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공익적 제보
바이룽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폭탄을 맞아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보도 이후 1시간 만에 SNS 계정으로 확인 조사 중이라는 이야기는 나왔지만, 다음날까지도 사방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휴대폰, 보조배터리, CCTV에, 이젠 스피커까지 ㅋㅋㅋㅋ 믿거 중국산~]
[중국 제품 진짜 쓰기 무섭네요. 이게 전부 다 개인정보 유출용이라는 것 아니에요?]
[미친ㅋㅋㅋ 이제는 하다 하다 집 안에 놓는 댕댕이 급수기까지 백도어를 까냐?]
[(정보)중국산 부품이 들어간 리스트를 Araboza!]
당장에 대형 커뮤니티와 SNS 계정들에서는 희화화와 동시에 백도어가 심긴 중국산 제품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서 엄청난 경계가 이뤄졌다.
진욱은 그 통쾌한 상황 속에서 여기저기 연락이 오는 것을 받았다.
“아, 네. 아이~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물으시나? 설마 우리 제품이 그러겠어? 삼정하고 손잡은 거야! 삼정!”
“그러게나 말이야. 중국 제품들 백도어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조직적인 줄은 몰랐네? 지난번 신용카드 건? 에이~ 그거하고는 다를걸?”
“네~ 아니요. 걱정 없어요. 수제간식 건하고는 다르죠. 그건 저희가 만드는 거에서 업계 전체 때린 거지만, 이번엔 저희는 보조고 삼정전자가 탱킹 잘해 주고 있다고요.”
여기저기에서 ‘방금 뉴스 봤다.’, ‘백도어 파장 클 것 같은데 너희는 문제 없냐?’, ‘심지어 몇몇은 하 부사장을 믿고 가입했는데, 우리 건 진짜 괜찮은 거냐?’라는 질문이 넘쳤다.
진욱은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내일 마케팅 팀이 그동안 준비했던 자료들을 공개하기로 했고, 언제나 일을 좋아했지만 내일 출근만큼 설레는 게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부터 떠들썩하던 인터넷 기사에 따라 아무리 지상파나 종편에서 입 씻고, 눈 감고, 귀를 막아도 여론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사물인터넷 상품 중 일부 제품에 고객의 개인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백도어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스마트 시대, 사물인터넷 시대에 반갑지 않은 내용인데요.]
Y뉴스도 떡밥을 물었고, 결국 꽁꽁 싸매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눈치껏 정오 뉴스나 다른 뉴스가 없는 시간대에 하나둘씩 올리기 시작하는 각각의 보도 채널이었다.
“예전부터 그랬어요.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보도 안 하는 애들이 많단 말이죠.”
“뭐래? 나 어릴 때 맨날 본 게 중국산 중금속이니 멜라민이니 별의별 것 다 나온 건데.”
임원 회의에서 진영이 중얼거리는 말에 순간 떠오르는 게 있어서 뿜은 진욱.
어쨌건 바이룽에 한 방 제대로 먹인 다음에, 앞으로의 일이 중요했다.
“뭐, 하 전무님의 말은 농담으로 넘기고, 지금부터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겁니다.”
“현재 갤럭시아 마트하고 특별전 준비하고 있고, 온라인 마켓 시장에 대한 납품 역시도 계속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정열 본부장에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욱은 다음으로 표영훈 이사에게 말했다.
“표 이사님, 지금부터 수제간식 라인업 늘려 주시고, 본사하고 같이 사료랑 간식 결합 상품 준비해 주세요.”
“네, 부사장님.”
“그리고… 고 팀장님?”
“네!”
“아마 지금 바이룽의 백도어 프로그램 이슈로 여기저기 다 조사할 겁니다. 이런 건에 대해서는 조사하는 게 소보원이거든요?”
한국소비자보호원.
지금은 소비자원으로 이름이 바뀐 공정거래위원회 산하의 준정부기관.
진욱은 이런 불량 상품이 나올 경우 어떻게 처리되는지 본인의 공무원 시절 시나리오대로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
“일단 이 이슈가 커질수록 기존에 스마트 펫케어 제품을 썼던 소비자가 집단으로 소송을 할 겁니다. 그걸 접수받은 소비자원이 불만 처리를 받으면 사실 조사 하고, 검사원 보낼 겁니다.”
거기까지는 일단 진욱의 회사보다는 우선순위로 파트너인 삼정전자가 더 먼저 조사를 받을 거다.
“그 뒤로 저희가 제품 디자인을 했으니 거기에 따른 자료 내용증명 요청을 할 겁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서 바로 협조해 주시고, 우리 쪽은 확실히 그런 게 없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각인해야 합니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부사장님.”
임원 회의에서 각각의 중진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딱 오더를 내렸다.
그렇게 각자의 일을 위해 바쁘게 움직일 때, 진욱은 오전의 업무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상대가 받자 웃으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아성펫푸드의 하진욱입니다.”
[아, 네…….]
“요새 회사 일 힘드시죠? 어떻게 저희 둘이서 가볍게 뵐 수 있을까요?”
진욱이 넉살 좋게 제안했을 때, 상대방은 갑자기 이 사람이 이런 연락을 해서 머릿속에 혼란이 온 것 같았다.
[정말 저희와 이야기를 하시고 싶단 말입니까?]
“네~ 그래요. 혹시 뭐 안 되는 게 있습니까? 우리 사이는 그렇게 안 나쁘지 않나?”
진욱의 말에 휴대폰 너머의 상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승낙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한번 날짜를 같이 조율해 보지요.]
진욱은 승낙에 활짝 웃으면서 미팅 날짜와 장소를 잡았다.
일단 예약한 시간에 맞춰서 탁상 달력에 표시하고, 휴대폰으로도 스케줄을 만들어 놓은 진욱은 다른 업무도 인트라넷에 들어가 하나씩 살펴봤다.
“양어장 사업, 이건 이제 막 키우고 있으니까 지금은 치어 수급 문제로 확인하고… 수제간식하고 배합사료 해산물 원료 수입… 이건 새 루트 좀 구해야겠고, 펫드레스하고 패션 사업 상장은… 아직 무리고.”
남들이 한 업무씩 하는 것을 총괄해서 모든 것을 맡게 된 진욱.
거기에 본사 출근은 하지 않지만, 관련 자료는 받으면서 하나하나 검토해 나갔다.
이후 퇴근해서 집에서 저녁 뉴스를 봤을 때, 지금까지도 바이룽의 백도어 상황에 대해 보도하지 않은 뉴스 채널이 몇몇 있었다.
진욱은 그것을 두고 더 큰 건이 필요한가 싶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휴대폰을 확인할 때, 문자메시지를 보낸 곳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그중에는 ‘식품의약안전청’도 있었다.
“백도어 보도 안 된다고 해도, 식약청 감사 한번 빡세게 받아 보라지.”
진욱은 그러면서 이번 사료연구소의 위치를 제주도로 정한 것에 대해 바이룽은 진짜 개삽질을 한 거라고 비웃었다.
“그 동네 특수성만 생각해도 식품공학 연구소를 만들 수가 없는데…….”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요?”
세화가 아들을 재우고, 과일을 깎아 주자 진욱은 하나 먹으면서 우물거렸다.
“회사 일 때문에 조금…….”
“참, 다음 달에 규완 오빠 베트남 출장 갔다가 오는데, 아기 보러 와도 된다고 하네요.”
“편한 대로 해.”
“오빠한테 할 말 있다고 하더라고요. 양어장 사업하시는 것 때문에 관상어 시장 솔깃할 게 있다나?”
“흐으음.”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에 열대어 등의 관상어 시장이 활성화된 건 아는데, 규완이 자신을 집어서 가져온다는 솔깃할 게 뭔지 궁금했다.
‘뭐, 그렇다면 그 전에 바이룽을 확실히 조져 놔야겠구만.’
진욱은 그것을 위해서 지난번 약속을 떠올리고서 세화에게 물었다.
“외국인 거래처를 만나는데, 역시 그 나라 음식을 대접하는 게 낫겠지?”
“어머, 거래처요? 한국에 처음 오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한 5년 정도 거주했고, 한국말도 잘해.”
“그러면… 흐음, 집으로 초대해도 되지 않을까요?”
“……?”
“아이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들 자랑도 하고, 음식은 가정부 아주머니들 모아서 한껏 차려 볼게요. 한정식으로요.”
“그… 여자 임원인데 상관없으려나?”
“그럼 더 좋죠! 독신이지 않는 이상.”
“그건 모르겠는데…….”
진욱은 일단 약속 날짜와 시간만 잡아 놓은 상태이니 그녀에게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 * *
“어머, 정말 예쁘네요? 아이 이름이 은준이라고요?”
“네. 그래요.”
정장 차림으로 찾아온 프랑스인 중년 여성은 진욱과 세화의 아들을 안고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집으로 초대한 인물은 고메 코리아의 대표이사 샤를로트였다.
지난날 이성철의 알선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해 프리미엄 애견 사료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고, 제일의 칼잡이로 아성사료와 붙었지만, 승리하진 못했다.
그 이후 고메와 아성 그리고 YN까지 합세해서 3파전이 벌어졌으나, 승리는 언제나 진욱이 있는 아성사료였다.
그래서 만나면 가볍게 인사 정도만 하던 사이였지만, 먼저 만나자는 제안에 집까지 초대를 받아서 이런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건 한국에서 만든 와인입니다. 각 지역의 특산품으로 만든 제품이라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오~ 좋아요. 가볍게 마셔 볼까요?”
능숙하게 디캔팅을 하고 코로 향을 맡은 다음 한 모금을 맛본 샤를로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한정식과 와인이 입에 맞아 보였고,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갖은 음식이 주방에서 만들고 있는 가정부들을 통해 계속 나왔다.
푸짐한 식사를 즐긴 뒤로 테이블이 치워지자 우유 탄 커피 한 잔이 후식으로 나왔고, 디저트 타임에서 이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이룽 때문에 피해를 본 건, 우리 아성 말고도 고메 코리아 역시도 만만치 않지 않나요?”
“……?”
“우리 둘은 같은 처지라고 생각되는데요?”
“하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여기서는 그냥 있는 대로 말하셔도 됩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이야기니까요.”
진욱이 한 번 더 진도를 빼고 직접적으로 말하자 샤를로트는 잠시 생각하다가 라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식약청이라는 곳에서 감사가 와서 공장 전체를 시찰했습니다. 게다가 본사에서 직접 온 재료들에도 평소보다 더 철저한 검역이 있었고요.”
“네~ 그래서 뭐 나오긴 했나요?”
“하나도 없습니다. 고메의 품질 위생 관리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그건 아성펫푸드도 똑같죠.”
결국 있지도 않은 기생충 검출과 곤충 알이 나왔다는 익명의 제보로 인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두 업체는 이 상황에서 공통의 적을 생각했다.
“바이룽이 배후에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샤를로트 대표도 알 겁니다.”
“확실히 그들이 인정할 때까지는 의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인정은 안 해도 다른 쪽으로 큰 사고를 치고 있죠?”
“으으음…….”
그녀 역시도 이번 바이룽의 펫케어 제품들에 일고 있는 백도어 프로그램 논란으로 인해 친다면 지금이 제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제게 뭘 원하시는 거죠? 설마 우리 둘이 카르텔을 만들자는 건 아니겠죠?”
“카르텔이라 말하니, 우리가 무슨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뭐죠?”
“그냥 가볍게 지분 거래 그리고 고메 본사의 몇몇 간식에 대해서 라이선스 구매를 하고 싶습니다.”
“……!”
진욱은 가격이 아닌 기술과 지분 교류 쪽을 생각했다.
“유럽 제일의 프리미엄 사료 회사인 고메의 기술은 백지수표를 내서라도 구해야 하죠. 그리고 앞으로 국내 시장에서 저희랑 척지지 않고 건전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시는 게 그쪽 입장에서도 도움이 될 겁니다.”
“얘기를 들어 보면 미스터 한이 말하시는 건 바이룽을 잡기 위해 손을 잡자는 말이군요?”
“말씀드렸지만, 서로가 필요한 것만 교환한 뒤로는 자유경쟁입니다. 각자의 장기를 살려서 물건을 파는 것이고, 그저 우선순위가 하나로 정해졌을 뿐입니다.”
샤를로트는 잠시 생각하다 이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바로 대답할 수 없다면서 답변을 유보했다.
하지만 진욱은 백 퍼 이번 주 안에 넘어올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프리미엄 사료 브랜드 회사에게 씻을 수 없는 이물질 투입을 한 테러를 절대 넘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진욱은 바이룽이 지금의 펫케어 백도어 논란으로 이리저리 두들겨 맞다가 본연의 업무로 수제간식과 사료업체를 주력으로 돌아오는 순간, 발바닥 불나게 해 주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