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53화 (153/200)

153화 한두 번 볼 사이는 아니었지

“그렇습니까? 아쉽게 됐군요.”

[유감입니다. 어떻게 노력은 했는데, 반대 여론이 너무 심했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래도 민원에 대해서 정식으로 논의해 주신 것은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있다면 저희가 돕겠습니다.]

진욱은 웃으면서 전화를 끝낸 뒤에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회장실에서 지켜보던 상규는 조용히 진욱에게 물었다.

“얘기 들어 보니 알겠구만. 이거냐?”

상규가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진욱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양반들 광주 복합 쇼핑몰이랑 테마파크는 허락해 줬으면서 이건 안 된다네요.”

“됐어~ 거기까지 갔으면 완벽했겠지만, 지금까지도 충분하다.”

진욱은 명인대 인수를 하면서 특성화 학과 설립을 조건으로 호남 쇼핑몰 때 인연을 만든 여당 정치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의대 유치였다.

흔히 의치한약수라 불리는 보건/의료의 메이저 학과였고, 다른 단과대학에 비해, 이쪽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당 쪽에 의견을 타진 했다. 실제로도 일부 국립대가 수의대 신설 유치를 준비해서, 같이 버스를 탔었다.

하지만, 지금 전화 내용처럼 결과는 거절이었다.

상규는 그런 조카를 보고서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박수를 쳐 줬다.

“됐어, 할 만큼 한 거야.”

“그래도 말이죠.”

“아이고~ 아니다. 이번에 네 덕분에 대학교 재단까지 인수하고, 말년에 편하게 지낼 수 있겠어.”

상규는 지금까지 해 준 것만으로도 수고했다면서, 보너스가 담긴 봉투를 건네줬다.

제법 큰 서류 봉투가 있어서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아성저축은행과 아성산업개발의 주식이 있었다.

“증여세는 알아서 해결해 주마. 잘 가지고 있어.”

“아, 아니, 이거…….”

보너스라 치기에는 너무 큰 액수여서 당황한 진욱을 향해 상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뭘 그렇게 생각해, 이놈아? 내가 그래도 이 집안의 가주인데, 밑의 애들한테 물려주는 건 당연하지?”

“하, 하하…….”

“알았으면,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라. 미스 김! 여기 커피 두 잔! 설탕 빼고!”

예전부터 생각하는 거지만 참 대단한 분이었다.

초면의 괴팍한 언행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는 무심함, 실무에 대한 것은 모르고 그냥 밑의 사람에게 알아서 하란 투로 넘기는 경영 이해 부족.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뒤집을 정도의 큰손이라 확실한 포상으로 밑의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는 큰아버지였다.

진욱은 비서를 미스 김이라고 부르면서 커피를 대접받고는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었다.

종로에서의 파견 업무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서 진욱은 앞으로의 사업을 생각하다가 넌지시 중얼거렸다.

“근데 다시 생각해도 열받네?”

아까의 통화 목록을 보고는 다시 한번 움직일 셈이었다.

* * *

얼마 후.

진욱은 성남에 위치한 오피스 빌딩에 차를 멈췄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네, 그래요. 여기군요.”

수행 비서의 설명을 들은 진욱은 차에서 내리면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 도착한 곳은 대한수의사협회로 국내 수의사가 모두 모인 가장 큰 관련 학회였다.

안으로 들어가 미리 예약한 명함을 건네주자 안에서 바로 안내해 줬고, 회의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게 된 진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진욱이라고 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학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영균이라고 합니다.”

50대 중후반에 희끗희끗한 머리가 보이는 김영균 수의사협회 사무총장.

동물권에 관심이 많아 최근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주제로 하는 많은 TV 쇼에도 나가 패널로 한마디씩 하던 인물이었다.

“회의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차는 뭘로 드시겠습니까?”

“시원한 걸로 아무거나요.”

“알겠습니다.”

진욱은 김영균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에 앉으면서 새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깔끔한 벽을 둘러봤다.

그리고 많은 액자의 협회 사람들의 단체 사진 혹은 각각 대형견이나 고양이, 앵무새 등의 특정 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들의 사진과 각종 전공서적들이 장식되어 있는 모습도 확인했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까 전문가들 같기는 한데…….’

진욱이 내부에 대한 감상을 할 때, 여직원이 다가와 진욱과 영균에게 아이스티를 건넸다.

“잘 먹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아이스티를 쪽쪽 빨고 있을 때, 사무총장이 보여 준 것들은 현재 국내 수의학회에 대한 홍보자료였다.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이게 현재 국내 수의학계에 대한 상황과 통계자료입니다.”

“흐음, 네.”

진욱이 그것을 천천히 읽을 때, 김영균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현재 동물 관련 사업으로 가장 핫하고 규모도 상당한 아성사료그룹이 만나자고 했을 때, 그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 수의대 추가 유치가 반려되니, 설득하러 온 거겠지? 하지만 어림없어. 지금 정원도 초과라고.’

전국 10개 대학교에 525명의 신입생을 받는 수의학계.

하지만 그 수 역시도 공급 과잉이라는 지적이 있어서, 후발 주자인 대형 사학 재단이나 국공립대들이 요청을 해도 언제나 반대해 왔던 그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또 수의대 증설에 대한 이야기를 아성이 준비하려고 하자 적당히 설득해서 돌려보낼 생각으로 관련 자료를 넘긴 것이었다.

“확실히 개인병원에 대해서는 적자 폭이 심하군요.”

“그렇습니다.”

“대부분이 개나 고양이 쪽으로 편중되어 있고요.”

“아무래도 대다수의 반려동물 인구는 그렇습니다.”

진욱은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천천히 그 내용들을 살폈고, 10분 정도 걸려서 모두 정독한 다음 천천히 김영균 사무총장을 바라봤다.

싱글벙글하는 얼굴을 향해 진욱은 바로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래도 지금의 인프라를 생각하면 최소 연 600명은 필요하다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것이 힘듭니다. 말씀드렸지만, 기존에 수의대를 나온 수의사분들도 수요 부족으로 인해 동물병원 폐업을 많이 합니다.”

“그건 개원에만 한한 것 아닙니까?”

“하하하, 그렇지도 않습니다. 여기 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직접 치료를 하는 임상 수의사들은 개원이 아니라면 동물원이나 축협 등의 일부 업체들에 고용되는 것 빼고는 진로가 여의치 않습니다.”

“비임상은요?”

“공무원이나 학계에서 연구를 하거나, 민간 기업을 통한 취직이 있습니다. 대표님의 회사에도 많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사료와 관련된 사업이다 보니까요.”

‘이쯤 하면 알아듣겠냐?’라는 얼굴이었지만, 진욱은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지금의 수의대 증원에 대해서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현장에 있는 제 입장에서는 그대로 미래를 생각하면 수의학 전문가가 더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대표님……?”

“뉴스를 보시면 알겠지만, 현재 우리 회사가 부산과 광주에 대형 동물원을 확장 공사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원도에도 기존의 동물원 운영과 전국적으로 아쿠아리움 카페, 반려동물 카페 등으로 동물과 관련된 문화 공간을 늘리고 있습니다.”

“네, 네. 그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좋은 일을 해 주고 계십니다.”

“당장에 저희도 직접 고용하는 수의사의 비율이 늘어나는데, 이번에 명인대 인수로 인해서 더 많은 전문 수의사들을 영입하면, 궁극적으로는 인프라가 더 늘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급이 늘어난 만큼, 애로 사항이 많습니다. 특히 수가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화손해보험 경영인 시절에 펫케어 보험도 만들고, 그게 업계에 퍼져서 수의사 의료 수가는 점점 부담이 줄지 않았습니까?”

“아, 하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진욱은 주도권을 잡으면서 김 사무총장을 향해 돌직구를 던져 버렸다.

“지금 사무총장님이 주신 자료나 설명을 들어 봐도, 밥그릇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오… 대표님, 그건 아닙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네, 다 보고 알아서 하는 말입니다. 현재 경기가 안 좋다고, 미래의 추가 인원까지 늘리는 걸 반대한다니요?”

딜레마였다.

기존의 인원만으로도 공급 과잉이라면서, 최우수 성적으로 입학해 양성된 인원들이 경제난을 겪는다고 수의대 추가 신설에 반대하는 협회.

하지만, 시장 논리로 추가 공급의 필요성과 거기에 맞는 수요와 인프라를 확충해 나가자는 현장직의 경영자.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고용 안정과 인프라와 공급 과잉과 경제난에 대한 이야기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2시간 동안의 회의는 일단 여기서 끝났다.

“좋습니다. 일단 오늘 만남 반가웠고, 저도 추가 증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네. 오늘 아주 유익한 토론이었습니다.”

서로가 웃으면서 악수를 했지만, 그 속에는 칼이 있었다.

‘국공립대 추가 신설 막았더니만, 또 다른 놈이 이러는군. 글쎄 안 된다면 안 된다고!’

‘너희들 밥그릇 때문에 이 인프라 산업 포기한다고? 그럴 순 없지. 꼬우면 들이받아 보시든지?’

진욱은 협회와 정면으로 싸워서라도 원하는 건 쟁취할 생각이었다.

이제는 단순히 큰아버지 대학교 재단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욱 자신의 미래 사업인 동물원 테마파크 증설과 특별 사료. 그리고 지금은 구상 중이지만 동물 제약 사업까지도 준비하고 있으니, 그를 위한 인재들을 수급하려면 지금부터 밭을 갈고 씨를 뿌려 둬야 했다.

진욱은 그것을 확실히 상기시키고 수의학협회를 나섰다.

그리고 김영균 사무총장은 황급히 휴대폰을 들어서 연락했다.

“어, 나예요. 지금 학장님 좀 바꿔 주실 수 있나?”

어디론가 전화를 급하게 하는 사무총장.

그리고 밖에 나와 있는 진욱도 마찬가지였다.

* * *

“네, 총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지난번에 선물로 보낸 곶감 세트는 맘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먹었어요. 달달한 게 딱 좋더구만. 하하하하!]

“다름이 아니라 조만간 부산에 또 내려갈 일이 있는데, 부산시장님도 한번 뵙고, 겸사겸사 총장님하고도 식사 한번 할 수 있을까요?”

[어데? 연락만 하시면 내 당장 가지요.]

“네, 편한 시간 한번 말씀해 주시죠. 제가 그때 맞춰서 뵙겠습니다.”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서 수행 비서에게 말했다.

“상록 본사로 가죠.”

“네, 대표님.”

수행 비서가 방향을 돌려 분당에서 상록시로 바로 액셀을 밟을 때, 진욱은 가방에 있는 노트와 만년필을 꺼내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일단 매년 정원이 525석. 내가 생각하는 게 600석… 이게 수의대 정원이고…….”

그러면서 현재 10개 대학 각각의 수의대 정원을 적어 나가고, 600-525를 해서 75석의 자리를 두고서 동그라미를 연신 첬다.

“이걸 다 먹을 수도 있지만, 더 좋은 방법도 많지…….”

그러면서 아까 통화한 ‘총장’이라는 사람과, 그 옆에 있는 다른 대학교의 이름도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그 학교들은 전부 ‘수의대 유치 실패’ 했던 대학 리스트였다.

이미 그의 의지는 확고했고, 이제 수의사협회가 얼마나 매달릴지에 대한 시간만 남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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