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내친김에 1천 명
진욱의 의지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부산대 수의대학 설립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가 되며 좌우 할 것 없이 양당이 자신들의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었고, 지자체들 자체도 공약으로 내놓으니 아무리 전국 수의사들이 모인 수의학협회라고 하더라도 버틸 수가 없었다.
[최근 수의대학 정원 증원에 대해서 한국 수의사협회는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며, 긴급회의에 들어갔습니다.]
[네, 지난 2018년 결사 반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이제는 추가 수요에 대한 중요성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저 이슈에 대해 떠들고 있었고, 진욱에게도 연락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용인시 갑 국회의원 김종일입니다.”
“아, 네. 하진욱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수의대 이슈 잘 봤습니다. 하하하.”
부산대를 넘어 이제는 경기도에도 수의대 설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명인대 이공계 캠퍼스가 있는 용인의 지역구 정치인들이 바로 진욱을 찾아왔다.
나쁘게 보면 숟가락 얹는 것이었지만, 좋게 생각하면 최고급 식사 초대권이었다.
“이 보좌관, 그거 가져와 봐.”
“네, 의원님.”
용인 3선의 새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김종일이 손가락을 튕기자 보좌관들이 서류 가방을 가져와 바로 태블릿 PC를 꺼내 관련 자료를 열어서 가져왔다.
“이게 이번에 저희가 추진하려는 법안입니다.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진욱이 그것을 잡고 확인했을 때,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수의학과 증설 및 사립 수의학 전문 대학원 설립에 대한 법안.]
미리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좋게 나온 제안에 표정 관리를 겨우 하는 진욱이었다.
“수의학 전문 대학원이라. 이건 저도 생각 못 했는데……. 으음, 생각해 보니까 괜찮은 건이군요.”
현재 국내 의료/보건업계에 진출하는 방법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6년제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을 나와서 졸업 이후 인턴부터 시작하는 수련의를 거쳐 의사가 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일반 대학 졸업 이후 의학 전문 대학원이나 치의학 전문 대학원으로 가서 수련을 받는 것이었다.
현재는 의대/의전과 치대/치전 등으로 나뉘었는데, 앞으로 수의대 역시도 수의전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거절할 리가 없었고, 성사만 된다면 600명의 정원이 아니라 1천 명까지도 충분히 나올 것이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겠군요.”
“뭐, 지금 여당이 하는 걸 보면 공공 의대나 공공 치대같이 아예 정원을 확 늘리려고 하니까요. 저희도 당 내에서 그냥 들이받으려고 합니다.”
여당과 야당의 정치 논리야 별 관심은 없었지만, 그렇게 서로의 이권을 가지고 싸우면서 생기는 기업의 부수익은 땡큐였다.
진욱이 그것을 통해서 논의를 할 때, 수의학 대학에 대한 디테일과 명인대 수의대학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의원과 토론했다.
김 의원은 세세한 정책에 대해 잘은 몰라도 옆에서 보좌관들이 관련 자료와 현 상황에 대해 알려 주자 바로 대화가 이어졌다.
회의는 3시간 동안 계속됐고, 서로가 지쳐서 몇 번이나 아래층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 겨우 끝을 냈다.
“후우~ 이거 진짜 알찬 이야기가 많이 나왔구만.”
“저도 동감입니다. 역시 정치권에서 알아줘야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는군요.”
“내 일단은 본회의에 한번 올려 보겠습니다. 그동안 기다려 주시고, 우리 지역구에 명인대 잘 운영해 주세요.”
“하하하, 그건 이사장인 큰아버지의 몫이지만 말이죠.”
“아이고~ 그분하고도 골프 치면서 이야기 들었어요. 사실상 이번 이슈는 전부 대표님이 주도하시는 거라면서요?”
“어, 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큰아버지가 그렇게까지 말했다고 하니 뭔가 머쓱해진 진욱이었다.
지난번 술자리도 그렇고 진짜 진성을 배제한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던 진욱은 순간적으로 많은 시츄가 떠올랐지만 일단은 지금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수의전에 대해서는 저희는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다른 사학 재단과 같이지지 선언 집단행동도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좋아요, 좋아.”
“대신 저희도 그 관련으로 동물 관련 의약품 생산을 위한 공장을 설립하려고 하는데, 규제 문제가 없겠습니까?”
“흐으음, 그건…….”
김 의원이 또 옆에 있는 보좌관을 불러 속삭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해 줬다.
“네, 그건 우리 지역구에다가 공장을 유치한다면 내 적극적으로 푸시 하리다.”
“감사합니다. 우선순위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진욱은 유익한 대화를 마치고서 악수를 하고 김 의원 일행을 배웅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집무실에 걸터앉은 진욱이 길게 한숨을 쉴 때, 진영이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다.
“요새 정치 생각 있냐? 한두 명도 아니고 누구 만났다는 이야기가 계속 뉴스에 나오네?”
“그 수의대 법안? 그거 뭐 그렇게 질질 끄냐?”
진영은 한숨을 내쉬면서 오늘자 결재 서류부터 진욱에게 넘겨줬다.
“그냥 대통령이 나서서 만들라고 하면 끝 아니야? 그 양반은 뭐 한대?”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물론 대통령 행정명령이 이런 데 쓰일 일은 아니겠지만, 진짜 그 이슈를 문다면 파급력이 장난 아니기는 할 거다.
진욱은 오늘자 서류에 사인을 해 준 다음에 넘겨주면서 누나에게 말했다.
“상장하는 데 뭐 부족한 건 없지?”
“나야 뭐, 문제없지. 네가 추천해 준 유리금융 쪽 애들 진짜 일 처리 빠르더라.”
만년 떡밥이었던, 누나의 펫패션 사업의 기업 상장까지 끝내면 아성주파크 밑의 한 층을 통째로 쓸 수 있게 만들어 줬다.
덕분에 이제는 아성사료 상록 본사 말고도 아성펫푸드만으로 산하에 기업집단을 만들 수 있는 규모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진욱은 퇴근 전에 어딘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하진욱입니다. 네? 어디요? 수원 영통?”
진욱은 갑작스럽게 온 연락을 받고서 눈이 점점 커졌다.
* * *
“오랜만이에요. 그간 잘 지내셨죠?”
“아닙니다. 부회장님도 그동안 잘 지내셨죠?”
지병으로 요양 중인 이 회장을 대신해 국내 제1의 재벌 기업을 운영하는 삼정그룹 부회장 이현재.
특이하게도 둘의 사이를 생각하면 삼정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 줘서 진욱이 초대받고는 했다.
오늘 역시도 삼정전자 본사인 수원 캠퍼스 근처의 한정식집에서 만난 둘이었고, 가게 하나를 대절해서 식사 자리를 가졌다.
“한 잔 받으세요.”
맥주의 기존 로고를 가리고 삼정그룹의 CI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이 뭔가 웃겼지만, 이 그룹의 문화라고 하니 이제는 적응해야 했다.
“여기 갈비가 아주 연하고 좋아요. 저도 가끔씩 생각나면 먹는 곳입니다.”
“네, 아주 좋네요. 부회장님이 추천해 주신 맛집이라 저도 앞으로 자주 와야겠습니다.”
“하하하, 네. 그래요. 자주 오세요. 가끔씩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요.”
처음에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서로 간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경영인.
그러면서 본론에 들어간 건 식사가 1시간 정도 진행된 때였다.
“이번에도 엄청난 사업을 추진하셨더군요. 아성은 대표님 덕분에 대기업까지 금방 클 겁니다.”
“하하하, 아직은 멀었습니다.”
역시나 삼정도 이번 떡밥을 제대로 물었다.
그들 역시도 홍문관대라는 명문대를 소유하고, 사돈댁인 동원일보그룹 역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사학인 안암대의 소유주였다.
초대형 사학 재단 두 곳을 산하에 두고 있는 삼정그룹에게 있어서도 수의대 유치는 꽤나 매력적인 떡밥이었다.
“안 그래도 정치권에서 수의학 전문 대학원을 만들고 사립대학 재단들에게 지지 서명을 받겠다고 약속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요? 이거 역시 오늘 초대하기를 잘했군요. 거기에서 두 표는 추가하셨다고 생각하세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적당하게 힘을 실어 주는 이현재 삼정 부회장.
삼정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은 재계 1위라는 위상 때문에 신사업에 대해 진출하는 것을 색안경 끼고 보는 존재가 많았다.
하지만, 아성이 나서면서 판을 크게 키웠고, 정치권까지 논의되는 대형 떡밥에서 사학 재단과 관련된 것이니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있었다.
“혹시 저희가 뭐 도울 게 있습니까? 사학 재단 지지 선언에 대해서는 당연한 거고요.”
진욱은 자신이 도와준 다음에 뭔가를 떠올리다가 마침 좋은 게 있어서 이현재 부회장에게 제안했다.
“부회장님, 저희 제약 공장이 필요합니다.”
“네?”
“으음, 지금은 서류를 가진 게 없… 아, 마침 태블릿이 있군요.”
진욱은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고 관련 기획안에 대해서 준비한 자료가 마침 있었다.
태블릿을 건네주자 그것을 확인하던 이현재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역시… 이래서 제가 대표님을 좋아합니다.”
“네?”
“저에게 보여 주는 태블릿 브랜드… 우리 제품 아닙니까?”
“…아! 아하하하 네, 가장 좋은 제품이니까요.”
진짜 이건 얻어 걸린 거였다.
기존에 A사 제품 패드와 삼정전자의 갤럭시아 탭이 경쟁하는 가운데, 진욱은 태블릿을 여러 대 썼는데, 딱 삼정 제품에 그 자료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뭐, 덕분에 첫 단추부터 이미지가 좋게 끝났고, 그 뒤로 손가락으로 슥슥 넘기면서 그것을 살펴봤다.
그것은 진욱이 몇 번씩이나 이야기했던 동물 관련 의약품 공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삼정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홍문관대는 의대와 약대가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흐으음, 동물 약품에 대해서도 저희가 생산하고 있기는 한데… 특히 축산물에 대한 개발은 말이죠.”
“네, 그래서 말인데 저희가 그쪽에 입문하고 싶습니다만, 라이선스 제조부터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진욱이 제안한 것은 동물의약품 생산 공장이었고, 삼정의 도움을 받아서 위탁 생산을 맡겠다는 뜻이었다.
“위치도 경기도 동부 일대에 만드려고 하고, 제약 공장 설립 규제와 법인세 역시도 풀어 준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건 좀… 생각을 해 봐야겠군요.”
안경을 고쳐 쓰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현재의 얼굴을 보니, 이건 통과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일주일, 아니 사흘 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대신 저희 역시도 수의학 전문대에 대한 일정 지분은 유치가 되어야 하겠죠.”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수의대가 소유한 지방 거점 국립대 다섯 곳으로부터 전부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부산대, 경북대, 경상대, 전남대, 강원대를 모두 설득해 교육부를 통해 들어가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부산대의 설립부터 네 곳은 진욱이 그동안 지자체와 긴밀한 협조를 이뤄서 아성의 동물원과 공장, 사회적 재단 등의 수많은 계열사들이 배치된 곳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드러났다.
* * *
[네, 오랫동안 논의가 됐던 수의학 양성 법안에 대해서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했습니다.]
[기존의 1,200명 정원의 야당 제안은 반려되었지만, 총 800명으로 수의학과 정원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기존 수의학과 600명 정원에 부산대와 명인대가 신규 설립을 하게 되었고, 남은 300명은 수의학 전문 대학원을 통해서 유치 입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안암대와 홍문관대가 가장 먼저 신청을 하고, 연희대와 동아대 역시도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의전까지 끼어서 정치권이 ‘찬성과 반대’가 아닌 ‘1,200명과 900명’의 차이로 나뉘어서 통과가 된 것이었다.
덕분에 수의학과 정원은 두 배에 가깝게 늘어나 입시 시장에서 떠들썩했고, 거기에 맞춰 삼정과 아성은 동물 의약품 생산 공장에 대한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 했다.
이번에도 대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