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선물로 공동사업기획안을 드리죠
진욱은 이현재 부회장의 초대를 받고 종로에 위치한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은은한 가야금 소리가 들리는 고급 한옥에는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진욱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서오십시오. 예약하셨습니까?”
“네, 하진욱이란 이름이요.”
“아!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들이 진욱을 안내하며 가장 깊숙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고, 조용히 안에 있는 손님에게 말하자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정갈한 한정식 집에서 손을 흔들며 일어난 이현재 부회장.
그리고 그 옆에는 숯불 화로에 석쇠로 마블링이 아름다운 한우가 구워지고 있었다.
“잘 오셨어요.”
“제가 좀 늦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오히려 제가 빨리 온 거죠.”
이현재 부회장은 빙긋 웃으면서 술잔을 건넸고, 진욱은 일단 한 잔 받으면서 입술을 축였다.
“제가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해서 일단 천천히 받겠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사실 저도 술자리는 좋아하지만 그렇게 잘 마시지는 못합니다.”
처음에는 훈훈한 분위기.
그러면서 다음에 나온 이야기는 지난 청문회에 관한 일이었다.
“지난번 청문회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정론만 말했을뿐입니다.”
“하하하, 솔직히 부산에서 저를 만난 이야기를 그대로 하셨을 때, 조금 식겁했지만, 무난히 넘어갔군요.”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였지만, 덕분에 국정감사에서 중요 사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을 벌었던 이현재 외 다른 재벌가 오너들은 진욱에게 매우 감사해했다.
특히 몇몇은 하진욱에 대해 높게 평가하면서 ‘대화 김 회장이 진짜 물건 하나 제대로 건졌다!’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한다.
“뭐, 다들 좋게좋게 끝나셨다면 다행입니다. 앞으로 특검이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저희도 세무조사가 나왔습니다.”
“그거는 뭐 어떻게 해결해야겠지요. 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현재 요양 중인 이 회장을 대신해서 실질적인 삼정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섭정 황태자 이현재가 진욱에게 사업을 제안했다.
“요새 삼정전자는 사물인터넷 사업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물인터넷… 저도 같이 협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관심이 많은 사업입니다.”
스마트폰 이후로 급속도로 발전한 전 세계의 IT시장에서 가장 대세가 되는 것은 사물인터넷이었다.
특히 가장 바뀐 물건은 텔레비전이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이후 이제는 스마트TV의 시대, 거기에 맞춰서 각종 주변기기들이 넘쳐났다.
이후 로봇청소기, 세그웨이, 스마트 홈 제품 등이 다양했고, 현재는 GH전자가 앞서고 있지만, 삼정은 국내 1위의 시가총액을 가진 기업으로 맹추격을 하고 있었다.
“으으음, 삼정전자가 나선다면 금방 추월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거기에서 저희가 어떤 방식으로 같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진욱의 물음에 이현재는 웃으면서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터치 몇 번을 한 다음에 관련 PDF 파일을 진욱에게 보였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네, 천천히 읽어 보죠.”
그사이에 화로에서 알맞게 구워진 한우 등심이 밥상 위에 올라왔고, 이현재는 품 안에서 수고했다며 팁을 요리사에게 건넸다.
진욱은 그것을 읽으면서 점점 눈이 커지다가 이내 콧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물인터넷 제품인 스마트 TV와 로봇청소기, 그리고 스피커와 카메라 등으로 집 안 시큐리티 서비스를 하는 방식의 제품이었다.
그리고 다분히 아성펫푸드를 염두에 둔 제안이 있었다.
“1인 가구에서 집에 있는 반려 동물을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이라…….”
삼정전자 생활가전사업부에서 내놓은 미래 먹거리 사업 기획안이었는데, 진욱은 이건 확실히 잘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때부터였구나, 1인 가구에 스마트 펫케어 서비스를 한 게…….’
진욱 역시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사람도 실생활에서 알음알음 시작하는 사업이었는데, 이렇게 반려동물 인구를 겨냥한 기획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일단 여기에 따라서 삼정전자와 삼정문화재단, 그리고 아성펫푸드가 같이 협력해서 사물인터넷과 펫케어 상품에 대해서 협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괜찮은 제안이군요.”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이건 진짜 삼정전자가 선사하는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현재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여기 고기가 아주 좋습니다. 천천히 드시면서 사업 내용을 조율해 볼까요?”
“좋습니다.”
진욱은 재계에서 퍼진 소고기 홀릭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한 점 먹으면서 그 맛을 즐겼다.
삼정 부회장이 추천하는 맛집이니 퀄리티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고기를 먹으면서 진욱은 입가를 닦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게 통신사하고 결합된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통신사요?”
“보험회사도 결합해서 말이죠. 펫케어 보험과, 스마트TV, 그것도 통신사와 결합한 월정액 상품을 만들고 세 개가 콜라보가 되어서 만든다면 여러 업체에서 관심을 가질 겁니다.”
“흐으음,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요. 아마 GH는 지금 자사의 통신사를 두고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이현재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터치펜을 뽑아서 지금 진욱이 말한 것을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아마 비슷한 컨셉으로 경쟁을 할 텐데, 거기에 대해서 삼정과 아성만의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음~ 음~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이현재는 기업의 위상으로 보나, 아이디어로 보나, 심지어 나이로 보나 진욱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그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삼정전자 황태자와 같이 식사 중에 일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러면서 다음 날 본격적으로 삼정전자 생활가전사업부와 아성펫푸드 간의 임원 회의가 열렸다.
* * *
출근을 앞두고서 가정부 아주머니들이 차려 준 아침을 먹을 때, 세화가 갑자기 진욱에게 말했다.
“나, 할 말 있어요.”
“뭔데?”
“돌아와서 말해 줄게요.”
“흐으음…….”
“그러니 일찍 와 줘야 해요?”
대화손해보험 치매 보험 90만 건 판매와 펫케어 보험 마케팅에 대한 논의 때문에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거기에 삼정과 아성펫푸드 사이에서 조율도 해야 하는데, 아내가 이렇게 말하니 생각이 복잡했다.
“일단 노력은 해 볼게.”
“늦어도 꼭 8시 안에!”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스케줄을 좀 타이트하게 만들기는 해야겠다는 진욱의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늘도 아내를 안아주고 출근길에 나선 진욱은 일단 여의도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의 대화손해보험에서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방화재가 선전포고를 했다고요?”
“펫케어 보험과 치매 보험 상품을 출시하고, 곧바로 맞불을 놨습니다.”
이 이사의 말에 진욱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 건에 대해서도 생각이 복잡했다.
‘삼정이 보험업만 안했다면, 바로 대화손해보험까지 콜라보를 할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쪽 역시도 반려견 보험을 만들고 있어서 계열사를 앞두고서 대화랑 손을 잡는것도 모양새가 이상할 것이다.
“이번에 동방에서 새로 영입한 인물이 ‘지미 리’ 대표이사입니다.”
“아, 기사를 보긴 했는데…….”
지미 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한국 보험업계에서 HK생명의 CEO를 거치고, 현기손해보험을 거쳐 이번엔 동방화재에 자리를 잡았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계리사 팀을 운용하면서 가지치기 상품을 잔뜩 출시해서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인지라 그쪽을 대처하는 데 있어서 굉장한 머니게임이 될 것 같았다.
“일단 치매 보험 상품에 대해서 0.5건 계약을 한 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0.5건 계약은 기존의 상품이 고가로 인해 고객들이 불편해할 때, 보험금을 줄이면서 상품의 월 납입도 줄어드는 상품이었다.
예를 들면 한 달 10만 원에, 치매 진단 때 매달 200만 원의 보험금이 나오는 상품이라면, 절반으로 쪼개진 계약을 해서 월납 5만 원에 진단금도 100만 원 정도로 받는 걸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설계사를 늘리고, 판매 상품을 위해서 특히 일정 건수 이상 계약시 생활용품 증정의 수도 늘려야겠습니다. 지금 5건 이상 팔면 청소기고, 10건이 넘으면 모니터죠?”
“네, 그렇습니다.”
“좀 더 좋은 조건을 내걸죠. 팔리는 만큼, 유지만 된다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 이후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본격적으로 대화손해보험에 대한 경쟁자들과의 대결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아침부터 긴 회의를 마친 뒤, 인트라넷으로 받은 결재 서류들을 오전 중에 빠르게 끝낸 다음, 식사를 하고 바로 간 곳은 아성펫푸드 강남사옥이었다.
“얘기 들었어?”
“뭐가?”
진영은 강남사옥 대표이사 대리를 하면서 그동안 들은 정보에 대해 말했다.
“지금 그 이정열 전무라는 양반이 백방으로 뛰어다닌대, GH에서 우리 쪽에 제안을 하나 한 게 있더라고.”
“흐음?”
진욱은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당사자한테 한번 듣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정열 이사는 바로 진욱의 집무실로 들어와 반갑게 인사하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부사장님, 최근에 GH전자와 GH 텔레콤에서 저희와 협업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요? 무슨 내용이죠?”
“사물인터넷으로 GH텔레콤의 결합상품이 나오는데, 거기에 맞춰 반려동물 용품으로 유명한 우리 아성펫푸드와 콜라보 상품을 만들겠다는 일입니다.”
“…….”
진욱은 그 말을 듣고서 순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특히 원격 조종을 할 수 있는 자동 급여기와 원격 돌봄으로 집 안의 반려동물을 확인하면서, 펫케어 보험상품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는군요.”
“어~ 펫케어 보험 쪽은 대화 사람들하고 해야겠고요. 지금은 아성펫푸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어느 순간부터 사료를 넘어 반려동물 전체에 관련한 사업이라면 전부 이쪽을 찾게 됐다.
덕분에 인지도는 좋아졌지만, 문제는 이미 진욱이 삼정전자의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부사장님이 오시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하셨는데, 오늘이라도 당장 담당자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흐으음~.”
진욱은 손목에 채워진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성펫푸드 건에 대한 밀린 결제들을 처리하고 여기서 GH 사람까지 만난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 같았다.
하필이면 이런게 대화손해보험 임원회의 때 나오지 않고 여기에서 듣게 되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삼정의 편을 들면 아성은 뜨지만, 대화가 재미를 못 보고… GH의 편을 들면 둘 다 뜨겠지만, 이현재 부회장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는 거고…….’
그래서 두 제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지만, 진욱은 일단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결정했다.
“일단은 관련 자료 한번 읽어 보고, GH 담당자와는 추후에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래, 뭐 천천히 생각해 봐. 난 좋아 보이지만 말이지.”
진영도 한 마디 거들었지만, 어차피 동생이 와서 다 해결하겠거니 생각하면서 그냥 떠넘겼다.
그리고 진욱은 관련 자료들 분석과 결재를 마치고, 다시 여의도로 가서 오후 회의를 마치고 오랜만에 칼퇴근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