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알겠지?
“자, 그럼 부산대학교 수의대학 신설에 대해서 한번 토론을 해 봅시다.”
부산시장 서형수는 지역 유지이면서도,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었다.
중앙 정계에도 제법 영향력이 있어서 지역 내 굵직굵직한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발언권이 상당히 세다고 한다.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서 진욱은 수의사협회의 임원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미 공식적으로 수의사협회에서 나온 말입니다만, 지금의 수의사라는 직업은 국내 공급과잉입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인프라를 확충해서 더욱 수의사가 필요합니다.”
진욱은 사료 부문 1티어이자, 동물 관련 사업에는 안 낀 곳이 없는 아성사료그룹의 위상과 지역 분배에 대한 상황을 공격했다.
“협회장님도 아시겠지만, 부산 내에 수의대가 없고, 그로 인해 동남권 일대에는 경상대의 50명 정원이 전부입니다. 인구 800만에 가까운 지역에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50명 정원으로 나오는 수의사 공급이 동남권 내에서 커버가 됩니다. 여기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게 작년 부산 일대의 개인 동물 병원 폐업 현황입니다.”
“모든 임상 수의사가 개업하는 것은 아니죠. 저희는 지금 부산 주파크를 확장 공사 하고 있고, 관련 사업도 계속 늘려 갈 것입니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바로 자료를 하나 꺼냈다.
큰 하드보드지에 담긴 것은 CG로 그려진 대형 병원 건물이었다.
“이것은 제 모교에 있는 대형 동물 병원입니다. 바로, 서울대 수의대 부속병원이지요.”
규모 1,700평에 복층 건물, 24시간 상시 수술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동물 병원이었다.
과거 진욱 역시도 수제간식 사업을 할 때, 실시간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곳이었다.
‘뭐, 지금은 그렇게 도움을 안 주지만.’
수의대 신설에 대해서 격한 부정의 반응을 보였지만, 아성이 보내는 후원금을 생각해서 일단은 중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전에 받았었다.
“그리고 이게 제가 부산에 수의대 설립 시 기부 채납으로 제안드리는 부산 대형 동물 병원입니다.”
“……!”
“호오, 기부 채납이란 말입니까?”
부산대 교수진은 물론이고, 지켜보고 있던 서 시장 역시도 눈을 반짝이면서 바로 정무부시장과 관련 공무원들에게 속삭여 저것에 대해 묻고 있었다.
진욱은 그 반응을 보고서 정치권 사람도 들으라는 듯이 다음 자료도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부산에서 현재 구상한다는 부산 국제 반려동물 박람회입니다. 이 사업에 대해서도 우리 아성사료그룹은 메인 스폰서를 맡아서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하, 하하하! 그것도 생각하셨어요? 이거 나도 구미가 당기는데?”
“시장님.”
이 상황에선 아무리 협회가 반대한다 하더라도 놓치기에는 너무 큰 떡밥이 많았다.
서울대 수의대 병원 규모의 동물 병원을 기부 채납으로 기증한다는 아성사료.
그리고 전임 시장에 이어 준비하는 국제 애완동물 박람회에 대한 메인 스폰서.
이미 이것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권한만 있다면 바로 80명이고 800명이고 정원을 줄 것 같았다.
반대 입장에서도 순간 당황한 반응이었고, 진욱은 느긋한 얼굴이었다.
‘어디 이것까지 내미는데도 수의사 수익이랑 공급과잉 가지고 이야기해 보시지?’
실패한다면 그냥 기존의 인력으로 여전히 공급과잉 노래를 부르면서 수요는 제자리 걸음이겠지만, 성사된다면 다가오는 인프라가 어마어마했다.
부산 수의사협회장 강형수는 난처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서 시장은 잠시 쉬었다 하자면서, 토론을 잠시 멈췄다.
“네~ 네~ 와~ 마, 진짜 돌아 뿔겠더라고요. 진짜 똥고집이에요.”
강 협회장은 위에 전화를 걸어 일체 타협도 없이 수의대 신설을 밀어붙이는 진욱을 언급하면서 토론회의 내용을 말했다.
“네, 공급과잉, 수의사 개인 병원 폐업.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아요. 이 인간 완전히 작정했다니까?”
그래도 일단은 막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기존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이들의 발버둥이었다.
이미 부산시장이 반쯤 기운 것 같았지만, 일전에도 저러다가 격한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그러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일단 더 버텨 볼게요. 아마 도돌이 하고 끝날 겁니다.”
강 협회장이 그 말을 하고 인사하며 통화를 마칠 때, 옆에 있는 협회 임원들이 물었다.
“협회장님, 그래도 마지막 꺼는 쪼끔 혹하지 않았습니까?”
“뭔 소리? 그 수의대 병원 말하는 거가?”
“그거는 협상만 잘하면 우리 쪽에서…….”
협회에 있어도 그들 역시 수의사.
당연히 업계에서 큰 명성과 돈을 구하는 것이 우선순위였고, 정말 지역 내에 저런 인프라가 생긴다면 굳이 반대만 하지 않고 저 자리에 올라가 자신들이 또 다른 세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로 인해서 지금 여러 명이 흔들리자 강 협회장이 그들을 다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멀리서 진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맞습니다. 여기 분들하고도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지요.”
“……!?”
그들이 돌아봤을 때, 박수를 치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진욱이 보였다.
“아, 하 사장님.”
“네~ 네~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다른 교수들은 이미 반쯤 넘어온 상태였고, 강 협회장은 아직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진욱은 그것을 바로 캐치했다.
‘협상할 여지가 있다.’
“한 5분쯤 시간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잠시 이야기 좀 하고 같이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
진욱은 이미 이들이 서울 협회에 이야기했을 것을 눈치채고서 역으로 포섭하기 위한 제안을 꺼냈다.
그리고 딱 5분 동안 진욱의 말을 들은 부산 수의사협회 임원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 * *
휴식 시간 5분 동안 바뀐 이야기로 인해 둘이 합의가 되었다.
두 세력의 토론을 지켜보던 서 시장은 흥미로운 눈으로 입이 맞춰진 둘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협의가 된 모양이군요?”
“건전한 토론이 이래서 좋은 겁니다, 시장님.”
진욱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나왔고, 강 협회장 역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토론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부산광역시청은 수의대 유치를 재추진할 것이고, 곧 팀을 만들겠습니다.”
서 시장이 확정하고, 사실상 한쪽 당이 꽉 잡고 있는 시 의회 상황상 이건 거의 추진 가능이었다.
부산대 교수들이 환호하면서 진욱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 사장, 진짜 고생많았어요.”
“아닙니다, 총장님.”
“우리도 약속은 지켜야지. 조만간 다들 올라갈게요.”
“하하하, 네.”
부산은 성공했고, 이제는 경기도에서 유치를 선언하고 명인대가 그 자리를 가져간다.
뭐, 사립대로 가져간다고 하면 다른 곳들도 달려들겠지만, 그거에 대해서도 방법은 있었다.
“하 사장님?”
“네, 협회장님.”
진욱은 강 협회장과 악수를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산의 수의대 신설 유치에 대해서 발표를 했을 때, 수의사협회가 결사 반대를 했지만, 역으로 경남과 부산 일대의 지역 법인에서 찬성을 해서 갑작스러운 내분이 일어났다.
* * *
“어떻게 한 거야?”
“부산에 짓고 있는 동물원 원장 자리 제안했어요. 이후 부산에 대학 동물 병원 생길 시 초대 원장으로 초빙하고요.”
“크~ 제대로 구워삶았구먼.”
“협회에서 평생 정치질 할 거냐, 아니면 후학 양성을 위해서 제2의 수의학 병원 원장 하실 거냐 이야기 하니 답은 바로 나오더군요.”
“으하하! 잘했다, 아주 잘했어.”
상만은 껄껄 웃으면서 부산에 수의대 유치를 성공할 시 기부 채납 할 예산을 따로 편성하기로 했다.
거기에 맞춰서 진욱이 과거 시기상조라고 접어 놨던 동물 의약품에 대한 사업도 준비하고 있었다.
크게는 축산 농가에서 소, 돼지, 말 등에 쓰는 대형동물 백신과 마취, 소화제. 작게는 반려동물들의 각종 의약품까지 해외 업체들과 협상을 해 볼 생각이었고, 이 사업 역시도 확실히 될 것이다.
“근데 말이야, 혹시나 입 싹 닦고서 멈추는 일은 없으려나?”
부산대 쪽에서 성공을 하고, 바로 경기도에 수의대 유치를 돕기로 한 러닝메이트의 관계.
만약 여기서 한쪽이 통수를 친다면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 되고, 죽 쒀서 개 주는 꼴일 거다.
상만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진욱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걸요?”
* * *
한편 분당의 수의사협회에서는 통화를 하면서 고성이 오갔다.
“강 협회장! 이거 너무한 것 아니야?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미안하게 됐어요. 하지만, 우리 지역을 위해서는 찬성이 더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말이야?”
[사무총장님, 거 생각해 보면 애초에 600명 정원은 이전부터 논의한 것 아닙니까?]
“강 협회장!”
김영균 사무총장은 자신들의 뒤통수를 친 부산/경남의 협회 놈들을 싸그리 제명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2년 전에도 이런 상황이어서 똑같이 진행될까 생각했지만, 대체 뭘 받아 처먹었는지 찬성으로 돌아서자 김영균 총장은 급히 회의를 통해서 결정한 것을 제안했다.
“후우,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뭘 말인가요~?]
“일단 우리가 협의한 결과 부산까지는 인정하겠습니다. 정원은… 한 35명까지는 협의할 생각은 있습니다.”
결국 부산에서의 수의대 설립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으니 일단 합의를 제안하는 협회였다.
이 상황에서 제안한 것은 일단 부산만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거다.
“이미 할 만큼 했잖아요? 부산대 35석으로 수의대 설립 승낙할 테니, 이쯤에서 마무리합시다. 경기도까지 유치하면 진짜 우리가 업계 사람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겁니다.”
[흐으음-.]
이미 러닝메이트를 확정한 상황의 부산대 학계였지만, 협회는 또 달랐다.
막말로 부산 수의학협회는 자기 지역에 수의대 유치는 승낙해도, 역으로 경기도 유치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는 거다.
이 제안을 통해서 어떻게든 협상하려 했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사무총장님, 거 이제는 대세를 따릅시다. 우리 신입생 몇십 명 더 받는 걸로 인프라가 바뀌겠어요? 아성사료그룹이 다른 대기업과 같이 동물 사업 제대로 한다고 하니 한번 믿어 보시죠.]
“아, 아니, 그러니까…….”
[아이고~ 걱정하지 마세요. 인프라 확충에 증원된 수의사 인원에 따라서 추가 고용 약속도 받았습니다.]
순간 쌍욕이 나올 뻔한 사무총장이었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전국 10개 대학을 통해 배출되는 동물 병원 의사. 하지만 늘어나는 반려동물 양육 가구와 매년 일어나는 범 가축 전염병으로 인해 수의학과 정원 증설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부산대는 지난 2년 전에 실패했던 국공립대 수의대 추가 신설에 대해 오늘 정식으로 조례안 작성에 들어갔습니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국립/사립대학에 대한 수의학과 추가 증설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이 떡밥을 물고 여당도 야당도 이번 건에 대해서 심도 있는 관심을 보였다.
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이제는 절대다수가 된 반려동물 사육 인구와 지금의 대세인 이 건에 대해 놓칠 리가 없었다.
진욱은 집에서 편하게 뉴스를 보면서 이건 지난 날같이 막을 수 없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
“반대 리스크가 너무 크지. 못 막을걸?”
세상 편하게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제 법안 통과만 기다리고 있는 진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