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84화 (184/200)

184화 원래의 길

한바탕 소란이 흐른 뒤에는 또 좋은 일이 연달아 벌어졌다.

“6주 됐대요.”

“첫째 때도 그러더니만, 둘째도 진짜 모르고 지냈네. 미안해, 정말.”

“아이~ 됐어요. 새삼스럽게.”

진욱의 집에 둘째가 생겼다.

아내 세화가 최근 몸이 안 좋다고 해서 건강검진을 다녀왔다가 알게 된 둘째 아이의 존재.

진욱은 아들딸 구분 없이 그냥 순산하길 바라면서, 첫째 때와 달리 요란하게 나오지 않기만 기원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집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이사요?”

“그래~ 그 아파트 좋기는 해도, 이제 회장 자리 올랐는데 계속 살기에는 그렇지.”

“충분히 넓고, 동네 사람들도 친절한데…….”

“아니야~ 하 서방, 내색은 안 해도 세화도 옮긴다면 바로 찬성할 거야.”

“그러면 집 알아보는 동안, 잠시 장모님 댁에서 세화랑 은준이가 머물 수 있겠습니까?”

“그럼~ 내가 그러려고 한 건데, 뭐.”

대기업 회장이 머물기에 지금 사는 아파트는 좁다는 집안의 이야기.

진욱은 졸지에 이사까지 맡게 됐고, 아성그룹 본사와 가까운 청담동에 복층 단독주택을 알아봤다.

요새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는다고는 하지만, 수십억이 넘는 주택이라도 진욱한테는 예금 통장에서 바로 뽑아 결제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둘째 소식에, 이사 준비에 진욱이 집안일로 바쁠 때, 재보궐 선거도 끝이 났다.

거리는 둔다고 선언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궁금했는데, 큰아버지 상규가 상록구 갑에서 득표율 61.4%라는 스코어로 상대인 여당의 준척급 정치인을 이기고 당선됐다.

도의적으로 축하 화환을 보낸 뒤로 큰집 쪽도 잘되고 있으니, 진욱에게 남은 것은 이제 회사 경영이 전부였다.

“자~ 굉장히 오랜만에 하는 것 같은 회의네요?”

이사회에서 진욱이 넉살 좋게 이야기를 하자 임원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이 나왔다.

“자, 그럼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이사회 의장 겸, 회장인 진욱의 말에 모두들 자료를 준비하고, 현재 상황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진욱은 빠른 속도로 그것을 하나하나 확인했고, 임원들의 기획안들을 살폈다.

임원들은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조마조마했고, 그것을 체크하는 진욱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진욱이 살피던 중에 한 문서를 발견하고 담당자를 불렀다.

“유 상무님?”

“네, 회장님.”

진욱은 물류사업부를 맡은 유승인 상무를 보고는 반가운 기분에 미소를 지었다.

맨 처음 진욱이 이 삶을 살면서, 아버지의 공장에 들어갔을 때부터 알게 된 직원 중 하나였다.

당시 상록의 작은 공장 하나에서 자재관리와 트럭 운송까지 모두 맡았던 전형적인 중소기업의 일당백 과장.

이후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서 승진을 하면서, 본인 또한 살아남기 위해 늦은 나이에 전문대 졸에서 경영대학원 학위까지 따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진욱은 그를 물류사업부 상무로 임명했다.

“이 물류 창고 신설 건 말입니다. 지난번에도 이사회에서 한 번 반려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올려 주셨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회장님.”

진욱은 그 말에 흥미를 가지면서, 다시 한번 서류를 읽어 봤다.

“이 건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주세요. 제가 보는 자리에서 확실하게 이사회 투표에 올리겠습니다.”

“네, 회장님.”

“자, 그리고 다음은… 김형식 전무님?”

김형식 전무는 과거 아버지와 같이 상록시 공장을 끝까지 지켰다는 김원식 전 공장장의 사촌이었다.

중소기업 공장장인 자신은 중견기업 성장 이후로 못 따라가고 사임했지만, 대기업 간부 출신에 현장에 대해 잘 안다는 사촌 동생을 추천해 준 것이다.

“아성사료에 대한 새 사료 개발 기획안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기존의 건식 사료에 대한 신제품에 대한 내용입니다.”

“흐으음, 이것도 확실히 참조할 만하네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임원들이 올린 기획안에 대해 논하고, 기존에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나 인사이동에 대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회의는 짧게 끝이 났고, 오랜만에 사료 사업을 하게 된 진욱은 집무실로 가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처리할 것도 많겠구만.”

일단 직접적으로 자신이 진행하는 것보다는, 전문경영인인 임원들이 제공한 기획안에 대해서 찬반을 결정할 것을 살펴봤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살피려고 했지만, 진욱이 경영으로 돌아왔을 때, 큰 위기가 생기게 됐다.

* * *

“회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아버지 측근의 간부가 자신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사과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만, 진욱은 그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일어나세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네~ 네~ 알겠으니까 편히 앉으세요.”

진욱은 바짝 엎드린 유승인 상무를 일으키고는 소파에 앉히고 커피 두 잔을 준비했다.

비서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왔을 때, 진욱이 건네는 것을 잡고서 부들부들 떠는 유 상무였다.

“결국 협상 결렬이군요.”

“2년은 생각하고서 준비한 건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 몰랐습니다.”

“물류, 유통 쪽이 원래 그런 법이죠.”

진욱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천불이 났다.

‘쿠폰팡 이 새끼들 진짜 못 써먹겠네.’

이번 사료 유통에 대해서 초창기 시절 소셜 커머스-오픈 마켓인 ‘쿠폰팡’이 아성그룹을 향해 뒤통수를 쳤다.

지난날 제일그룹의 계열사인 제일로지스틱스와 거래를 하던 아성사료는 진욱과 친했던 이용철에서, 회장의 큰아들이 내려와 이성철로 체제가 바뀌며 갈등이 일어나, 물류 센터 보관과 물류 관리를 신생 오픈마켓 기업인 쿠폰팡에 맡겼었다.

진욱과 친했던 몬스터티켓의 최 사장이 회사 재정난으로 부천 물류 센터 설립이 좌초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한 당시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문제는 아성사료가 커서 지금의 아성그룹이 될 때까지, 소셜 커머스에서 오픈 마켓 시장으로 빠르게 성장한 쿠폰팡 역시도 10조를 넘고 준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껑충 뛰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들은 쿠폰팡이라는 자체 물류 센터와 오픈 마켓을 운용하면서, 브랜드를 강화하고 PB 상품 등을 운용했다.

“예상 못 한 일이었습니다. 자체적으로 반려동물 용품 판매를 하면서, 기존 거래를 끊는다니.”

“PB 상품은 바이룽이 만든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진욱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이 중국 사료 회사는 진짜 잠잠해질 때쯤 되면 뒤통수를 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 제주도에 갔을 때, 염 도지사가 바이룽이 제주 공장에서 철수하고 서해안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곳이 인천이었다는 말에 눈치를 챘어야 했다.

“정리 기간이 6개월 정도는 남았죠?”

“네, 그렇습니다.”

“대안은 마련했습니까?”

“최근 물류 터미널들이 포화 상태여서, 기존에 짓고 있는 곳도 많다고 합니다.”

“후우- 진작에 만들걸 그랬나요?”

과거 진욱이 유 상무가 내건 애완용품 물류 센터에 대한 건을 받았을때는 그 역시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야 여러 개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내의 애완용품 물량으로는 턱없이 적어 오히려 적자만 난 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 상무가 다시 가져온 제안은 기존의 물류 센터 규모를 80% 정도로 줄이고, 펫푸드협회에 있는 회사의 사료와 애견 식품에 대해서도 같이 운용하는 것으로 조정을 한 상태였다.

그것을 진욱이 승낙하고서 부지인 충청북도 옥천군과 경기도 안성 중에 택일하려는 상황인데 이렇게 통수를 맞았다.

“일단 기존 물량에 대해서는 정 구할 데가 없으면 대화 쪽에 문의를 해 보겠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반드시 저희가 구해서 해결하겠습니다.”

회장이 직접 ‘처가의 모기업에 연락해 보겠다.’라는 말을 하는 게 뭘 뜻하는 것인지 잘 아는 유 상무의 말.

진욱은 별로 그렇게 위협 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말에 바쁘게 움직이는 유 상무 외 밑의 임직원들을 보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진욱은 그 상황에서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한 또 다른 아이디어 사업을 준비했다.

* * *

“제가 원래 직접적으로 안 나서려고 했는데, 이 건에 대해서는 모두 검토 부탁드립니다.”

회장이 직접 준비한 프로젝트라는 말에 임원들이 긴장하고 기다렸다.

진욱은 오랜만에 잡아 보는 레이저 포인터 펜과 빔 프로젝터를 가동하고서, 비서실 직원들에게 시작한다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 회장이 직접 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진욱이 처음으로 보인 것은 반려동물에 대한 현재 부양 인구 그리고 현재의 시장 규모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대부분의 임원이 부하 직원들을 통해 대략 알고 있는 시장조사지만, 진욱은 거기에 대고서 또 다른 것을 준비했다.

[서론이 길었으니, 본론은 짧게 말하죠. 현재 쿠폰팡의 물류 터미널 이용이 이제 6개월 남았습니다. 그 안에 새 터미널을 못 구하면, 우리는 인터넷 배송을 일일이 직원들이 우체국이랑 편의점 가서 택배로 부쳐야 할 겁니다. 시가총액 12조의 대기업이 말이죠.]

물론 그건 진짜로 경영을 말아 먹은 무능한 놈이나 할 짓이고, 현재 아성은 대화로지스틱스와 현기로지스틱스 등의 물류 업체와의 계약을 통해서 자사의 물류 센터가 만들어질 때까지 시간을 벌었다.

그 상황에서 진욱은 다른 것을 준비했다.

[기존 대리점에 대한 주문에 배달 서비스를 만들 겁니다.]

“……!?”

“네?”

“아니, 뭐… 배달?”

임원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웅성거렸다.

진욱은 이런 반응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미소를 짓고는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현재 일반 음식점에 한해서는 배달 대행 앱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음식점과 배달 업체 사이에서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었고,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욱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결론을 바로 말했다.

[현재, 국내에 있는 배달 중개 업체는 총 10곳입니다. 모두 즉석식품에 대한 배달입니다.]

진욱이 마지막으로 봤던 미래의 배달 사업은 단순 식당에서 음식을 픽업하는 것을 넘어, 아예 생필품을 배달하는 인터넷 편의점, 거기에 프리미엄 식사를 배달하는 고급 외식 서비스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기존의 택배 물류 사업과 별도로 진행할 것입니다. 근거리에 있는 우리의 대리점에서 대행업체를 통해 주문하면, 바로 집 앞까지 배달하는 방식을 도심 주변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진욱의 말에 대부분의 임원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십니까?]

몇몇이 눈치를 보다가 질문을 하긴 했지만, 진욱이 생각한 딱 원론적으로 틀에 박힌 내용이었다.

오늘따라 예전부터 야당을 자처하던 이정열 부사장이 그리워지는 진욱이었다.

어쨌건 그동안 직접 개입하지 않던 진욱이 회장이 된 후 프로젝트를 다시 냈고, 그것에 대해서 그룹 내의 핵심 간부들이 모이는 TF팀이 만들어졌다.

성공한다면 앞으로는 사람 먹는 밥뿐만 아니라 개랑 고양이 밥도 주문 배달 받는 시대라는 이름이 나올 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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