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66화 (166/200)

166화 철인과 독단 사이

진욱은 차기 사업에 대한 이름을 짓고서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가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면서, 투자 유치를 위한 새 계열사 법인 설립을 착실히 준비했다.

그렇게 일을 꾸준히 하면서 아성 아쿠아팜이라는 가칭의 새 계열사를 두고서 임원들에게 말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관상어와 식용 어류 사업의 전문가가 모두 필요한데, 그쪽 인원 충원은 외부 영입과 내부 승진 중에서 뭐가 나을까요?”

진욱의 물음에 임원들은 잠시 생각했고, 이정열 부사장이 먼저 손을 들었다.

“최한민 부장이 어떻겠습니까? 이번 대만 공장 화재 건도 빠르게 해결했고, 연차에 따라 내년 임원 승진 시험도 준비돼 있습니다.”

“아, 그분 같은 경우는 대만 공장 부소장에 임명할 생각입니다. 임원 승진은 되지만, 한 3년간은 대만 공장 다지기에 들어가야 해요.”

그러자 다른 추천 임원들의 이름이 하나씩 나왔다.

“표 지사장이 최근 자녀의 향수병 문제로 한국에 복귀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요? 유통업에서 그분만 한 분이 없는데. 일단 적당한 자리를 생각해 보고, 후보군 중 하나로 두겠습니다.”

“고 팀장도 이번 하반기 임원 승진 되는데, 계속 홍보팀으로 두시겠습니까?”

“그분은 그쪽이 낫죠. 뭐, 현장을 원하신다면 역시 고려해 두지요.”

하나하나 나오지만,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로 확정되지 못했다.

그렇게 인사 문제에 대한 회의는 일단 각자 추천한 인물을 고려하는 수준에서 끝이 났고, 회의가 끝난 뒤로 진욱은 소파에 몸을 기대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피곤하다.”

“혼자 다 해 먹으려고 하니 그렇지.”

“음?”

진영은 동생이자 대표이사를 위해 아이스커피 한 잔을 건네면서 말했다.

“그동안 오래도록 봐 왔는데 말이야, 진욱이 너… 아니, 우리 하 대표는 너무 혼자 다 해 먹는 것 같아.”

“그러니까 혼자 다 해 먹는다는 그게 뭔데요, 하진영 전무님?”

“뭐든지 전권, 단독 경영 체제.”

“……!”

진욱은 그 말을 듣고서 뺨을 긁적였다.

확실히 자신이 입사 이후 거의 독립적으로 활동하다시피해서 이 회사가 이렇게 그룹화가 될 때까지 모든 것을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마흔 살이 되기도 전에 수백억대 자산가에, 자신의 집안이 재벌가 대우를 받는 것으로 엄청난 성과를 이뤘다.

근데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니 좀 당황스러웠다.

“이제 시스템은 구축됐고, 그럼 이제 편하게 하면 되잖아?”

“흐으음.”

“네가 직접 안 가고 밑의 관리직하고 임원 통해서 그냥 시키면 되잖아.”

진욱은 다시 뺨을 긁적였다.

“인사 문제? 그냥 부사장에게 맡기지 그래? 그 사람 이런 일 한 게 몇 년 차인데, 이제 와서 하 사장에게 폐급이라도 추천할까?”

“…쯧.”

생각해 보니 이정열이 부사장까지 올라오면서 인사 문제도 개입할 수 있지만, 그가 추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어렵다.’ 하면서 반려한 게 많긴 했다.

게다가 무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대표이사 대리를 이정열 부사장과 누나 진영에게 맡기면서 쌓인 결재 서류는 자신이 돌아오면 전부 도맡아서 처리했다.

오로지 오너 한 명에 의해서 움직이는 시스템.

그동안 철인이라 불리며 맨땅에서 모든 것을 일군 대재벌 창업주의 스타일이었다.

물론 거기에 따른 단점은 지금 진영이 말하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계속 후임도 생각 안 하고 여기저기 밑의 사람들 끌고 다니면 말이야……. 진짜 중요할 때, 네 부재 시 우리가 어떻게 할까?”

“아니, 누나도 그 정도 짬밥은 되잖아, 이제?”

“난 내 일 하기도 바쁘거든? 잊었어? 나는 우리 애들 꾸미는 패션 외에는 관심 없는 것.”

진영은 애지중지 키우던 웰시코기가 최근 노환으로 사망하고, 고양이 역시도 잔병치레를 앓으면서 오늘내일하는 상황에서 많이 시니컬해져 있었다.

“어차피 네가 고용하고, 월급 주는 사람들이잖아? 좀 믿으라고.”

“흐으음.”

진욱은 그 말을 듣고서 깨달은 게 있는지 누나가 건네준 커피를 쭉 들이켰다.

“지금 내 일도 바쁜데, 이게 뭔 상황인지… 암튼 나는 이번에 라스베이거스 애견패션쇼 준비해야 하니까 당분간 나 대표 대리 시킬 생각 하지 마.”

진영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알린 다음에 떠나갔다.

진욱은 혼자 남은 회의실에서 계속 커피를 마시다가 이내 결심한 듯 일어났다.

“뭐, 그게 어렵다고…….”

피드백을 받았으니 거기에 따른 결과는 간단했다.

* * *

“아니, 대표님?”

갑작스럽게 집무실로 온 진욱을 보고 이정열 부사장은 당황하면서도 일단 차를 준비했다.

“시원한 걸로 주세요.”

“네, 대표님.”

이미 누나한테 받은 아이스커피 이후로 또 시원한 것을 찾았을 때, 이정열은 바로 준비해서 시원한 차를 가져왔다.

“대표님, 혹시 아까 회의 때 하지 못한 말씀이 있는 겁니까?”

혹여라도 뭔가 잘못된 것이 있나 싶어 넌지시 묻는 이정열 부사장.

진욱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집무실 컴퓨터 앞에 놓인 수많은 서류를 발견했다.

“종이 없이 인터넷으로 다 처리하자는 게 요새 사무직들의 대세라던데, 부사장님은 클래식하시군요.”

“저도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중요 서류는 역시 이렇게 보관해서 두는 게 편해서 말입니다. 하하하-.”

의자 뒤로 놓인 수많은 파일철은 그가 처음 입사한 이후로 아성사료의 이사에서 지금 이 강남 사옥에 근무할 때까지 보관했던 귀중한 자료들이었다.

“그동안 저희 둘도 진짜 많이 손발을 맞춰 왔습니다.”

“하하하, 저도 대표님이 써 주신다면 정년까지 마치고 싶습니다.”

아버지뻘의 임원이 진욱 앞에서 임기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역시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욱이 차를 마시면서 본론을 말했다.

“부사장님 말대로 하지요.”

“네?”

“최한민 부장에게 이번에 양어장, 아니 아쿠아팜 사업 프로젝트를 맡기겠습니다.”

“네, 네?! 대표님, 아까는 분명히…….”

“왜요? 더 적임자가 있을까요?”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대신 일단 공장장에는 피드 피쉬 현지 임원을 앉히겠지만, 나중에는 박경수 팀장을 앉히겠습니다.”

“네! 그 사람이라면, 원래부터 중국 관련 수출입에 대한 노하우가 많은 사람이니 적절한 인사일 겁니다.”

불과 10분 전만 하더라도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하면서 인사 이동 제안을 칼같이 다 잘라 낸 진욱이 부사장을 다시 만나서 아까 그 제안을 받아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좀 방침을 바꿔 보려고 합니다.”

“방침을 바꾸신다면 어떻게?”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죠. 상록 본사에서 회장님이 채용하고, 제가 추천한 분들이 이 자리에서 일하시는 겁니다.”

“…….”

“그런데 제가 추천을 하고서 임원분들을 향해 뒤처리만 맡기고 제가 전부 다녔어요. 그 직군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보일 기회도 없이 말이죠.”

진욱의 말을 들을수록 이정열은 ‘불과 10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바뀌었단 말인가?’ 하고 깜짝 놀라 하는 얼굴이었다.

진욱 역시도 실시간으로 이 부사장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마치 그때하고 똑같네, 펫푸드 점유율 가지고 질적 향상이냐, 양적 성장이냐를 두고 논의했을 때 득달같이 막아 대면서 결국 강행해 내가 성공시킨 것…….’

진욱이 종횡무진 날뛸 때마다 난처해하면서도 결과는 좋게 나오니까 마지못해 따라가면서도 그를 응원했던 이 부사장 이하 수많은 임직원.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바뀐다고 하니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정열 부사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아닙니다. 일단 추천하신 대로 인사 이동을 하고 거기에 따른 과정과 결과를 보면 되는 법이죠.”

진욱은 그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쿠아팜 프로젝트는 최 팀장 이하 그쪽에서 추천하는 인사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어차피 큰 틀은 고급 관상어와 식용 수산물 수출이니 거기에 따라 기술 개발을 투자하면 될 겁니다.”

“네, 대표님.”

진욱은 아이스티를 받고 천천히 나갔고, 자리에 남은 이정열 부사장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의자에 앉았다.

“별일이군… 정말 별일이야.”

갑작스럽게 이렇게 나왔으니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관제 야당’ 취급 받으면서, 그냥 회장 아들이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서 소통을 한다는 용도로만 쓰인다는 생각도 들어 퇴직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바뀐 모습을 보인다면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됐으니 성과를 확실히 보여야 했다.

누가 뭐래도 이 거대한 그룹을 만든 것은 진욱 그 자신이니 말이다.

* * *

언제나 거절했던, 다른 그룹 자제들의 골프 약속에 진욱이 참여했다.

“요새 별일 없지? 자주 보네?”

“하하하, 모든 걸 내려놨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매형인 규완이 말한 대로, 툭하면 지방이나 해외에 나간 경우가 많아서 만나기가 힘들었다.

근데 잦은 술자리를 가지고, 골프 모임도 챙기니 요새 왜 그렇게 여유가 생겼냐고 너스레를 떠는 규완이었다.

“웬만한 건은 이제 밑에 있는 임원들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그리고…….”

진욱은 필드에서 힘차게 아이언 샷을 날렸고, 내리찍듯이 친 공이 골프채를 맞고서 멀리 날아갔다.

골프도 확실히 익숙해지기만 하면, 재미를 붙이는 시간은 금방이었다.

그렇게 라운딩을 한 번 돌고 클럽 하우스에서 티타임을 가질 때, 진욱은 최근 상황에 대해 말했다.

“한 1년, 아니 최대 3년까지도 이렇게 해 보려고요.”

“어떻게? 밑의 임원들에게 다 맡겨서 일 처리 하는 방식?”

“옙.”

진욱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모르게 지난번과 다른 확신이 차 있었다.

“다음 번에 그 GH그룹의 회장 팔순 파티 있다는 것, 참여하십니까?”

“어, 생각 중인데. 초대장이 왔어?”

“네, 가 보려고요.”

이전까지 타 그룹 사람들에게도 이런 경조사에는 선물만 보냈는데, 얼굴을 좀 알리기로 했다.

“너 간다면, 나도 가야겠네.”

“네, 가족 모임으로 갈 겁니다.”

규완은 이제라도 그런 건에 대해서 경제련이나 상공회의소 사람들과 인맥을 쌓아 나가는 매제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러고 보니까 요새 재미난 이야기가 있던데.”

“무슨 이야기입니까?”

“너희 사업과도 관련 있을 수 있어. 무슨 바이오칩? 반려동물에 대한 그런 건데 말이지.”

“…….”

“삼정의 이 부회장님이 그거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

“뭐, 연락 오면 그때 이야기하기로 하죠. 회사의 정식 공문으로요.”

“자네, 진짜 바뀌었구만?”

진욱은 삼정그룹의 황태자가 관심을 보이는 펫 사업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으면 직접 나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침 임원 회의에서 깜짝 발표를 하겠지만, 이제는 달라진 하진욱이었다.

그리고 과연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처리하면서, 전문 경영인은 그저 자기 일을 ‘보조하는 조수’ 취급 했던 진욱이 언제까지 손이 근질근질한 걸 참을 수 있을지 기대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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