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제법 머리는 썼지만……
진욱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카메라들 돌아가는 것이 보이자, 실시간으로 생방송에 진욱의 ‘태도 논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증인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서 모르신다는 말이군요.]
“그, 그렇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분명히 계약서를 만들었으며…….”
옆자리에서 몰랐다는 이야기를 말하는 전 동물원장의 반응을 들으며,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는 진욱의 모습에 기어이 반응이 나왔다.
[거기 중앙에 있는 증인! 하진욱 증인!]
“네?”
마이크는 켜져 있지 않아서 눈을 슬며시 뜨고, 고개를 까딱이는 진욱을 보고서 다함께민주당의 양금미 의원이 크게 외쳤다.
[증인, 지금 국정감사에서 태도가 그게 뭐예요? 이게 우습습니까?]
“후…….”
진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고,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갔다.
“지금 뭐 하는 행동이야! 국정감사가 장난인 줄 아나?”
“하 회장! 자세 똑바로 하고 들어요!”
“재벌 회장 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야?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여당인 다함께민주당과 정의국민당의 의원들이 크게 소리쳤지만, 진욱은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얼굴로 팔짱만 뺀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런 어그로가 생방송 중에 찍히고 있을 때, 카메라 셔터가 여기저기서 터지면서 실시간으로 인터넷 포토 뉴스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 결국 국정감사 전반전까지 한 마디도 질문하지 않던 상황에서, 야당인 국민자유당의 의원이 드디어 진욱에게 마이크를 돌렸다.
[흠, 흠. 네, 다음은 하진욱 회장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네, 하세요.”
마이크를 기울여서 스위치를 켰을 때, 드디어 국회 방송 국정감사에서 진욱의 목소리가 퍼졌다.
[먼저 아까 태도에서 대해서는 사과를…….]
“죄송합니다. 일부러 저에게 질문을 안 하시는 줄 알고, 집중력이 흐트러졌습니다.”
“일부러라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증인! 그 발언 취소하세요!”
여당 의원들이 한 소리 했지만, 이걸로 인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큰아버지로 인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한 야당 의원은 바로 질문을 이어 갔다.
[이번에 발생한 코끼리 양도 문제에 대해서 할 말씀이 많으신 것 같은데, 정황에 대해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네, 좋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자면, 일단 태국 정부를 통해서 내용증명을 확인했습니다.”
[지금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증거 자료로 제출했으니 바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원장님, 이번 건에 대해 태국 정부의 내용증명을 받았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환노위 상임위원장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역시도 여당 소속이었고, 이참에 하진욱을 확실히 잡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반박하는 자료, 그것도 태국 정부의 공증을 준비했다.
이것 때문에 일부러 진욱을 피하면서 유죄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걸 기각하는 순간 사적으로 공개를 할 수도 있고, 태국과의 외교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었다.
결국 환노위원장 김인철 의원은 마지못해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채택… 하겠습니다.]
진욱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바로 준비한 자료를 빔 프로젝터를 통해 공개했다.
거기에 나온 것은 영어로 된 태국 정부의 문서와 그 옆의 번역된 자료였다.
“네, 다들 보면 아시겠지만 태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문제없다고 공증한 문서입니다. 이것은 구) 부산동물원, 현 아성주파크 부산에 대한 내용증명이며, 불법 양도나 내부 거래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중상모략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중상모략’이라는 센 워딩까지 쓰면서 국정감사의 주도권을 완전히 잡아 버린 진욱.
그 단어에 몇몇의 의원의 탄식 소리가 들렸고, 이 역시도 9시 뉴스에 분명히 나올 각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혹 다른 동물원에 대해서도 동물 간의 교환에 대해서 말해 주시겠습니까?]
“동물원에서 개체가 짝짓기를 하고, 번식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최대한 환경을 맞춰서 성공한다 하더라도 한정된 유전자에서 자칫 기형종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 동물원별로 이런 식의 교환을 합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도 다른 동물원의 교환 사례, 심지어는 북한과 대한민국 동물원 간에 오고 간 개체들이나 해외 다른 곳의 사례도 언급해, 이것 역시도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는 진욱이었다.
이미 분위기는 완전히 넘어온 상태였고, 결국 이번에도 아성그룹과 당사자인 하진욱을 띄워 주는 장치가 된 국감 현장이었다.
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다함께민주당의 환노위 의원 한 명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네, 서울 영등포 갑의 이명준입니다. 저는 하진욱 증인께 또 다른 것을 질문하려고 합니다.]
“네, 말씀하세요.”
[태국 정부에 대해서 공증을 받았다고 하시는데, 타 국가에 대한 동물 임대에 대해서도 유효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때 이명준 의원은 드디어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관련 자료를 꺼냈다.
[분명히 유효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저희 쪽에서 준비한 자료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
진욱은 대체 이 의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한번 지켜봤다.
그리고 그가 마우스 펜으로 클릭을 하자 그곳에 나온 것은 계약서였다.
[광주빛고을파크, 라오스 아시아코끼리 무상 임대에 대한 계약.]
진욱은 그것을 보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 의원은 싱글벙글하면서 역전의 승기를 잡았다고 여겼다.
[자, 다들 여기를 봐 주십시오. 이 문서는 지난 광주 빛고을파크 동물원 인수 시에 있었던 계약서입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라오스 정부에서 자국의 코끼리를 임대한 것에 대한 계약서였다.
라오스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 필요한 경비를 광주광역시에서 부담하고, 사육사와 전담 수의사까지 고용하는 조건으로 맺은 0원의 임대 계약서였다.
부산 때와는 다르게, 이건 광주에서 0원으로 임대했지만, 아성주파크가 금액을 지불하고서 ‘거래한 내역’이 확실하게 있는 것이었다.
[자, 여기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껏 부산주파크와는 다르게, 광주 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또 있으십니까?]
“아, 이건 말입니다. 그러니까…….”
[증인! 말 더듬지 마시고, 제대로 대답하세요!]
진욱은 처음으로 난처한 얼굴을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의 의미는 당혹감이나 나쁜 일에 대해 걸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걸 언급했다는 것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여당이 제 무덤을 파는군.’
진욱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깊게 파는 순간 여당에게 엄청난 역공이 될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인 초선의 이명준 의원. 그리고 다른 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카메라와 기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거 광주광역시청하고 협상한 내용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광주시가 진행한 것이라고요?]
“네, 당시에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안시와 광주광역시가 시장 협상으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이 의원의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황급히 동료 여당 의원을 바라봤다.
[증인, 지금 하신 말이 사실입니까? 팩트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게 왜 없을까?
“지금 바로 증거 자료 제출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위원장님이 채택해 주신다면,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그, 그것은 나중에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에서 자료 요청을 하겠습니다.]
순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이 의원이 황급히 관련 자료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진욱의 입은 막아도, 국회에 상주하고 있는 수많은 기자의 눈과 귀는 막지 못할 것이다.
진욱은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고, 결국 이번에도 국정감사에서 하진욱을 띄운 여당의 완패가 되었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몇몇 의원들은 인사도 없이 황급히 사무실로 달려갔다.
진욱은 그 모습에 손을 털면서 야당 의원 몇몇과 악수를 했다.
“오늘 국정감사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하하하, 네. 백부님에게 안부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저는 크게 관계없지만, 그래도 인척이니 그분이 당선되기를 바랍니다.”
딱 그 정도까지만 이야기한 다음에 국회의사당을 빠져나간 진욱이었다.
그 이후 수많은 기자가 기다렸지만, 진욱은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차에 탔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누가 이겼는지는 확실히 보였고, 유튜브부터 TV의 국회 방송까지 실시간으로 방영된 내용에 대해서 알게 된 국민들도 많았다.
* * *
[한편 이번 국정감사에서 하진욱 회장의 발언으로 인해 광주광역시와 라오스 정부 간의 임대 계약에서 금전 거래가 있던 것으로 밝혀져 횡령 및 배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나오는 뉴스를 스마트폰으로 보고 진욱은 키득거리며 소주를 들이켰다.
“제 무덤인 줄도 모르고 마구 파다가 제대로 걸린 거죠.”
“그런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맞은편에서 같이 한잔하고 있는 규완은 이번 건에 대해서도 혀를 내두르며 진욱에게 물었다.
진욱은 비운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그때의 일에 대해 말했다.
“부산 때도 그랬지만, 광주도 시립 공원하고 동물원을 민간 기업에 맡긴 이유가 다 있죠. 자연 친화 녹지 개발 사업이라고, 있는 대로 공원을 늘리고 테마 시설을 잔뜩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유지비가 엄청나게 들었단 말이죠.”
“그렇지. 사실 따지고 보면 동물 사업 크게 하는 게 아성이니까 그냥 지자체가 적자 감당 못 해서 짬 때리기 한 거잖아?”
규완의 말 그대로 누적되는 적자의 공원과 동물원을 인수하고, 거기에서 입장료는 똑같이 받으니 사실상 사회적 기부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문제는 거길 인수하는 도중에 진욱이 수상한 서류들을 많이 입수했다는 것이었다.
“이 의원이 말한 대로 부산이나, 광주나 둘 다 동남아에서 코끼리나 표범, 오랑우탄 등의 동물을 시 예산으로 구매는 못 하고, 지자체끼리 교류해서 임대받는 방식으로 가져왔어요.”
“대신 거기에 필요한 인력까지도 모두 부담하는 방식으로 말이지.”
“네, 근데 광주에서는 부산과 다르게 저희한테 임대한 것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인수 금액에 표기해서 값을 치른 꼴이 되었죠.”
뭐, 결국은 현지 사육사나 수의사 고용 승계를 하면서 생긴 매몰 비용이라 생각하고 넘겼었다.
하지만, 그걸 굳이 들쑤셔서 꺼냈으니 진욱도 그때에 ‘이중 장부’가 있었다는 것을 밝혔고, 덕분에 지금 광주광역시청에서는 당시에 ‘0원 임대’로 받아 온 코끼리를 아성에 돈 받고 판 꼴이 되었으니, 그 금액은 어디로 갔고 누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는지에 대해서 당연히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나 안 부를 겁니다. 이건 아마 여당에서 직접 묻을 거예요.”
“욕 봤다. 진짜…….”
규완은 매제의 술잔을 채워 주면서 자신도 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를 한 다음 쭉 들이켠 진욱은 하늘을 보다가 넌지시 중얼거렸다.
“뭐, 이건 이렇게 끝났고, 다음에는 원래 하던 일을 해 봐야겠어요.”
“사료 사업?”
“그거죠.”
진욱은 크게 웃으면서 당분간 동물원 사업은 다시 경영진에게 맡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