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좋은 매물
[다음 소식입니다. 2007년 삼정전자의 대학 출연 기금 1,098억을 시작으로 대기업의 사학 재단 인수는 점점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소멸하는 지방과 지방대학에 이어, 이제는 수도권의 사립대 역시도 학생을 유치하지 못해 재정난에 빠진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 위치한 사립대 A대는 오늘 긴급 구조조정을 신청하며, 학과 간 통폐합을 통해서…….]
옛날 입시에서는 갈 데 없으면 그냥 원서만 내도 4년제는 충분히 간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흔히 ‘지잡대’라고 불리는 이름값 없는 지방대학이 그런 사례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학생들도 못 받아서 역으로 장학금을 줘서 앉히거나, 중국인 유학생들을 받아서 겨우겨우 정원 유지를 하는 곳이 넘쳐나는 상황.
거기에 인서울 대학과 지방대학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상황이어서 대학 진학률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우린 저 상황에서 움직이는 거란 말이죠.”
진욱이 점심을 먹으면서 TV에 나오는 저 내용을 보고 언급하자, 김 전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국밥 한 숟갈을 펐다.
“하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정부의 각종 지원책과 기업들의 특성화 학과 후원 등으로 체질 개선을 통해 바꿔 나갈 수 있으니까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진욱은 역시 이 사람은 큰아버지의 그룹을 운영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알아본 학교는 어디 어디 있습니까?”
“일단, 한국세무대학에 이사회에서 관심을 보였고, 그 외에도 다른 대학이 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로 근처 커피숍에 도착한 둘은 인수 가능 대학 리스트를 서류로 보면서 확인했다.
“흐으음, 한국세무대, 경인대, 서울남영대, 명인대…….”
전부 인서울 대학으로 치면 중~중하위권이지만, 전국적으로 봤을 때는 상위권의 대학교들이었다.
인수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학교.
그중에서 리스트를 정한 진욱은 그것을 두고서 실조사를 나서기로 했다.
수도권 대학을 알아보라고 했지만, 사실상 인서울 쪽을 주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그 리스트 내에서 회장님이 선택하실 픽이 저희가 협상할 대상일 겁니다.”
“네, 그렇긴 하겠죠.”
“혹시 본부장님이 생각하신 곳이 있습니까?”
“흐음, 전 아무래도…….”
진욱은 리스트 중에서도 한 곳을 골랐다.
* * *
다음 날.
아성금융그룹 종로 사옥에서 상규는 진욱이 가져온 리스트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명인대가 나아 보이는구만?”
“네, 큰아버지. 저도 명인대가 괜찮아 보입니다. 위치도 그렇고 확장성을 생각해서 말이죠.”
명인대는 서울 마포에 위치한 4년제 종합대학으로 경기도 용인에 이공계 대학을 둔 이원화 캠퍼스였다.
원래는 고등학교부터 전문대, 건설사, 부동산 등 재단 내에서 수많은 사업을 하던 부자 재단이었으나, 계속되는 경영 실패로 인해 명인건설은 파산 위기. 대학 재단 역시도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었다.
“예산은 얼마나 될 것 같은데?”
“명인대가 이번 감사에서 대학 재단 가치가 1,200억인데, 부채만 2,000억가량이라고 합니다.”
“한 3,500억 생각하고 있으면 되겠냐?”
수천억짜리 프로젝트를 거리낌 없이 말하는 상규를 보고서 진욱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파산으로 오늘내일하는데, 그 돈 다 주면 좀 그렇죠.”
“그러면?”
진욱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어떤?”
“지금 재단과 그룹 전체가 위기인데, 특히 상장 폐지된 명인건설이 산업은행 산하로 들어가서 법정 관리 상태입니다. 그쪽에서도 빨리 정상화를 하고 매각하려고 하지요.”
“오호~ 명인건설. 거기, 아파트는 몰라도 오피스 빌딩은 그럭저럭 짓지.”
건설 밥을 먹다 보니까 그쪽 업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상규가 한마디 거들자 이야기가 쉬워질 것 같았다.
“네, 일단 산업은행과 협상을 해서 명인건설을 인수하는 겁니다. 아마 인수 금액은 500억 원대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다음에 그걸 해결해 주고 명인대 인수 건에 대해서…….”
“네, 산업은행 융자로 재단 이사회 기금 출연을 하고 이사장을 교체하는 겁니다. 물론 큰아버지가 나서셔야겠지요?”
“좋아! 그렇게 하는 게 낫겠다.”
진욱은 안건이 바로 통과되고 상규가 바로 추진하자 미소를 지으면서 앞으로에 대해서 교육부와 명인대 재단과 협상을 준비했다.
“일단 제가 양해 각서 준비하고, 한번 그쪽 사람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지금 전임 이사장이 배임 문제로 집행유예 상태라 어차피 현장 복귀도 불가능한 상태일 겁니다.”
“임시 이사 체제란 말이지. 하하, 뭐, 쉽게 갈 수 있겠구만.”
상규는 바로 진행하라고 진욱의 제안에 사인해 줬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재단의 부채로 인해 파산 위기에 몰린 명인대의 상황에, 아성금융그룹이 협상에 나섰습니다.]
[하상규 아성금융그룹 회장은 산업은행 산하로 법정 관리에 들어간 명인건설과도 인수 협상을 논의하고 있으며, 명인대 재단과도 양해 각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뉴스가 보도된 이후로 진욱은 명인대 재단과 직접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교육부 산하로 관선 이사에 들어온 강원식 대학 위기관리실장은 진욱과 이야기를 하면서 현 상황에 대해 말했다.
“하 본부장님도 아시겠지만, 현재 명인대는 서울 인문 캠퍼스의 확장이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고도 제한은 풀렸지만, 주변 상권과 땅값 문제였죠?”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명인대에 대한 발전안 자료를 내밀었다.
“이사회 전체에 보도할 내용이지만, 미리 이야기해 드리자면 일단 지하 캠퍼스를 만들 생각입니다.”
“아, 그건…….”
“네, 원래 추진했다가 모기업인 명인건설의 부도로 인해 백지화된 공사이죠. 하지만, 그래서 저희가 명인건설을 인수하고 재추진할 생각입니다.”
“흐으음, 네, 성사만 된다면 학교 내 사무실과 식당 등을 만들고 남은 건물을 다른 쪽으로 쓸 수도 있겠군요.”
“여기에 따른 투자 약속과 양해 각서를 준비하죠.”
양해 각서, 흔히 MOU라 불리는 계약은 엄밀히 말해 법적 구속력이 구두 계약보다도 약했다.
하지만 언론에 알리기에는 이것만큼 좋은 게 없어 사실상 ‘거피셜’이라고 불리는 제도이기도 했다.
진욱은 명인대 재단을 설득하고, 인수에 들어갈 수 있게 차근차근 걸어 나갔다.
그렇게 인수 합병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재단 이사회 기금 출연을 위해 새 이사장 후보로 큰아버지 상규가 직접 나섰다.
[이 자리에서! 명인대를 서울 북부권을 넘어 전국의! 나아가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만들 것을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재단 이사회에서 마이크로 연설을 쏟아부은 상규는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그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움직였다.
재단 인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 진욱은 그 모습을 보고서 이제 대학교 운영을 준비했다.
* * *
“명인대 투자?”
“네,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집안일인데, 단순 인수만 해서 학위 장사만 할 수는 없지요.”
“흐으음.”
진욱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주변 이곳저곳에 명인대에 대한 투자 요청을 했다.
“명인대가 그래도 건설 쪽에서는 유명하지 않습니까? 원래 모기업도 건설사였고, 공간 디자인이 특히 주력이고요.”
“뭐… 우리도 그쪽 임원분들이 계시긴 하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건설의 이름으로 공학관 건물 투자금 한번 부탁드립니다.”
규완은 그 이야기를 듣고 기획안을 보다가 이내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 줘야지! 매제 덕분에 우리 보험업계 순위도 오르고, 광주에 복합 쇼핑몰도 짓게 됐는데, 이 정도를 못 해 주겠어?”
“감사합니다, 형님!”
규완은 엄지를 올리면서 이런 건 일도 아니라면서 대화건설 대표이사에게 연락해서 명인대 공학 캠퍼스 쪽으로 투자를 고려해 보라고 알렸다.
그룹 후계자의 제안이니 전문 경영인들은 바로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명인대 재단과 대화건설이 얼마 안 있어 협상에 들어갔다.
이후 진욱은 다른 곳에 대해서도 전화를 돌렸다.
“그동안 못 봐서 매우 심심하셨죠?”
“그럴 리가? 덕분에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는데 말이야. 하하하!”
제일그룹 이용철.
한때 사료협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진욱과는 형제와 같이 지냈으나, 사촌 형인 성철 일파에 의해 물러난 이후로 이사회에서 사임하고 야인으로 지냈던 인물.
하지만 그가 개인 자본으로 아성사료에 투자하고, 쌍끌이로 폭발한 대박에 성철이 제일그룹 내에서 미디어 사업부로 넘어가고, 식품 사업부에 구원투수로 다시 복귀하게 됐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 봐. 형이 이제는 마음껏 도울 수 있거든?”
이 자리에 다시 복귀하는 데, 진욱의 제일사료 재협상이 있었고 거기의 담당자를 용철로 언급해 그간의 악연을 화해로 끝낸 결과였다.
“고맙습니다. 사실 오늘 형님에게 대규모 투자를 부탁드리려 왔거든요.”
“뭐든 말해 봐. 백억이고, 천억이고 부어 줄게.”
“하하하, 그 말 진짜입니까?”
“내가 너한테 언제 실없는 소리 한 적 있었냐?”
키득거리면서 와인 한 잔에 담배를 태우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용철을 향해 진욱은 조용히 서류를 내밀었다.
그것을 천천히 훑어보던 용철은 다 읽고서는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린 어디에 투자하면 되는데?”
“식품공학 쪽입니다.”
“오기 전부터 결정한 거구만, 킥!”
대화그룹을 통해 건축 대학에 대한 투자와 새로운 시설 설립에 대해 약속을 받았다.
이후 다른 대학에 건물에 대해서 다음에 요청한 것은 제일그룹이었고, 사료회사와 식품으로 인연이 닿았으니 그쪽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다.
“식품공학관 건물이라… 우리가 안암대에 법학관 건물 기증한 이후로 요새 그런 게 없긴 했지.”
용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구두로 합의했다.
“일단 회장님께 이야기해 볼게.”
“감사합니다, 형님.”
취업 특성화 학과를 만들고서 거기에 대한 패키지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기업의 투자를 받는다.
그것을 두고서 움직이는 것은 진욱이었고, 기존의 인맥은 상당한 도움이 됐다.
대화그룹과 제일그룹, 그 외에도 수많은 중견~대기업과 직접 만나면서 투자 약속을 받아 낸 진욱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준비했던 것도 추진하기로 했다.
“200억?”
“네, 할 수만 있다면 더 하고 싶지만, 일단은 시범 케이스로요.”
“흐으음. 형님이 학교 인수했는데, 어째 네가 다 만들어 나가는 것 같다?”
상만은 피식 웃으면서 아들 녀석이 이번에도 또 엄청난 건을 성공시켰다며 인정해 줬다.
“이원화 캠퍼스라 돈 되는 공학 관련 학부들은 전부 용인에 유치했지만, 저는 서울에서 하려고 합니다. 이게 공학은 아니니까요.”
“애완동물학과 말이지.”
“반려동물학부로 만들 셈입니다.”
진욱이 구상한 것은 반려동물 전문 인력 양성에 대한 학부 설립이었다.
동물 미용, 동물 조련, 사육사, 행동 교정에 대한 동물권에 관련된 인재를 양성할 곳이었고, 이들은 기존의 아성주파크와 국내외 동물원으로 충원될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도 역시 추진하는 데 문제없겠죠?”
“그래, 좋다.”
진욱은 미소를 지으면서 파견 기간동안에 파산 위기에 놓인 대학을 집안에서 인수하고, 수많은 대기업의 투자로 환골탈태를 한 다음 금의환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