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67화 (167/200)

167화 한 발짝 물러난 경영

예상이 딱 맞아떨어진 날이었다.

진욱은 수원에 있는 갈비집에 초대받아 가게 하나를 통째로 대절한 삼정 이현재 부회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지난번 대만 공장 건 잘 해결하셨다니 다행이에요. 역시 대표님은 거침이 없으십니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만나자마자 서로 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잔부터 부딪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업이 논의됐다.

“대표님, 이번에 삼정바이오와 삼정전자가 공통으로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아, 그 비즈니스 이야기 말입니다. 혹시 이야기 듣고 바로 사업 제안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네?”

“회사 직원들이 확인하고 조율을 통해서 회의를 하고 싶습니다.”

순간 이현재 부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물론 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에서 당연한 거지만, 이제껏 이런 일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정말로 예상 못 한 답변이어서 당황한 것 같았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변의 삼정 비서실 임원들 중에도 일부 눈썹을 씰룩이는 인물들이 있었다.

“정식으로 제안서라… 네, 좋습니다. 내일 아침에 담당 부처를 통해 말하겠습니다.”

이현재는 그 말을 하고 바로 비서실장을 보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딱거리는 소리를 들은 다음에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는 모습에, 제국 삼정그룹의 비서실 시스템은 생각 이상으로 세밀하다는 걸 느끼는 진욱이었다.

‘저러고 바로 담당 계열사 대표한테 연락 돌리려나?’

뭐가 됐든 절차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모두가 아는 자리에서 같이 해결하는 게 좋을 거다.

진욱은 왜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줄 필요를 느꼈다.

“부회장님, 제가 최근에 직원들과의 소통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흐음~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부회장님 같은 다국적 기업을 운영하시는 대단한 CEO분들이 저를 따로 불러 주시면서, 이런 프로젝트를 언급해 주시는 건 저와 회사를 위해 엄청난 영광이었습니다.”

이현재는 그 말을 조용히 들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 하는 것과, 제안서를 받고 담당자 선에서부터 이야기가 논의되고 회의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요새 깨달았습니다.”

“하하하, 네. 그런 게 있지요.”

즉, 높으신 분들끼리 모여서 소주 한잔 마시고 도장 꽝! 찍고 회사에 후통보를 하는 기존의 스타일에서 회사 대 회사로 이야기가 나와 전문가들끼리 좀 더 유연한 방식으로 접근하겠다는 진욱의 반응.

“대표님의 방식을 지지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절차대로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술자리 같은 걸 아예 피하진 않으실 거죠?”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영광입니다.”

“하하, 뭐 영광까지야.”

다시 풀린 분위기 속에서 진욱은 대략적으로 삼정에서 준비하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듣고서 조용히 머릿속에만 담아 뒀다.

* * *

얼마 후 삼정전자에서 공식적으로 온 제안서에, 임원 회의에서 진욱에게 그것을 알렸다.

“대표님, 삼정전자에서 협력 제안서가 왔습니다.”

“내용은 뭡니까?”

“배리칩 사업에 대한 투자 및 인프라 구축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진욱은 미리 귀띔 받아 놓은 상태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삼정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한 프레젠테이션을 모두가 보게 됐다.

이걸 단기간에 만들어 냈다는 것을 두고 대기업의 시스템은 역시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르는 임원과 같이 말이다.

[최근 정부에서 반려동물 의무등록제와 반려동물세를 개정하면서 가정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향해 시범적으로 베리칩과 전자 등록 인식표 의무 착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현재의 입에서 들은 것을 제대로 PPT로 만들어 낸 내용에 진욱은 집중하면서 지켜봤다.

그것을 설명하는 임원들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고, 이 사업에 대해서는 삼정이 아성사료그룹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부분 답이 정해진 거고, 대표가 결정만 되면 한다는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한 번씩 물어봤다.

“매우 좋은 제안입니다.”

“그렇습니다. 법적으로 아예 등록제를 의무화한다면, 지금 1,500만에 육박하는 반려동물 인구, 그중의 80%가 개와 고양이이니 그게 전부 고객이 되는 겁니다.”

임원들의 말에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건에 대해 승낙했다.

“삼정전자와 바이오칩에 대한 연구 진행을 승낙합니다. 저희도 마케팅을 준비하고, 다른 기업과도 협업을 준비하겠습니다.”

진욱이 확정했으니 이제부터 확실히 움직일 수 있었다.

“일단 이번 프로젝트의 진행은… 김영태 본부장님에게 제안하겠습니다.”

“……!”

이정열이 추천해 준 인물이자, 이사로 영입돼서 벌써 5년 차로 실무를 맡은 인물이니 이런 큰 건에 대해서도 쓸 만할 것이다.

“막중한 임무, 수행하겠습니다. 한데, 그 외의 TF팀 인원은…….”

“그건 본부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네?!”

이런 건은 없었어서 다른 임원들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진욱은 직접 바뀌겠다는 모습을 보여 줬으니 다른 임원들에게도 확실히 말했다.

“이제부터 저는 임명하고, 결정하고, 중요 사안에만 나오겠습니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움직여 주시면 되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김영태 본부장을 향해 말했다.

“본부장님이 휘하 팀장들을 직접 선별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온 팀장들도 같이 일할 휘하 직원들을 데려올 수 있는 권한을 주십시오.”

수직적으로 자신들이 픽 한 사람과 같이 일을 하고, 성과와 책임을 공유한다는 식으로 가 볼 것이다.

처음에야 어색하겠지만,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일단 밀어 주고 끌어 주는 식으로 계속 올라올 것이고, 그 안에서 생기는 부작용인 사내 정치의 경우는 진욱이 바로 대표이사 직권으로 제어할 것이다.

이렇게 시스템을 구축한 다음에 큰 프로젝트를 맡긴 순간 그들은 바로 눈을 밝혔다.

처음 시작하는 시스템의 프로젝트.

그리고 과도기를 보이지 않고서 바로 성과를 낸다면, ‘은퇴가 얼마 안 남은 이정열 부사장의 다음 자리는 자신이 될 것이다.’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자~ 잘 한번 해 봅시다!”

“네, 대표님!”

이 자리에는 라스베이거스에 출장 가서 없는 진영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새 시스템을 따르기로 했다.

* * *

진욱이 이것에 대해 알린 또 다른 파트너는 대화그룹이었다.

규완은 이현재 부회장과 진욱을 통해 대략적인 사업 내용을 듣고, 지금 정부에서 발표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비서실을 통해 들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예 개나 고양이 키우는 순간 의무적으로 등록한다?”

“네.”

“그리고 그 제품을 일괄적으로 만드는 거다? 궁극적으로는 반려동물도 죄다 보험에 가입하고?”

“그거까지는 순차적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독일과 스위스, 네덜란드 등의 서유럽의 선진국이 시행하는 방식이었다.

인권도 높지만, 동물권 또한 그에 못지않은지라 거기에 대해서도 법안이 다양했다.

“진짜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되겠구만.”

“근데 필요는 한 상황입니다.”

“흐음?”

“그동안 유기 동물에 대한 처리라든가, 길거리 야생동물 중성화, 사람보다 비싼 동물 의료비. 그거 다 세금으로 충당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흐으으음-.”

“언제까지 지자체장의 생색내기로 사진 몇 방 찍어 주고 예산 편성해서 사람 바뀌면 없어지는 사업은 그만해야죠.”

“그쪽에 대해 잘 아네?”

“에이~ 제가 그거 때문에 만나 왔던 도지사랑 시장이 몇 명인데요.”

진욱의 말대로 동물원과 유기 동물 보호 센터, 체험학습관 등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지역구 의원들, 지자체장과 언제나 사진을 찍었었다.

물론 그 덕분에 진욱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어지간해선 동물권과 관련된 시민 단체도 선을 안 넘기는 편이었다.

“그럼 대화손해보험에도 미리 준비하라고 해야겠네?”

“일단 의무 책임보험이 될지는 몰라요. 그 건에 대해서는 차라리 안 키우고 만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

이전까지 동물세는 존재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주변 지인들에게 새끼를 낳은 강아지를 분양받거나, 길거리에서 어미에게 낙오된 새끼 고양이를 데려오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제도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의무 등록을 하고, 세금을 낸다고 하면 금액에 상관없이 그 귀찮음에 거부반응이 일어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뭐, 그만큼 정부가 돈이 부족하니 세수를 늘린다는 거겠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통과될지 차차 봐야 할 것이다.

“형님, 일단 등록제 칩이나 전자 표식에 대해서는 삼정전자가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정바이오 역시도 기존에 연구하던 프로젝트가 있어서 이걸 합친다고 합니다.”

“거긴 반도체하고 생명공학에 진심이니까… 그럼 우리가 해야 할 건 뭔데?”

“대화손해보험에서 반려동물 보험에 대해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될 겁니다. 그리고 또 필요한 게 있습니다.”

“응?”

진욱은 삼정과 논의하면서 떠오른, 현재 아성 TF 팀의 아이디어에 대해 진욱이 견본품을 디자인한 것을 내밀었다.

“지금이야 멋없는 손톱만 한 칩이나, 소나 돼지에 쓰는 태그 같은 거겠죠. 하지만, 이것도 곧 패션 용품이 될 겁니다.”

“에엥?”

“차마 우리 아이의 몸에 저런 걸 넣을 수 없다. 상처를 안 주고 표식을 쓰고 싶다. 이러면서 목걸이형이나 강아지 의류, 각종 악세사리와 결합한 제품을 팔 겁니다.”

“아하~ 유통망 쪽에 그런 것 준비를 해야겠구만.”

“현재 해외에는 관련된 제품이 많으니 대화무역을 통해서 알아봐 주실수 있나요?”

“흐음, 좋아. 그렇게 할게.”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정말 최소한으로 잡아도 1천만의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어마무시한 사업이었다.

그리고 삼정과 아성에 이어 대화까지 합류하니 드림팀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대기업이자, IT&바이오 사업의 1인자 삼정전자.

유통업과 보험 금융업의 강자이자 반려동물보험으로 인해 관련 사업의 1인자가 된 대화그룹.

그리고 사료공장으로 시작해서 개, 고양이, 물고기, 조류, 파충류까지 모든 사료와 반려동물 용품의 1인자 기업인 아성사료.

이렇게 셋이 뭉쳐서 준비하고 있으니, 정치권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법안과 제도를 발의해 이득을 보는 기업의 편을 드는 여당. 그리고 그걸 반대하는 야당.

아마 이 건이 언론을 타면 정신없이 싸워 댈 거다.

물론 진욱은 정치에 상관없이 여당 편을 들기로 했으니, 나중에 정권이 바뀐다면 몰라도 지금은 다함께우리당을 지지할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

* * *

“네? 저보고요?”

“그렇습니다. 이번 [반려동물 의무등록제 및 동물세 법안 개정안] 법에 대해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대표님을 증인 채택으로 소환한다고 합니다.”

“흐으음, 농해수위에서 말이죠.”

진욱은 뭔가 그럴 것 같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열 부사장은 이번 건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진욱에게 말했다.

“대표님, 정 부담스러우시다면, 제가 갈 수도 있습니다.”

“저를 원한다면서요?”

“일단 조율을 하고서 대외적으로 의사를 밝히면 빠질 수 있는 게 국감이지 않습니까? 추후 다른 인물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한다면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진욱은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냥 제가 대표로 나가니, 부사장님은 하던 대로 하시면서 TF팀 잘 지휘해 주시면 됩니다.”

큰 건에 대해서만 개입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나올지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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