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아성그룹, 하 회장
새해가 되어 아성가는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졌다.
아성금융그룹을 개편하고, 아성사료그룹과 대대적인 합병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 맞춰 수많은 사업부가 쪼개지고 합쳐지면서 진통을 겪었지만, 대기업으로 바로 올라가며 으레 겪는 성장통과 같은 것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통합 사옥으로는 청담동의 아성타워가 선정됐다.
덕분에 종로구에 있는 아성금융그룹의 본사와 상록시에 있는 아성사료그룹의 사람들도 모두 청담동으로 가게 되어 이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동안 공실률이 높았던 빌딩이 꽉꽉 들어찰 정도였다.
“위치는 어때 보이십니까?”
“아주 좋습니다.”
원래 1층에 입점했던 유리은행이 떠나고, 그 자리에 아성저축은행이 입점을 준비했다.
특히 사옥이 바뀌면서, 기존 종로 본점은 ‘종로 1점’이 되었고, 이곳이 본점이 되었다.
“앞으로 잘해 주세요, 지점장님.”
“아닙니다. 본사 사옥에서 영업 맡겨 주신 것, 반드시 성과를 이루겠습니다.”
이번에 새 본점에 대한 지점장으로 임명된, 김명진 이사는 진욱 앞에서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진욱은 그러면서 안에서 오픈 준비가 한창인 은행을 둘러봤다.
강남 일대에 널린 게 은행이지만, 제2 금융인 상호저축은행의 지점은 테헤란로 일대를 제외하고는 찾기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청담동 한 곳에 입점한 곳이니, 진욱은 훗날 이곳을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저축은행 이후로 2층은 커피숍과 애견용품을 판매하는 아성펫케어 사업부가 차지했다.
진욱의 제안을 받아들인 둘째 누나 진영이 분주하게 인테리어 오더를 내리고 있었다.
“자~ 자~ 이쪽에 있는 건 빨리 치우시고, 이거는 여기 말고 저쪽에 놔요. 일단 들어오자마자 확 보일 수 있는 간판으로.”
어항 설치에 각각의 가판대에 뭘 놓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배치를 명하는 모습에 진욱은 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층에는 애견호텔, 4층은 아성저축은행 융자사업부, 영업부 등이 올라가고 각 계열사들이 하나하나 입주하면서 사무실 이사 이후로 바쁘게 움직였다.
제대로 돌아가게 된 것은 1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 * *
[B-BBBB-!]
“네, 전화받았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입니다. 지금 국민연금공단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요?”
[국민연금공단입니다.]
진욱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전국민의 노후 연금을 준비하는 국민연금공단이 진욱에게 연락했다?
이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전화 돌리세요.”
[네, 회장님.]
진욱이 수화기를 들자 잠시 후, 넉살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네, 전화받았습니다. 하진욱입니다.”
[네, 회장님. 저는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장 이종연이라고 합니다.]
이종연 본부장이라고 소개한 목소리를 듣자 진욱의 눈이 커졌다.
‘진짜 거물을 보냈는데?’
국민연금 내에서 기금운용본부장은 공단 이사장의 바로 밑인, 현장 실세 중의 실세였다.
임기제로 임명되는 사실상의 공단 CEO와 같은 시스템이며, 최근 연임에 성공하여 국내 대기업에 폭넓은 투자를 약속했었다.
[먼저 아성그룹 회장에 오르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에서 보낸 축하 화환 잘 받았습니다. 이렇게 전화를 주신 것은 역시 투자 논의입니까?”
바로 뺄 것 없이 본론을 이야기하자, 그쪽에서도 바로 대답이 나왔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가 한번 본사로 찾아뵐까 하는데 언제가 편하시겠습니까?]
둘은 바로 약속 시간에 대해 조율하고는 곧바로 만나기로 했다.
* * *
얼마 후.
국민연금공단 기금본부장 이종연은 청담동 아성그룹 본사에 방문하여 진욱을 만났다.
“이종연입니다.”
“하진욱이라고 합니다.”
이종연, 올해 나이 54세.
해외 명문대를 졸업하고, MBA 학위와 월가와 런던 등의 금융사에서 근무하고, 국민연금의 부름으로 금의환향한 인물이었다.
공단 내에서도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불릴 정도의 뛰어난 투자 감각을 가졌으며, 대기업 오너들 역시도 예의 주시하는 사람이었다.
“먼저 이번에 저희가 기금 운용에 대해 내수 투자를 위해서 이야기드렸습니다.”
“네, 국민연금공단에서 직접 연락한다면, 역시 그거군요.”
국민연금공단의 국내 기업 투자.
코스닥과 코스피에 대한 업계 상위 회사들은 의무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는 했다.
그리고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넘어가는 아성에 대해서 그들은 또다시 움직였다.
“이번 통폐합으로 인해, 많은 계열사가 합병된다고 들었습니다.”
“네, 몇몇 사업부의 경우 통합 후 주식 재상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아성산업개발과, 아성펫푸드, 아성펫패션에 대한 지분을 5%씩 소유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내 기업에 투자할 때, 지분율 5%가 상한선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이 5%를 채운 기업은 정말로 장기 투자에 대한 확신이 있는 곳이라고 여겨지고는 했다.
“그래서 일정 지분 이상을 소유한 대주주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합병안, 어디까지 진행하실 겁니까?”
찬성을 할지, 반대를 할지는 자금을 운용하는 본부장이 결정하겠다는 말이었다.
진욱은 이종연 본부장을 보고는 바로 거기에 대해 답했다.
“다음 달 이사회에서 아성펫패션과 아성펫푸드에 대한 합병 논의가 있습니다.”
“흐으음, 역시 주는 아성펫푸드인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초대 대표이사에는 전 아성펫패션의 CEO인 하진영 전무가 오르게 됩니다.”
“회장님의 누님이시군요.”
“그래도 펫 패션계에서는 알아주는 분이고요.”
이 본부장은 하진욱이 그려 나갈 대략적인 아성의 큰 그림을 들으면서 하나하나 기억했다.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우리가 찬성 표를 던지고 조속히 합병을 처리하는 게 나을 거야. 딱히 회계에 대한 문제도 없으니까 말이야.’
0.1%의 차이로 누적 수익률에 대해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국민연금공단의 자금 운용.
거기에 있어 이번에 통합한 아성그룹은 매우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진욱 역시도 그것을 알면서, 앞으로의 주가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의 투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대화는 유익한 내용으로 가득했고, 진욱이 직접 기획실 임원들을 불러 앞으로의 프로젝트와 미래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이 본부장은 박수를 치면서 흡족한 얼굴이었다.
“잘 봤습니다. 정말 앞으로도 아성그룹의 성장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회장님 외 임원 여러분들께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흐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ESG 경영에 대한 것입니다.”
“ESG라…….”
진욱 역시도 잘 알고 있는 용어였다.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 구조(Governance).
이것을 합쳐서 ESG 경영이라 불렸으며, 환경문제와 고용 평등 등의 사회 개혁 그리고 이사회와 지배 구조에 대한 투명성을 중시하는 경영 시스템이었다.
“제가 회장님께 말씀드리는 거지만, 앞으로 우리 국민연금공단에서도 민간 기업에 대한 투자를 할 때, ESG가 얼마나 이뤄지냐에 따라 기업 평가를 하고 결정하게 됐습니다.”
이런 제도에 대해서는 공공기관, 그것도 지갑을 여는 쪽에서 먼저 시작한다고 하니 이른 시일 안에 언론을 타고 퍼질 것이다.
물론 진욱의 현대의 삶에서도 ESG는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었지만 말이다.
이 본부장은 그 뒤로 진욱과 인사하면서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돌아갔다.
그리고 국민연금공단의 실세가 떠난 뒤로 진욱은 그가 상기했던 ESG를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솔직히 거기서 나만큼 ESG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나?”
진욱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시찰 준비를 했다.
* * *
강원도 원주에 도착한 진욱은 자신이 만든 초대형 유기견 보호소에 들렀다.
옆에서 같이 동행하는 인물은 원주시장 이성태와 강원도지사 최광순이었다.
이제는 직접 전화를 하지 않아도 진욱이 어디를 간다고 비서실에서 하면 지자체장이고 지역구 의원이고 알아서 동행하고는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먼저 연락해서 사업 시행 때 같이 사진 찍는 사이에서 끝났지만 지금은 달랐다.
“한 해에 버려지는 반려동물이 10만 마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다수는 보호자를 구하지 못할 시 안락사 처리 된다고 하고요.”
“네,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군요.”
“그래서 제가 처음 이곳에 보호소를 만든 이후로, 이번에 3배로 확장 공사를 해서 더 많은 아이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애견인이자 애묘인으로 회장님의 사업을 적극 지지하겠습니다.”
“원주시 내에 부지가 부족하면, 다른 강원도 지자체에 협력 요청을 해서 제가 새 부지를 마련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허허허-”
진욱이 무슨 말만 하면 찰떡같이 붙어서 맞장구를 쳐 주는 원주시장과 강원도지사.
진욱은 그곳에서 다양한 품종의 유기견들과 유리벽 너머에 있는 유기묘들을 보면서 씁쓸한 얼굴을 지었다.
“맨 처음에 여기 왔던 애들이 방송국에서 드라마랑 CF 촬영했다가 끝나고 파양당한 애들입니다.”
“아이고, 그런 일이…….”
“처음에 데려온 것도 촬영용으로 유기견 입양했다가 다시 파양해 돌려보냈다고 하더군요.”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씁쓸했고, 이후로 데려와서 이곳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을 한번 돌면서 차기 확장 공사를 위한 부지를 물색하고 기자들이 모여 사진을 찍을 때, 원주시장과 강원도지사는 그중에서 순한 강아지 한 마리씩 데려다가 기념 사진을 찍는 등 이전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을 보였다.
“회장님, 앞으로 강원도에 계속 투자를 준비하고 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기자들의 물음에 바로 답한 진욱은 수행비서들 속에서도 본인이 직접 대답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지난날 제가 반려동물 의무 등록제에 대해 찬성하면서,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갔던 것도 늘어나는 유기 동물에 대한 방지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럼 거기에 대한 사업을 계속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네. 향후 보호소는 물론이고, 동물원과 체험학습관 규모도 늘리면서, 아쿠아리움 건설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테마파크 위주로 강원도에 개발 사업을 하겠다는 말에 기자들은 이만하면 구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사들이 나왔다며 흡족한 얼굴이었다.
이후 유기 동물 보호소를 넘어 진욱이 인수했던 첫 동물원 아성주파크로 향했을 때, 평일의 한산한 분위기 속에서 동물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저것도 제가 시작한 거거든요.”
“네? 저거라고 하시면…….”
동물 우리의 바닥을 콘크리트가 아니라 흙이랑 천연 잔디로 깔고, 더운 날에 누워 쉬는 그늘도 직접 열대우림의 나무를 심어서 자연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동물원의 콘크리트 바닥과 열악한 시설에 스트레스를 받아 폐사하는 동물들이 넘칠 때, 아성주파크는 그들과는 전혀 달랐다.
최근에는 중국이나 대만, 동남아 등의 동물원에서도 폐사율이 극히 적은 아성주파크의 노하우를 듣기 위해 찾아오곤 했다.
“동물에 관련된 사업이니 동물들이 원하는 환경 그리고 거기에 따른 사회적 가치도 만드는 게 아닙니까?”
“하하하,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이게 진짜 ESG 아닙니까?”
진욱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을 때, 그 말에 정치인도 기자들도 모두 웃으면서 그것 역시도 기사에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