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근본으로 돌아갈래

스마트케어 결합상품으로 대단한 성과를 거뒀을 때, 진욱은 그 뒤로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면서도 배에 대해서도 정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 그였다.

임원들을 이용하여 회사 내의 느슨해진 나사를 조이고, 그러면서 질적인 상승을 이끈 진욱은 김 회장을 만나 독대하는 자리에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말했다.

“재계약 없이 바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뭐? 이봐 조카 사위! 자네가 우리 회사에 한 성과를 보면, 난 계속 붙잡고 싶어!”

“회장님, 아니… 처백부 어른. 저도 계속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만, 이제는 두 개의 일보다는 한쪽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허어~ 이거 서운한데?”

“저도 집에는 일찍 들어가 내조를 해야 하니까요.”

“어, 어어… 아, 그래. 그렇지… 세화가 지금 홀몸이 아니니까.”

김 회장은 오랫동안 붙잡아서 장남과 조카사위를 두고 컨트롤하려 했지만, 이제는 진욱을 놓아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조카가 임신 중에 남편이 붙어서 돕는다는 것을 뭐라 하겠는가?

아쉽지만, 이미 얻을 성과는 많이 얻었으니 놓아줘야 했다.

“그래, 그럼 일단 남은 기간에는 노력 좀 해 주게.”

“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남은 기간 동안 회사 하나는 꼭 넘어트릴 겁니다.”

“호오~ 어디인가?”

“동방화재입니다.”

“으흠?”

진욱은 그 일에 대해 지난번 재벌가의 와인 파티 때, 동방그룹 김명호 사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설명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듣고 있던 김 회장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다.

“세상에… 김 사장이 우리 조카사위에게 그따위 말을 했어? 개밥 운운했다고?”

“개밥 만드는 것과 금융은 다르겠다고 말하긴 했습니다.”

“아니, 그런 말을 왜 인제 하는가? 내가 알았다면, 당장에 전경련 찾아가서 그 친구 붙잡아다 자네에게 사과시켰을 걸세!”

“아니요. 그런 모독을 들었으니 제가 직접 움직일 겁니다.”

진욱은 그때의 악연으로 인해 다른 건 몰라도, 대화손해보험이 동방화재는 반드시 제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김 회장 역시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전력으로 조카사위를 도와주기로 했다.

동방그룹도 공시대상 대기업 그룹이라고 해도, 대화는 10대그룹 안에 들어가는 곳이었다.

“조카사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가 전적으로 밀어주겠어.”

“네, 감사합니다.”

진욱은 남은 임기 동안 대화손해보험을 확실하게 궤도에 올리겠다고 다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 * *

그리고 진욱은 대화손해보험 내에서 전국 지점이 보는 조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대화손해보험 미래전략실장 하진욱 전무입니다.”

수많은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비추며 방송이 나오는 가운데, 진욱은 여유가 있는 얼굴로 천천히 조회를 시작했다.

[2017년이 되어 대화손해보험은 치매보험과 펫케어 보험이라는 두 가지의 히트 상품으로 인해 비약적으로 업계에서 상승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위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해댔다.

그렇게 사기를 끌어올린 상태에서 진욱은 바로 자신의 목표를 말했다.

“올해 안에 대화손해보험은 현재 위에 있는 순위의 회사들을 넘을 것입니다.”

거기에 따른 계약당 인센티브에 대해서 술술 털어놓는 진욱.

그리고 자신 역시도 한 가지를 말했다.

“그리고 저 또한 직접 한 명의 설계사로서 움직일 것입니다.”

순간 이것을 보고 있던 주변 스태프 직원들이 움찔했다.

그리고 진욱은 모르겠지만, 각 사업소에서 보고 있던 설계사들 역시 흠칫하면서 웅성거렸다.

보험사에서 설계사 출신으로 올라간 임원이 보통 양반 장사라고 해서 높으신 분들의 재무 컨설턴트를 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진욱은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이고 뒤늦게 이 일을 하기 위해 설계사 시험을 봤다고 하는 인물인데 그가 대놓고 나선다고 하니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두가 다 알았다.

지금 국내에서 제일 잘나가는 젊은 재벌 기업인이 설계사 면허 가지고 영업을 한다?

아마 전화가 미어터질 것이다.

“그러니 모두 힘 냅시다. 이번 대화손해보험의 순위. 확실히 끌어올릴 겁니다!”

진욱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 * *

“흐으음~ 종마다 가격 다르다는 건 알고, 다른 것도 다 이해가 가지만 말이야…….”

“으흠~!”

“차라리 그냥 우리 애기들 아프면 내가 내 돈으로 치료할게.”

“응, 알았어. 뭐, 설명 다 들었는데 안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진욱은 누나인 진영에게 영입을 시도했으나 거절한 것을 두고 커피값만 계산하고 일어났다.

“네가 대신 내준다면 싸인은 할 수 있는데.”

“나 그런 짓 안 해.”

“흐으응~.”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아성펫푸드에 대한 사업 이야기나 좀 더 하고, 다음 고객을 위해 달리기로 했다.

“근데 이럴 필요까지 있어? 우리 쪽보다 더 열심인 것 같아?”

“임기 6개월 남았는데, 그 안에 매출하고 점유율 동방화재 넘기로 하고 돌아오기로 했어.”

“흐으음. 그럼 대표이사 대리도 여기까지인가? 말 나온 김에 이것 좀 봐줘 봐.”

“어디, 또 뭐가 있어?”

진욱은 진영이 꺼낸 태블릿PC로 열린 자료들을 보여 주면서 최근 건에 대해서 필요한 것에 대해 살폈다.

진욱은 그것들을 보면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서 자신의 의사를 밝혔고, 진영은 지금 있는 임원들에게 그대로 알려 주겠다면서 전부 담고서 자료를 챙겼다.

그렇게 누나와 고객 유치 겸 사업 이야기를 나눈 뒤로 커피를 다 마신 진욱은 주변에서 소개한 고객들을 찾아 떠났다.

아버지 친구로 추천을 받은 수백억대 자산가. 집에 키우는 강아지만 4마리가 넘는다고 하니 가입할 것도 많을거다.

* * *

[암과 뇌질환, 심근경색에 이어 이제는 다양한 질병과 손해에 대한 보험 상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 CEO의 이색 마케팅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설계사 면허를 따서 영업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소규모의 회사도 아닌 대기업의 임원이 벌이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김승아 기자가 전달합니다.]

자칫하면 간접 광고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 공중파가 기사로 올렸다.

이번에는 국정농단 게이트 때의 이미지와 다르게, 순수하게 사업가로써 영업을 하는 이야기로 진욱의 모습이 부각됐다.

[하진욱(31): 저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다고, 손가락만 까딱이면서 오더 내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문경영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진욱이 담당 기자를 상대로 수많은 보험상품 팜플렛을 두고 설명하는 이야기가 자료 화면에 나왔다.

발로 뛰는 경영자.

그것에 대한 임펙트는 굉장했고, 당장에 9시 뉴스 보도 이후 다음 날부터 대화손해보험의 문의가 폭주했다.

‘정말로 가입 상담할 때, 하진욱 실장을 만날 수 있느냐?’

‘담당자는 고객이 원하는 설계사를 붙여 주는 것이냐?’

‘어떻게 해야 하진욱에게 상담받을 수 있냐?’

기업인이면서도 스타성이 최고인 그를 보겠다고 수백, 수천억대의 올드머니를 가진 부호들도 연락을 했고, 일부는 대화손해보험의 다른 임원들을 통해 문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진욱은 자기 자신이 컨텐츠가 되어 버린 이 상황에서 근무 시간 안에는 몇 건이고 계약을 성사하면서 고객들을 맞이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저녁 8시 안에는 무조건 집으로 퇴근했다.

“나 왔어.”

“어우~ 남편이 되어 가자고 무심하게, 이렇게 늦어?”

가정부들을 따로 고용했지만, 그 와중에 상록에 있는 어머니 원숙이 와서 세화를 돌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리고 세화도 미안해.”

“아니요. 괜찮아요.”

세화는 일어나 원숙이 가져온 음식들을 꺼내서 데웠고, 황급히 어머니가 달려와 자신이 할 테니까 나가 쉬라고 거실로 보냈다.

진욱은 옷을 갈아입고 세화의 손을 잡았다.

“미안, 이번 앞으로 여섯 달은 더 이래야 하는데, 고생이 많다.”

“어머니가 오늘 만들어 준 불고기랑 찌개 너무 맛있더라고요. 가정부 아주머니들 만든 거보다 훨씬 나아요.”

“아이고~ 손주 봐야 하는데, 음식이야 언제든 만들어 주지!”

원숙은 데운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아 아들에게 줬고, 진욱 역시 오랜만에 먹는 집밥에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늦은 밤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의 품 안에 지갑에 있는 돈 다 털어 억지로 쥐어드렸고, 상록에서 상만이 직접 올라왔을 때 인사하며 배웅했다.

“후우-.”

식사를 마치고, 집에 있으면서 태교를 위해 구매한 전축을 돌려 클래식 음악 LP판을 켜자 차를 마시면서 평화롭게 소파에 누운 세화였다.

진욱은 그녀를 쓰다듬으면서 책상에 노트북을 펼치고, 내일 업무에 대해 두들겼다.

“내일은 또 전경련 탈퇴 문제 이야기 나오겠네…….”

국정농단 게이트로 인해 전경련이 우익 단체를 뒤에서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는지라 삼정을 포함해, 현기, GH, 제일, SY등의 10대 그룹들이 하나같이 탈퇴를 했다.

그리고 대화그룹 역시도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혔고, 진욱이 김 회장 대신 가서 정식으로 탈퇴서를 제출하게 됐다.

“흐으응, 많이 바쁜가 보네?”

“아, 미안.”

“우리 쑥쑥이가 아빠처럼 이렇게 열심히 지내면 좋겠네요.”

일 중독의 모습을 보이는 진욱을 향해, 세화는 나쁘게 보지 않고 오히려 남편의 그런 모습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고양이도 슬며시 다가와서 비비대다가 소파 위로 올라가 누워 있는 세화의 옆에 살며시 누웠다.

누워서 고양이를 만지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 세화를 뒤로한 채, 진욱은 내일 업무를 위해 준비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 양반도… 오겠지?”

진욱이 노트북으로 사업 정리를 한 다음에 일어나니 어느새 와이프는 고양이를 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 * *

다음 날 여의도 전경련 회관.

규완과 같이 전경련 탈퇴서를 가지고 온 진욱은 관련자들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담담하게 서류를 내밀었다.

아무리 그들이 만류한다 해도 대기업들의 탈퇴 릴레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진욱은 그렇게 자신이 내민 서류로 다음 달부터 전경련 회비는 없을 것이라고 대화그룹의 이름을 알렸고, 규완과 같이 돌아가려고 할 때, 우연찮게 그 앞에서 또 다른 경영인을 만났다.

“……!”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부회장님!”

동방그룹 총괄 대표를 맡은 김명호를 보고 진욱이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부회장 등극 축하드립니다.”

“그, 그래. 고맙구만.”

“이제 동방화재 역시도 계속 성장할 겁니다.”

“…….”

수많은 계열사 중에서도 유독 대화손해보험과 경쟁하는 동방화재를 콕 찝어서 이야기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굉장히 불쾌한 일이었다.

“아무쪼록 대화나 동방이 건전한 라이벌이 되어서 동반 성장을 하길 빕니다.”

“으으음… 난 이만 가 보겠네. 경총에 참여해야 해서 말이지. 아, 뒤에 있는 김규완 이사도 다음에 뵙죠.”

“네, 살펴 가세요.”

김규완은 조용히 인사했지만, 차에 타는 김명호를 향해 진욱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개밥 운운 하시던 이야기는 계속 사과하실 생각 없으신거죠?”

“…….”

“네~ 네~ 어차피 오다가다 계속 볼 테니까 언제든 기다릴게요.”

진욱이 그러면서 손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인사치고는 굉장히 무례한 행동을 하자, 지나가는 차에서 뒷좌석 창문으로 격하게 뭔가를 집어던지는 김명호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렇게 6개월까지 갈 것도 없이 1분기에서 대화손해보험이 동방화재를 제치고 손해보험업계에서 삼정 다음으로 굳건한 2위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수십 년간 왕좌를 차지하는 삼정화재까지 위협하는 자리가 되었을 때, 그 수많은 성과급은 진욱의 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