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17화 (117/200)

117화 너희가 벌인 일이다

“안녕하십니까? 쥬신일보 경제부의 신상철이라고 합니다.”

“네, 오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진욱은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쥬신일보 기자를 불러 직접 인터뷰에 응했다.

“먼저 최연소 임원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31세에 전무 직함까지 받으신 게 대화그룹 역사상 최초라는 것 알고 계셨습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뭐, 저는 상황의 특수성이 있으니 다른 분들과 일반 비교는 힘들겠죠.”

“그래도 전무님이 그 자리까지 오시기에 커리어가 있지 않으십니까?”

“8년 정도의 경력이 이력서에 남긴 했습니다.”

진욱은 인척으로 올라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수도권 외곽 손톱만 한 좋소 공장을 자산규모 조 단위의 중견기업까지 키우는 데 불과 8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

0순위 스카우트로 들어왔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거다.

“대화그룹의 근무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아성사료 시절에는 다른 동료 기자들이 인터뷰를 많이 했었는데요.”

“음, 많은 게 다르죠. 일단 조직의 규모부터 다르다 보니 한 사람의 능력보다는 모두가 합심해서 각 조직의 장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아, 확실히 아성사료 때와는 규모가 다르다는 말씀이시군요?”

“기본 직원만 10배 차가 나니 어쩔 수 없지요. 물론 아성사료도 대화그룹도 저에게는 전부 같이 가야 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진욱의 말에 신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방송에 나오면서 베테랑 기자의 질문에도 조리 있게 대답을 하면서 핑퐁식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다음 질문입니다. 이번에 대화손해보험에서 대규모로 청년 취업을 지원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청년실업 문제는 중요하니까 언제나 일자리를 찾는 젊은층에게 기회는 주는데 당연합니다.”

그러면서 남 일 같지 않다는 듯이 가슴에 손을 얹는 제스처를 취하자 눈치 빠른 신 기자가 뒤에 있는 촬영 기자에게 말해 바로 그 장면을 찍었다.

“솔직히 저도 군필 2년에 대학교 4년 재수로 붙어서 지금 나이인데, 아직 인턴 초입도 못 해 본 동년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든 기회를 주고 싶죠.”

“하하하, 어떻게 보면 그 상황에서 사업을 해 오신 거고요.”

“덕분에 학점이 2점대인데, 회사 성장률은 20%가 되었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욱이 처음 이 삶을 살면서 군필 스물두 살에, 스펙이고 뭣도 없는 몸으로 과거 기억을 살려 학교 다니면서도 학점은 빵꾸 먹어도 회사 성장률은 그 곱절로 올렸으니 말이다.

“네, 특히 보험업에 몸을 담으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만드셨습니다. ‘보험은 보험으로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자칫 흐려지는 기본을 강조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네, 맞아요. 기본. 재무설계도 중요하고 물론 그분들도 금융에 대해 잘 아시니 충분히 그런 말 나올 수 있죠. 다만, 좀 더 전문적인 위기 때 도움이 되는 보험을 강조하는 게 보험사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진욱은 현재의 보험설계사 업계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말했고, 그것 역시도 아마 헤드라인으로 키우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진짜배기는 다음에 나올 이야기였다.

“네, 마지막으로 지난 동방화재 청년인턴 사태 이후, 그때 계약을 못 하고 내몰린 청년들을 고용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네, 그건 제 의지이면서 임원들을 설득해 진행할 겁니다.”

그러면서 진욱은 언론을 타면 이미지를 탈 법한 말을 해 줬다.

“청년의 청춘은 소모품이 아닙니다. 지금 저와 동갑인 나이의 사람들이 기회를 받는다면 얼마든지 저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말에 신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긴 인터뷰를 마쳤다.

“이 정도면 편집장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다 담은 것 같네요.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자리에 일어나서 악수를 할 때, 진욱은 품 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신 기자에게 건넸다.

“아, 그리고 이거요.”

“하하하, 이게 뭡니……?”

흰 봉투 안에 담겨서 혹시나 했지만, 안에 있는 건 돈은 아니었고 스타벅스 커피 쿠폰 여러 장이었다.

“앞으로 다른 분들에게도 인터뷰 진행하실 때, 전망 좋은 커피숍을 많이 이용하실 텐데 자리 섭외 도움이 될 겁니다.”

“하, 하하… 네, 감사합니다.”

진욱은 손을 흔들면서 수행비서들과 다시 63빌딩 대화그룹 본사로 향했고 그걸 받은 신 기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가 준 선물을 어루만졌다.

“하하, 스타벅스 쿠폰… 음, 그래…….”

원래 신규 임원이나, 재벌가 방계 사람들이 대형 언론 경제부 기자들과 인터뷰하면 적당히 백화점 상품권이나 구두 티켓 등을 주곤 했다.

근데 진욱이 내민 3만 원 이하의 스타벅스 커피 교환권을 보니 여러모로 기억에는 남을 거란 생각이 드는 신 기자였다.

* * *

얼마 후.

대화손해보험 교육센터에서는 이번에 채용된 신입 설계사와 사무실 내근 직을 위한 특별 조회가 열렸다.

진욱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시간 방송을 통해서 알렸다.

“네, 우선 우리 대화에 입사하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현재 미래전략실장을 맡은 하진욱입니다.”

자기소개 이후로 진욱은 대화의 역사에 대해 말하면서 옛날 교장 선생님 같은 훈화 대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계신 분들은 과거 다른 회사의 인턴, 혹은 스펙을 위해서 많은 공부를 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적응을 위해서 저희 대화손해보험은 신입 여러분들에게 초기 정착을 위해 3개월에 걸쳐 고용지원금을 지급할 것입니다.”

사실상 제대로 영업을 해서 상품을 팔지 않으면 0도 없는 상황에서, 신규 설계사들을 위하는 회사의 배려.

그리고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지출이라며 반대하는 임원들이 많았지만 진욱이 밀어붙였다.

“원래는 프리랜서의 고용지원금에서 보험업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 지원 대신 저희가 하겠습니다.”

이미 이것만 해도 큰 도박수인데, 진욱은 김 회장에게까지 말해 그것을 설득하면서 진행했다.

그리고 이후에 현 설계사의 각종 지원책에 대해서 알리고, 기반을 다지게 만든 것.

그 결과는 엄청났다.

* * *

[동방화재 갑질 청년들의 반격! 3분기 매출 10.7% 하락!]

[청년실업 품었다! 대화손해보험! 오랜 부진을 털어내고 매출 급상승!]

쾅!!!!

강남 삼성동의 동방그룹 사옥에서는 대표이사가 분노로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가 한 층 전체로 울려 퍼졌다.

“사, 사장님!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대화가 그냥 채용을 많이해서 초반 반짝인 거지, 3개월도 못 가고 금방 끝날 붐입니다.”

임원들이 쩔쩔매면서 분노한 김명호 사장을 말렸지만, 그는 그 말에 더 뚜껑이 열렸다.

“초반 반짝이요? 그래서 내가 진정하라고?”

“그렇습니다! 사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초반에 이놈저놈 끌어들여서 가입은 시키다 3개월도 유지 못 하고 고객 해지로 수수료 환수되는 걸 말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이 업계에서 수십 년간 근무했던 잔뼈가 굵은 인물들.

그래서 지금 대화손해보험의 약진은 반짝이라고, 분노하는 사장에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만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김 사장을 분노하게 했다.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우리 쪽 상품이 해지되면서 이탈하고, 그게 그대로 대화로 가는데!”

“그,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쪽만 뜨는 게 아니라 우리 쪽 매출이 날아간다고!”

분노한 명호는 집토끼를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장 전 지사 소집해서 이탈 고객 최대한 막고, 추가 받으라고 해! 그리고 이번 누적 손익에 대해서 작년 대비 떨어지면 다들 사표 받을 거니까 좀 위기감을 가지라고!”

단순한 논리.

동방이 잔뜩 채용한 설계사들의 주변 기고객들을 전부 빨아먹어 그 자리에 오른 뒤, 그들의 수익이 저조하자 그대로 팽해 버렸다.

그 상황이 언론을 타고, 대화손해보험이 잽싸게 그들을 경력직으로 영입하면서 고용지원금을 살포하자 동방에 가입했던 주변 고객들이 바로 새로 옮긴 회사의 설계사들에게 자연스럽게 해지 후 새 상품 가입으로 넘어간다.

이게 계속될수록 한쪽의 자본을 다른 쪽이 갉아먹는 구도였다.

물론 임원들의 말대로 장기 유지를 못 한다면 결국 돌고 돌 돈이지만, 눈앞에서 지표가 보인다는 게 김명호를 빡치게 만들었다.

“내가 이 회사 금융그룹으로 재편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딴 말이 나와?”

헐크가 된 김명호 앞에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떠는 임원들.

그 상황에서 안 좋은 일은 연달아 터졌다.

쾅!

“사, 사장님!”

“또 뭐야?!”

“죄송합니다! 지금 밖에… 밖에…….”

“밖에 뭐?!”

김명호가 짜증스럽게 집무실 창문으로 내려다보자 그 앞에는 진짜 난리가 나 있었다.

“후우… 저건 또 뭐야?”

동방그룹 사옥 앞에는 인도를 점거하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 시위를 시작했다.

* * *

[3년간 등골 빼고, 정규직은 빵 명이다. 이게 회사냐?!]

[동방그룹! 사죄하라! 사죄하라!!]

[계약할 땐 우리 고객! 청구할 땐 누구세요? 동방화재 각성하라! 각성하라!]

[동방화재!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종 시민단체에, 동방화재 보험금 문제로 시달린 피해자들이 모여서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에 들어갔다.

활기가 넘치는 금융의 메카 테헤란로에서 스피커를 크게 틀고 천막까지 치고 장기 농성할 상황이 되자 황급히 동방그룹 경호팀에서 경찰을 불렀지만, 이미 합법적으로 신고한 집회라고 한다.

시위는 계속됐고, 졸지에 동방화재 하나로 전 그룹이 악덕기업 이미지를 뒤집어쓴 동방그룹 임직원들은, 퇴근과 출근을 할 때마다 시민단체들의 폭언과 농성에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시위가 계속될수록 직원들 사기는 떨어지면서, 주가도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언론에서 동방화재에 대한 이슈가 나오면서 고객들의 기존 보험 상품 해지에 대한 논의로 고객센터는 불이 나고 있었다.

“…….”

[동방그룹! 각성하라! 각성하라!]

[동방화재! 사죄하라! 사죄하라!]

쩌렁쩌렁한 스피커 속에서 그동안 무대응으로 버텼던 동방그룹에서 김명호 대표이사가 나올 때였다.

[여러분! 지금 동방의 사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동방 사장 김명호다!!]

시민단체들이 그룹 사장을 보고서 우루루 달려들어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시위대가 동방그룹에 대한 책임을 묻는 피켓들을 내밀었다.

경호팀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밀쳐 내고, 시위대를 벌레 보듯 하면서 걸어가는 김명호 사장.

그가 차까지 나가려고 할 때, 테헤란로 반대편의 길에서 누군가 보였다.

“……!?”

“오~ 이 동네 시위 오래 가네?”

그저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그것을 보고서 한마디 한 인물.

진욱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절묘한 타이밍에 진욱과 김명호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와인 연회장 때 만났던 그런 마주침, 그리고 진욱은 그때와 똑같이 먼저 인사를 했다.

다만 이번엔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잘해 보라는 뜻으로 손만 살짝 흔들었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분노한 명호의 얼굴은 못 보고 가는 길에 중얼거렸다.

“설마 내가 시민단체 선동했다는 소리는 안 하겠지? 이건 진짜 우연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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