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15화 (115/200)

115화 슬슬 견제 들어오나?

진욱은 아성펫푸드 재가 서류 건을 잔뜩 챙긴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왔을 때, 언제나 반기는 반려동물들과 세화가 있었다.

“오셨어요?”

“어, 오늘 이거 확인하고, 시험 준비도 해야 돼.”

진욱이 가져온 것은 아성펫푸드 자료뿐만이 아니라 지금부터 배워야 할 시험지가 있었다.

“내가 진짜 살면서 보험설계사 시험을 다 볼 줄은 몰랐네.”

진욱은 대화손해보험 파견을 준비하면서 정리하는 기간 동안에 그쪽 관련 자료를 준비했다.

그래도 보험업 쪽으로 가니까 이 기회에 하나 따 보기로 했고, 생명보험이나 변액보험에 대한 공부도 하면서 교차설계사 시험을 차례차례 할 예정이었다.

“보험이라… 옛날에 저는 부사장 아저씨한테 가입했었어요.”

“근데 필요하긴 할까…….”

“그러게요. 제가 암 2억이라는데, 그건 당장 은행장 연락만 해도 나오는데.”

재벌가의 위엄이라고 할 수 있는 세화의 말이었다.

보험에 관해서는 예전에 금감원 근무 시절에 민원 받는 용도로 많이 봤어서 익숙하긴 했다.

‘그리고 나한테 저축하고 자산 관리해 준다고 온 친구들도 있었고…….’

생각해보면 재경부 관리한테, 자산 관리를 해 주겠다고 왔던 그 친구들은 굉장한 용기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어쨌건 교육기간 E러닝으로 이수하고, 딱히 교육 필요 없이 그냥 통째로 교재를 읽은 다음에 바로 손해보험 협회에서 주최하는 시험을 볼 예정이었다.

120점 만점에 65점만 넘으면 된다고 하고, 문제의 난이도도 굉장히 쉬웠다.

진욱은 여러 서류를 가지고 집무실에서 매달렸고, 세화는 조용히 마실 것과 야참을 가지고 남편을 내조했다.

그렇게 계속 바쁘게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신혼의 달콤함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쉬워하는 그녀였다.

* * *

[다음 소식입니다. 대화그룹이 본격적인 3세대 경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는 인사 이동에서 김승열 회장의 장남인 김규완 상무가 리조트 해외사업 본부장에 임명되며 금융과 건설, 군수업에 이은 관광업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간간이 TV에도 많이 나왔던 진욱이었지만, 대화그룹을 언급하면서 규완과 더불어 자기 얼굴이 뉴스에 나오니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특히 이번 인사이동에서는 아성사료그룹의 하진욱 부사장이 대화손해보험 상무에 임명되어 금융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 상무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에 노동부장관 표창상을 받았던 주목받는 벤처기업인 20인에도 올랐던…….]

자신에 대한 스펙을 줄줄이 외울 때, 진욱은 저런 용비어천가 같은 거 말고 대화그룹 주식에 관련된 사이트들을 찾아봤다.

[존버: 아성펫푸드에 하진욱이 대화 영입? 이거 뭐죠?]

[10루타: 하진욱 부인이 김승열 조카임. 조카사위 밀어주려고 부른 거임.]

[존버: 아성사료 주가 보니까 제법 건실한테 믿을 만한가요?]

[가즈아: 근데 사료 공장 하던 양반이 갑자기 금융 쪽으로 가는 게 뜬금없긴 하네, 여기서 조지면 대화손해보험 답 없는데.]

개미들이 모이는 주식방에서 보니 반반의 호불호가 딱 느껴졌다.

대다수는 진욱에 대해 아는 코스닥 전문 주식투자자들의 말이었지만, 반대로 ‘사료업 원툴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보험업이냐?’라는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진욱 본인 자체도 금융업 도와달라는 말에 ‘그쪽에 왜 나를 부르냐?’ 싶은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진욱이 결정한 일이었다.

일단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대가를 충분히 받으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진욱은 그것을 위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를 받기 위해 상록 본가로 가서 어머니가 절대 못 데려간다는 자기 강아지 요키를 데리고 하룻밤 묵고 왔다.

* * *

여의도 대화그룹 사옥 63타워.

회장님이 직접 임명장을 주는 수십 명의 임원 속에 진욱이 대표로 앞에 나섰다.

저 뒤에는 부사장이나 사장급의 임원들도 있으나 상무 대우인 진욱이 앞서 나간다는 것은 그가 다른 고용 경영인들과 궤가 다르고, 회장이 직접 핵심 인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임명장을 주면서 대화손해보험 ‘미래전략실장’이라는 직책을 받은 진욱은 김승열 회장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

“잘 부탁하네.”

“네, 회장님.”

진욱의 뒤로 임명장을 각각 받고 인사이동에 따라 움직이는 임원들.

그리고 진욱은 따로 규완과 같이 회장실로 부름을 받았다.

비서실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같이 들어온 이들.

이제는 한 식구라고 할 수 있는 셋이었다.

“조카 사위는 담배 태우나?”

“아, 저는 안 핍니다.”

딱- 딱- 치익-

“앞으로 사업 하다 보면 이 불 과자 생각이 많이 날 텐데 말이야.”

김 회장은 소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끽연을 즐겼다.

그리고 아들과 사위에게 앉으라고 한 다음에 비서를 불러 차를 대접했다.

“둘을 이렇게 보니까 정말 든든하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런 자리에서는 그냥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잖아.”

다른 재벌 회장과 다르게 굉장히 털털하고,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을 중시한다는 김 회장.

물론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재벌에 한한 거라 이분도 크고 작은 구설수가 있긴 하지만, 일단은 진욱을 전적으로 지지해 주는 같은 편이자 든든한 처백부 어른이었다.

“그리고 조카사위?”

“네, 회장님.”

“이번에 보험 좀 부탁하네. 자네라면 잘할 거야.”

“하하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김 회장은 담배를 뻐끔거리면서 진욱에게 대화그룹의 옛이야기를 꺼냈다.

“원래 돌아가신 아버지가 군수공장을 물려받아 시작한 회사였어. 화약과 포탄을 만들다가 보험사를 인수해 금융업을 시작했고, 그 뒤로 내가 유통업까지 적극적으로 개발해서 지금의 이 그룹이 된 거야.”

“아, 네…….”

“근데 아들 녀석이 리조트 사업으로 잘나가는 건 뿌듯하긴 하지만, 정작 집토끼가 시들시들하단 말이지. 현재 우리 보험사가 업계 몇 위인 줄 알아?”

“삼정생명과 1위 싸움을 하는 걸로 압니다.”

“그건 회사 전부 다 합쳤을 때. 그것도 생명보험 쪽이 커서 그렇지 나머지는 영 젬병이야~.”

그러니까 신사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기존의 사업체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니 구원투수로 조카사위를 픽한 거라는 김승열 회장의 뜻이었다.

“현재 대화손해보험이 업계 6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4위였어. 메리안화재랑 한경화재한테 밀려서 지금까지 온 게 문제지. 내가 그래서 자네를 부른게 아닌가?”

둘 다 금융 전문 기업집단인 메리안 그룹과 한경그룹의 핵심계열사로 네임드 보험사들이었다.

진욱은 현재 업계 상황을 대략적으로 공부해서 돌아가는 것을 알기로 했고, 본격적으로 일 시작 전에 한 번씩 둘러볼 셈이었다.

“암튼 잘해 보게나. 내 팍팍 밀어주지.”

“알겠습니다. 회장님, 기대에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규완이 너도.”

“네, 아버지!”

김 회장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실을 나온 뒤로 규완은 진욱을 불러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주말에 세화 데리고 파티 한번 나갈래?”

“갑자기요?”

진욱이 뭔 소리냐고 물을 때, 규완은 품 안을 뒤적거리다가 티켓 하나를 꺼내서 건네줬다.

“골든에라 호텔 파티?”

“원래 내가 가려고 했는데, 내가 상하이 출장을 가야 하거든. 거기 공사 골치 아프게 됐더라.”

“그래서 제가 대신 가야 되는 건가요?”

“거기 와인도 좋은 거 많고, 재벌가 웬만한 애들 다 올 거야. 티켓 내 거 가지고 가면 프리패스다.”

“후우- 안 그래도 바쁜데…….”

“그러니까 좀 쉬라고 주는 거야. 어차피 지금은 아직 미래전략실 사람 다 안 모였고, 이번 기회에 좀 와이프 좀 챙겨라.”

“뭐, 하긴…….”

규완은 자신이 불러서 진욱의 업무량이 늘어난 것에 대해 미안해하면서 연회 같은 걸 가 보라고 제안했다.

진욱은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부부 사이가 요새 좀 그러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번 가 보죠.”

“그래, 프라자 호텔 VVIP로 옷 두 벌 맞춰 줄 테니까 입고 같이 가 봐.”

규완의 선물에 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파티라… 네, 세화랑 같이 가 볼게요. 하지만 그전에…….”

“음?”

“형님, 출장 가시기 전에 대화손해보험 사람들도 좀 만나고, 관련 재무제표 좀 봐야겠네요.”

쉬는 건 쉬는 거고, 일단은 여기 출근을 해야 되니까 사람들부터 만나야 했다.

“그래, 같이 가 보자. 나도 아는 분들 많거든.”

리조트 사업부지만, 사실상 전 계열사의 임원들을 알고 있는 규완의 소개로 진욱은 금융사업부 쪽으로 향했다.

* * *

“휘유~.”

“이런 자리 진짜 오랜만이지 않아요?”

“그러게, 내가 너무 무심했지?”

“알았으면 됐어요.”

서울의 몇 안 되는 5성급 호텔인 골든에라 연회장에 도착한 진욱과 세화 내외는 규완이 고용한 디자이너들이 맞춰 준 연미복 차림으로 항공권을 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는 정말 화려 그 자체의 연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이 그림!”

“유명한 거야?”

“레온 페르난데스라고 스페인 현대미술가 그림이에요.”

“현대미술… 이게?”

진욱이 알고 있는 보통의 현대미술 하는 난해한 그림은 아니었고, 그럭저럭 ‘이거 비싸 보인다.’ 정도는 알 수 있을 작품이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각종 조각품들도 최소 경매시작가 1억부터 시작할 것들이 잔뜩 있었다.

거기에 와인은 진욱도 처음 보는 브랜드의 제품이 구대륙과 신대륙 별로 가득했는데, 한 모금씩만 시음해 봐도 굉장한 퀄리티였다.

“흐음, 좋네?”

“그러게요.”

오랜만에 좋은 자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지라 좋아하는 세화.

진욱은 그간 일에 치여서 소원한 사이를 오늘로 풀기로 했다.

그렇게 두 부부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한 무리가 진욱과 세화를 보고는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뭐야, 김규완이 아니라 저쪽이 왔어?”

“사장님, 누굽니까?”

“하진욱이라고, 있어. 개밥 파는 놈.”

대놓고 진욱을 ‘개밥 파는 놈’이라고 하찮게 보는 인물이었다.

“아, 그 대화그룹 사돈된 거기 아닙니까?”

“제일의 이성철이가 저놈한테 한 방 맞고서 식품 사업 쪽으로 눈길도 안 준다잖아?”

‘그’는 진욱과 악연이 있는 제일그룹 이성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유통업계에서 날뛰면서 언론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도, 그저 애완동물 푼돈 장사하는 정도라고 깔아뭉갰다.

“그러고보니 저 녀석…….”

“네?”

“이번에 김 회장님이 픽해서 보험업계로 왔다잖아? 그럼 자주 만나겠는데?”

“아, 대화손해보험 경영팀에 합류한 게 저 친구… 네, 맞는 것 같군요. 인사라도 해 볼까요?”

인사를 묻는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면서 자리를 기다렸다.

“그래도 와이프 앞에서 개쪽은 아니지. 뭐, 먼저 접근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들이 계속 진욱 쪽을 보면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진욱 역시도 계속 자신을 보는 시선에 뒤통수가 따끔거렸고, 세화에게 물었을 때 그의 정체를 알고는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났다.

“그 사람이야? 그럼 인사라도 해야겠네.”

“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저도 실제로 얼굴 본 적은 없어서…….”

“잠깐 갔다 올게.”

진욱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모르고, 와인 잔을 든 채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진욱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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