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만능사료 한번 해보자
4분기가 되어서 펫푸드 업계는 확실하게 그 차이가 벌어졌다.
[지난날, 이물질 혼입 논란이 있었던 아성펫푸드는 다양한 신제품 출시와 이벤트를 통해서 다시 점유율 50%대에 재진입했습니다. 한편 2위 21.7%의 고메 코리아와 점유율이 10%대까지 추락한 바이룽 식품이 그 뒤를 이었으며…….]
초반에 기세 좋게 치고 올라왔던 바이룽은 그 천하가 겨우 6개월 만에 끝나면서 소비자 인식 역시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메의 경우 동맹을 통한 지분 거래 이후로 그 이상으로 올라가기는 힘들다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고급화 경영을 유지하면서 점유율보다는 매출 대비 수익 위주의 방침으로 2인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로 했다.
TV 뉴스를 통해 자신의 회사가 계속 언급되는 것을 흐뭇하게 보던 진욱은, 기사가 끝나자 그것을 회사 단톡방 여기저기에 들르면서, 무수히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왕좌를 굳건히 지켰으니, 이제 그 다음으로 나가야 할 길을 찾기로 했다.
바야흐로 다시 개발의 시간이 온 것이었다.
* * *
진욱은 충남 홍성에 도착했다.
“부사장님, 이곳이 사료 식품 제2연구소입니다.”
“흐으음, 네. 기대했던 것보다 잘 만들어졌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후줄근한 조립식 건물의 형상이었으나,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사료 생산을 위한 핵심 장비들이 가득했다.
사료용 오븐, 동결건조기, 배합기, 펠렛 머신 등이 가득했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원들과 충남대 식품연구소에서 파견 나온 연구원들의 제작 공방도 만족스러웠다.
“현재는 건식 사료와 습식 사료 모두 제조하는 공방이 갖춰졌습니다. 그리고 원자재 역시도 충남도청에서 제공하는 지역 브랜드 농축산물로 채우고 있습니다.”
“흐음, 네~ 여기서 진짜 뭐 하나 히트 상품이 나와야 할 텐데 말이죠.”
진욱은 공장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오늘을 위해 찾아온 충남도청 공무원들과 도의회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복합사료공장에 대해 간담회를 시작했다.
지역에 들러서 높으신 분들 만나고, 공장 기계들 한 번씩 점검하고, 얼굴도장 찍으면서, 실시간으로 주식 상황 체크하고, 예산 편성 배분 역시도 맡았다.
일당백의 업무 처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진욱은 이 기회에 그 일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 * *
“안녕하십니까? 유리투자증권의 김영선 부장입니다.”
“하진욱입니다.”
유리투자증권은 이번 아성펫푸드 IPO(기업공개)를 위해 자문으로 김영선을 보냈고, 진욱은 그와 같이 내년 코스닥 상장 준비를 위해 움직였다.
“흐으음, 처음에는 중기청 산하의 벤처기업청에서 지원을 해 줬지만, 이제부터는 진짜 상장이란 말이죠.”
“네, 그때와는 많이 다를겁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요.”
일단 소액주주 500명 이상에, 자기자본 500억 이상, 그리고 일반 기업 법인 설립 이후 3년의 시간이 필요한데, 아성펫푸드는 이미 모든 조건이 다 갖춰진 상황이었다.
“이번에 그 벌레 이슈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상장했을 텐데 분기 매출 한 번 박살 나고 오히려 더 철저히 준비를 했습니다.”
“네~ 좋습니다. 저희가 앞으로 재무제표 조사를 하고 상장 요건을 맞춘다면 기업 공개를 위해 예비 심사에 들어갈 겁니다.”
“좋습니다.”
진욱은 유리투자의 담당자와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눈 후, 그 뒤로 아성펫푸드 강남 사옥에는 많은 금융인이 계속 오갔다.
신제품 개발.
유통시장 확대.
사내현금 저축 및 상장 기업 심사 준비.
최종적으로 주가 상장 이후 주식회사 전환.
모든 것이 탄탄대로로 진행되고 있을 때, 그것을 그냥 바라보고 있을 경쟁사들이 아니었다.
* * *
진욱은 최근 경쟁사들이 출시한 신제품들을 모두 가져오게 했다.
“이것은…….”
“바이룽에서 만든 ‘주바’입니다. 단백질 바 형식으로 만든 제품이며, 훈연 처리 이후에 소세지와 같은 부드러움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흐으음, 그리고 이건 튜브형 스틱이군요.”
“마스터 푸드에서 만든 제품입니다. 일본의 마쓰모토의 츄르펫 포장 방식과 같이 썼는데, 강아지용으로 만든 것이 굉장한 인기라고 합니다.”
“고양이용 튜브 말고도 이렇게도 나온단 말이죠?”
다양한 제품들이 가득했고, 하나같이 아성펫푸드가 파고 들 만한 영역이지만, 그러면서도 진욱의 고민이 깊어 갔다.
“진짜 돼지머리부터 꼬리까지 안 쓰는 게 없군요.”
“타조, 말, 소, 닭, 오리 등의 다른 동물들의 베이스도 한가득입니다.”
이정열의 말을 들은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곳에 있는 자신들의 초히트작 지브라 스틱을 집었다.
“얼룩말 때처럼 진짜 생각지도 못한 신의 한 수는 이제 힘드려나?”
남들이 개발하지 않았던 제품.
그러면서 확실하게 점유율을 늘리고 매출 핵심이 될 캐쉬카우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부사장님, 저도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 표 이사님. 말씀하세요.”
표 팀장은 타사의 경쟁작들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진욱에게 말했다.
“부사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신제품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지나치게 새로운 소재에 대해 연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
“얼룩말 사료와 같은 케이스가 있지만, 그 뒤로 색다른 육류에 대해서는 수입 문제도 있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개발 기간이 늘어날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아까 부사장님이 말하신 대로 축산물에 대한 다양한 소재로 만들지만, 저희 역시도 그냥 구하기 쉬운 고기로 개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소재 베이스의 제품은 상장 이후에 개발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흐으음…….”
진욱은 그 말에 생각에 잠겼고, 이 전무나 김 팀장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다는 식의 동의 의사를 표했다.
참모들이 그렇게 조언하는데, 그걸 두고서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합시다.’라고 밀어붙일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좋습니다. 특수한 고기 그런 거 말고, 기존의 베이스로 한번 개발을 해 봅시다.”
“네, 부사장님.”
임원들은 진욱의 결정에 반색하며, 차라리 이러면 일이 쉬워진다고 생각했다.
* * *
그날 저녁.
진욱은 퇴근 이후에 갑자기 세화의 요청에 오는 길에 족발을 사 가지고 왔다.
“임신했을 때도 잘 안 먹었으면서.”
“몰라요. 갑자기 엄청 먹고 싶어서요. 고마워요. 여기 거 진짜 맛있네요.”
세화가 새우젓에 찍은 족발 한 점을 먹으면서 행복해하자 진욱 역시도 미소를 지으면서 TV를 봤다.
“오늘 어머니 내려가시는 길에 같이 드시라고 대짜 하나 포장해 드렸지.”
“네, 잘하셨어요.”
퇴근 이후로 이렇게 오붓하게 먹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무릎에 아들을 앉혀놓고서 쓰다듬으며 뉴스를 보던 진욱은, 재미난 기사가 별로 없어서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렸다.
이 시간엔 딱히 재미난 게 없었고, 일일 드라마나 몇 편 나오는 것도 그냥 넘겼을 때, 좀 더 시간이 지나자 각종 쇼프로가 나왔다.
[오늘의 고수의 비법! 자~ 우리 건강을 위해 필요한 식품은 또 뭣일까요?]
“저런 건 진짜 질리지도 않고 나와.”
방송가에서 여러 패널들이 앉아서 건강식품에 대해 논의를 하고, 방청객석에서 각종 웃음 등의 리액션이 들린다.
그리고 뭔 말도 안 되는 정보들을 가지고 흔히 ‘쇼닥터’라 불리는 의사들이 나와서 각종 제품의 성분을 앵무새같이 달달 외워서 ‘일단 건강에 좋다.’라는 이야기를 해 준다.
“저거 죄다 광고잖아?”
“어머, 그래요? 우리 엄마도 저거 보고서 많이 주문했는데. 그 뭐라더라? 건강 야채 스프?”
각종 야채 재료를 가지고 끓여서 원액을 먹으면 무병장수의 만능약이라면서 먹는다는 이야기.
확실히 미디어에서 저렇게 나오는 것은 재력이나 권위와 상관없이 건강에 관련된 거라고 다들 넘어가는 것 같았다.
“방통위 때 저런 것들 간접광고로 죄다 연락 때렸는데.”
“네? 오빠 방통위에서 일한 적 있어요?”
“아, 아… 그게 아니고, 아는 친구 이야기!”
진욱은 순간 과거의 삶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무심코 옛날이야기가 나온 것을 정정하며 헛기침을 했다.
확실히 옛날의 삶과 지금 삶을 합친다면 자신은 벌써 60에 가까워지는 중늙은이다.
두 번째 삶에서야 첫 결혼과 첫 아이를 가지고서 행복하게 사는데 옛날이야기가 왜 이렇게 떠오르는지 모를 진욱이었다.
“암튼 저런 프로가 인기가 있으니까 계속 나오는 거 아니에요? 요새 애들은 TV 잘 안 보잖아요.”
“흐으음. 뭐 그렇지. 유튜브를 더 많이 보겠지.”
진욱의 말에 세화는 남편 무릎 위에서 잠든 아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저런게 확실히 먹히긴 해요. 저도 원래 편식 심했는데, 어디 아플 땐 이게 좋고, 저게 좋고 해서 막 줬거든요.”
“그런게 좀 있었지. 우리 어머니도 그런거 엄청 챙기면서 아침 식사 메뉴가 수시로 바뀌었거든.”
진욱은 그 말을 하면서 족발 한 점을 먹다가 뭔가 생각나서 말했다.
“옛날에 그 얘기도 많지 않았나? 족발이 엄청나게 건강 식품이라는 거.”
“네? 그런 게 있었나?”
“왜 있잖아? 족발에 이 돼지껍데기 촉촉한 게 콜라겐이 잔뜩 있어서 피부 미용에 좋고, 누구나 먹을 수 있…….”
순간 진욱은 그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세화는 남편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족발에 뭐 묻었어요? 왜 그걸 보고서…….”
“아, 잠깐만.”
진욱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포털 사이트로 검색해 봤다.
‘껍데기 간식’하니까 나오는 것은 돼지껍데기 볶음이나, 돼껍튀김 같은 술안주가 나왔다.
거기에 ‘강아지 간식’이나 ‘고양이 간식’을 치니까 뒤늦게 나왔는데, 몇몇 제품이 있긴 했지만 영세한 규모의 수제 간식 몇 개였고 대량 생산을 하는 업체는… 다행이도 없었다.
“이게 아직 대중화가 안 됐다고?”
“뭘 보고요? 족발? 아~ 사업 이야기인가?”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쩌면 이게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테스트를 해 보기 위해서 잠든 아들을 아내에게 넘겨주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지금 야간 마트 문 열려 있나?”
“아, 거기 24시간이긴 한데, 뭐 사러 가시려고요?”
“돼지껍데기?”
“……?”
여기 족발 놓고서 또 무슨 소리를 하냐 싶었지만, 나가서 진짜 돼지껍데기를 사 온 진욱이었다.
* * *
다음 날.
핏물을 빼내고 에어프라이어로 말려서 구운 돼지껍데기, 그리고 그냥 물에 삶은 것과, 구워서 만든 것들을 강남사옥에 있는 펫카페의 강아지들에게 나눠 줘 봤다.
견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먹여봤을 때, 반응은 반반이었다.
냄새만 킁킁 맡다가 간을 보고 그녕 가는 개들, 관심을 보이면서 한 입 씹어 보다가 뱉는 개들, 하지만 대다수는 일단 물어서 이리저리 흔들다가 맛나게 먹고 있었다.
“오~ 확실히.”
“저기 부사장님, 이거 먹여도 되는거 확실하죠?”
진욱을 보고서 견주들이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포털 기사를 보여 줬다.
[반려동물 영양식, 돼지껍데기 콜라겐은 사람이 아닌 개에게도 건강하다.]
그렇게 뒷담화를 깠던 쇼닥터, 아니 쇼 동물 닥터의 말이었지만, 그것을 본 손님들은 납득했고, 한번 집에서 먹여 봐야겠다고 말하는 견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한번 제대로 키워 봐야겠다.”
진욱은 아직 대중화가 안 되어 있고, 저렴한 원자재에 대중화할 수 있는 사료 재료를 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