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개 그림 회사를 조심하라
광주는 진욱의 폭탄선언으로 인해 여론이 완전히 뒤집힌 상황이었다.
시시각각 광주 일대 부동산 카페들과 커뮤니티에는 이번 ‘복합 쇼핑몰 및 공장 건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 대화랑 아성 확실하게 들어오는 것 맞나요?
- 북구에 쇼핑몰과 동물원 테마파크, 광산구 대화 2공장 증설 호재라고 하네요.
- ㅅㅂ. 그거 지금 시민 단체인지 하는 놈들이 막는다고 난리래요.
- 이거 이상 갈 호재 없을 겁니다. 우리도 서명 운동 해서 광주시청에 이야기해야 해요.
- 근데 이미 신누리나 로타가 포기했는데, 대화도 간 보다가 빠져나가는 거 아님?
- 그게 왜 빠졌는데? 이유는 알고 그런 말 하나?
사실상 지역에 대한 이권으로 인해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데, 진욱의 인터뷰 이후에는 찬성 쪽이 조금 더 많아졌다.
“결국은 여론전이에요.”
진욱이 노트북으로 실시간 반응을 보여 줄 때, 옆에 있던 규완은 ‘저런 걸로 되겠나?’ 싶었다.
인터넷 여론을 잘 믿지 않는지라 이런 건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욱이 실시간으로 보여 주는 인터넷 포털 뉴스에서 ‘복합 쇼핑몰 건설 반대’를 외치는 소상공인 연합 시민 단체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보고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었다.
“이대로 가면 다음 주쯤이면 부지 선정 가능할 것 같아요.”
“그 광주시장이라는 양반 말이야, 간을 너무 봐. 그냥 부지 하나만 골라 주면 우리가 알아서 타당성 조사까지 다 끝낼 텐데.”
“부지 결정하는 순간 현장에 삽 못 푸게 드러눕는 사람이 나올 테니까요.”
“뭐… 그것도 그렇네?”
그때 진욱과 규완을 향해 오철근 이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본부장님, 구청장 연락이 왔습니다.”
“네? 어디요?”
“광산구청장이 본부장님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줘 보세요.”
규완은 바로 전화를 받고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표정이 변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이번엔 진욱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여서 받은 순간 단아한 목소리의 여성이 물었다.
[여보세요, 아성의 하진욱 대표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광주 남구청입니다. 복합 쇼핑몰 문제로 인해 저희 구청장님이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합니다.]
진욱은 순간 규완이 광산구청, 자신이 남구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상황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소상공인들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대규모 유통사의 진출을 막겠다고 선언했던 이들이 하나둘씩 달려드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때 나왔던 광역 의원과 구청장, 구의원 사람들은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비서를 통해 남구청장의 전화를 받은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서 규완이 들어온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야, 매제야. 광산구청에서 북구 안 되면, 자기 쪽에 쇼핑몰 지어 달라는데?”
“저는 남구청에서 그 이야기 들었어요. 옛날 주파크 옮긴 부지 밀어 주겠대요.”
“하, 하하하!”
1주일 만에 손바닥이 뒤집힌 여론에 진욱은 본격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럼 쇼핑몰 부지에 대해서는 형님이 이제 정해 주세요. 저는 바로 광주광역시청하고 협상해서 동물원 인수 건 해결하고, 공장 부지만 알아보겠습니다.”
진욱은 자신이 끌어와서 대화유통이 호남에 대규모 유통단지를 만들게 한 것을 반쯤 성공시켰고, 나머지는 자기 사업을 위해서 움직이겠다고 규완에게 선언했다.
규완 역시도 다 잡은 고기를 이제 손질만 하면 되는 상황이니, 수고했다면서 그의 두 손을 잡고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임원들을 소집했다.
* * *
이후에는 진욱이 개인적으로 광주광역시청과 협상해서 빛고을주파크 인수 문제를 논했다.
원래 예정가는 800억 남짓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덤이 많으니 대폭 인하할 수 있었다.
“에이,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600억은 아니죠.”
“저희가 동물원 부채까지 인수해서 리모델링 공사까지 다 할 텐데 그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그래도 그 부지 생각하면 너무 헐값입니다?”
“공장 설립 세액 감면을 더 해 주실 수 있다면, 또 다르겠지만 말이죠.”
“으으음.”
박 시장은 자신의 아들뻘인 친구가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야무지게 협상하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사업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지만,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나아가야 했고, 그렇게 마라톤 회의가 계속됐다.
“저도 사돈댁이 이쪽이어서 많은 사업을 했습니다. 향후 전남대 생명공학과랑 같이 사료 수출의 1티어 광주권을 만드려고 하는데, 그 큰 그림에 동참해 주시죠.”
“하, 하하…….”
이제는 큰누나 집안인 사돈까지도 들먹이면서 인맥까지 이용하려고 할 때, 광주시장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1991년 설립된 시립 동물원 빛고을주파크가 민영화되어 아성사료그룹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아성사료그룹의 하진욱 대표이사는 박용태 시장과 같이 총금액 678억에 인수했으며, 향후 50억을 투자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개장 이후 30여 년 가까이 시설 노후화를 지적받았던 광주 전남 유일의 동물원은 이제 민간기업의 손에서 재탄생하게 될 것으로…….]
지역 언론에서 일제히 보도하고, 거기에 대해서 박 시장과 진욱이 활짝 웃으면서 양해 각서에 서로 사인하고 인수를 최종 확정 지었다.
“대표님,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시립 동물원을 민영화했는데, 앞으로 입장료 등의 요금제를 손 보실 생각입니까?”
“복합 쇼핑몰 유치로 인해서 입장료를 동결하신다고 했는데, 원안대로 가실 겁니까?”
이미 인터뷰를 통해서 말했는데도 그걸 일일이 물어보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진욱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말하지만, 달라질 건 시설 빼고 없을 겁니다. 사회적 가치를 위해서 저희는 광주에 문화 시설을 계속 발전시킬 겁니다.”
부산 때와 마찬가지로 시립 공원 시설에 대한 위탁을 맡으면서 광주에도 똑같은 말을 해 줬고, 아예 5년간 입장료 동결을 유통 업체 유치를 위한 조건부로 약속했다.
이후 진욱은 자신이 인수한 광주의 동물원을 둘러보면서 대화건설 사람들에게 리모델링에 대해 전적으로 맡겼다.
“부산 팀 사람들도 조만간 올 테니까 잘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해외에 있는 유명 동물원만큼이나 뛰어난 디자인으로 광주의 랜드마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레저, 테마파크 사업으로는 이제 경험치가 쌓일 대로 쌓인 대화건설 팀이었고, 이번 건 역시도 금액은 소액이었지만 돈보다도 중요한 게 있었다.
도시 정비 사업.
재개발, 재건축에 대한 공사가 씨가 마른 지금의 건설 경기에서 기존의 건물이나 국가 시설, 시립 공원 등의 도시 미관을 위한 리모델링이 또 다른 블루오션이 된 것이다.
적게는 동네 하천과 공원 정비, 크게는 전봇대 해체와 전선 지하 매립 등의 공사까지 기업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 했다.
진욱은 빛고을주파크의 공사 건에 대해서 대화에 맡긴 다음에, 유통 업체 부지 선정을 기다리는 규완과 인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 * *
“광주에 축산사료 공장을 설립하고, 동물원 인수하고… 무지하게 썼구만.”
“대표이사 직권으로 진행한 겁니다. 둘 다 그룹 매출 증대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겁니다.”
아성사료 상록 본사에 도착한 진욱은 이번 건에 대해 아버지의 결재 사인을 받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암튼 고생했어. 안 그래도 축산사료는 계속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럴 때 공급 늘리는 것도 괜찮지.”
사료 시장이 요새 시들하다고는 해도,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의 이슈가 빠진 뒤로 수출 쪽에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다.
“천년만년 내수 시장만 먹을 것도 아니고, 이럴 때 박리다매로 배합사료 수출 규모를 늘려야 합니다.”
“안 그래도 사돈 회사하고, 그 부산에 거기… 중안무역인가? 거기서 미국과 호주 쪽에 사료 수출 루트 뚫고 있다.”
조만간 배합사료에서 농협사료를 넘어설 수준으로 올라선 성장세.
거기에 맞춰서 앞으로는 수출이 앞으로의 회사 규모를 높이는 데에 가장 중요할 것이다.
“온 김에 다른 사업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해 보자. 그 이천 양어장은 어떻게 됐어?”
“내년부터 관상어 시장 분양에 들어갑니다. 일단 가장 수요가 많은 게 중국 시장입니다.”
“흐음, 그쪽도 확실히 잘돼야 할 텐데 말이야.”
진욱이 추진하는 관상어 사업은 이미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특정 무늬가 있는 비단잉어들을 사육해 내고 있었다.
“내년부터는 국제 관상어 박람회도 참가할 생각입니다.”
“그런 것도 있어?”
“돈 되는 시장 엑스포는 어디나 있는 법이죠.”
진욱은 아버지에게 다음 사업에 대해서도 잘되고 있으니 결재 사인만 해 주면 된다며 여유를 보였다.
상만이야 그저 사장을 앉히고서 마음껏 회사가 성장하는 것만 보면 되니 그저 흡족했다.
“그런데 말이야. 너 이번 건 끝나고 큰집 파견 어떻게 됐어?”
“그래서 이따가 큰집에 찾아봬야 할 것 같아요.”
“같이 가자. 온 김에 형님한테 인사 좀 드리지, 뭐.”
“그럼 제가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래.”
그렇게 저녁에는 큰집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도와 달라는 사업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했다.
* * *
“다들 잘 왔어. 얼굴 보기가 많이 힘들구만.”
여전히 건장한 체격에 흰머리가 좀 늘어난 상규는 집에 온 진욱과 상만 부자를 위해 차를 내줬다.
“진성이는 베트남 가서 잘하고 있대요?”
“몰라~ 그놈의 자식은 뭘 그렇게 현장을 보고 싶다고 하는지 말이야.”
그 베트남 출장 업무도 아성산업개발의 공사 현장에서 아성사료 공장을 짓고 있는 현장 감독이었다.
“그놈 안 한다고 한 것, 내가 그냥 하라고 했더니만 낼름 베트남으로 날랐잖아?”
“뭐,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진성이 형 몫까지 잘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해 주면 내가 바랄 게 없지.”
상규는 껄껄 웃으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 이번에 교육 사업 좀 해 보려고 한다.”
“네?”
“아니, 형님. 무슨 사업이요? 교육?”
여기저기 손 벌리면서 계열사를 늘려 나가고 이제는 문어발식 재벌로 인정받은 범 아성가.
건설과 금융을 두고서 이번에는 교육 사업을 한다는 큰아버지의 말에 진욱도, 상만도 눈이 커졌다.
‘이거 어째… 내가 학교 설립하는 것에도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진욱이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려 나갔다.
교육 사업이라면 분명 큰아버지가 사립 학교 설립이나 인수를 생각하는 것일 테고, 기업 회장에 이어 학교법인 설립해서 이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사회적 명망을 높이는 것일 테다.
대기업까지 키운 옛날 부자들은 언제나 그랬다.
자신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쌓은 재산을 가지고 마지막에는 사회 환원이자 명성이라 생각하고서 학교 재단을 맡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나 학교법인 하나 만드려고 하는데 진욱이 네가 할 수 있겠냐?”
“…하, 하하.”
“왜? 보험 일에 양어장에, 테마파크에 이것저것 다 하는데 그건 힘들어?”
진욱은 그것을 듣고서 이미 시나리오를 돌리고 있었다.
‘교육부하고 이야기도 해야 하고, 정부 재정 지원 학교 리스트도 알아봐야 하고, 새 피를 수혈할 대학 재단 이사회가 있는지 찾아야 하고…….’
진욱은 하나하나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 보겠습니다.”
종가와 분가를 넘어서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진욱이 앞장서서 개척하는 선봉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