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40화 (140/200)

140화 어디서 장난질이야?

진욱은 지금의 이 상황을 두고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삶을 한 번 더 받고서 옛날에 끊은 담배가 갑자기 당기는 날이었다.

“대표님, 이걸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조 팀장이 걱정스럽게 물었을 때, 진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국이 중국 한 거죠. 치사하게, 부스전 자리 바꿔치기를 다 한다니.”

국제박람회를 앞두고서 이런 양아치 짓을 하는 건 진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과거 1960~70년대에는 이런 박람회에서 미국이나 유럽 회사들이 일부러 아시아계 기업들을 따돌릴 셈으로 은근슬쩍 좋은 자리를 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곤 들었다.

그런데 2010년 후반대에 이런 짓을 하니, 진욱은 홍콩 애견국제박람회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혀를 찼다.

“어떻게, 그러면 저희가 계속 진행해야겠습니까?”

“별수 없죠.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좀 있습니다. 아쉽지만, 지금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 봐야겠어요.”

“후우, 네. 일단 수습을 준비하겠습니다.”

조 팀장은 바로 본사와 협회를 통해 전화를 돌리고, 일단 부스 자리가 바뀌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머리를 부여잡는 진욱을 향해 전화가 왔다.

국제전화인데, 중안무역 박 사장이었다.

“여보세요?”

[아, 대표님. 홍콩에 계신 걸로 아는데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네, 하세요.”

박 사장은 진욱을 향해 자신이 알아 온 정보에 대해 말해 줬다.

[혹시 지금 중국 상황 알고 계십니까?]

“글쎄요. 중국 업체들에게 된통 당한 것만 나오는데요.”

[지금 그쪽에서 내부 정보를 하나 알아 왔는데, 알려 드리겠습니다.]

진욱은 내부 정보라는 말에 전직 ‘원’ 출신의 상사맨들이 뭘 알아 왔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진욱의 눈이 점점 커지다가 이내 가늘어졌다.

“사실입니까?”

[네, 아마 지금 그것 때문에 원자잿값이 폭등할 겁니다.]

“좋은 정보군요. 알겠습니다, 잘 이용할 수 있겠네요.”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서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지금 바이룽의 제품 리스트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볼까?”

진욱은 실시간으로 한번 스마트폰 검색을 해 봤다.

* * *

홍콩에서 급히 귀국한 진욱은 협회 회의를 주최하고서, 아버지를 통해 박람회에 대한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번 제품에 대해서 리스트를 준비했습니다. 모두 확인해 주세요.”

박람회 건으로 신제품들을 만들고 있던 협회 회원사들은 진욱이 준 리스트를 확인하고는 눈이 점점 커졌다.

웅성거림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보며 옆자리의 리스트를 확인했고, 진욱은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을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이건……?”

상만이 아닌 진욱을 향해서 시선이 집중됐다.

이것은 진욱이 넘긴 자료들이었으니, 이에 대해서는 그에게 묻는 것이 더 빠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네, 무슨 이야기 하실지 잘 압니다. 하지만, 일단은 이대로 나가 주세요.”

“대표님, 돼지류 없이 수출을 한다니요?”

“그 뭐냐… 이슬람의 그런 건가요?”

돼지고기류 사료 배제.

진욱이 내건 것이었고, 그로 인해서 등뼈나 껍데기 등으로 준비했던 습식사료캔과 수제간식을 만들던 업체는 날벼락이었다.

“대표님, 갑작스럽게 돼지고기류 사료를 전부 배제한 이유가 뭡니까?”

“맞습니다. 중국이 무슨 아랍입니까?”

하나둘씩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를 했을 때, 진욱은 헛기침을 하면서 아직은 말하지 못할 상황에 대해 말했다.

“현재 돼지고기류 관련 사료는 모두 국내에서 판매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협회의 이름, KPF로 판매할 것이며, 수익은 똑같이 배분할 것입니다.”

일단 지금까지 만든 건 모두 내수 시장으로 소화해 낸다는 말에 일단은 넘어갔지만, 그래도 의문이 드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꼭 들어 보고 싶네요.”

아성 다음으로 협회 내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고메 코리아의 샤를로트 대표.

진욱은 그녀를 보고서는 ‘장은 말할 수 없는 이유’를 두고서 적당히 둘러댄 자료를 건넸다.

“현재 돼지고깃값이 엄청나게 폭등하는 정황이 보이고 있습니다.”

“원자재 문제야, 뭐……. 요새 조금 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출 자체를 자제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일단은 기존 제품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소화하고, 추후 알아볼 겁니다. 지금 여러 무역 업체를 통해서 돼지류에 대한 수입이 안정되면 그때 다시 수출할 겁니다.”

일단은 원자재 가격에 대한 이유를 댔고, 그 외에 수제간식은 채소류와 닭, 오리, 생선류를 통해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 협회와 중소기업벤처부가 협력해서 중소유통센터에 우선 납품이 되었습니다.”

진욱의 말에 그래도 하나 큰 건이 잡혔다면서 안도하는 협회 회원들.

그렇게 대외적으로 아직 부스 자리를 바꾼 중국 업체들의 횡포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든 돌린 다음에 회의를 마쳤다.

협회 내에서 회의가 끝났을 때, 남아 있는 이는 샤를로트 이사와 마스터 푸드의 신입 임원 래리 장뿐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말이죠.”

샤를로트와 래리 장 모두 남은 이유는 하나였다.

다른 영세 업체들과 다르게, 이쪽은 산전수전 다 겪은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었다.

단순히 둘러댄 것만으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고, 진짜 이유가 뭔지를 알고 싶어 남았다.

“원자재 문제라고 말씀드렸는데, 또 듣고 싶은 게 있을까요?”

“아주 많죠. 특히 이번 국제박람회에서 갑자기 부스 위치가 바뀐 것부터요.”

진욱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천천히 풀어 놨다.

협회장인 상만이 떠난 뒤로, 진욱을 콕 집어서 진상을 듣게 된 두 업체는 단독으로 부스를 내면서도 협회를 스폰 하는 입장이라 마케팅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업체들 등쌀에 홍콩에까지 불똥이 튀게 됐어요.”

“그건 정말이지… 도를 넘었군요. 국제박람회의 위상을 떨어트리는 짓입니다.”

샤를로트도, 래리 장도 선진국 국제박람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식 이하의 행동에 혀를 찼다.

“안 그래도 중국 업체의 수제간식과 사료에 대한 레시피 표절 문제가 심해서 문제입니다.”

“중국 내에서는 표절에 대한 소송을 걸어도 정부가 자국 기업 편이기 때문에 승소도 힘들고 말이죠.”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면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시장이기에 매몰 비용이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파고드는 시장이 중국이었다.

“어쨌건 그 문제는 그렇다 치고… 그럼 이제 제대로 말씀해 주시죠. 돼지고기류 사료 제외의 이유는 뭔가요?”

“혹시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습니까?”

진욱은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들에게는 말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건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딱 한 번만 알려 드릴 테니, 그렇게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네, 좋습니다.”

진욱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노트를 펼치고 만년필을 꺼내서 박 사장에게 듣고, 자신이 조사해서 확신한 그 정보를 공개했다.

필담으로 쓴 내용에 대해 두 회사 임원들의 눈이 점점 커다래졌고, 고메, 샤를로트 이사의 경우 더욱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 사실입니까?”

“네, 그렇다는군요.”

“일 났네. 동남아 공장에서 수입한 돼지 잡육만 해도 얼마인데…….”

이 건에 대해서는 바로 본사에 연락해야 할 것 같았고, 긴급회의를 주최할 수도 있었다.

그 상황에 대해서 진욱은 담담하게 말한 다음에 보안에 대해서 말하고 중국 업체들의 개발 리스트를 보였다.

“이번 부스 바꿔치기의 배후로 보이는 바이룽의 리스트입니다.”

“확실히… 중국 업체들은 돼지고기가 많군요.”

중국에서 돼지의 존재는 고기 육(肉)이라는 한자에도 나오듯이 실생활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식품이었다.

그래서 돼지뼈와 껍데기, 머리 고기나 꼬리 등의 부위로 만든 사료와 간식 등이 특히 인기였고, 자국 시장을 위해 만든 제품은 그 리스트 양만 해도 엄청났다.

그렇게 홍콩 반려동물 국제박람회를 두고서 각자의 리스트를 두고 진욱은 마지막까지 발로 뛰면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 * *

[홍콩 국제애견박람회]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수많은 업체가 모인 사흘간의 박람회가 드디어 열렸다.

A관 면적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바이룽은 특유의 백룡 모양의 로고를 자랑하면서 강아지들을 향한 즉석 간식 시식의 자리를 가졌다.

“이것으로 계약하지요.”

“谢谢你(감사합니다). 박람회 이후 바로 납품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대히트를 쳤던 돼지 껍데기 튀김 간식을 적당히 베껴서 만든 수제간식과 습식 캔 등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려난 아성과 KPF는… 파리만 안 날릴 정도로 드문드문 왔다.

“돈육 제품은… 없군요?”

“저희는 다른 제품군이 다양하게 있습니다. 특히 이 오리 목뼈 간식은…….”

진욱이 직접 제품에 대해 하나하나 소개했고, 몇몇이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사흘 동안 준비한 것에 비해 썩 재미를 못 본 KPF의 제품 소개였다.

그렇게 사흘간의 일정이 끝이 나고, 나온 결과는 참담했다.

“완~ 전 적자구만.”

상만은 매출 결산서를 보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동안 중소벤처부와 농림축산부의 지원이다, 지자체의 지원이다, 보조 받은 것이 잔뜩이었는데 결과가 너무나도 참담했다.

진욱 역시도 지표를 보고는 혀를 찼지만,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조용히 말했다.

“일단 이번 달까지만 기다려 보죠. 그러면 결과가 뒤집힐 겁니다.”

“정말 자신 있어?”

“네, 지금 상황 보면 뒤집을 수 있는 한 방이 나올 겁니다.”

“쯧, 뭐, 지금이나 한 달이나 기다리는 건 똑같지. 그럼 이 브랜드로 국내 유통부터 해결하자고.”

진욱은 아버지의 말에 바로 따랐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 한 달 만에 말도 안 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다음 소식입니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몽골과 중국을 넘어 북한의 야생 멧돼지에게까지 감염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중국이 수입한 24만 톤의 돼지고기에서 발견된 아프리카 돼지 열병 바이러스로 인해 중국 당국은 긴급 방역에 들어갔으며…….]

아프리카 돼지 열병.

야생 멧돼지에서부터 시작해, 돼지류의 동물들에게 생기는 유행성 출혈열 질병이었다.

돼지과 외에는 종간 감염이 거의 없어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으로 인한 공급 부족이었다.

[지난달 대비 돼지고깃값이 47%로 폭등했으며, 이대로 가면 전에 없던 돼지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한편 우리 정부 역시 방역을 철저히 준비하고, 해외여행 시 타국 제품인 햄, 육포, 소시지 등의 돼지고기 식품에 대한 국내 반입을 엄격히 제한할 것이며…….]

중국 업체들은 때 아닌 돼지 열병으로 폭탄을 맞게 되었다.

당장, 중국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돼지고기 대란으로, 사람이 먹을 것도 부족한데 그걸 말리고 갈아서 특식으로 만든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돼지고기 관련 식품을 일체 내놓지 않았던, 아성과 KPF는 때 아닌 반사이익을 제대로 누렸다.

“네, 맞습니다. 오리 뼈와 닭 뼈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다른 제품으로는 연어와 단호박, 고구마 등이 있습니다.”

“1천만 불 계약이요? 네, 바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인천항을 통해서 바로 상해에서 받을 수 있게 배를 알아보겠습니다.”

다급해진 중국의 펫푸드 유통업계는 타 지역에 있는 제품들을 긴급 수입 하기 시작했으며, 바이룽은 온갖 치사한 짓을 다 해 놓고, 정작 원자재 부족으로 신제품 라인을 반의반도 사용하지 못했다.

박람회는 실패였지만, 돼지 열병 이슈로 한 방에 뒤집어 버린 아성사료와 KPF의 완벽한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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