에 빨리 가는 게 아니니 여유로움.
- 근데 이것도 몰라. 당장은 수수료 양쪽에서 부담해 줘서 그렇지, 가격 올라가면 바로 주문 끊길 듯.
가장 살판난 것은 역시 실제 제품을 배달하는 업계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공공 앱을 만든 지자체 주식회사들과 계약해서 움직이는 프리랜서들.
하지만, 그들의 수익이 곧 지자체 내 취업률과 경제활동에 돌아가게 되니, 높은 수수료는 지자체 선에서 매몰 비용으로 충분히 쓸 만했다.
“막상 배달받는 고객 쪽이 문제인데 말이지.”
진욱이 모든 앱을 실시간으로 켜 보면서 반응을 봤을 때, 아직까지는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 5천 원짜리 츄르 하나 시키는데도, 바로 가져다줘서 너무 편해요.
- 원래 달마다 장보러 갈 때 사료도 같이 샀는데, 그럴 필요 없이 떨어질 때마다 주문하니까 좋아요.
- 이거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수수료 없이요.
대부분은 별점 5개 만점에 4.5점 이상으로 매우 좋았다.
그나마도 별점을 깎는 건 ‘너무 배달이 느리다.’, ‘우선순위가 사람 음식인데, 그래서 후순위다.’라는 배달 대행 라이더들의 공급 부족으로 생기는 일이었다.
진욱은 이 정도면 그냥 과도기라 생각하고서 관련 사업에 대해서 계속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 내수로만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 대한 수출도 준비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 * *
“중국에서 그랬다고요?”
“죄송합니다, 회장님. 면목이 없습니다.”
해외 수출 담당의 조명훈 상무는 진욱 앞에서 고개 숙여 용서를 빌었다.
진욱은 수억 달러의 손해를 보게 생긴 지금 상황에 대해 한숨이 나왔다.
“중국 정부가 예전부터 일국양제라고 그런 것에 대해 철저하긴 했습니다만, 이건 너무 노골적이네요.”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 이건 정말 예상 못 한 일이라…….”
아성사료는 국내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에서도 굉장히 공을 들였다.
특히, 중국 시장의 상해 아쿠아리움과 펫푸드 수제간식 공장 설립을 두고서 현지 생산량 1억 불, 추가로 배합사료 수출 1억 불로 총 2억 불짜리 사업을 준비했는데, 성사 단계에서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거래 취소를 해 버린 것이었다.
대체 뭐 때문인지 이유라도 알아보려고 했는데, 담당자들의 답은 가관이었다.
‘하나의 중국, 일국양제에 대해 귀 회사는 귀책 사유가 많다.’
이유인즉슨 진욱이 대만에서 양식장 배합사료 공장을 인수하고 대만을 통한 동남아 수출로 매출 고점을 찍자 중국 정부에서 칼을 뽑아 든 것이다.
‘대만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중국 본토 수입을 불허한다.’ 이것이 중국 정부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그래도 석연찮은 게 많았다.
“참,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되네요. 아니,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일본에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한국 시장이 봉인가?”
“현재 삼정전자의 스마트폰과 현기그룹의 자동차 수출 역시도 이것 때문에 중국 현지 공장 외의 국내 수출건에 대해서는 규제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작정하고 건드리는구만…….”
한한령에 이어서 제2의 중국발 경제 규제라고 생각한 진욱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조 상무에게 말했다.
“이렇게 된 것, 플랜 B는 만들어진 상태겠죠?”
만약 그것도 없다면, 이사회에서 해임돼도 이상할 게 없는 현재 상황에서 조 상무는 바로 다음 수출 건에 대한 자료를 내밀었다.
“네, 지금 긴급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단가는 조금 낮추지만, 인도, 태국, 인니 쪽에서 바로 기존 물량 그대로 받겠다고 했습니다.”
진욱은 그 정도까지 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번 건에 대해서는 그렇게 처리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진욱은 조 상무에게 나가 보라고 한 다음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결심한 듯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 * *
“어이구, 조카사위?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회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하! 나야 뭐, 똑같지. 잠깐만 기다려. 내 차 한잔 내오지.”
진욱이 도착한 곳은 여의도 대화그룹 사옥이었다.
대화그룹 총수이자, 상공회의소장 그리고 진욱에게는 처백부 어른이 되는 김승열 회장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조카사위 진욱을 환영했다.
“하 회장, 요새 벌이가 좋아? 배달 사업인가 그걸로 재미 좀 본다며?”
“아하하,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거, 뭣도 모르는 놈은 대기업 돼서도 잔잔바리 한다고 하는데, 자네가 그렇게 긁어모은 수익을 내가 모르겠나?”
김승열 회장은 넉살 좋게 진욱을 다독이면서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자, 그래서~ 규완이도 아니고 나를 직접 찾아온 이유가 뭐려나? 도와줄 게 있나?”
“상공회의소 건으로 회장님을 찾아오게 됐습니다.”
“회장님은 무슨~ 내 말했잖아! 그냥 큰아버지라고 하라고!”
“하하, 네. 큰아버지.”
김승열은 담배를 태우며 껄껄 웃고는 아들과도 같은 조카사위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했다.
“최근에 중국 수출 건으로, 저희 공장이 대만에 있기 때문에 불허한 건이 나왔습니다.”
“흐음~ 그거 자네 말고도 다른 쪽에서도 말이 나오더구만, 중국 놈들 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김승열도 이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은지 혀를 끌끌 차면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거, 뭐 국물도 없다는 듯이 매몰차게 거절하더라고. 자기들하고 장사하고 싶으면 대만에서 손 떼라나? 에잉! 그게 무슨 똥배짱이야?”
“일본이나 미국에는 안 그러면서 한국에만 이러는 것도 신경 쓰입니다.”
“얘기 들어 보니 호주나 유럽도 그렇다고 하더라고, 몇몇은 아예 대놓고 중국 기업을 자국에 유치해서 협상한다고 그러고.”
진욱은 그 말을 듣고서 이게 한두 해로 바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직감했다.
그래도 상공회의소가 이런 걸 분석하고, 원자재 거래나 국제통상법에 대한 조율이 가능했는데, 무슨 대책이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지금 산자부하고 해서 그쪽에 대한 핵심 원자재에 대해서는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해. 그리고 상공회의소 자체에서도 대중국 수출 지원을 강화하려고 하고 말이지.”
“수출 지원이라… 지금은 일단 막혀도 다시 뚫을 때까지 돕겠다는 겁니까?”
“뭐, 그런 거지. 그리고 올해 안에 중국 수출 건으로 전략 컨설팅 업체를 운용할 생각이야.”
“아예 중국 수출 전용의 컨설팅 팀을요?”
“그래, 그거에 대해서도 이미 이야기가 됐어.”
김승열의 말을 들으니 진욱은 상공회의소 입장에서도 나름대로 대처를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지금의 전쟁은 3개월마다 있는 분기에서 유의미한 점유율과 매출 실적을 확인하고서 어느 쪽이 우위를 정하는지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 그리고 이번에 말일세. 나도 자네에게 뭐 좀 부탁할 게 있는데 말일세.”
“네, 회… 아니, 큰아버지. 말씀해 주시죠.”
“자네 말이야. 예전부터 수출을 중기 유통 센터부터 독자적인 파이프를 깔아서 하지 않았나?”
“네, 이후로는 대화무역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말입니다.”
“그 외에도 자잘하게 업체들 좀 추천해 줄 수 있나?”
“네?”
“이번에 말이야. 우리도 지금 수출 건에서 재미를 못 봐서 말이야. 중소, 중견 업체들좀 인수하면서 재편을 하려고 하는데 자네가 좀 알려 달라고.”
“아, 네.”
“솔직히 지난번에 대규모로 상사맨들 정리하고 다시 재편하려니 데려오기도 힘들구만.”
무역업의 특징이었다.
호황기 때는 정말 넘쳐 날 정도로 많은 상사맨을 운영하면서, 직원 하나하나가 천만 불 수출, 억 불 수출까지 가지만, 불황일 경우엔 기존에 있던 인원까지도 줄였다.
하지만, 불황 끝나고 다시 준비하려고 하니 그때에 대한 인프라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었다.
진욱은 거기에 대해서 알아보겠다고 승낙하고는, 떠오르는 인원이 많아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부산도 한번 가 봐야겠고, 내수에 대해서는 넘쳐 나는 생산량으로 걱정 없으니 수출을 위해서 무역 업체들을 한 번쯤 돌 때가 됐다.
* * *
부산에 출장 온 진욱은 부산 경남 일대의 공장과, 코끼리 거래 문제로 말이 많았던 부산주파크 역시도 한 번씩 돌고 왔다.
안 그래도 이번 건에 대해서 동물 몇 마리 더 데려오기 위해서 박 사장을 만나려고 했었다.
“판다 들여와야 되는데 말이야.”
그 역시도 들여오는 데까지 중국 정부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 때문에 여의치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미리 연락을 하고, 중안무역에 도착했을 때, 진욱은 뜻밖에 먼저 온 손님을 보고 멈춰 섰다.
“아, 하 회장님. 어서 오세요!”
“……?”
“제가 이곳을 잘 찾아온 것 같군요.”
진욱은 박 사장을 찾아온 또 다른 고객을 보고서 우두커니 멈춰 섰다.
“대기업 아성의 회장님까지 직접 찾아오는 곳이라니… 역시 사람은 겉으로 허름하다고 판단하면 안 되나 봅니다.”
박 사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인물은 바이룽 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임명된 리펑이었다.
이미 진욱과는 여러 번 만나서 악연으로 이어진 사이였고, 그래서 ‘이 사람이 여기 왜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박 사장님과의 오늘 인연,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아, 네.”
“再见!(또 봅시다)”
리펑이 손을 흔들며 돌아갈 때, 진욱은 반사적으로 그를 따라 나갔다.
그러고는 같이 계단을 타고 내려갈 때, 리펑은 따라올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미리 준비한 대형 세단이 나오면서 수행비서와 기사들이 나왔고, 리펑은 차에 타기 전에 진욱을 향해 인사했다.
“건전한 경쟁이 되길 바랍니다.”
“여길 어떻게 알고 왔죠?”
“글쎄요? 저희가 동남권에 대해서는 제대로 진출하지 못해서 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상사를 찾은 겁니다.”
“처음부터 노리고 온 것 같군요?”
“글쎄요?”
리펑은 조용히 손을 내밀었고, 진욱이 그걸 잡고서 악수하자 그가 작게 속삭였다.
“이제 바이룽에게는 아시아권에 딱 두 개의 관문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
“하나는 일본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점유율에서 계속 우위를 못 점하는 바로 회장님의 회사이죠.”
웃음 속에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게 딱 보이는 말이었다.
리펑은 진욱에게 현 상황을 말하면서 ‘너희만 없으면 우리가 모든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라는 이유와 함께 조용히 인사를 올렸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그러면서 차에 탔을 때, 진욱 역시도 리펑을 향해 한마디 했다.
“별짓 다 했어도, 바이룽이 이 시장 잡은 적은 없지 않나?”
“……?!”
“그냥 본토에서 잘하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지는 싸움만 하니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
가시 돋친 말에 차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먹을 불끈 쥔 리펑이었지만, 진욱은 똑같이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경쟁 상대로 잘 부탁해요, 바이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