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58화 (158/200)

158화 시민 단체가 우릴 공격해

늦은 밤 삼정그룹의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는 승지관에 초청받은 진욱.

그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로 자정이 넘어서 진욱은 비서실의 배웅을 받으면서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검은 세단의 문이 열리자 올라탄 진욱을 향해 삼정 비서실 직원들이 공손히 인사했다.

“가시죠.”

“네, 대표님.”

진욱은 미간을 움켜잡으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었고, 새로운 악당이 나타난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우리도 걸린 케이스라…….”

이현재 부회장이 말해 준 시민 단체에 대해 진욱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풀뿌리연대]

1990년 설립된 시민 단체로 민주주의를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시도했으며, 실제로 이곳 출신 정치인들도 몇 있는 편이다.

진욱이 최근 기록을 검색해 보니, ‘문어발식 재벌 해체’와 ‘대기업 독점 반대’를 슬로건으로 걸어서 각종 공장 설립 반대와 공정을 위한다는 시위를 많이 했다.

“중소기업 협력 50% 의무에 노동조합 출신 임원 고용 의무화? 에이~ 이건 좀.”

물론 아성도 노조 설립에 대해서는 자율에 맡겼고, 딱히 구설수도 없어 노사 합의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좀 아니라고 판단했고, 이런 식의 자신들의 이상을 앞세워 기업의 공장 설립을 반대한다면 그건 진짜 문제였다.

“애초에 단순 독과점 가지고만 지적하면 협의가 된다 해도, 우리를 무슨 악의 기업으로 만들고 있어.”

진욱의 말 그대로 각종 괴담을 만들어 가면서, 제3세계의 희귀 동물을 사냥해서 사료로 만든다는 괴담까지 만들어 갔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동물성 사료에 대한 비율까지 줄이라며 동물권을 논하니, 더 협상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청담동 자택에 돌아온 뒤로 진욱은 바로 서재에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내일 아침 진행할 홍보 자료들을 직접 찾았고, 나갔다 오자마자 일에 몰두하는 남편을 보고 세화는 말없이 지지해 줬다.

* * *

다음 날, 출근한 진욱은 어제 승지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임원들에게 알렸다.

몇몇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난처한 얼굴. 그나마 회사 밥 오래 먹은 사람들은 올 게 왔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럼 그 피켓 들고 시위하는 애들이 우리를 타깃으로 잡은 거야?”

진영의 물음에 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뭔데? 뭐, 돈 달라는 거야?”

“그렇게 노골적인 건 아니겠지. 하지만 골치 아프게 된 건 맞아.”

“하~ 나. 우리 집안에도 이런 놈들이 오는 건 진짜 대박이네. 난 그런건 무슨 삼정이나 대화 같은 재벌들한테만 달라붙는 줄 알았는데!”

진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질렸다는 투로 말하자 다른 임원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다른 조직도 아니고 풀뿌리연대면, 이거 이야기가 큽니다.”

“네, 맞습니다. 저도 전 직장에서 그곳과 엮인 적이 있었는데, 현역 의원만 해도 3명이 넘고 각종 공기업이나 특채 공무원 등에 간부진도 많이 포진해서 영향력도 막강합니다.”

만약 아성사료그룹이 진짜로 10대 기업급의 규모였다면, 진짜 밀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준대기업을 바라보며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중견 기업 집단이라 저 규모를 상대하기에는 조금 벅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욱은 승지관에서 정면으로 들이받아 이긴다고 선언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고 팀장님.”

“네, 대표님.”

일단 시작은 고객 센터 팀장 고원우 팀장을 통해서 하기로 했다.

“이번에 부산시청하고 이야기 한 게 있는데요. 수의학도 장학금이라고, 유치 기념으로 지역별 추첨을 통해 수의학과에 합격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아, 네.”

“바로 부산시청과 협상해 주시고, 다른 지자체와도 협상해 주세요. 일단 주파크가 있는 강원도와 광주의 협상도 같이요.”

“아, 알겠습니다.”

진욱은 그 뒤로 이정열 부사장에게 말했다.

“부사장님은 앞으로 저 대신 실무 경영을 맡아 주세요. 아무래도 제가 좀 바쁠 것 같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말이죠.”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이정열은 그간 진욱과 같이 손발을 맞춰 오면서 이번에도 직접 움직인다고 하니 기대감을 가지면서 자신이 실무를 도맡기로 했다.

“그 다음으로, 누나… 가 아니라 하진영 전무님?”

“으, 으응?”

진영은 자신도 뭔가 할 게 있나 싶어서 화들짝 놀랐다.

“언론에 홍보 기사 잔뜩 올려 드릴 테니까, 국제 펫 패션쇼 관련 홍보 자료 좀 잔뜩 준비해 줘요. 그리고 그동안 디자이너 양성해서 애견 미용 대회 수상한 거에 대해서도 알리고요.”

“아, 그거… 밑의 실무진에게 말하면 바로 자료 가지고 올 수 있을 거… 예요.”

그래도 공적인 자리인데, 동생이라 하더라도 사장한테 반말을 계속하기에는 조금 찔리는지 마지막에 더듬으면서 ‘요’ 자를 붙였다.

그 뒤로 임원 하나하나에게 오더를 내린 다음 회의를 마친 진욱.

그리고 각자 진욱이 내린 오더를 가지고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때, 그는 집무실로 들어가서 조용히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아,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동안 연락 못 드려서 섭섭하셨죠?”

[아이고, 하 사장님. 요새 그룹 문제로 바쁘시던데, 어떻게 잘되나 봐요?]

과거 진욱에게 능숙한 언론 플레이어의 길을 갈 수 있게 특집 프로를 만들어 줬던 서울대 선배 차 PD.

지금은 스타 PD 자리에 올라 부장급 인사로 올라온 인물이었으며, 대기업 관련해서 홍보를 잘해 주는 전형적인 친재벌 인사이기도 했다.

“이번에 모닝와이드 기사 잘 봤습니다. 역시 어려울 때 SBC가 도와주는군요.”

[우리야 뭐, 언제나 돈 많은 쪽이 이거니까.]

전화기 너머로 엄지 올린 게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차 부장의 말.

진욱은 웃으면서 오랜만에 좀 만나자고 차 한잔의 자리를 제안했다.

자신이 직접 SBC 방송국이 있는 목동으로 가겠다고 하자 내친김에 지금 바로 와도 괜찮다는 말에 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 * *

목동 SBC 사옥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하자 안에는 드문드문 연예인들이 보였다.

그 안에서 차 부장의 초대를 받고 들어간 진욱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회의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요새 뉴스로 갈겨 대는 게 힘들어서 그러지?”

“네, 맞습니다. 시민 단체 하나하고 잘못 엮인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문제네요.”

“흐으음, 썰 좀 제대로 풀어 줄 수 있어?”

진욱은 선배인 차 부장의 말에 아는 대로 모두 털어놨다.

마치 수도꼭지를 열듯이 처음에는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다가 나중에는 콸콸 쏟아지는 이야기.

그것을 들은 차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런 일이 있었구만.”

“그래서 아주 골치죠.”

“풀뿌리연대, 거기 유명하지. 우리 모기업도 공사 몇 개 하려고 하면, 도롱뇽을 살리네, 철새 도래지를 지켜 달라네 하면서 별의별 시위를 다 하는 곳이야.”

“안 끼는 곳이 없군요.”

“뭐, 그렇지.”

진욱은 확실히 정치권에까지 닿은 거대한 시민 단체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단 부탁드리고 싶은 게, 언론에서 저희를 좀 띄워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뭘 하면 되는데?”

“TV 프로 나가고, 베테랑 MC가 리드하는 예능 게스트요.”

진욱은 어차피 SNS로 망쳐진 여론이라면, 자신을 그대로 오픈해서 인물론으로 여론을 뒤집기로 했다.

일단 자신의 스토리만 말해도 충분히 어필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며, 이런 자리를 만들어서 소신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흐으음, 그러면 딱 좋은 게 하나 있는데.”

“어떤 프로죠?”

“그 프로 알지? ‘집에서 듣는다.’ 그 왜 각계 유명인들 집에 찾아가서 이야기 듣는 것 있잖아.”

“아, 그거요? SBC 간판 프로 아닙니까?”

“지금 CP가 내 후배야.”

시청률도 잘 나오고, 정치인이나 사회 인사, 각종 기업인이나, 교육인 등이 나와서 그들의 집을 통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토크쇼와 관찰 예능 식의 프로그램.

진욱도 시간 나면 간간이 보는 프로그램인데, 거기에 나간다는 말에 구미가 당겼다.

“근데 애가 어려서 집 안 촬영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그게 걱정되면 하 사장님만 나와도 되는데 말이야.”

“좋습니다. 그럼 한번 논의하고 연락드리죠. 그리고…….”

“그리고?”

“미담 하나 좀 뉴스로 제보하고 싶은데요.”

“…뭐든 이야기해 봐.”

진욱은 지금 주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말했고, 차 부장은 뭐든지 다 해 주겠다면서 오케이 사인을 했다.

그렇게 상대가 인터넷 여론으로 움직인다면, 이쪽은 제도권의 레거시 미디어를 이용할 것이다.

목동에서 좋은 이야기를 한 뒤로 진욱은 오랜만에 모교를 찾아갔다.

학과 내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보면서 수의대, 인문대 건물들에서 교수님들을 보고 인사를 할 때였다.

“아, 하 대표님.”

“……!?”

진욱이 고개를 돌리자 웬 여성이 헐레벌떡 달려와 인사했다.

“하진욱 대표님 맞으시죠?”

“…누구?”

“기억 안 나세요? 예전에 학창 시절에 그 공존의 길…….”

“아, 아!”

진욱은 그때 일이 생각나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보니 반갑네요. 그때 성함이?”

“김아영이요.”

“아~ 맞아. 이제 기억났다. 강원도 원주 동물원 살리기 서명운동 제안했던 그 아가씨.”

“아하하하, 맞아요.”

그녀는 멋쩍게 웃음을 지었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 근처 벤치에서 음료수를 뽑아 건네줬다.

그때가 벌써 10년 전쯤인데, 아직도 그녀는 이 학교에 있었다.

“요새는 무슨 일 하시나요?”

“박사 학위 준비하고 있어요. 그 예전처럼 사회 활동 문제로요.”

명함을 내밀자 사회과학대 연구소라 적혀 있는 명함이 있었다.

“오~ 아직 그 꿈을 좇으시는군요.”

“네.”

진욱은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동물권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어요. 지금도 다른 동물원들 운영하면서, 바닥부터 하나하나 갈기 시작하고요.”

“네, 저도 가 봤는데, 유기견 보호소나 파양된 동물이 모인 체험관은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라 감동했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중 생각난 인물에 대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공존의 길 단체 리더인 유현아 씨는 요새 뭐 하세요?”

“아, 현아 언니요? 요새도 사회운동 하고 계세요.”

“그렇군요.”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아니, 아시겠네요. 그 언니가 지금 풀뿌리연대에 있거든요.”

“푸우우웁!? 쿨럭! 쿨럭!”

“어머, 괜찮으세요?”

순간 그 이름을 듣고 나서 뿜어 버린 진욱이었다.

크게 기침 몇 번을 한 진욱은 손수건을 내미는 김아영을 보고서 다시 물었다.

“풀뿌리연대요? 진짜요?”

“네, 지금 풀뿌리연대 홍보실장이에요.”

“하, 하하…….”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삼정이 그렇게 성가셔하고, 타깃으로 잡혀서 각종 SNS 비방전이 나오고, 공장 설립까지 막는 단체의 간부가 과거에 인연이 있었고, 자신이 후원했던 대학생 동아리 단체의 사람이라니.

자신이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건가 싶어서 쓴웃음이 나왔지만, 오히려 이렇게 나와서 다시 물을 수 있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분하고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진욱은 내친김에 그녀까지도 한번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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