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103화 (103/200)

103화 강아지로 얻은 후원금

진욱은 차 안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후우- 거의 다 와 가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이태원동에 도착한 차를 두고 운전기사는 뒤에 있는 진욱 부자에게 말했다.

“회장님, 곧 도착합니다.”

“아, 그래. 바로 가자고.”

어차피 저쪽에서 부른 거니 여기서 너무 긴장할 필요가 없다.

진욱은 이태원의 고급 한옥에 도착하자 먼저 내렸다.

문 앞에는 이미 삼정그룹 비서실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아성사료에서 오셨습니까?”

“아, 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앞에서 가볍게 신원 확인이 되고 뒤이어 내린 상만과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삼정그룹 창업주가 지은 사옥 승지관.

그 이후 현 삼정 회장도 선대의 유지를 이어받아 집무실 겸 국빈 초대의 자리로 써서 ‘재계의 청와대’라 불리는 곳이었다.

어지간한 재벌 총수도 쉽게 오기 힘든 곳에 개인 초대로 오게 된 진욱과 상만은 내부의 화려한 한옥 구조를 둘러보면서 비서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단아한 가야금 소리가 울렸고, 목조 건물을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집무실에서 조용히 노크했다.

똑똑-

“회장님, 모셔왔습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는 집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 한곳을 세계 각국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로 장식되어 있고, 낡은 탁자 위에서 수많은 서류를 쌓아 두고 묵묵히 처리하고 있는 팔순에 가까운 노회장.

그는 천천히 상만과 진욱을 돋보기를 낀 눈으로 찬찬히 훑어봤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상만이 먼저 인사하고, 옆에 있던 진욱이 인사하자 삼정그룹의 회장 이원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편히 앉으시오.”

잠시 후 차가 나왔고, 상만이 먼저 소개를 했다.

“아성사료를 맡고 있는 하상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자식 녀석입니다.”

“하진욱입니다.”

“흐음~.”

삼정그룹 2대 회장이자 방계인 제일과 신누리, 사돈인 J그룹까지 사실상 그의 영향력에 있는 국내 제일의 거부이자 제국의 황제.

그런 그가 진욱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상만 대표라고 하셨소?”

“네, 넷! 회장님.”

“아들 한번 잘 키우셨소.”

“하하, 부족한 아들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만이 감사인사를 표할 때, 밖에서 다과가 나왔다.

이 회장은 천천히 들라고 대접한 다음 차를 마시면서 진욱에게 말했다.

“하진욱이라고 했나?”

“네, 회장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우리 재단에도 기부를 많이 하고 동물 사업에 관심이 많다지?”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불쌍한 강아지들을 구하는 좋은 일을 하는데,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연락을 했네.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생명을 소중히 하는 그 자세. 매우 좋아.”

“감사합니다. 회장님.”

처음으로 이 회장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차를 마시면서 진욱과 상만에게 말했다.

“하 대표.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물원 사업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쪽에도 납품이 가능하겠소?”

“네?”

“우리 삼정 산하의 용인에버파크 동물원… 거기에 필요한 사료들 좀 받겠소.”

회장이 직접 거래 제안을 했다.

그것도 수 조에서 수십 조의 거래를 떡주무르듯이 한 양반이 계열사 산하의 동물원 하나를 두고서 사료 납품 이야기를 직접 했다.

이건 돈 이상의 가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삼정물산에서 곧 연락이 갈 것이오.”

“감사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상만이 큰 건을 맡았다면서 연신 감사를 표할 때, 진욱은 이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무덤덤한 얼굴로 눈을 껌뻑이던 이 회장은 그런 진욱을 보고 맘에 들었는지 한 가지 제안을 더 했다.

“앞으로 삼정문화재단에 자주 오게나. 예전에는 안내견 자원봉사에 왔다고 하는데, 요새는 뜸한 것 같더구만.”

“네, 회장님.”

“우리 쪽 사람들하고 서운한 게 있다면 내가 말할 테니 다 풀고 말이야.”

“하하,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쪽에 친분이 있는 분이 있습니다.”

“호오, 누구지?”

“이용철 이사와 친분이 있습니다.”

“그 녀석 요새 인터넷 사업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이 회장에게 있어서는 종손자라서 바로 전화하면 알 수 있는 친구였다.

진욱은 이럴 때 용철에 대해서 어필을 하고, 다시 한번 그와 같이 사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동물사업을 하는 아성사료그룹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면서 특히 강아지 사료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이 회장이 굉장한 애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실제로 삼정가 셰프 중에서는 전용 수제간식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끝난 자리.

그 뒤로 돌아온 것은 삼정그룹의 작은 후원이었다.

* * *

이틀 뒤.

상만과 진욱은 상록본사에 출근하자마자 삼정과의 거래 이야기로 들썩였다.

“삼정물산과 삼정문화재단에서 1천억 원 가량의 투자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천억…….”

“그중에서 700억이 지분 투자라고 하며, 300억은 재단을 통한 후원이라고 합니다.”

이정열 상무는 재무팀에 들어온 목돈을 발표하면서 말 끝에 환희가 묻어났다.

“천억이라니! 삼정에서 들어온 투자란 말입니까?”

“지분 8% 투자에, 개인 후원까지 있다니! 대단합니다. 회장님!”

임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이 공에 대해서 상만과 진욱을 추켜세웠다.

상만 역시도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진욱은 동물권 보호를 위해 지자체 합작으로 만든 보호소는 정말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다.

“홍보팀장님은 기사 하나 크게 써 주세요. 투자건하고, 더불어서 이원휘 회장님과 직접 면담을 한 이야기도요.”

“정말입니까?”

“동물보호를 위해서 그분이 후원해 주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조만간 회장님이 아성 힐링펫케어를 돌면서 지자체장들과 기념사진 한 번씩 찍으실 겁니다.”

“음?”

상만은 그게 뭔 소리냐고 말하려고 했지만, 진욱의 눈짓에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재계에서 착한 기업이라고 인정해 준 건데, 나발 한번 불어야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거야!”

아들 녀석이 발품 판 것이 이 정도로 큰 투자를 받았는데 까짓것 어디든 달려서 원 없이 움직여 주겠다고 다짐한 상만이었다.

그리고 언론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아성사료의 주가는 폭등했고, 그동안 냉혹한 이미지의 삼정그룹 이 회장에 관한 이야기도 하나의 미담이 되어서 은은하게 퍼지게 되었다.

“근데, 그쪽에서 조용히 부른 건데 우리가 이렇게 떠벌려도 되는 걸지 모르겠다?”

기삿거리를 신문사에 던져 주긴 했는데, 아무래도 이 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염려하는 상만이었다.

하지만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제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첫 보도를 중원일보에게 맡긴 게 아닙니까?”

“중원일보랑 삼정그룹… 그래, 둘이 사돈 관계긴 하지.”

“그쪽에서 말이 없다면, 이 회장님도 암묵적인 동의를 하셨다는 거겠죠. 사실 이게 천억 이상의 가치인 겁니다.”

“든든하구만, 삼정에서 받은 거에, 주가도 오르고, 거기다가…….”

“……?”

“우리 아들 녀석은 조만간 대화그룹 사위가 되는 거고!”

“아, 아직 거기까진 안 갔어요.”

“내가 봤을 땐, 내년쯤에 식 치를 것 같은데?”

자식의 결혼 이야기로 키득거린 상만을 두고, 진욱은 그런 아버지를 뒤로한 채 떠날 준비를 했다.

“이제 강남 사옥 출근 준비해야겠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추가 사업 준비해서 오죠.”

“그래, 잘 가라고 부사장!”

진욱이 돌아가자 상만은 몸을 들썩거리더니 뭉쳐 놨던 웃음보따리를 풀었다.

“크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정말 시원하게 웃으면서 눈물을 쏙 훔친 상만은 연일 성장하는 회사를 보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욱이 저놈이 진짜 하늘이 주신 복덩이라니까.”

어린 시절 그 못난 아들이 이렇게까지 성장해서 회사를 천지개벽을 일으켰다.

나이 일흔이 가까워서야 진정한 회사 굴리는 재미를 알게 된 상만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은퇴할 때까지 조 단위 그룹… 만들어 보자고, 반드시!”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회사를 위해 움직일 준비를 했다.

* * *

“조만간 기업 분사를 할 겁니다.”

진욱은 강남 사옥 출근 이후 임원회의에서 그와 같이 발표했다.

“용품사업부를 정식으로 법인 설립을 하려고 합니다. 이름은… ‘아성펫 서포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우~ 작명센스~.”

진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진욱이 바로 답했다.

“아성과 아성펫이라는 브랜드를 계속 유지해야 하니까 그게 제일입니다. 전무님?”

“흐응~ 네, 그러세요.”

어차피 펫드레스 사업이야 지금 최고조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임원들 역시도 새 계열사가 생기는 것에 대해 눈을 굴리면서 어느 쪽이 더 이득이 될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투자받은 건도 있으니 본사에서 금액이 늘어날 겁니다. 물론 그만큼 연구개발 신경 써 주셔야 합니다.”

“네, 부사장님.”

“좋습니다. 회의는 이만 끝내죠. 하 전무님만 좀 남아 주세요.”

“응, 나?”

진영은 자신을 가리키고 되물었지만, 진욱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 본사 회의도 마치고, 남은 것은 진욱과 진영이었다.

“그래서 나 왜 남긴 건데?”

“상장기획안 봤어.”

“응~ 이제 슬슬 때가 됐지. 내가 두 번째로 기업 공개하게 됐네?”

아성펫드레스의 연 매출이 50억에 육박할 때, 진영이 추진한 코스닥 상장의 꿈이었다.

하지만 진욱은 그것을 두고서 기획안을 돌려보냈다.

“아버지에게 말 안 했어. 이번엔 좀 참아 줘.”

“뭐? 지랄 마! 투자은행 통해서 기업 가치도 알아봤는데, 이제 와서 뭔 소리야?”

둘째 누나는 옛날 같았으면 가만 안 뒀을 남동생에게 한 소리했지만, 진욱은 요지부동이었다.

“지금은 안 돼. 2년만 참아 줘.”

“인제 와서 이유가 뭐야?”

“연 매출 300억 되는 아성펫푸드도 아직 상장 못 하고 있구만…….”

“쇼핑몰하고 펫의류 독립하면 가능성 있거든?”

“그러니까. 한 100억 정도 나올 때까지는 기다려 줘. 안 그래도 펫드레스 쪽 새로운 거 요청하려고 했단 말이야.”

“후우~ 뭔데? 이야기나 들어보자.”

“미용 사업하려고 하는데, 누나가 주변 동원 좀 해 줘.”

“뭐?”

드르륵-

진욱은 서랍을 열고서 파일철에 있는 자료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진영이 성공적으로 끝낸 펫 패션쇼 이후로 애견미용에 대한 사진과 자료들이 가득했다.

“아예 펫살롱으로 해서 종합적으로 만들어. 누나는 예전부터 양반장사 좋아했으니까 서울 중심으로 해서 미용부터 옷까지 한 번에 준비하는 사업하면 성장에 도움 많이 될 거야.”

아무리 지금 매출이 좋아도 애견의류 하나만으로 상장을 하기에는 무리수가 넘친다고 생각한 진욱의 제안이었다.

물론 지금의 내수경기로는 살롱까지 합쳐도 그 규모를 키우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외까지 진출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쳇, 검토해 봐야겠네?”

“차분하게 진행하자고. 앞으로도 매출 올릴 건은 엄청 많으니까.”

일단 진영의 코스닥 상장 욕구는 막았고, 그 뒤로 살롱 사업은 누나에게 모두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판을 위해서 진욱의 머릿속은 계속 회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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