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59화 (159/200)

159화 인연과 악연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진욱.

뽈뽈거리며 기어다니던 아들이 힘겹게 일어나면서 아빠를 잡으려고 하자, 진욱이 흐뭇해하며 바로 끌어안아 줬다.

“요새 안아 주지 말래요. 걸으려는 데 방해된다고.”

“아, 그래?”

한참 기어다니다가 이제는 걷는 시기가 되니까 한마디 해 준 세화의 말에 진욱은 아들을 조용히 아기용 식탁 의자에 앉혀 줬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방송 촬영 하나 하게 됐어. 조만간 녹화할 것 같아.”

“어머, 뭔데요? 특집 뉴스 인터뷰 하는 건가?”

“SBC의 ‘집에서 듣는다’ 다다음주 쯤에 촬영 가능하대.”

“아, 집에서 촬영하는 그거요?”

“어.”

세화는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뭐, 찍는 건 상관없는데 나랑 은준이는 별로요.”

“그래서 집에 촬영팀 올 때 나만 찍을 수도 있대.”

“그럼 그렇게 하세요. 잠깐 친정에 가 있을게요.”

세화는 자기는 알려지기 싫다면서 한 발짝 물러났고, 진욱 역시도 그 의견에 존중하면서 촬영은 단독으로 하기로 했다.

또한 거기에 맞춰서 다음 이야기도 해 줬다.

“오랜만에 모교 갔다가 재미난 사람을 봤어.”

“응?”

“예전에 강원도에서 동물원 인수 건으로 움직일 때가 있었는데, 아! 우리 처음 만났던 거기. 원주 드림월드.”

“그런 것 일일이 말하는 걸 보니까… 여자 학우라도 만났어요?”

“어, 시민 단체 하던 사람이었어.”

“흐으음~ 굳이 말해 주시는 이유는요?”

“그때 학교에서 사회 단체 하던 애가 지금 우리 회사 두들기고 있는 풀뿌리연대 간부래.”

“…오!”

세화는 그제야 진욱이 왜 이런 말을 천천히 풀어놨는지 알 것 같았다.

“만날 거예요?”

“할 수 있다면.”

“뭐, 학창 시절 알았던 여자가 알고 보니까 시민 단체에 있었고, 그러면서 지금 공사 건을 막고 있으니 만나서 협상한다 이거죠?”

“그거야.”

세화는 모든 내용을 이해했으니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편이 미리 말해 줬으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고 그러니까 편하게 다녀오라고 응원했다.

그렇게 집 안에서 예능 촬영을 하고 과거의 인연을 다시 만나러 갈 때였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수의대학교 유치에 성공한 부산대 수의학과를 향해 재계의 많은 후원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성사료는 부산대 수의학관 설립과 신입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총 100억 원을 기부하는 계약을 가졌습니다.]

[또한 아성산업개발이 부산 내 24시간 대형 동물 병원을 짓는 것을 부산시청과 협의했으며, 기부 채납 양해 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성사료그룹 하진욱 대표이사는 부산에 진출한 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향토 기업 이상으로 부산 경남 경제에 도움이 되겠다며 지역 채용을 늘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일단 시작은 대규모 기부로 이어지는 기사들이었다.

상록 본사 공장 다음으로 규모가 큰 부산 공장과 양산 공장.

진욱은 확실히 그곳에 대해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중견 기업집단이라 하더라도 인지도는 웬만한 대기업보다도 이름값이 있었다.

게다가 지역민 입장도 좋아서 적어도 여기에서는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아성사료그룹이 부산 로타 자이언츠에 유소년 야구 기금 1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하진욱 대표이사는 평소 야구를 즐겨 본다고 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 시절이 인생의 가장 큰 기억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부산에 머물면서 진욱은 굉장히 많은 곳을 다니면서 인지도를 올렸다.

급기야는 주변에서 ‘정치인도 저렇게는 안 돌아다닐 거다.’라고 할 정도로 공들였다.

덕분에 부산/경남권에서 아성사료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아졌다.

- SNS에 나오는 그런 쓰레기 기업은 아닌 것 같은데?

- 다른 머기업보다 이런 게 더 낫지. 난 솔까 이해를 못 하겠음.

- 이러다가 아성사료 부산으로 본사 이전하는 것 아니에요? 요새 증권가에서 그런 소문 들리던데…….

- 지금 부동산 카페 난리래요. 아성이 추가 공장하고, 동물원까지 해서 신도시에도 참여한다고요.

부산 일대의 맘 카페나 커뮤니티 등에서는 최근 독과점 논란과, 수의대 증설 로비 논란의 이야기가 줄어들면서 점점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용인에 지으려고 하는 아성사료의 동물 약품 공장 설립은 아직도 시민 단체들이 막고 있었다.

특히 동물권 운운하면서 그동안 아성사료에서 하지도 않은 동물 실험이나 야생동물 밀렵 건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가 취해진다는 단호한 방침에 점점 원본 글이 삭제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점점 이미지가 바뀌고 있을 때, 진욱은 오랜만에 중안무역 박 사장과의 술자리를 끝으로 부산에서의 업무를 마친 뒤 바로 다음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강원도였다.

* * *

[네, 최근 반려동물의 강원도를 도정으로 삼았던 강원도는 아성사료그룹의 추가 공장 설립 논의로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아성사료는 상록과, 부산, 양산과 홍성, 광주에 이어 추가 공장 설립을 강원도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편 춘천시는 적극적으로 법인세 혜택을 주면서 아성사료 공장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기존에 아성과 인연이 많았던 원주시는 이번 공장 역시도 원주에 지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한편 영동권 일대에서도 공장 유치를 준비하고 있으며, 특히 강릉시가…….]

부산 경남에 이어 다음은 강원도.

정말 정치인이 움직이는 것처럼 이곳저곳 다니면서 광역 단체장과 지자체장, 지역구 의원들을 만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사진도 찍으며 많은 조건을 논의했다.

부산에 이어 강원도에서도 지역민들 사이에서 아성사료의 이미지는 점점 좋아졌다.

이쯤 되면 지역민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우수한 지역 경제 개발의 일등 공신이지만, 아직도 인터넷 여론은 반반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진욱은 타 지방 공장을 가기 전 용인으로 향했다.

[동물권 보호!]

[무분별한 동물권 침해의 장이 된 동물 실험 반대한다!]

시민 단체 풀뿌리연대는 용인 기흥공단의 아성사료 약품 공장 부지에서 여전히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지역 의원들이나 용인시장 그리고 공무원들 역시도 이건 빨리 끝날 것 같지 않겠다며 혀를 찼고, 아성사료는 아직도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초조한 것은 오히려 용인시 쪽이었다.

당장에 부산에서 얼마를 투자했네, 강원도에는 뭐를 짓네, 또 다른 지역에서도 어떻게든 유치하려고 하는데 여기는 시민 단체로 인해서 제자리 걸음이었다.

“젠장할! 시의회까지 전부 손발 맞춰 놨는데, 이제 와서!”

용인시장 백영규는 첫 민선 시장에 오른 뒤로 차기 총선까지 노리면서 시 개발에 전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기업 공단을 유치해 왔다.

수도권 공장 규제 총량제가 폐지된 이후로 배드 타운이 됐던 도시에 일자리를 늘려 가고, 여당의 버프까지 받아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당 의원 내에도 소속원이 있는 시민단체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며 끙끙 앓고 있었다.

그렇게 분노의 담배만 태우고 있는 백 시장에게 전화가 왔다.

“어, 뭡니까?”

[시장님, 지금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누구?”

비서실 공무원의 연락을 받고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백 시장은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아, 아니, 뭐 해요? 얼른 모셔오지 않고!”

그는 황급히 서랍에서 방향제를 꺼내 담배 연기 가득한 집무실 여기저기에 뿌렸고, 바닥의 꽁초를 집어 황급히 창밖으로 던졌다.

잠시 후 진욱이 시장실에 도착했고, 백 시장은 정치인 특유의 미소로 활짝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백 시장님.”

“하하하, 이쪽으로 앉으시죠.”

악수를 하면서 소파에 자리를 안내한 백 시장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지난번 동물 관련 제약 공장 설립으로 인해서 도지사와 지역구 의원을 통해 봤던 인물이었지만, 언제 봐도 비즈니스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번득이는 사람이었다.

‘얼굴에 정치인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하시구만.’

물론 그게 진욱과의 거래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잠시 후 커피가 나왔을 때, 진욱은 한 모금 마시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름이 아니라 강원도에서 공장 설립 건 가지고 홍성 내려가는 김에 뵙습니다.”

“네?”

공장 설립이라는 말에 등골이 서늘한 백 시장.

진욱은 빙긋 웃으면서 현 상황에 대해 말했다.

“춘천에 펫푸드 수제간식 공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이후 홍성에서 사료 연구센터 증설로 도지사님을 뵙는데 말이죠. 같은 여당이시죠? 혹시 아시려나요?”

“아, 네.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조마조마해하는 얼굴을 보고서 진욱은 피식 웃으면서 백 시장을 안정시켰다.

“시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용인에 공장 짓는다는 계획은 바꿀 생각 없습니다.”

“아, 아! 그렇습니까? 하하하, 착공만 한다면 제가 전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시민 단체가 역시 문제 아닙니까? 그것만 해결되면 당장에라도 인허가 받고서 삽 풀 수 있고요.”

“무, 물론입니다. 저희도 그 건 때문에 바로 준비하려고 합니다.”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이곳에 온 또 다른 이유를 말했다.

“안 그래도 온 김에 한번 그 현장에 가 보려고 합니다.”

“네? 아, 기흥공단 그쪽 말이시군요?”

“예, 맞습니다. 같이 가고는 싶지만, 괜히 동행했다가 시장님까지 피해를 당하지 않으실까 싶네요.”

시민 단체들 짹짹거리는 것에 시달릴 수 있으니 자신만 다녀오겠다는 진욱의 말.

백 시장은 그 말을 듣고서 바로 경찰서장에게 연락하고 혹여라도 있을 충돌을 막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공장 설립 건에 대해서도 그렇고, 추가로 논의드릴 게 있습니다.”

“아, 뭡니까?”

“이번에 저희 집안에서 인수한 명인대 용인 캠퍼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말씀하세요.”

진욱은 명인대에 수의대를 유치하고 거기에 따른 취업 특성화 학과에 대한 것을 준비하면서, 지자체장과 교통 문제에 대한 것도 직접 논의했다.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백 시장과 진욱 모두 유익한 대화였다고 인정하며,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었다.

바로 차에 올라탄 진욱은 바로 수행비서에게 말했다.

“여기 위치로 내비 찍어서 갑시다.”

“네, 대표님.”

수행비서는 진욱이 내민 주소를 확인하던 중, 그곳이 어디인지 스마트폰에 써진 지도를 보고 눈이 커졌다.

“…대표님?”

“뭐 해요? 출발 안 하고.”

“네, 알겠습니다.”

수행비서는 황급히 네비에 주소를 찍고 출발했으며, 15분 정도면 도착할 그곳으로 액셀을 밟았다.

그때 진욱은 차 뒷좌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수행비서에게 다시 말했다.

“김 비서님.”

“네, 대표님.”

“생각해 보니 그냥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빈손은 아니지.”

“중간에 마트가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그래요. 박카스나 비타500 같은 것 한두 박스면 되겠죠?”

“준비하겠습니다.”

진욱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시민 단체 풀뿌리연대 사무실이었다.

시장한테 공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짓는다고 선언하고는 바로 들이받으러 적진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