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웃어라, 불난 집이 재수도 좋단다
진욱은 불타 버린 피드 피쉬를 복구하기 위해 사람을 불렀다.
“히야- 이거… 진짜 이 정도나 남은 게 다행이네.”
새카맣게 타 버린 공장 중에서도 그나마 건질 만한 걸 빠르게 스캔하는 사촌 형 진성.
그는 아성산업개발 해외 건설팀 간부들과 같이 불탄 공장을 둘러보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떻게, 공사는 문제없겠어?”
“현지 철거 업체 고용해서 한번 싹 쓸어 낸 다음에, 내부도 불연 소재로 바꿔야겠지.”
“기계 들여올 것도 준비해야 해.”
“인력만 있으면 공사는 빨라. 네가 원하는 시간대로 맞춰 줄게.”
진성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진욱.
화마가 지나간 곳에 대해 씁쓸했지만, 이미 지난 일.
어차피 화재 보험금도 순차적으로 나올 테니 그슬린 것 치우고 다시 만들면 된다.
“웃어야지, 뭐. 불난 건 그냥 액땜이라 치고.”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사람 안 죽은 게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다행히 부상자들 역시 빠르게 치료가 되고 있다고 하고, 확장 공사를 담당했던 인부들은 그 회사를 통해서 따로 보상을 받는다고 하니, 과실 문제는 적당히 합의를 하기로 했다.
대만 진출을 위해 이제 막 들어왔는데, 괜히 들쑤실 생각도 없고 말이다.
“대표님, 신베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네? 누구요?”
“신베이시 시장이라고 합니다. 이번 화재 참사 현장을 보고 대표님과 논의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아, 그럼 뭐…….”
확실히 이 정도 규모가 되는 공장이다 보니 자기 지자체에 있는 시장이 직접 와서 확인한단다. 세금이나 복구 논의 같은 걸 하려나 보다.
진욱은 바로 만나겠다고 승낙을 했고, 최 부장은 조율을 하면서 바로 전화를 돌렸다.
“인기 많구만.”
옆에 있던 진성이 웃으면서 말하자 진욱은 바로 사촌 형에게 말했다.
“형, 같이 가자.”
“뭐?”
“어차피 여기서 공사할 때 인허가 문제 같은 걸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면 여기 시장 만나서 협상도 해야 하고.”
“뭐, 그것도 그렇네.”
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선언했고, 신베이 시장과의 약속을 잡았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이곳 시장인 리쥐안이라고 합니다.”
“아성의 하진욱입니다. 지금은 피드 피쉬의 대표입니다.”
“아성산업개발의 하진성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앉으시지요.”
리쥐안 시장은 흰머리가 인상적인 관록 있어 보이는 정치인이었다.
다도에 관심이 많은지 대만 일대의 유명한 전통차와 과자를 대접했고, 그것을 먹으면서 천천히 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사고는 굉장히 유감입니다. 평소 공단 일대에 소방 병력을 배치하고 언제나 재난에 대비한다고 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저희 과실도 어느 정도 있는지는 조사를 통해 나오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번 공장 화재 복구에 필요한 공사에 대해서 저희도 일부 지원 방책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네? 정말입니까?”
진욱은 일순 당황했다.
뭐, 기본적으로 화재보험 외의 지자체에서도 지역 기업에 대한 재난 등에 손실보상을 일부 해 준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다른 국가에도 있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피드 피쉬는 시 내에서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저희가 지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단, 저희도 그래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네?”
리쥐안 시장은 미소 지은 얼굴로 자신의 조건에 대해 말했고, 진욱과 진성 모두 순간 당황하면서 이내 미묘한 얼굴로 바뀌었다.
* * *
이후 호텔 숙소에서 둘이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면서 이 건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야, 이거… 꽌시 아니냐?”
“그런 생각은 드는데, 애매하긴 하네.”
리쥐안 시장이 제안한 것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했다.
‘시에서 추천한 건설 업체를 채용해서 복구공사에 쓰게 해 달라.’
지자체장이 민간 기업을 직접 추천하면서, 이 회사를 통해 재난 복구를 해 달라는 말.
이런 특혜가 한국이었다면 언론 제보를 통해서 ‘지자체와 지역 기업과의 수상한 거래’라면서 9시 뉴스에 한 줄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 아닌 대만.
게다가 보험금을 받아도 시작하자마자 적자로 시작하는 외국 공장인데, 지자체에서 이렇게 돕는 대신 조건을 건다는 것은 생각할 게 많았다.
“일단 시행은 아성산업개발이 하겠지만, 그 밑을 컨트롤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네?”
“나야 뭐, 하던 대로 해 봐야지. 그래서 승낙할 거야?”
“돈 문제니까 어쩔 수 없지.”
진욱은 장고 끝에 리 시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그것에 대해서 진욱이 진성에게 미리 말했다.
“형, 그리고 말이지. 하나 부탁할 게 있는데 들어줘.”
“뭔데?”
“일단 아성산업개발이 공사하면서 말이지, 그 밑에서 일할 대만 건설사와 철거 업체들에 대해서 하나만 알아봐 줘.”
“흐으음, 어떤 걸 알아보면 돼? 일 잘하나, 못하나?”
“그거긴 한데… 정확히는 말이지.”
“……!”
진욱의 말을 들은 진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했다.
그렇게 리 시장이 제안한 업체와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화재 현장 철거와 공장 증축 공사에 들어간 아성이었다.
일단 계약한 이후로 신베이시에서 추천한 업체인 ‘장운건설공사’는 그 규모는 작아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중견 기업이라고 한다.
“리진지에라고 합니다. 좋은 건설로 보답하겠습니다.”
“아, 네.”
정장을 입은 고릴라와 같은 엄청난 덩치에 손 여기저기가 상처투성이인 인물 리진지에.
그는 진욱의 손을 덥썩 잡으면서 공사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호탕하게 웃는 인물.
진욱은 순간 삼합회 같은 깡패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사람이 남자답고 나쁘지 않아 보였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일부 휴가를 받은 생산직 직원들의 직종을 바꾸어 새 기계 설치와 시범 가동 등을 맡기면서 진욱은 수시로 현장을 둘러봤다.
“요새 공사는 어때?”
“네가 말한 대로 알아봤는데, 문제가 전혀 없던데? 게다가 자격증도 넘쳐 나.”
진욱이 진성에게 요청했던 것은 바로 숙련된 목수 비율이 얼마나 되냐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능력이 안 되는 어중이떠중이 하청 업체라면 바로 계약을 종료하고, 돈이 더 들더라도 아성산업개발이 모든 것을 맡게 할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진욱의 기우였는지, 장운건설공사는 생각 이상으로 유능하면서 일 처리도 빨랐다.
“이대로라면 그냥 맡기는 것도 문제없겠어.”
“그러게, 내가 괜한 선입견을 가진 건가?”
진욱은 멀리서 안전모를 쓰고 경광봉을 휘두르면서 중국어로 뭐라뭐라 크게 외치고, 일사분란하게 지휘하고 있는 리진지에 사장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전화가 왔고, 확인을 해 보니 타이완 보험 공사에서 보내는 금액 또한 순조롭게 입금됐다.
“이거, 너무 쉽게 풀리는데?”
“진짜 화재가 액땜이었나?”
진성이 피식 웃으면서 하는 말에 진욱은 진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공사는 아성산업개발과 장운건설공사에게 맡긴 다음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마무리까지 잘 부탁할게.”
“그래,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진욱은 험난했던 대만의 일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숙소로 향했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바로 출발하기 위해 다른 임원들과 짐을 정리할 때였다.
[RRR-RRRR-RRR!]
갑자기 오는 전화에 진욱이 받았을 때, 건 사람은 바로 박 사장이었다.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 네. 박 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늦은 밤에 몇 개 확인할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혹시 통화 길게 가능하십니까?]
“네~ 네~.”
진욱은 따지고 보면 이 업체를 인수할 수 있게 정보를 준 게 이분이었으니 뭐든 듣기로 했다.
[이번에 대만 공장 화재에 대해서는 유감입니다. 그런 사건이 벌어질 줄은 몰랐군요.]
“아닙니다. 뭐, 보상금도 넉넉히 받고 사망자도 없으니 그냥 액땜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나 공장 화재 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자 진욱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 사장이 진짜로 묻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이 이어졌다.
[이번 화재 이후 말입니다. 신베이 시에서 뭔가 제안이 있었습니까?]
“네, 복구공사 비용을 일부 지원하면서, 추천 업체를 알려주더군요.”
[흐음, 혹시 그곳의 장운건설입니까.]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알고 계시네요?”
[담당자는 리진지에라는 사람이고요. 맞습니까?]
“정확합니다. 혹시 아는 분입니까?”
[흐으음-.]
그러더니 갑자기 말이 없어진 박 사장이었다.
진욱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침묵에 잠겨 있나 궁금했고,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혹시 그 업체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습니까?”
[뭐, 큰 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표님, 혹시 언제쯤 귀국하십니까?]
“내일 바로 출발합니다.”
[아, 그럼 됐습니다. 오시는 대로 수출 건 논의드릴 게 있으니 한번 뵐 수 있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죠. 한국에 도착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네~ 게다가 이번에 중국에서 잉어 수출 건이 있는데, 식용과 관상어 모두 쓰이기 때문에 대표님하고 이야기를 할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중국 내의 엄청난 잉어 소비량.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에 진욱은 짭짤한 장사가 될 거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이따 뵙죠.”
진욱은 통화를 마친 다음에 괜히 생각나서 스마트폰으로 대만의 그 건설업체에 대해 검색했다.
“장운건설… 장운건설이라…….”
진욱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일단은 계속 검색했지만, 그렇게 큰 규모의 회사도 아닌지라 딱히 뭔가 구설수 같은 건 없었다.
* * *
그렇게 대만에서의 일을 수습하고 돌아왔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욱의 귀에 뜻밖의 소식이 들어왔다.
[난리도 아니었어! 그쪽 공사 잠시 중단되더니만, 경찰들도 오고 완전 개판이었다니까?]
“아니, 그런 일이 있었어? 뭐 때문에 생긴 건데?”
진욱이 이상한 예감이 들어 검색하고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많았어서 한번 찾아봤지만, 결국 그가 떠난 뒤로 일이 터졌다.
[그 장운건설이라는 곳 있잖아, 리진지에랑.]
“그 사람이 왜?”
[알고 보니까 신베이시 시장인 리쥐안의 조카였다고 한다.]
“뭐?!”
[일부러 시 예산 타 내 가지고 일감을 집안 사람한테 몰아준 거지. 거기서 금전 거래 있었는지 알아본 거고.]
“하, 하하…….”
[잘못했으면, 너 있었을 때 공사 중단되고 별의별 거에 다 엮일 뻔했어. 신문에도 대문짝만 하게 나오고.]
따지고 보면 공사 의뢰만 맡긴 건데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에 진욱은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어느 정도 공사가 정리된 상황에서 아성산업개발이 추가 인력을 충원해서 마무리 짓는다고 하니 문제는 없을 거다.
비록 금액은 좀 더 나가겠지만 말이다.
진성과의 통화를 마친 뒤로 진욱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중안무역 박 사장이 말한 그게 아마 이런 뜻이었나 보다.
“진짜 모르는 게 없는 정보통이라니까…….”
전직 공무원 출신이라 그런가, 이런 면에서는 진짜 빠삭했고 덕분에 비를 피할 수 있었으니 다음 수출 건에 대해 논의할 때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한 진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