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그 어려운 걸 제가 해냅니다
진욱은 천천히 기다리면서 광주에서 내려온 대화그룹 팀을 맞이했다.
규완을 중심으로 대화건설과 대화유통의 사람들이 다가와 진욱에게 인사했다.
“대화유통 영업부 오철근 이사입니다.”
“아, 네. 하진욱입니다.”
“대화건설의 김민욱이라고 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다들 왔으니 회의부터 시작할까? 매제는 준비 잘해 놨지?”
여독을 풀기도 전에 바로 회의를 시작하자는 규완의 제안에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호텔 안에 있는 회의실을 대절했다.
그리고 빔프로젝터를 띄우고서 진욱이 직접 만든 PPT를 보였다.
[먼저 광주 북구 우치동에 있는 빛고을주파크입니다. 시립 동물원이지만, 열악한 시설과 만성 적자로 인해 민간 위탁 경영으로 매각을 추진했는데, 저희가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동물원 사업은 부산 때와 마찬가지로 대화건설이 전면적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었으니 담당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지난번처럼 콘크리트 다 들어내고 잔디 깔고, 사육장을 좀 늘리면 되는 거겠지?’
‘어이구~ 사진 보니까 대공사 되겠구만, 저기는 부산보다 더 좁네?’
진욱이 직접 찍은 광주 주파크의 동물원 사진을 보고서 바로 견적을 내고 있는 건설사 임원들.
그리고 대화유통의 임원들 역시도 대형 쇼핑몰 사업에 대해서 집중했다.
[다음으로 복합 쇼핑몰과 공장 유치입니다.]
진욱이 원격 마우스를 클릭하자 나오는 부지는 광주 광산구 일대의 빛고을산업공단이었다.
[첨단 산업 유치를 위해 만들어진 공장 부지이고, 현재는 전기차와 가전제품 부품 생산을 위한 제1 공단이 완공되고, 이후 2공단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2공단의 경우 광주 전남 일대와 대기업 산하의 식품 가공 공장이 입주하는 곳이 대다수였다.
[먼저 아성사료는 광산구 빛고을 2공단에 총 2천억 규모의 공장을 지을 것이며, 이후 상공회의소를 통해서 제가 직접 움직여 다른 기업에 대한 유치를 준비할 겁니다.]
진욱의 발표에 규완은 양옆에 있는 대화 임원을 향해 속삭였다.
“우리도 뭐 하나 준비해야 하나요?”
“본부장님, 지금 광산구에 있는 대화케미칼 확장 공사가 논의되고 있는데, 그것과 같이 연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맞아. 그게 있었죠?”
협소한 규모지만, 나름 광주 공단에 발을 걸치고 있는 대화그룹이어서, 내친김에 그걸 확장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대가는 대형 복합 쇼핑몰에 대한 유치가 확정되고 삽을 푸는 순간부터였다.
진욱은 계속해서 광주 투자에 대한 PPT를 이어 갔고, 규완을 포함한 임원들이 모든 것을 본 뒤로 박수를 쳤다.
“고생했네. 역시 하 대표가 이런 건 잘해.”
“감사합니다.”
규완은 불을 켠 다음 본격적인 회의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회장님하고 이야기를 나눴어. 이 건으로 말이지.”
“어떤 이야기가 나왔습니까?”
“해 보라고 하시더군. 코스코와 신누리가 노리다가 실패한 건데, 우리는 그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하시면서 말이야.”
김 회장 역시도 복합 쇼핑몰 사업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지 실패했던 두 케이스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향후 광주시와의 부지 논의 그리고 추가 공장 증설에 관련된 안건 등등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밤새도록 토론했다.
* * *
다음 날 광주광역시청에서는 박 시장과 대화그룹 임원들 간의 만남이 있었다.
“아이고, 하 사장님과 이야기 끝나자마자 바로 대화그룹에서 올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허-.”
대형 유통 업체를 자신이 끌어오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진욱이었는데, 정말로 며칠 안 돼서 사돈인 대화그룹의 후계자를 데려왔다.
“김 본부장님은 전에 한 번 뵌 적이 있었죠?”
“네, 그렇습니다. 광산 공단의 대화케미칼 완공식 때 뵀었네요. 그때는 시의회 의장 아니셨습니까?”
“하하하,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편안한 대화를 하면서 대화라면 이미 광주에 진출한 건도 있으니, 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일단 대형 유통단지 부지는 어느 쪽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흐으음, 그게… 지금은 북구 아니면 광산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요를 생각하면, 도시 철도가 있는 곳이 낫겠지요?”
“아니면, 도로 상황을 생각해서 외곽에 놔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어차피 도심 한가운데 짓는다 하더라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을 거기 때문에, 짓는 게 중요하지 부지 위치는 그렇게까지 신경 안 쓴다는 규완이었다.
옛날 같으면 접근성 문제를 가지고 유통 업계들이 곤두서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차를 타고서 주말마다 이용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규완과 박 시장은 부지에 대해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규모는 연면적 10만 제곱미터 이내에 영업 면적 6만 제곱미터대로 합의를 보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신누리가 들어오려다가 광주를 포기하고 대전으로 가 얻은 부지가 연면적 12만 제곱미터에 영업 면적 6만 8천 제곱미터였다.
“일단은 광산구와 북구 주변으로 생각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발표할 생각입니다.”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겠군요.”
기습적으로 발표하는 상황이니, 아마 지역 경제를 위시한 소상공인들을 이용해 시민 단체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호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특히 시민 단체와 정치색이 강한 지역구 정치인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었다.
진욱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일단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 있는데 말입니다.”
“음? 무슨 방법이죠?”
“그러게, 한번 말해 줄 수 있나?”
규완과 박 시장이 모두 눈을 반짝이면서 진욱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진욱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것에 대해 말했다.
“……!”
“흐으음~.”
“일단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먹히긴 할 겁니다.”
진욱의 말에 규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직접 발표를 준비하기로 했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광주 전남 지역은 국내 제3 위의 1인당 경제 소득, 가구당 총 소득은 수도권과 울산, 세종에 이은 4위권의 시장입니다. 하지만, 그에 걸맞지 않는 대형 쇼핑몰의 부재가 심한데요?]
[이런 가운데, 대화유통이 지난날 취소됐던 광주 복합 쇼핑몰 유치를 위해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쇼핑몰 뿐만 아니라, 화학 공단과 유통 물류 센터 등의 1조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광주 컨벤션 센터에서 발표된 대화-아성의 컨소시엄이 지역 방송국을 넘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한국 코스코와 신누리 광주, 그 외의 많은 기업이 실패했던 호남권 복합 쇼핑몰이 이번에 통과될지는 유통 업계들이 대화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는 반응입니다.]
일단 보도는 됐다.
하지만 유통 업체라는 큰 떡밥을 던져 놓은 뒤로 시장조사에만 들어갔다고 나올 뿐, 본격적으로 어느 지역에 유치한다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한 뒤로 정치권 반응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이범영(다함께민주당 대표): 이제는 호남이 소외되지 않기 위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복합 쇼핑몰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전 대표와 달리, 현 여당 대표는 일단은 긍정하는 분위기, 게다가 그의 지역구 역시도 광주와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는 전남권인지라 호남 지지자들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 먹히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의 의견은 있었다.
‘대형 쇼핑몰은 소상공인들을 말려 죽이는 행위이다.’
‘대형 마트 규제에 이어, 쇼핑몰도 규제해야 한다. 지역 상권이 몰락하고, 대기업이 자금을 빨아들여 서울로 다 보낼 거다.’
역시나 이런 반응이었다.
진욱은 실시간으로 포털 뉴스를 확인하고, SNS에서도 반응을 살폈다.
- 소상공인은 ㅈㄹ! 틀딱들이 또 어깃장 놓네?
- 20대 광린이임. 이번에도 쇼핑몰 안 되면, 그냥 탈광주 한다.
- 응, 들어올 일 없어. 감히 갓민 단체들이 찬성해 줄 것 같냐?
- 애초에 대화가 왜 들어왘ㅋㅋ 신누리도 손절한 게 광주인데.
젊은 층은 어느 정도 들어오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어도, 중노년층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 상황에서 진욱은 아성사료와 대화그룹의 컨소시엄을 만들고 복합 쇼핑몰에 대해서 자신이 직접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나섰다.
[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모닝 광주 시작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복합 쇼핑몰 유치로 시끌시끌한 대화-아성 컨소시엄의 아성사료 하진욱 대표이사를 모셨습니다.]
지역 KBC 방송국에서 아나운서가 진욱을 소개하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네, 최근 복합 쇼핑몰 문제에 대해서 광주시민들 사이에서 찬반이 시끌시끌한데요. 담당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네, 우선은 그동안 호남 일대에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형 쇼핑몰이 없어서 시민들의 구매욕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진욱은 하나부터 끝까지 조리 있게 대답했다.
복합 쇼핑몰의 필요성 그리고 거기에 따른 재원 마련, 대기업의 투자 등에 대해서 상생을 위한 많은 것을 발표했다. 아나운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욱에게 계속 질문 공세를 했다.
“하지만, 아직 부지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광주광역시청 앞에서는 소상공인 연합이 쇼핑몰 유치 반대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네, 일단은 그쪽과의 상생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말인가요?”
“일단 복합 쇼핑몰에 입점할 수 있는 소상공인들을 모집할 겁니다. 또한 백화점에 이어 문화 공간 시설을 만들면서 지역민들 직원 우선 채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겁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필요한 게 있을 텐데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법인 현지화입니다.”
“네?”
“과거 광주 신누리가 지역 법인으로 설립하여, 광주 내의 향토 기업으로 성장할 겁니다.”
현지 법인으로 설립할 것이며, 소상공인 매장에 대한 지원과, 현지 직원 채용.
여기까지는 이전에 실패했던 기업들도 모두 제안했으나 그래도 물을 먹은 것이 복합 쇼핑몰이었다.
하지만, 진욱은 거기에 대해서도 답을 내놨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단순히 쇼핑몰 유통 업체 하나 가지고 이렇게 발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어떤 사업이 또 있을까요?”
“복합 쇼핑몰 설립 이후, 우리 아성사료그룹이 광주의 빛고을주파크를 인수하여 문화 시설 리모델링에도 들어갑니다.”
“동물원 인수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광주광역시와 협상을 했고, 요금은 똑같이 천 원으로 끝낼 겁니다.”
동물원 위탁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다음으로 진짜 폭탄을 떨어트렸다.
“다음으로 광산 빛고을공단에 아성사료 공장을 설립할 생각입니다. 향후 호남을 중심으로 사료 수출을 통해 지역 경제 성장을 도울 것이며, 대화그룹 역시도 화학 공장의 규모를 2배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하, 하하… 쇼핑몰 하나가 아니라 공장 일자리 확충과 문화 시설의 인수까지… 많은 것을 준비해 주셨군요.”
“네, 맞습니다. 부디 광주광역시 시민분들께서는 미래를 위해서 이번 복합 쇼핑몰 건설에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종합 선물 세트로 준비해서 지역 경제를 생각하면 거절하는 쪽이 바보인 폭탄을 놓았다.
그리고 여기에 결정타를 박아 넣은 것이 하나 있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만약 그 상황에서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쇼핑몰 사업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런 경우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진욱은 피식 웃으면서 그걸 터트렸다.
“최근 전라북도에서도 비슷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전주시와 전북도청에서 복합 문화 센터와 산업 공단 그리고 대형 쇼핑몰에 대한 규제를 풀고서 협상을 하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 광주가 안 되면 윗동네 전주로 가겠다는 말을 생방송에서 한 것이다.
그것도 같은 여당의 사람들이고, 같은 전라도다.
뉴스를 틀어 놓고 보고 있던 중장년층의 시민들은 그것을 본 순간 바로 이건 찬성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길길이 날뛰었다.
시민 단체가 광주시청 앞에서 시위를 해도 하나둘씩 그 수가 사라지고 있었고, 역으로 쇼핑몰 유치 반대를 하는 단체들이 현지인들에게 걸쭉한 쌍욕을 먹으면서 여론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