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미국 시장의 매운맛
진욱은 한국에 온 뒤로 더 바빠졌다.
상록과 강남을 1주일의 시간을 쪼개고, 주말도 시간을 할애해서 회사 일에 매달렸다.
주말에 출근할 때마다 대놓고는 말 안 해도, ‘마누라 놔두고 뭐 하는 짓이냐!’라고 아버지가 한마디씩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진욱의 일 처리였다.
그렇게 오늘도 밤 10시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나 왔어.”
“어, 늦었다.”
“……!?”
냐아아아아아-
안에서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 그리고 때맞춰 달려온 고양이가 진욱의 정장 바지에 부비대면서 털을 막 묻혔다.
진욱은 맨날 자기 손을 깨무는 고양이를 집어 안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 누구 왔… 어우, 형님.”
“응, 나 왔어~.”
규완이 반갑게 손을 흔들 때, 그 앞에는 각종 요리가 가득한 술상이 벌어져 있었다.
“우리 매제는 얼마나 바쁘면 연락을 해도 안 받아?”
“아, 그게…….”
“괜찮아. 바쁜 게 좋은 거지.”
낄낄거리면서 소주병을 들고 자작하는 규완 앞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재킷만 벗어서 앉은 진욱이었다.
“어떻게 저희 집까지 오셨어요?”
“우리 매제 어떻게 사나 보러 왔지?”
규완은 한잔 받으라며 따라 줬고, 둘은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졌다.
세화 역시도 음식을 갖춰 주고 진욱의 옆에 살며시 앉자 규완은 활짝 웃으면서 박수쳤다.
“둘은 진짜 잘 어울린다니까.”
“고마워요. 오빠.”
셋이 기분 좋은 술자리를 가졌고, 결혼식 썰부터 그동안의 이야기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 소주 한 병 더 가져올게요.”
“응, 부탁해.”
세화가 잠시 거실로 갔을 때, 규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욱에게 말했다.
“매제, 이번에 미국 진출 말이야. 유통업체 잘 정해야 하는 거 알지?”
“네, 그렇지 않아도 전문 업체를 고용하긴 했어요.”
진욱은 정식으로 미국 법인 설립을 하고 유통망을 뚫으려고 할 때, 중안무역을 통해 전문 납품 업체도 소개받았다.
“K-트랜싯이라는 기업과 계약을 했습니다. 지금 회사 영업부 사람들하고 협상 중이지요.”
“흐음, 그래. 거긴 전문 운송업체가 필수야.”
현재 미국 오프라인 유통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큰 기업은 역시 W마트다.
한때 국내에도 진출했으나 현지 시장 조사 실패로 사업에서 철수하고, 신누리 그룹의 S마트로 모두 넘겼었던 기록이 있었다.
“거기가 말이야. 진짜 갑질이 심해. 그거 조심하라고.”
“네, 저도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습니다. 조심해야죠. 결국은 장사니까요.”
규완은 자신이 주의를 준 것에 대해 찰떡같이 알아듣는 진욱을 보면서 연신 미소를 보였다.
“그나저나 지난번에는 정말 고마웠어. 내가 우리 매제 아니었으면 중국에다가 수조원 꼬라박을 뻔했잖아.”
지난번 규완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중국 복합 리조트 단지 사업은 진욱의 조언으로 막았었다.
결국 중국 시장은 아쿠아리움 한 채로 대폭 줄이고, 그 투자를 베트남으로 돌렸는데, 공교롭게도 삽을 푸자마자 ‘한반도 사드 배치’로 인해서 중국의 한국 경제 규제가 일어난 것이었다.
덕분에 대화그룹은 폭풍을 피해 갔고, 중국 대망론을 외치던 다른 대기업들은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 지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덕분에 대화그룹 내에서도 아성사료그룹은 사돈을 넘어서 든든한 우방이 되었고, 진욱이 마음만 먹는다면 일가의 참모 역할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규완은 앞으로도 부탁한다며 술잔을 기울였고, 진욱은 형님과 같이 좋은 자리를 보냈다.
* * *
2016년.
새해가 시작되고 아성사료는 펫푸드와 축산사료 업계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려 이제는 대중적으로 이름값도 오르고 있었다.
“이번 신입사원 공채 명단 봤어?”
“네, 제법 명문대 출신들이 많이 왔더라고요.”
“흐흐흐, 10년 전에는 생각도 못 할 일인데 말이야.”
그 시절의 아성사료는 그룹이고 뭐고 상록시에 새끼손가락만 한 공장 하나가지고 벼룩시장이나 동네 전단지로 채용공고를 내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던 좋소기업이었다.
하지만, 위상과 덩치가 커진 이후로 이제는 기업집단에, 대화그룹과의 사돈이라는 버프를 받아서 인서울 명문대와 지거국 출신들이 많은 지원을 했다.
“앞으로 대기업 출신들 비싼 돈 주고 스카우트하는 건 줄이세요. 이제부터는 직접 공채로 채용하고 키우는 쪽이 더 잘 먹힐 겁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리고 국립대 쪽하고 협약을 하나 맺기로 했어요.”
“으응?”
진욱은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아버지에게 보였다.
상만은 그것을 펼치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한 장 한 장씩 넘겨 보면서 돋보기 안경을 꺼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흐으음?”
“지방거점 국립대 취업지원으로 교육부하고 이야기한 겁니다.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는군요.”
이제는 아성사료그룹이 되면서 대규모로 국가 지원을 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큰 건을 가져온 진욱이었다.
내용은 청년 실업 문제로 지방거점국립대 지원 사업으로 아성사료그룹에서 일부 학생들을 전문 채용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고, 거기에 따른 지방에 지사 설립 시 각종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연구 개발 생각하면 농대, 아~ 지금은 생명과학대나 바이오대학이라고 하죠. 여튼 그쪽 출신들을 많이 데려올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우리야 뭐 땡큐지. 안 그래도 진미 쪽이 전남대에서 꽤나 큰 세력 아니냐?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면 되겠구만.”
“부산도 신경 써 주세요. 저희 PK바이오랑 부산 공장 키우느라 그쪽 시장이 매일 연락한대요.”
“오케이! 그럼 전남대와 부산대 쪽하고 내 이야기 한번 해 보마!”
잘하면 아성사료의 상록공장, 부산공장, 양산공장에 이어 네 번째는 호남에서 새로 만들어질 것이다.
진욱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 웬만한 건은 그냥 회장인 아버지에게 내밀고 그것을 김 사장 외 실무진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상만 역시도 그것을 잘 알기에 국내시장 내실을 다지는 것은 전적으로 김 사장을 밀어주면서 서로 손발이 척척 맞게 컨트롤해 나갔다.
그렇게 국내도 해외도 탄탄대로로 진행되면서 베트남 공장과 미국 테네시 공장이 빨리 완공되기를 기다릴 때였다.
* *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반품이라니요!!!”
진욱은 강남사옥 집무실에서 국제전화로 온 폭탄선언에 소리를 빽 질렀다.
[죄,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아무래도 물류 쪽에서 사고가 있었나봅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 물건을 죄다 반품시켜요? 100억어치를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잘나가다가 미국에서 폭탄이 하나 터져 버렸다.
진욱은 황급히 상황을 듣고는 바로 상록 본사에도 보고서를 올렸고, 상만이 바로 전화해서 이게 무슨 일이냐면서 당장 상록으로 오라고 말했다.
진욱 역시도 오늘은 좀 칼퇴근하나 싶었는데 벌어진 사고에 황급히 내려갈 준비를 했다.
“야, 부사장! 뭐야? 무슨 일인데?”
“누나! 당분간 여기 좀 맡아 줘!”
“뭔 사고 터졌어?”
“나중에 이야기할게!”
이번에도 강남 사옥 컨트롤은 누나 진영에게 맡기고 황급히 떠난 진욱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려 상록 본사에 도착하자 이미 안에서는 긴급 회의를 위해 많은 임원이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아,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김유현 사장이 일어나 진욱을 맞이했고, 그 역시 오면서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바로 태블릿을 켜고 상황을 살폈다.
“미국에서 천만 불 빵꾸 난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잘나가다 갑자기 왜?”
상만은 초조한 마음에 요새 끊는다고 했던 담배를 다시 물면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유현이 보고받은 것에 대해 말했다.
“현재 미국 지사에서 표 지사장이 보낸 내용입니다. 이번 달 W마트에 납품하기로 한 것이 물류센터에서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아니, 무슨 사고인데 전부 반품 처리인거야? 설마… 제품 하자인가?”
“저, 그것이…….”
“김 사장. 좀 확실하게 말해 봐요! 뭐 때문에 그놈들이 죄다 반품 처리했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진욱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W마트에서 납품 시간을 늦췄다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파기한 채 물류센터에 있는 우리 제품들을 모두 반품시켰다고 합니다.”
“아니, 납품 시간이 얼마나 늦었다고 그러는 건데?”
“중간에 트럭 한 대가 고장나서… 5분 늦었답니다.”
“뭐?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어? 그럼 고작 5분 늦었다고 1천만 달러 어치의 물건을 죄다 빠꾸 먹였다고?”
W마트가 제대로 아성에 재를 뿌렸다.
미국 최대, 아니 세계 최대의 오프라인 유통업체라고 할 수 있는 W마트는 납품 시간에 대해 누구보다도 철저한 곳이었다.
특히 그들의 납품은 1분이라도 그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전액 반송처리시키는 일로 악명이 높았는데, 이번에 아성사료가 당한 것이었다.
“그쪽 말에 의하면 문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당장에 이번에 반송된 물품은 다시 받지 않겠다고 하고, 천상 소매점으로 뿌려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그놈들이 왜 그런 건데? 우리가 뭐 찍힌 거 있었나?”
“그건 아닐 겁니다. 원래 W마트가 그런 시간 준수를 하면서, 너무 일찍 와도 퇴짜를 놓고, 늦은 것에 대해 물건 대금 지불을 안 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미친! 장사하기 싫대?”
“갑은 저쪽입니다. 저희가 전부 독박을 쓴 겁니다.”
진욱의 말에 상만뿐만 아니라 다른 임원들도 길게 한숨을 내쉬며 웅성거렸다.
아무리 시간 개념이 철저한 미국이라 하더라도 중간에 부득이한 사고로 인해 고작 5분 늦었다고 물류센터에서 퇴짜놓고 전액 반품을 시킨다는 것은 횡포도 이런 횡포가 없었다.
“참고로 W마트에서 이런 식으로 대금 거부를 한 것은 A-컴퍼니의 애플폰이나, 삼정전자의 가전제품도 당한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허…….”
“역사상 예외라고는 코카콜라 단 하나라고 합니다.”
납품 트럭이 시간이 늦었다고 대금 지불 거부를 해서 빡친 코카콜라가 바로 거래를 끊겠다는 선언으로 합의를 봤다는 이야기.
물론 이건 전 세계적인 메가히트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여기서 아성사료그룹이 그런 짓을 한다면 미국 진출 이제 막 시작했다가 다시는 그쪽에 발도 못 붙일 거다.
“어떻게… 이번 건 해결할 방법이 있겠어?”
상만이 물었을 때, 김 사장을 포함해서 아무도 대답을 못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W마트가 납품을 빡빡하게 받는다는 이야기는 듣고, 전문 물류배송 업체까지 현지에서 계약해서 썼는데 이런 상황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방안이 없었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한숨을 쉬면서 손을 들었다.
“제가 직접 미국으로 가겠습니다.”
“뭐?”
“가서 해결을 해야죠. 1천만 불 그냥 허공에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 부사장이 직접 움직인다고? 그럼… 이거 언제 출발해야 하나?”
“더 끌 것도 없죠. 내일 아침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미국이 어디 옆동네도 아니고 바로 가겠다는 말에 상만의 눈이 커졌다.
진욱 역시도 이런 상황에서 쓴 입맛을 다지면서 직접 가서 해결하기 위해 머릿속을 굴렸다.
아무래도 결혼 이후로, 이전보다 배 이상으로 바빠져서 또 세화가 뭐라고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