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13화 (113/200)

113화 넘버 원과 온리 원

진욱은 시애틀에 머물면서, 이번 협상을 위해 장문의 PPT를 메일로 보냈다.

물론 초조하게 기다리기보다는 쇼핑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한국에 보내면서 톡을 주고받았다.

[세화: 나도 시애틀 가 보고 싶어요.]

[진욱: 다음에 꼭 데려갈게. 이번 일 끝나면 당분간 출장 없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세화:ㅇㅇ 잘하고 와요.]

간간이 여기 풍경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는데, 진욱이 보내 주면 그걸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고 화방을 찍어 답장했다.

그래도 착한 아가씨여서 남편이 일하는 와중에 끊임없이 연락하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진욱은 혼자 진행할 때와 남들이 응원할때 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후우~ 그럼 다시 나가 볼까?”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던 진욱은 세화가 보낸 메시지를 저장하고 기지개를 켜며 나갔다.

그날 저녁 호텔로 다시 돌아왔을 때, 오늘 찍은 사진과 인터넷 기사를 종합했다.

“시애틀이 확실히 다르긴 하네, 반려동물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

미국 내에서 가장 자유가 넘치는 곳이라고 알려진 시애틀, 그래서인지 동물권이나 각종 사업에 대해서도 리버럴했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버려진 유기동물까지 데려와서 수천 마리를 운용할 수 있는 유기동물 보호소가 여러곳, 거기에 천연 재료로 만든 사료와 각종 펫푸드 시장이 인상적이었다.

“애들도 입맛 따진다 이건가?”

이게 무슨 ‘노 MSG’ 마케팅도 아니고 강아지가 먹는 식품에도 화학조미료나 감미료가 없는 천연식품, 그리고 진욱이 한때 만들었던 비건 식품 등의 다양함이 넘쳤다.

“이런 시장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진짜 선점이 중요한데…….”

진욱은 낮밤으로 관련 자료 조사를 하면서 그날도 피로에 젖어 잠들었다.

이미 자기 어깨에 수천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 때문에 더욱더 힘이 들어간 진욱이었다.

* * *

그리고 마침내 연락이 왔다.

[오케이, 그럼 그곳으로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진욱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면서 드디어 성공했다고 쾌재를 불렀다.

“약속 잡혔어요! 아마조나랑 단독 협상합니다.”

“와아아아아!!!”

“부사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화상 채팅을 통해 하는 회의에서 애틀란타와 테네시에 있는 직원들 모두 환호하면서 연신 진욱을 향해 박수쳤다.

“그쪽은 하니마트 협상 잘하고 있죠?”

[네, 바로 납품 준비하고 있고, 카스트코 역시도 바로 전문 유통업체 계약해서 납품할 겁니다.]

“좋아요! W마트에서 날린 거 저희가 발품으로 메꾸는 겁니다. 다들 잘하실 수 있으시죠?”

[네! 부사장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우렁찬 함성.

진욱은 그들을 향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서 회의를 마쳤다.

이후 한국에서도 지사장을 통해 소식을 들은 회장 상만이 연락했다.

[아마조나하고 거래를 한단 말이야?]

“오프라인 시장에서 눈탱이 맞았으니 온라인도 노려야죠.”

[하하하, 진짜 하 부사장 아니면 생각도 못 할 일이구만.]

이제는 진심으로 진욱이 없으면 이 회사는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해 주는 상만.

한 그룹의 회장으로써 할 말은 아니지만, 아버지로써는 몇 번의 찬사를 보내도 부족하지 않았다.

“제대로 협상이 된다면, 그때 칭찬해 주세요. 일단 커피 한 잔의 약속만 받은 상태입니다.”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협상 끝나는 대로 바로 연락 줘!]

통화를 마친 진욱은 바로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하고 거울을 보면서 호텔에 룸 서비스를 요청했다.

“헬로-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필요한데, 몇 벌 올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욱은 계약을 위해 새 옷과 넥타이를 받고 산뜻한 마음으로 나섰다.

* * *

“안녕하십니까? 하진욱이라고 합니다.”

“미스터 하! 만나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아마조나의 랜스 만시니라고 합니다.”

짧게 자른 머리에 희끗희끗한 흰 머리가 보이는 50대 전후의 중년 백인 남성은 시원시원한 인사 이후에 커피를 시키면서 호텔 라운지에서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픈마켓의 넘버 원 아마조나와 협상을 하게 되니 영광입니다.”

“우리 또한 온리 원을 만나서 영광이에요.”

“온리 원이요?”

진욱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어서 미소 띈 얼굴로 되물었다.

“한국에서 반려동물 용품 사업으로 굉장한 성공을 거두신 것,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까지 큰 성공은 아닌데요.”

“오! 아닙니다. 저도 집에 그레이트 데인 두 마리를 키우는데 미스터 하의 제품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폰에서 앨범을 열어 사진을 보여 줬다.

웬만한 어린이보다 큰 개 두 마리가 입마개를 한 채 공원에서 해맑게 웃는 만시니와 찍은 모습이었다.

“대형견을 키우시는군요.”

“하하하, 그래서 매일 산책하느라 다리가 쑤십니다.”

“저는 요크셔를 키웁니다. 유기견을 분양받았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키우고 계시죠.”

서로가 애견인으로써 대화를 주고 받자 점점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랜스 만시니는 대화를 할 때마다 아성펫푸드와 아성사료의 제품들을 보여 줬다.

“얼룩말 고기는 정말 없어서 못 먹더군요.”

“아, 그게 동남아에서 말고기 대장균 파동 덕분에 대체재를 찾다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유통은 되는데 사람들이 잘 안 먹는 고기인데, 이게 사료용으로는 정말 좋더군요.”

“저희 아마조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가진 아성과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온리 원의 미스터 하가 있다면 믿을만 합니다.”

카스트코에 이어 아마조나도 아성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자 진욱은 순간 처음부터 미국 남부가 아니라 서부 쪽에서 시작을 할 걸 그랬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온리 원이라는 별명이 좀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 그럼 어디 카드를 협상해 볼까요?”

“네, 그런 의미에서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서류 가방을 뒤적거리는 게 미리 출력한 것을 보여 주는 것인가 싶었는데, 랜스 만시니가 보인 것은 태블릿 PC였다.

“아, 이걸로요?”

“저희는 종이를 잘 쓰지 않습니다. E-북 시장으로 진출한 회사의 문화이죠.”

“흐으음.”

“그 태블릿은 저희가 바이어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

아마조나가 처음에 전자책으로 시작한 거야 모두가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잘 쓰는 종이 서류가 아닌 태블릿으로 계약서롤 보이고 아예 이 제품을 가지라고 선뜻 내미는 건 좀 신박했다.

‘극한의 원가절감과 박리다매로 쥐어짠다고 하더니만, 이런 곳에서는 또 큰손인가?’

진욱은 선물로 받은 태블릿에 감사를 표하면서 큰 화면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계약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검토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 그리고 한국에서보다 낮은 수수료에 그렇게 빡빡하지 않은 납품 기일을 보고 있자니, 정말 W마트가 얼마나 갑질을 했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번 주 내로 연락을 주신다면, 저희가 담당 기자를 붙여서 미스터 하의 아성 펫푸드에 대해서도 홍보를 하겠습니다.”

“그거 반가운 말이군요. 빠른 계약이 좋죠.”

진욱은 랜스 만시니와 악수를 하면서 아마조나까지도 뚫을 수 있었다.

* * *

계약은 바로 이어졌고, 아마조나는 적극적으로 아성사료를 푸쉬해 줬다.

“축하합니다. 미스터 하.”

“아닙니다. 앞으로 서로 돈 벌기 위해 윈윈합시다.”

악수를 나눈 사진을 찍는 모습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 것 같았다.

* * *

아마조나와 거래를 마친 뒤로 진욱은 인천공항에서부터 부모님과 그룹 임원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꽃다발을 받았다.

“애썼다! 정말 애썼어!!”

꽃다발을 주면서 와락 끌어안는 상만과 원숙.

그리고 그 뒤에서 또 다른 꽃다발을 가지고 있는 세화도 있었다.

진욱은 부모님과의 포옹 이후 아내에도 불러 확 끌어안아 줬고, 그 모습을 보며 임원들이 물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출근하면서 하자.”

“내일이요? 그냥 근처 회의실 하나 임대해서 바로 이야기하죠.”

“그, 그럴 필요 있어? 며느리까지 오지 않았니?”

상만이 만류했지만, 진욱은 이왕 이렇게 모인 거 그냥 다 같이 듣자면서 공항 내에 있는 임대 회의실 하나를 빌려 바로 들어갔다.

그 상황에서 남은 것은 어머니 원숙과 아내 세화.

진욱은 둘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손을 모았다.

“미안해요. 회의 빨리 끝낼게요.”

“괜찮아요. 제가 어머님하고 같이 근처 카페에 있을게요.”

“아이고, 무심한 놈이 마누라 앞에 두고서 일만 하려고 하니.”

원숙도 볼멘소리로 한마디 했지만, 진욱은 이 건은 빨리 끝내야겠다면서 연신 사과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진욱은 선물 받은 태블릿과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서류를 공개했다.

“먼저 하니마트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전미의 지점 80개가 넘는 그 곳에 다음 달부터 바로 물건 들어가고, 현재 레슬리에서 위탁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W마트로 가지만, 저희 브랜드의 생산품은 하니마트로 갈 겁니다.”

“그쪽은 얼마 써야 하는 거야?”

상만의 물음에 진욱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브랜드 입점 이후 매장 오픈에 대한 것도 그쪽에서 해 준다고 합니다.”

“뭐? 그게 진짜야?”

“허어~ 이중으로 금액이 빠질 리는 없겠군요.”

“다행입니다. 회장님.”

이정열 상무와 김유현 사장 모두 새 거래처 남품을 두고서 매장 오픈할 때 비용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해결해 주겠다는 말에 안도했다.

“이제 모두가 알 수 있겠군요. W마트가 얼마나 양아치인지요.”

그들과 계약을 하면서 그동안 미국 시장을 위해 투자한 금액이 얼마나 말이 안 됐는지 알수 있었다.

W마트는 매장 오픈 비용, 그리고 매장 이벤트 리모델링 비용과 리뉴얼까지 모두 납품업체가 부담하게 하는 악명 높은 방식으로 갑질을 행사했다.

모든 업체가 다 그렇게 시작하고 계약했다니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했지만, 결국 납품 5분 늦은 걸로 1천만 불 날리는 데 트리거가 됐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결심했다.

“이번 계약 끝나면 저희 그냥 W마트 물건 빼 버립시다.”

“네?”

“부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하 부사장. 그건 좀 오바야!”

이건 다른 임원들은 물론이고 상만 역시도 화들짝 놀랄 말이었다.

W마트가 물론 악명 높은 갑질로 아성이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몇십 년간 미국 유통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한 회사를 이번의 트러블로 제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수였다.

물론 W마트 다음가는 카스트코, 그리고 확실히 푸쉬해 준다는 하니마트, 오픈마켓 시장의 강자로 차기 유통시장 절대강자를 노리는 아마조나가 있다 하더라도 W마트를 대체할 일은 앞으로도 힘들거다.

하지만 진욱은 단호했다.

“일단은 계약 이후 그쪽에서 재계약 논의 없으면 미련없이 발 뺄 겁니다. 그리고 아쉬우면 그쪽이 다시 재협상을 시작하겠죠. 그때까지는 저희도 행동을 보여야 합니다.”

국내에서 재계서열 1위인 삼정보다도 큰 W마트를 상대로 진욱이 깃발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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