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결정은 국민의 몫
진욱은 국정감사에서 질문이 나오는 족족 대답했다.
[한국미래당의 주철인 국회의원입니다.]
넓은 이마에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쓴 환갑의 정치인은 진욱을 본 후, 자료 서류들을 손가락에 침을 발라 넘기면서 천천히 물었다.
[네, 우선 저는 이번 반려동물 의무등록에 대해서 한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네, 의원님.”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인구가 어느 정도 되는 줄 아십니까?]
“흠, 한 천오백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네, 국내 인구의 1/3 가량이지요. 한데, 그중에서 이번 의무 등록에 포함될 반려견과 반려묘는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 모른다는 게… 이번 법안에 대해서 찬성하시면서, 국감 증인으로 온 분이 하실 말입니까?]
진욱은 그 말을 듣고서 역시나 이 화법은 똑같다며 고개를 들렸다.
“의원님, 제가 그래서 반려동물들을 의무등록에 대해 찬성을 하는 겁니다. 당장에 길거리만 해도 보이는 수많은 고양이가 있고, 그것에 대해 먹이를 주거나 새끼를 데려와 키우면서 점점 수가 늘어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확한 수치를 모르신다는 거 아닙니까?]
“의무등록 이전에 대략적인 수치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만, 등록 안 된 동물을 모두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진욱은 지극히 당연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다만, 저희 회사에서 생산하는 사료 생산량을 통해 대략적으로 추산은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이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국민들이 전부 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혹시 증인은 서구권 선진국의 예시를 드는데 각국의 반려동물 등록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계속되는 질문 공세였다.
이건 전형적인 숫자 놀음이었고, 조금이라도 실수해서 앞자리의 숫자를 잘못 말할 경우 득달같이 들고 일어나서 물어뜯는 방식이다.
“제가 알기로는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가 그 법을 사용하는데, 각각 인구 대비 반려동물 등록 비율이…….”
진욱은 거기에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평정심을 찾고 있었고, 계속되는 질문 공세에 대답하면서 계속 시간을 뒀다.
그리고 야당에 대한 질의가 또 끝난 순간, 이번에는 여당 차례였다.
[다함께민주당의 김운영 의원입니다. 저는 이번 법안에 대해서 반려동물 의무등록에 대해 하진욱 대표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결국은 이 법안은 반려동물 인구에 대한 세금 문제입니다. 특히 자신이 키운 동물을 등록하고, 의무 전자칩을 착용할 경우 그 가격에 대해서도 견주와 묘주가 부담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이번엔 가격 문제에 대해 말하자 진욱은 이것 또한 숙지한 자료에 따라서 대답했다.
[이것에 대해 벌써 여러 대기업들이 관련 칩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찬성하시며 아성사료그룹 역시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생체칩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신 분들도 있으시니 목걸이나 하네스 줄이 있는 상품을 준비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직접적으로 칩 개발은 못 합니다.”
[어째 그 말은 이번 법안 국감 증인으로 와서 하는 홍보로 보이는데요?]
“그럼 다른 분을 국감에 소환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고, 얼굴이 시뻘개진 김운영은 홧김에 탁자를 손으로 내리쳤다.
쾅-
[증인! 태도가 그게 뭐에요?]
그제야 기자들이나 정치인들은 지난 국정농단 게이트 때, 일당백으로 싸우던 말발의 진욱을 다시금 떠올렸다.
어떤 질문을 해도 물 흐르듯이 넘겨 버리고, 실실 웃으면서 국회의원들이 호통을 치면 역으로 농락해서 무안하게 만드는 토론 스킬.
게다가 국회의원들이 보좌관을 통해 아무리 준비한 자료라 하더라도, 이 업계에서 현역으로 있는 사람이 사전 조사까지 하고 왔는데, 이길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마라톤의 국정감사가 국회방송 라이브를 통해 인터넷과 TV 미디어로 계속 방영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나오는 이 광경에 특히 반려동물 카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 결국, 우리나라도 의무등록으로 세금 먹이겠네요.
하진욱 대표. 말 엄청 잘하네요. 아쉽지만, 국회의원들이 탈탈 털리는 듯.
아, 반려견 등록제 하면 세금 얼마나 먹인다는 거예요? 진짜 돈 없으면 강아지도 키우지 말라는 건가?
- 의외로 그렇게 안 비싸요. 15년 주기 칩이라는데, 한 번 설치하는 데 3만 원 정도요.
- 솔까, 댕댕이 키우는 데 평생 쓸 거 3만 원도 투자 안 하면 그냥 시골에서 동네 똥개나 키워야지.
- 님, 시고르자브종 무시함? 얼마나 커여운데. ㅇㅇ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진욱 역시도 국정감사가 끝나고 의원들의 인사만 대충 받고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국내 가장 큰 반려견 카페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다니까, 생각보다 반응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세금이라고 하면 정말 학을 떼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면서 어떤 혜택을 주냐는 정부가 정하는 것이다.
반려동물 의무등록제는 일단 반려동물 보유세에 대해 생체칩이나 칩이 달린 악세사리를 달지만, 의외로 적은 가격과 한해 수많은 분실 동물에 대한 해결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또한 거기에 맞춰, 각종 아이템이 나오고 있자 일단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거기에 대해서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카페, 특히 특정 종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반대 여론이 가득했다.
- 우리 아이 스트릿 출신인데, 이것도 의무 가입인가요?
아니, 처음 데려올 때 책임분양이나 고밥비로 끝난 거 아니에요? 길거리 애를 데려왔는데 왜 세금을 내요?
말도 안 돼요. 차라리 이럴 거면 안 키우고 말죠.
반대로 고양이 관련 카페에서는 반대 여론이 많았다.
진욱은 관련글과 댓글 하나하나를 보면서 혀를 찼다.
“이쪽은 호불호가 심한 거 같구만.”
애견 카페에 비해 반려묘 카페들은 이번 등록제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론이 굉장히 많았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진욱이 예상한 그게 맞았다.
고양이는 대개 품종묘 보다는 길고양이 새끼를 데려다가 키우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이야 덜하지만 향후 사회적 문제로 커지는 ‘캣맘’ 문제로 인해 이 일은 더 심해질 거다.
“그럴 수는 없지, 그럴 수는…….”
이후의 폐단인 불법거래 고밥비나, 민간 책임분양 등의 문제로 오히려 동물권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진욱은 그것을 막기 위해 이번 법안을 확실히 지지하고, 그것을 위해 언론 쪽에 인터뷰가 온다면 주저없이 전부 참여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연락이 왔다.
불과 30분도 안 지나서 말이다.
* * *
“백분토론이요?”
[네, 그렇습니다. 다음 주에 있을 백분토론에 대표님 캐스팅 요청이 본사로 들어왔습니다.]
“허, 다음주라…….”
[원래는 반려동물협회의 이름으로 마스터 코리아의 제이슨 리 대표가 참여하기로 했으나, 사정상 불참했다고 합니다.]
“즉, 저는 대타라?”
[파트너로는 정의국민당의 이윤희 의원이라고 합니다.]
“흐으음~.”
현 여당보다 좀 더 왼쪽에 위치한 진보 정당이라 불리는 정의국민당.
의석수는 8개의 정당이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굉장한 영향력을 미치고는 했다.
파트너가 정의국민당이라는 말에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진욱이었다.
“좋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죠. 그리고 상대에 대해서도 한번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네, 대표님이 출연하신다면, 상대 패널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고 합니다.]
진욱은 이정열 부사장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집까지 가는 길에 뭔가 생각이 났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일주일 동안 아성사료그룹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아성패션의 상장 이후, 현재 법안에 대한 테마주가 되어 미친 듯이 주가가 상승하고 있었다.
아성뿐만 아니라 삼정바이오, 제일제약 등 이번 반려동물 전자칩에 대해서 관련된 회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오르고 있었고, 여론의 분위기와 다르게 실제 주식시장에서는 상한가가 계속됐다.
진욱 역시도 자사주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집안 내에 있는 지분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성장세에 대해 계속 살펴보고 있었다.
“확실히 정부에서 법안 하나 바뀌는 걸로 관련 테마주가 널뛰기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예상은 대략 했지만 말이야.”
진영 역시도 실시간으로 우상향을 하고 있는 자신의 회사 주가 그래프를 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백분토론 전에 풀매수 할 거야.”
진욱은 그 말을 듣고 멋쩍게 웃었다.
진영이 말한 그 뜻은 이번 반려동물 등록제 의무화 법안을 두고서 진욱이 상대 패널들을 확실히 이기고, 확실하게 이 건이 국회에 통과되고, 관련주가 다시 한번 떡상한다고 예상한 것이다.
“그러다 법안 통과 못 하면 큰일나는 거 아니야?”
“글쎄다? 난 확실히 네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진영뿐만 아니라 상록 본사에서 아버지 상만 역시도 관련 주식과 삼정바이오와의 협력을 위해서 이번 건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해 줬다.
덕분에 진욱의 양어깨가 참으로 무거웠지만, 오히려 그래서 자신감이 생겼다.
* * *
상암동 MBS 스튜디오 내에서는 토론을 위해 모두가 준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진욱 사장님?”
“아, 네. 이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정의국민당의 이윤희 의원은 진욱과 악수를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30대 중후반에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은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의외로 국회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인 여성의원이라고 한다.
“후배들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국내 동물권을 위해서 노력해 주신 것 또한 인정하고요.”
“후배요?”
“풀뿌리 연대… 저 또한 그곳 소속이었습니다.”
“……!?”
진욱은 역시 세상은 좁고, 누구나 오다가다 볼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했다.
‘졸지에 운동권이 된 느낌이네…….’
대학 시절의 인연으로 인해서 어쩌다 보니 사회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와 인연이 이어지고, 그러면서 정치권에도 점점 이름이 알려지는 진욱이었다.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기업을 운영하면서 적을 만드는 일은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15분 뒤 방송 시작합니다.]
PD의 말과 함께 슬슬 스튜디오로 나가는 진욱.
원형의 테이블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사회자 정한용 앵커가 빙긋 웃으면서 진욱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이번에 진욱 팀과 반대로 선 인물들은 ‘동물자율행동본부’의 임원 김슬아, 한국미래당 정당인인 이원욱이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건전한 토론이 되길 바랍니다.”
진욱과 이원욱이 인사를 하면서 악수할 때, 그 옆에 있는 김슬아는 연신 그를 째려봤다.
“하진욱 대표는 고양이들 몸에 전자칩 다는 거 포기하셔야 돼요.”
“네?”
“불쌍한 우리 가족들을 두고서 몸에 칩 같은 걸 넣지 마시라고욧!”
“…….”
진욱이 멋쩍게 웃고 있을 때, 이 의원은 그녀를 향해 다가와 인사하면서, 과거 동물권 시위 활동을 하던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보면 성향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었고, 그래서 서로 인사를 하지만, 딱 한 명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뒤에서 같은 편의 패널이지만, 이원욱이 작게 한숨을 쉬는 게 들렸다.
그렇게 생방송 토론은 시작됐고, 4인이 모두 앉았다.
그리고 그날의 토론은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