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60화 (160/200)

160화 역시 정공법이다

진욱은 수행비서가 안내한 건물에서 내렸다.

제법 규모가 큰 빌딩 한 곳을 임대한 풀뿌리 연대 사무실이었고,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이곳저곳에 포스터가 가득했다.

[부정 정치인 퇴출!]

[총궐기! 뭉쳐야 바꾼다!]

[낙동강 환경보호! 공장 증설 반대!]

정말 전국구로 놀고 있는 시민 단체였고, 그래서 더 빨리 협상을 끝내야 했다.

진욱은 양손에 들린 비타 500 박스를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단체가 있는 8층에서 내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수고하십니다. 여기 책임자분을 만나러 왔는데요?”

사무실에 갑자기 들어온 진욱을 보고 일단 안내하는 직원들.

잠시 후 나온 정장 차림의 여성은 진욱을 보고서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어, 어?!”

“오랜만이네요, 유현아 팀장님.”

“하진욱 대표… 맞으시죠?”

“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을 보고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안의 회의실로 안내했다.

잠시 후 커피 두 잔을 챙기고 들어온 유현아는 웃으면서 진욱에게 한 잔 내밀었다.

“이거 잔이…….”

진짜 90년대도 아니고, 도자기 받침에 도자기 잔 그리고 금속 티스푼을 보고서 옛날 생각이 나는 진욱이었다.

“여기서는 일회용품을 쓰지 않아요. 그게 다 환경오염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어쩐지 안에 정수기는 있는데 각자의 텀블러를 쓰는 사무실을 보고서 진짜 안 보이는 게 종이컵이었다.

“어쨌든 다시 봐서 반갑네요.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유현아의 인사를 받은 뒤로 진욱은 과거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늘어놨다.

“예전 생각 나네요. 동물원 호돌이랑 반달곰의 눈물을 닦아 달라고 서명 운동 했던 거요.”

“그때, 동물들을 보호해 주던 하 대표님은 정말 멋지셨죠. 유기견 보호소와 파양 동물 후원에 대해서는 많이 응원했습니다.”

그때의 사진을 꺼내 보여 주는 유현아를 보고서 진욱은 피식 웃으면서 커피 잔을 들었다.

“지금도 다를 바 없는데, 왜 응원을 안 하고 반대하는 거죠?”

“대표님, 지금까지 정말 동물권을 위해 움직여 주셨지만, 지금의 동물 약품 공장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관련 자료를 태블릿으로 보여 주는 유현아.

이 방에서는 종이도 최대한 이면지로 사용하고, 환경을 위해서 모두가 아낀다고 한다.

[의약품 개발로 희생되는 동물들, 5년간 1,004만 마리.]

[동물 실험을 통한 약품, 임상 시험 90%가 통과 못 한다.]

[신약 개발에 동물 실험 반대 시위.]

“흐으음.”

“대표님 역시도 기업의 소득과 발전을 위해 추진하시는 사업이었지만, 우리는 그로 인해 희생되는 것을 놔둘 수 없습니다.”

“문제가 이거 하나예요?”

“네?”

“뭐, 독과점이 어떻고, 그런 것도 있지 않았나요?”

“아, 그것도 문제이긴 합니다. 먼저 알려 주셔서 감사하네요.”

그러면서 최근 삼정바이오가 국내 70% 이상을 독과점 하는 상황을 보여 주고 거기에 아성사료그룹의 계약을 두면서 현아는 이것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독점을 시작할 때 그 생산량을 아웃소싱으로 해결하면, 전체적인 시장의 파이가 줄어들고 공정 경쟁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 역시도 대표님이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독점 대기업의 하청으로 오히려 시장을 교란한다?”

“그렇게 이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하려는 사업의 문제점을 시민으로서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너무 이상적으로 말하면서 들고 일어나는 게 참으로 답답했다.

진욱은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그녀에게 제안했다.

“그럼 동물 실험 반대와 공장 계약에 대해서 재논의를 하면 우리 삽 푸게 도와줍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 보겠습니다.”

진욱은 이럴 때일수록 그냥 직구로 돌파했다.

시민 단체와 엮이면 물밑 협상을 해서 기부 얼마를 하니, 사회적 기업을 위해 관련인들 몇 명을 채용하니 이런 게 나오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심플하게 ‘그럼 니들이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 그만이지?’라는 제안이었고, 만약 여기서 또 반대를 한다면 그럴 때는 새로운 방법을 써야 한다.

“논의를 한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대표님과 이야기가 통해서 다행입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긴 한데, 뭐 여튼 알겠어요.”

그 뒤로 협상을 한 다음에 나온 진욱은 바로 차에 타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 * *

얼마 후 아성사료그룹에 대한 여론이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시작은 SNS부터였다.

- 최근 동물 약품 가격.jpg

- 요새 동물 병원 가격도 그렇고, 약값 엄청 오름. 특히 구충제랑 항생제 같은 것.

- 공장 짓는다는 것도 막는데, 수요를 어떻게 감당하냐고 ㅋㅋㅋ

-- 어허! ‘갓민 단체’의 지엄한 명령입니다.

애견 인구가 많아지면서 시시때때로 키우는 애들 동물 병원 갈 때마다 비싸다고 아우성이고, 일부는 그러면서 과거 진욱의 행적에 대해 언급했다.

- 대화손해보험이 우리나라에서 펫 케어 대중화 먼저 하지 않았음?

- 그거 개마다 가격 다름. 우리는 불독 키우는데 제일 비싸대. 한 달 8만 2천 원.

-- 불독은 왜 비쌈?

--- 유전병이 많아서.

- 님들 그거 앎? 이번에 용인 동물 약품 공장 짓는다는 것 사장이, 과거 펫 케어 보험 만든 사람임.

- 이거 리얼임.

- 미친, 동물 사업에 진심인 사람이네ㅋㅋㅋ

관련 이야기가 나올수록 우리나라에 있는 천만 반려동물 인구에서 하진욱의 이름이 계속 오르내렸다.

처음에는 SNS발 선동으로 시작했지만, 이미지가 계속 오르면서 과거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진욱에 대한 여론이 다시 긍정적으로 바뀌는 분위기. 여기에서 바로 용인 공장 떡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또 다른 시민 단체요?”

“그렇습니다. 용인시에서 결성된 것 같은데, ‘기흥공단 발전 추진위원회’라는 곳입니다.”

이정열 부사장의 이야기를 들은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관련 자료를 검색했다.

기흥의 대기업 공단들을 유치하는 위원회라고 하는데, 현재의 풀뿌리연대하고 대립하면서, 서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대표님, 이거 아주 호재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론이 점점 돌아가면 공장 설립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갈 것입니다.”

“그런 것 같네요.”

“어떻게, 저희가 뒤에서 지원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그건 됐습니다.”

“네?”

진욱은 실시간으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흥공단 발전 추진위원회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넌지시 말했다.

“어차피 비영리 단체끼리의 대립입니다. 굳이 그런 것에 엮일 필요는 없죠.”

“아, 네. 알겠습니다.”

“서명운동 같은 것도 우리 회사 직원은 딱히 필요 없어요. 강제 안 하고 저도 준다면 하겠지만, 딱히 움직이진 않을 겁니다.”

서명운동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상황이었다.

진욱은 그렇게 용인 공장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면서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풀뿌리연대 역시도 동물권을 위한 공장 설립에 대해서는 그 기세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러면서 진욱은 다시 할 일을 위해 떠났다.

진욱은 광주에 도착해 동물원 공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찰칵-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은 뒤에 SNS에 실시간으로 올렸다.

[현재 리모델링 중인 광주 주파크. 광주 시민들의 초록빛 꿈을 위해 오늘도 공사 중입니다.]

올릴 때마다 반응이 괜찮았고, 각종 커뮤에서는, 특히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맘 카페를 중심으로 아성 주파크에 대한 이미지가 올라갔다.

- 이번에 재개장 한 것 너무 좋더라고요. 예전에 낡은 철장에 냄새도 엄청 심했는데요.

- 아성이 손대고 볼거리가 많아졌어요. 원래 그런 데는 식당도 비싼데 반값으로 내놨더라고요.

- 지금 지방 동물원들 난리래요. 시장들이 어떻게든 자기네 동물원도 아성이 인수해 달라고 연락한다고 하고요.

“그런 연락은 없었는데…….”

웃음이 나왔지만, 이미지 개선이 이렇게 되고 있으니 그냥 지켜보기로 한 진욱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SBC 촬영팀도 집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 * *

[자~ 오늘의 집에서 배운다는 동물 사랑에 진심인 사부님을 만나뵙겠습니다.]

촬영이 시작되고 메인 MC 이승리와 양세현이 이리저리 빌드 업을 할 때, 집에 있던 고양이 치즈가 MC의 무릎 위에 폴짝 올라가서 부비댔다.

그르릉- 그릉- 그르릉-

“아~ 사부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굉장히 순하네요?”

“원래 사람 잘 따라요.”

고양이를 시작으로 집에 있는 어항이나 새장 등을 보여 줬고, 이게 다 같이 살 수 있냐는 질문에도 실제로 둘이 노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안심시켰다.

촬영은 순조로웠고 3주 뒤에 방송한다고 할 때, 진욱은 회사와 주변에 알리면서 이번에 나올 방송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리고 주말 예능으로 게스트가 되어 나온 진욱에 대한 방송 반응은 굉장했다.

[오로지 한국의 반려동물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

[제가 원래 처음 강아지 키운 것도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애거든요? 지금은 부모님이 키우고 계세요. 절대 못 보낸대요.]

[혹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캣 맘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나요?]

민감한 질문도 여러 개 던졌는데, 진욱은 실제 편집된 내용을 보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길거리에서 단순히 밥만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동물을 위해서는 터전을 만들어 주고 지속적으로 케어해야 하는거지, 단순히 불쌍하다고 사료를 여기저기 뿌리는 건 동물한테는 오히려 역효과예요.]

“크으~ 저건 진짜 말 잘했어.”

진욱은 자신의 소신에 대해 모든 것을 말했고, 그 뒤로 나오는 더 큰 떡밥에 대한 내용도 기다렸다.

[최근 갈수록 늘어나는 동물권 문제 그리고 동물 실험에 대해서도 혹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제는 기술이 발전했으니 인조 피부라든가, 배양세포 쪽을 이용하면서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야죠.]

원래는 동물 제약에 대해서도 말하려고 했지만, ‘그거까지 나오면 너무 회사 광고로 보일 수 있다.’라는 말에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인식에 대해서만 말한 진욱.

반응은 굉장했다.

30대 중반에 키도 크고 그럭저럭 외모도 되는 젊은 CEO.

거기에 아버지의 낡은 공장에서 일을 시작해 직접 나서 발전시키고,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각종 사회 활동도 하면서 사업을 키워 나갔고, 연하의 재벌가 부인과 결혼해서 대중적으로 좋아할 법한 반려동물 사업을 하는 차세대 리더.

스토리텔링 좋아하는 언론과 일일이 발언을 캡처하면서 커뮤니티에 올리는 글들로 인해 진욱의 인지도는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길었던 용인 공장 건에 대해서도 연락이 왔다.

[약속은 꼭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동물권을 수호하시는 하진욱 대표이사님을 응원합니다.]

“네~ 언제 한번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최근 채식을 시작해서…….]

“하하하, 비빔밥이 최고의 채식 아닙니까?”

풀뿌리연대의 전화를 받은 진욱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통화를 마치고서 바로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됐어! 풀뿌리연대 공장 반대 시위 중단한다고 합니다!”

“정말입니까?”

“휴우- 다행입니다. 내심 돈 문제 협상할 줄 알았는데, 그냥 물러나는군요.”

시민 단체와의 물밑 협상에 이골이 났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임원들도 이번 반응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다.

진욱은 약속대로 동물 임상 실험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삼정바이오와 재협상을 시도했다.

어차피 삼정 역시도 선대 회장의 명으로 동물 실험을 줄여 나가라는 명에, 진짜로 그런 제품은 해외에서 검증받은 것만 수입해서 만들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손에 피 묻힐 일도 없었다.

그렇게 기흥 동물 의약품 공장의 착공식에 진욱은 삽 하나 큰 걸 들고 가 바로 땅에 꽂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물론 그 옆에는 용인시장과 이현재 부회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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