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한 줌의 무서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출근할 때 아내와 아이를 안아 주고 출발해서 청담동 사옥에서 회의를 하고, 그것을 마친 다음에는 화상으로 상록 본사와의 미팅 역시도 끝냈다.
점심에는 한창 사무실 이전 준비로 바쁜 누나 진영의 아성펫패션 계열사도 둘러보고, 담당 투자 자문인 유리금융의 연락을 받고서 코스닥 상장에 대해 대표이사로 직접 나섰다.
“재정 건전성이나 투명 문제성에 대해서는 문제 없겠죠?”
“물론입니다. 저희도 여러 번 봐 왔지만, 아성처럼 거래 내역 깔끔한 기업은 찾기 힘듭니다.”
멸칭으로 개판이라 불리는 코스닥 상장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정부 지원 받고, 지자체에서도 키워 준 기업들이 주식 상장만 하려고 하면 회계 문제로 여기저기서 잡음이 나오고, 심한 경우 분식 회계가 발견되거나 상장하려다가 영장 받는 경우도 생긴다.
뉴스에 걸핏하면 나오는 유명 코스닥 기업의 횡령과 배임 문제로 수많은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된 이야기는 이젠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회계 투명성은 정말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하하하, 네 맞습니다. 덕분에 수월하게 상장 준비가 돼 가는 군요.”
“이번 상장 이후로 다음에는 아마 동물원이 될 겁니까?”
“아, 이번에 법인 만든 그 부산과 광주의 동물원 말입니까?”
진욱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대화그룹과 AD아쿠아리움에 대한 지분 정리를 하고, 아성펫카페와 합병한 다음에 최종적으로는 주파크 산하로 들어가서 동물 테마파크 기업으로 따로 상장할 겁니다.”
“엄청난 프로젝트가 되겠군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 역시도 저희 유리투자증권과 같이 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일 처리 보면 안 될 건 없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유리투자증권 담당자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악수를 하며 끝난 자리.
진욱은 담당자를 돌려보내고, 집무실 의자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프로젝트 몇 개 끝내니 바로 한가해지네?”
원래 그게 당연한 거였지만, 일 중독 스타일의 진욱에게 있어 이럴 때는 오히려 좀이 쑤셨다.
최근에 너무 집안에 무심했다고 해서 주말마다 같이 피크닉도 가고, 평소 안 하던 다른 재계 사람들과 모여 골프도 치고, 선상 낚시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지나치게 여유로우니 오히려 좀이 쑤시던 진욱의 삶.
거기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이 그에게 생겼다.
* * *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했을 때, 청담 사옥에서는 임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좋은 아침… 인데 다들 왜 그래요?”
“야… 아니, 하 사장!”
진영이 먼저 일어나서 휴대폰을 가지고 진욱에게 보여 줬다.
“대체 무슨 짓을 했는데 우리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해?”
“응? 이게 뭐야?”
진욱이 확인하니 그것은 SNS 글이었다.
뭘 이런 걸 가지고서 신경 쓰냐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했다.
“대체 이게…….”
진욱이 뒤늦게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하면서, 오늘의 임원 회의는 스마트폰 회의가 되었다.
“대표님, 이거 찌라시치고는 너무 상세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서 작정하고 가짜 뉴스를 뿌리는 것 같습니다.”
이정열 부사장과 고원우 고객 센터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지금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논했다.
- 아성사료그룹의 수상한 거래, 삼정과 손잡고 수의사와 동물 의약품까지 독점하려고 한다.
- 처음부터 로비로 만들어진 우익정당의 자금줄, 퍼트려 주세요!
- 수의사 정원 늘리는 건 막아야 합니다. 대기업이 독점하려고 사다리를 걷어차는 거에요.
별의별 것을 다 갖다 붙이고서, 아성사료그룹을 악마화하는 SNS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것을 퍼 간 글이 각종 커뮤니티의 베스트 글로 올라오고, 삽시간에 아성의 이미지가 완전 박살 나고 있었다.
“우리가 전임 보수 정권에게 연달아서 돈 받고 성장했다라…….”
그건 어디까지나 중소기업 지원법에 따라 움직인 건데도 이미 눈 감고 귀 닫고 있는 인간들의 무지성 악플로 인해서 그 이미지까지 사라지고 있었다.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도 가관이었다.
최근 삼정바이오와 협력하여 동물용 의약품 라이선스 생산 공장을 준비하는 것도, 반려동물 의약품 독과점이라면서 각종 악플이 넘쳐났다.
“대표님, 이거 그냥 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아! 다른 곳까지 퍼지고 있어.”
진영까지도 그 심각성을 파악하고서, 상장 전인 자신의 회사에도 피해가 가지 않을지 염려하고 있었다.
진욱은 그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일단 해결하기로 했다.
“고 팀장님, 대응팀 준비해 주시고, 언론사에 연락해 주세요.”
“네? 언론사 말입니까?”
“대충 헤드라인은 정해져 있죠. ‘SNS발 기업 가짜 뉴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한다.’ 이런 반응으로 나가면 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이 부사장님도 공식 인터뷰 준비해 주세요. 지금 SNS에서 일어나는 소문은 모두 헛소문이고 법적 대응 시사를요.”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사업 문제로 조용한가 싶더니만, 이번엔 인터넷발 기업 이미지 공격을 하는 통에 진욱의 입에서는 오늘도 한숨이 나왔다.
* * *
“미친놈들, 밥 처먹고 할 짓이 없어서 그딴 걸 싸질러?”
“그렇게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본사에서도 바로 대응팀 준비해야 될 겁니다.”
급히 상록 본사에 내려가 직접 상황을 말한 진욱은 인터넷 댓글 따위에 시큰둥한 아버지 상만에게 지금 상황의 위험성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만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걸로 인터넷에서 떠들어 봤자 겨우 한 줌 아니냐?”
진욱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버지… 아니, 회장님! 잘 들어 보세요.”
“뭐가?”
“그 한 줌이 말이죠. 사실은 전부 다 새카만 오물이에요. 아무리 깨끗한 연못이라도 그 한 줌의 오물을 던진 순간 겉잡을 수 없이 퍼져서 순식간에 오염되는 겁니다.”
“뭐, 별… 그렇게까지?”
“정말 심각한 거예요. 그래서 이런 찌라시 퍼트리는 놈들 전부 잡을 겁니다.”
진욱은 법적 대응을 강경하게 할 준비를 했다.
“일단 변호사 전부 모으고, SNS부터 고소할 겁니다. 그리고 바로 정정 기사 보내고요.”
“그렇게까지 위험한 거라면……. 뭐, 그렇게 해 봐라. 바로 로펌에 연락해 보마.”
상만은 진욱의 제안에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사실 잘 모르는 영역이니 그냥 아들이 하겠다고 하는 걸 지지해 줄 뿐이었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용인시에 설립, 검토를 한 삼정바이오&아성사료 기흥 부지 공장이 시민 단체에 의해서 막히고 있습니다.]
[동물 약품 독과점 공장에 대한 결사 반대를 천명하고 있는데요?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시죠.]
9시 뉴스까지 이 사실을 알리면서, 이 떡밥은 언론에까지 퍼졌다.
그동안의 동물 의약품에 대한 독과점 문제, 삼정바이오가 그 독점에서 라이센스 하청으로 독점의 하청화.
그리고 수의학과 증설로 인해서 동물 사업에 대해 삼정과 아성이 모든 것을 점거한다는 음모론.
별의별 게 전부 보도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진욱이 아침부터 재빠르게 언론사를 움직여서 일부 신문사와 방송국에서는 반박 기사도 나오고 있었다.
[한편 삼정에서는, SNS에 퍼지는 현재의 독과점 논란에 대해 지나친 억측이라며 반박 기사를 올렸습니다. 또한 아성사료그룹 역시도 법적 절차를 밟아 정식으로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고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지난 5년간 축산물 동물 의약품과 반려동물에 대한 중요 약품의 가격이 동결된 가운데, 원가 절감을 위한 1차 위탁 생산 공장을 반대하는 것은 자칫 더 큰 혼란을 시장에 야기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입니다.]
신문사와 뉴스 방송국들의 논조에 따라서 지금 상황은 비판과 옹호로 확실하게 나뉘었다.
아침에 SNS 확인하고, 바로 대응팀을 운용하여 처음 원본 글이 삭제됐지만,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들에 때맞춰서 시민 단체까지 움직였다.
진욱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엄지손톱을 짓씹을 때,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본 세화는 조용히 다가가 옆에 앉았다.
“세상에~ 갑자기 뭐 저런 뉴스들이 나와요? 우리가 뭘 어쨌다고?”
“몰라, 누가 작정한 것처럼 움직이는 게 좀 이상하단 말이야.”
“흐으음~.”
진욱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실시간으로 대응팀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받았다.
[- 대표님, 고 팀장입니다. 내일 아침 모닝와이드 프로로 허위 사실 비방에 대한 기사 약속받았습니다.]
[-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대표님. 본사 영업부 황기옥 이사입니다. 삼정바이오와 동물 약품 라이선스 공장 건으로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그쪽에서도 이번 뉴스에 대해 신경 쓰는 것 같습니다.]
[- 야, 진욱! 우리 회사 블랙리스트 올라온다는 말 있는데, 주작 아니지? 캡처 한 것 보낸다.]
마지막으로 진영의 메시지까지 본 진욱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화는 모르는 상황이지만, 남편이 쓸쓸해하는 모습을 보고 토닥여 줬고, 그사이에 힘겹게 기어 온 아들이 진욱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진욱은 가족의 힘으로 겨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진욱은 그 연락을 받고서 이야기하다가 급히 나갈 준비를 했다.
* * *
“여길 이 시간에 오다니…….”
딱 한 번 초대받았던 이태원동의 최고급 한옥 대저택.
승지관에 도착한 진욱이 전화를 걸자 밤에도 대기 중인 삼정그룹 비서실 직원들이 후다닥 달려와 뒷좌석 문을 열면서 공손히 인사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아, 네.”
“부회장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절도 있는 예의로 문이 열린 승지관으로 안내하는 비서실 직원들.
밤에 와 보니 야경이 무척이나 멋진 곳이었다.
특히 전깃불이 아닌 일반 호롱불을 처마마다 걸어 놔서 전시한 것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승지관의 야경을 둘러보면서 들어간 진욱은 노크 이후 문이 열리면서 기다리고 있던 이현재 부회장을 만났다.
“어서오세요. 늦은 밤에 갑자기 죄송하게 됐군요.”
“아닙니다, 부회장님.”
이현재는 진욱을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앉으라고 소파로 안내했다.
“차부터 드시겠습니까?”
“네, 다즐링으로 부탁드립니다.”
이현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같은 걸로 가져오라고 명하자 비서실 직원들이 최고급 홍차와 수제 쿠키를 내왔다.
차를 대접받았으니 일단 마시기는 하지만, 웃음 속의 그의 얼굴에는 뭔가 씁쓸함이 느껴졌다.
“조금 많이… 당황스러우시죠?”
“저희가 아침부터 확인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 보도를 내는데도 좀 이상하긴 합니다.”
솔직하게 심정을 이야기하자, 이현재 부회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 내막에 대해 조심스럽게 풀어 놓았다.
“이제는 우리도 사업 파트너로 여러 개를 했으니, 대표님도 들으셔야 하겠군요.”
“네?”
“예전부터 우리 삼정에 대해서 알 박기로 임하는 시민 단체가 있습니다. 정치권에도 영향력이 막강하죠.”
이현재의 이야기에 진욱은 과거 감사원에 있던 동기들이 떠올랐다.
시민 단체와 정치권의 유착으로, 관련 인물이 정당 영입 제의와 공천을 받아 정치인이 되고,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는 유착의 관계.
그거 제대로 때려잡는다고, 당시 감사원장이 시민 단체 회계 집행 생각한다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세계는 조금 다르니 또 이걸 겪는 것 같았다.
“그럼 설마…….”
“유감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랑 친해져서 아성까지 타깃이 된 것 같군요.”
“으으음…….”
“물론 우리의 거래는 계속 이어 갈 겁니다. 정 안 되면 어떻게 협의를 해서라도 공장은 지어야겠지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진욱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결심한 듯 말했다.
“부회장님.”
“네, 말해 보세요.”
“진짜 그거라면 그냥 제가 들이받아도 됩니까?”
“……?”
진욱은 이 자리에서 그냥 직구로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