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예전부터 난 멀티였어
진욱은 63빌딩 대화그룹 본사에 도착한 후로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김 이사님. 계리사 팀은 어떻게 상품 잘 만들고 있습니까?”
진욱의 질문에 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재 상황에 대해 말했다.
“치매 보험과 펫케어 보험 모두 상품을 만들면서, 조만간 금감원에 심사를 요청할 것입니다.”
“흐음, 뭐 문제가 될 만한 게 있나요?”
“치매보험과 펫케어 모두 단계에 따른 것입니다. 치매는 경증과 중증에 관한 의료업계와의 분류, 그리고 펫케어 역시 견종과 묘종에 따른 유전병과 금액에 따른 조정이 있습니다.”
“아, 그건 진짜 어렵죠.”
진욱은 거기에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고, 거기에 따라 이한국 이사가 추천을 했다.
“실장님. 일단은 둘 다 같은 상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먼저 나온 상품을 심사받고 올리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한쪽을 기다리다 다른 한쪽의 보험이 다른 업계에서 눈치채서 먼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네, 맞는 말입니다. 이 이사님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진욱은 적당히 임원들의 제안을 받으면서 괜찮은 건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소통을 중시했다.
회의가 끝난 뒤로 집무실에 도착한 진욱은 쌓여 있는 사내 인트라넷 메일을 확인하고, 관련 서류들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흐음, 불완전 판매 건에 금융위 조정안에, 청년인턴 채용 예산 건…….”
확실히 대기업이어서 금액의 규모가 다르고, 다양한 파트가 있었지만 진욱은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일 처리를 빠르게 진행했다.
이런 서류 검토 후 결제 건이야 한 건당 10분 정도의 생각만 할 시간이 있으면 즉시즉시 진행할 수 있는 게 그의 장기였다.
그렇게 남들의 배 이상의 업무량을 수월하게 처리한 후, 점심시간이 되자 바로 외출 나간다고 하면서 차를 준비했다.
“이천으로 갑시다.”
“네, 실장님.”
대화그룹에서 제공한 수행비서는 진욱이 말한, 이천시에 있는 양어장 주소를 찍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진욱은 스마트폰으로 현재 상황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뉴스가 없나 살폈다.
* * *
“아이고~ 부사장님이 다 오셨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이천에 위치한 양어장은 진욱에게 있어 각별한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 친구라고 소개받은 김 사장의 양어장은 동해수산연구소 양식연어 사업을 위해 배합사료를 개발할 때 가장 도움을 준 곳이었다.
“여기도 진짜 그리웠어요. 잉어랑 송어들은 잘 클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여기까지 온 김에 무지개송어 회 한 접시 들으셔야지! 얼른 오세요.”
진욱은 수행비서도 대동하고, 양어장 한 곳에 놓인 식당으로 향했다.
물비린내 가득하고, 한적한 동네의 잡동사니 가득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뭐 하나 새로 만든 게 있었는데,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송어와 잉어, 붕어 매운탕과 찜 전문 식당이었다.
식탁앞에 앉아 맛있게 떠진 기름진 송어회를 한 점 먹은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올렸다.
“괜찮네요.”
“우리 고기는 문제없다니까? 부사장님이 주신 사료가 특효였어.”
김 사장은 껄껄 웃으면서 친구 아들이자 이제는 재벌가 사람이 된 진욱을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예전부터 봤지만, 정말 큰일 할 줄 알았어. 누구보다도 부친인 하상만 회장이 정말 부럽다니까.”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송어 회 정식을 먹은 뒤로 오랜만에 돌아본 양어장은 그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그 즉시 주문을 받고 영업을 하는 방식.
진욱은 이곳을 두고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님, 아버지에게 양어장 사업 접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아들 두 놈은 이거 안 한다고 하니까 별수 있나?”
김 사장은 아들이 둘 있는데, 모두 아버지의 양어장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거부했다고 한다.
“큰놈은 내가 원룸 건물 두 채 사준 거 가지고 부동산 쪽 일하고, 둘째 놈은 요리사 한다고 나서서 지금 인천에서 횟집 크게 하고 있어.”
“그래도 각자의 일은 해 가는군요.”
“쯧, 그래서 아쉽긴 하지. 노는 놈들이었다면 그냥 시킬 텐데.”
“그래서 말인데, 제가 이 양어장 살 수 있을까요?”
“…뭐?”
진욱은 품 안에서 서류를 꺼내서 한번 읽어 보라고 내밀었다.
“아이구, 나는 요새 눈이 침침해서 이런거 다 한 번에 못 보는데…….”
김 사장은 품 안에서 돋보기 안경을 꺼내 천천히 읽어 봤고, 거기에 대해서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흐으음, 고급 관상어 양식 사업이라.”
“요새 비단잉어나 금붕어 사업이라.”
“그렇지 않아도 양어장에 대한 전문 인력이 필요하고, 관련 생물학자들을 모셔서 고급 잉어를 분양해 보려고 합니다.”
“이거… 예전에 한 번 해 보긴 했지. 비단잉어가 그 당시에 제법 값이 됐거든. 중국 애들 물량에 송어로 바꾼 거지만.”
김 사장은 눈을 반짝이면서 이 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양어장은 계속 사장님에게 맡기겠습니다. 대신 저희가 인근에 연구센터를 만들고 비단잉어 유전자를 위한 연구를 할 만한 적당한 부지를 찾아보겠습니다.”
“하, 하하… 노인네가 이제 와서 사업을 한다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희 부친도 있으시고, 100세 시대 아닙니까?”
진욱은 김 사장을 설득해서 고급 관상어 양어장 부지를 이천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자본으로 아성저축은행, 그리고 연구인력에 대해서 공개채용을 발표했고, 대화그룹과 같이 만든 자회사 AD아쿠아리움이 대주주가 되었다.
보험 상품 개발로 인해서 바쁘게 움직이는데, 그사이에 바로 새 사업을 운영해 나가고 그것에 대한 발표가 언론에 나오자 진욱의 이름은 빠르게 오르내렸다.
[한 마리에 1억도 가능! 고급 관상어의 시대가 온다!]
[2천 원과 1억 원의 차이! 품종개량 관상어 사업이 뜬다!]
[아성사료그룹, 강아지, 고양이, 앵무새에 이어 비단잉어로 4연타석 홈런이 가능할까? 하진욱 부사장의 무한도전!]
* * *
“네, 여보세요? 하진욱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 여기는 해양수산부입니다.]
“……?”
[해양수산부 장관실에서 장관님이 아성사료그룹에서 준비하는 관상어 사업에 대해 같이 논의를 드리고 싶다고 하십니다.]
타이밍이 매우 적절했다.
그동안 중앙사업과 지자체들의 사업을 통해서 성장해 왔던 아성사료였다.
이제는 그 이름이 행정고시 출신들이라면 한 번씩 들어볼 정도로 이름이 알려졌고, 그로 인해 이번에도 관련 공무원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욱은 이 건을 대화그룹 사옥에서 받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바로 전화를 돌렸다.
[네, 회장실입니다.]
회장실의 도도한 비서 목소리를 들은 진욱은 바로 용건을 말했다.
“대화손해보험 미래전략실장 하진욱입니다. 지금 회장님을 뵐 수 있을까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바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진욱은 옷깃을 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회장실에 왔을 때, 담배 한 대를 맛깔나게 태우고 있던 김승열 회장은 조카사위가 들어오자 반갑게 맞이해 줬다.
“오~ 어서 와. 어쩐 일로 다 왔어?”
“언제든 편하게 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하하하! 그래, 내가 그랬지. 앉어, 앉으라고. 커피하고 홍차 중에서 뭐로 시킬까?”
“아이스 커피가 좋습니다.”
김 회장은 바로 비서에게 두 잔 가져오라고 한 다음에 담배를 끄고서 조카사위가 왜 찾아왔는지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와 준 거야?”
“최근에 회장님이 도와주셔서 보험 일을 잘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저희 본가 일도 하고 있었습니다.”
“흐으음, 내 얘기는 들었어. 그 아성저축은행이라는 곳이 큰집이지?”
“네, 맞습니다.”
“거기에다가 무슨 잉어 키우는 사업 한다며?”
이미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모두 들었다는 말.
진욱이 새삼스럽게 왜 그 이야기를 하냐는 투의 김 회장이었다.
“그래도 지금 제가 이쪽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혹시나도 집중을 못 한다는 생각을 하실까 봐 왔습니다.”
“이 사람, 뭐 그런 걸 가지고… 할 거 다 하면서 자네 시간도 가지는데 뭐가 문제인가?”
“그렇긴 하지만, 혹여라도 생길 구설을 좀 지우고 싶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당장에 해양수산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관상어 시장 개발 5개년 계획이라고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답니다.”
“호오~?”
김 회장의 눈이 반짝였고, 큰 건을 맡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면서 진욱에게 물었다.
“우리쪽 보험 상품 개발하면서 또 거기까지 발을 뻗었어.”
“운이 좋았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운이 아니지. 자네가 그만큼 발로 뛰어서 생긴 성과가 아닌가. 하하하하!”
김 회장은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진욱이 가진 고민에 대해 주저 없이 말했다.
“좋아! 대화리조트를 통해 그 합작회사 있지? 거기다가 정식으로 투자하지.”
“……!”
“그러면 보험이건, 리조트개발이건 일단 자네가 대화그룹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은 똑같지 않은가?”
“그, 그렇긴 합니다.”
“이러면 다들 자네가 유능해서 여기저기 손 뻗는 거라고 인정한다고? 어떤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진욱은 바로 김 회장에게 인사를 올린 뒤, 생각하는 것 이상의 목적을 달성하여 커피 한 잔 마시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돌아갔다.
그리고 김 회장은 빈자리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슬슬 규완이 놈을 석유화학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리조트를 아예 저 녀석에게 맡겨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구만.”
성사된다면 그룹 내에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근데… 아무리 거기 출신이라 해도 집안 사랑이 너무 각별하단 말이야. 쯧.”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 쪽이든 이득이 되는 것은 대화그룹이니 딱히 싫은 소리 할 것도 없이 그냥 도와주면 되니 말이다.
* * *
진욱은 반차를 쓰고, 도착한 정부세종청사에서 해양수산부 장관과 대담을 나눴다.
“사실 이번에 아성사료그룹이 이야기 해서 저희가 추진하는 사업이 대세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네, 관상어 사업은 앞으로도 각광받을 겁니다. 그 동안은 문화 차이로 인해서 생소한 개념이었죠. 하지만 우리나라도 곧 대세화가 될 겁니다.”
누구에게는 그깟 물고기 하나가 무슨 수천만 원이나 하고, 그 혈통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450억 달러, 한국 돈으로 45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시장이었다.
진욱은 거기에 발빠르게 움직였고, 때마침 해양수산부에서도 같이 움직여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대화그룹 역시도 이번 산업에 투자 의사를 긍정적으로 밝혔습니다. 일단 저희가 양어장을 몇 곳 인수하고, 궁극적으로는 전문적인 양어장 타운을 만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네, 현재 국립해양박물관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고, 민물고기에 대해서 국립생태원도 있지요. 하지만 전문 판매를 위한 관상어 시장은 아직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진욱은 김 장관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해가 맞아서 떨어지니 이번 사업도 대해서도 잘 진행될 것이라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일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지면서 사인한 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엄청난 암초를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