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역전타 장전하고
충남도청과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눈 뒤로 얼마 안 있어 협약식을 마쳤다.
“이것으로 아성펫푸드와 충남도청간의 반려동물산업 개발 협약식을 선언하겠습니다.”
양 도지사와 진욱이 손을 잡은 이후 수많은 기자가 무수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터트렸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어도,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건 여전했고, 덕분에 눈이 깜빡거리는 사진이 나올까 신경이 쓰이는 진욱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파트너를 저희로 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욱은 양 지사 휘하 고위공무원단과 아성펫푸드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식사 자리를 가졌다.
오늘을 위해 준비했다는 한정식집에서는 충남 일대의 브랜드 특산물로 만든 만찬 이후 각자 업무를 위해 돌아갔다.
“이 전무님?”
“네, 부사장님.”
“차 같이 타고 가시죠.”
“아… 네.”
이 전무는 자신의 수행비서에게 말한 다음 진욱의 차에 탔다.
“가시죠.”
“네, 부사장님.”
진욱의 운전기사가 출발하고 홍성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었다.
이 전무는 조용히 오늘의 충남도청과 협의 내용을 태블릿을 통해 읽고 있었고, 진욱은 조용히 창밖을 보다가 먼저 운을 띄웠다.
“이 전무님. 지자체쪽 잘 아십니까?”
“아, 노력은 하지만, 부사장님에게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성사료 시절부터 중앙 부처나 지자체나 그쪽 예산을 이용해 지원금과 규제 완화 같은 혜택은 귀신같이 누리던 진욱이었다.
그 대안을 대화그룹 파견 갔을 때, 대신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서 전임자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보다 연배도 높으시고, 경험이 풍부하실 겁니다. 전 직장에서도 정치권 인사를 많이 만나셨다 들었습니다.”
“하하, 그건 과거의 일입니다.”
“오늘 계약 어떻게 보십니까?”
“네?”
“5년 계획이라고 하는데, 중간에 윗선 바뀌면 파투 날 가능성이요.”
“으으음…….”
진욱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이 전무는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같은 정당이 이어진다면 기존 계약에 대해 파기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전임자 지우기는 어디까지나 정세가 급변할 때 쓰이니 말입니다.”
“흐음, 역시 그렇겠죠?”
“그리고 이번 계약을 두고서 저희 역시도 충남 일대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것이니 그들이 쉽게 못 건드리게 뿌리를 내리는 게 중요합니다.”
“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진욱은 그러면서 충남 일대에 무엇을 배치할지에 대해 논했다.
“펫카페를 천안에 배치하고, 저쪽에서 제공하는 식품공학연구공단에도 아성펫푸드 연구소 만듭시다.”
“네, 일단 두 개를 시작하고, 충청남도 일대의 각 지자체에도 취업패키지로 수제 간식 제조에 대해서 담당 직원을 배치하겠습니다.”
1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진욱은 앞으로의 투자에 대해 논의하면서, 어디에 뭘 배치하고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올지 예상하는 관련 자료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 전무는 수첩에 지금 나오는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필기했고, 서울 톨게이트에 들어왔을 때, 진욱은 마지막으로 또 한마디 했다.
“조만간 사료협회 일도 맡아야 해요. 회장님, 사료협회장 선거 문제로 말이죠.”
“아… 회장님이 출마하십니까?”
“부회장만 계속하고, 몇 번 이야기 나왔는데 이제 나가시는 거죠.”
회사 문제뿐만 아니라 농림축산부와의 유기적인 교류를 위해서 아버지가 그쪽으로 출마하게 되었다.
이미 대다수의 협회 회원들은 전임 회장을 아성에서 밀어줬고, 그 뒤로 부회장 역할을 하면서 사실상 공동정부에 가깝게 운영했기 때문에 이번 협회장은 사실상 하상만이 될 거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충남도청 계약 이후 그쪽 진출에 대해서 열심히 해 주세요. 사료협회장 투표야 금방 끝날 겁니다.”
“예, 부사장님.”
“하나하나 해봅시다. 일단 다시 기반을 다지고, 우리편을 늘리고, 제품의 망가진 이미지를 회복하면서 다시 원상복구시켜야 합니다.”
진욱은 이번 건에 대해서 확실하게 다지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그 이후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 또 다시 뒤통수를 향해 날아왔다.
* * *
[네, 다음으로 사료협회장에 대한 후보로… 기존의 조명수 후보가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
[조명수 후보는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을 하고, 대신 YN바이오의 대표 이영남 대표이사를 사료협회장 후보로 지지 선언을 했습니다.]
이영남!
오랜만에 듣는 이름.
그리고 펫푸드 사업은 포기했지만, 아직도 사료업계에서는 징하게도 오래 살아남고 있는 YN바이오.
그렇게 뜻밖의 상대를 만난 상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진욱 역시도 원사이드하게 끝나려고 했는데 뜻밖의 암초를 만나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우우웅- 우우우우웅-
그 순간 진욱의 휴대폰이 마구 울렸고, 급하게 온 카톡 메시지가 가득했다.
[김유현: 부사장님, 김유현 대표입니다. 회장님 폰이 안 되어 보내 드립니다. 지금 YN의 용인 공장을 바이룽이 인수했다고 합니다.]
“……!”
순간 복부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우웅- 우우웅-
[컨설턴트를 통해 들은 내용입니다. YN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마쓰모토가 15%를 바이룽에 넘기고, YN의 용인공장을 인수해서 제 2주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 이런…….’
[또한 GH텔레콤하고 손을 잡아서 펫케어 결합상품을 통신업체를 통해서 진출한다고 합니다.]
진짜 제대로 들어오는 공격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예전에 이뤘던 업적을 따라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바이룽을 보니 지금 잡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후보 등록을 마치고, 서로간의 인사를 할 때 둘의 표정은 상반됐다.
언제나 여유 넘치고 싱글벙글하는 이영남, 그리고 다시 만난 악연을 두고서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있는 하상만.
후보등록과 서로에 대한 공약 발표를 이야기 하고 돌아가는 길.
이번에도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것은 이영남이었다.
“어이구~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떻게… 이번 사료협회장에 또 등록을 하셨어?”
“하하하, 늘그막에 감투 하나 가지는 삶도 나쁘지 않다니까?”
이영남은 껄껄 웃으면서 진욱을 보고도 반갑게 인사했다.
“부사장님, 재벌가 사위 되시고 신수가 아주 훤하십니다?”
“뭐, 이 대표님도 좋아 보이시네요. 일본에 이어 이번엔 중국 자본입니까?”
“……!?”
진욱이 김유현 사장에게 실시간으로 들은 정보를 보고서 바로 말하자 눈썹이 약간 꿈틀거리던 영남이 다시 여유 있는 미소를 가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뭐~ 요새 대새는 중국 아니겠어? 이대로 가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날이 머지 않았어. 13억 인구의 파워가 대단하거든.”
“역시 부정은 안 하시는 군요.”
“내가 부정할 게 뭐가 있지? 한국 돈이고, 일본 돈이고, 미국 돈이고 돈은 다 똑같은 거 아닌가?”
시대에 따라 절묘하게 줄을 타면서 자신의 회사를 키우고 알짜를 가져가는 이영남의 반응.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다시 아성사료그룹하고 싸우게 되는 순간이었다.
“암튼 선거 기간 동안 잘해 보자고요. 나는 농수산부 사람들하고 인사나… 아차차! 이런 말 하면 또 누가 제보하려고 하겠지?”
과거에 진욱이 긁어 버린 농협사료 입찰 건 로비에 대해서 한 번 당한 경험이 있으니 일부러 진욱 앞에서 흘린 말이었다.
얄밉게 손을 흔들면서 돌아가는 이영남을 두고 상만이 길게 한숨을 내쉴 때 또 다른 곳에서 진욱 부자를 두고 인사를 온 인물이 있었다.
“따자하오! 라오-반!(안녕하십니까! 사장님!)”
“……!?”
익숙한 중국어 톤을 듣고서 고개를 돌려보니 포마드 젤을 잔뜩 바르고 투피스 수트 차림을 한 리 펑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뵙게 되는군요? 인사드립니다.”
처음에는 공손히 인사했지만, 둘 다 그들의 진짜 속내를 알고 있어 얼굴이 떨떠름한 진욱과 상만이었다.
“리 대표도 오랜만에 뵙는군요. 요새 상당히 바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한국에 오면 한국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던가요? 적응하기 위해서 많은 자리를 돌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벌레도 잡고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해맑게 웃으면서 전혀 모른다는 투로 말하자 진욱은 그 낮빛에 침은 못 뱉고 그냥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벌레는 역시 보이는 대로 잡아야죠. 아, 공장 위생 문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하하, 지난번 이물질 사태가 무고로 끝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역시 아성펫푸드 같은 회사가 그런 기초적인 것을 모를 리가 없지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누가 악의적으로 넣고서 제보한 것 같아서요.”
“오~ 그런 회사가 있다면 즉시 신고를 해야겠군요. 중국이었다면 공안이 바로 해결했을 겁니다.”
“한국 검찰도 그 정도는 합니다.”
진욱은 거기까지 말하면서 아버지를 모시고서 돌아갈 때, 싱글벙글하던 리 펑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有眼力劲儿, 他是一个聪明人(눈치가 빨라, 역시 똑똑한 사람이야).”
자신들의 행동을 바로 알아차린 것을 보고 역시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직감한 리 펑.
그래서 YN을 이용해 사료협회장 자리를 가지고, 그들의 권한인 ‘사료산업 업체 융자 알선’, ‘배합사료 원료 공동구매 사업’, ‘농수산식품부와의 교류’ 등의 사업으로 이권을 최대한 끌어낼 준비를 했다.
이쪽에 로비를 하면 적당히 움직여 줄 충실한 아바타가 필요했고, 이영남이란 사람은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이미 게임은 끝났어. 과연 몇 개나 대처할 수 있을까?”
리 펑은 차에 탄 뒤로 중국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 * *
“이거, 진짜 일 꼬였구만.”
“아마 지금 물 밑에서 장난 아니게 돈 먹였을 겁니다.”
진욱은 이미 협회장 투표를 위해서 기존 후보와 단일화를 시키고, 돈봉투를 돌려서 물밑 협상을 끝내고 기습 발표를 한 것이라고 직감했다.
“후우, 이거 어째야겠냐? 내가 이래서 담배를 못 끊어.”
안방에서 재떨이를 가지고 와 분노의 흡연을 하는 상만을 보고 진욱은 곧바로 결심했다.
“계속 방어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죠. 이참에 그 중국업체 조지… 아니, 박살 낼 겁니다.”
조금 흥분해서 아버지 앞에 ‘조져 버리겠다.’라는 말이 나와 황급히 정정한 진욱.
“어떻게? 나도 의심이 가긴 하는데, 증거도 없고 저렇게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말이야.”
“네, 그런 상황이죠.”
“거기에 저놈들 돈 처발라서 이영남이 밀어주면, 우리가 대처할 방법이 있나?”
사실 내부 실무와 인망으로는 현 협회장을 도와서 굉장히 성실하게 일했다고 자부하겠지만, 이권이 걸린 자리의 회장이 어디 그런걸로 되겠는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슨 돈봉투를 뿌리고 이러는 것은 진욱도 상만도 절대 반대였다.
아무리 이권이 넘쳐도 그런 짓까지 해서 타이틀을 갖기는 싫었다.
“일단… 녀석들이 하는 사업부터 생각해야죠.”
“음?”
“내부에서 터트릴 것이 많을 겁니다. 도화선은 제가 붙일 거예요.”
진욱은 자신을 믿어달라는 얼굴로 의지를 불태웠고, 상만은 오랜만에 그런 눈을 한 아들을 보고서 결심했다.
“좋아, 한번 해봐!”
그 말이 나오면 진욱이 시장을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