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삼파전 속 하드캐리
서울 펫 박람회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아성펫푸드에게 있어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우리가 너무 안이했어요. 빈집털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업체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좀 더 상세히 알아보지 못한 저희 불찰입니다.”
휘하 임원들이 고개를 숙였지만, 진욱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이제와서 누구 탓할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지금부터 시작이니까요.”
진욱은 먼저 지금 상황에 대해 고메코리아와 한국 마쓰모토와의 삼파전이 된 애완용품 시장에 대해서 차근차근 빌드업을 준비했다.
“김 이사님은 기획했던 대로 몬스터티켓하고 100개 한정 판매 특별전 이벤트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그리고 박 팀장님은 애견과 애묘 제품 외에 새장과 큐브 어항을 따로 전시할 수 있게 기획전을 만들어 주세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최 부장님은…….”
용품사업부는 자신들의 의욕 있는 기획안을 두고서 회사 대 회사의 메인 이벤트가 된 상황에서 긴장한 채 진욱의 오더를 기다렸다.
“예산은 계속 유지할 테니까 계속 제품 디자인하시고, 컨셉 나오는 대로 바로 선보여 주세요.”
“네?”
“그냥 만드세요. 팔리게 하는 건 제 몫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이 상황에서 움츠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진욱은 임원진들에게 확실하게 일러 둔 다음 각자의 일을 맡긴 다음 자신도 다음을 준비했다.
* * *
직원들이 만들었으니 팔리는 것을 강구해야 하는 것은 CEO의 몫이다.
진욱은 그것을 위해서 자신도 발품을 팔고 있었다.
오늘 만나는 사람 역시도 장사를 위해서 그 필요성이 있었다.
“간만에 보는데 엄청나게 떴네?”
“선배님도 국장 자리 오르신 거 축하드립니다.”
드라마국 국장 자리에 오른 차기환 PD.
진욱이 방송을 타고, 아성사료가 첫 PPL을 했을 때 도와줬던 인물이었다.
“MBS는 좀 어때요?”
“휴우~ 종편 네 개 중에서 가장 안 좋지 뭐.”
“그래서 선배님을 임원급 국장으로 영입하신 거군요.”
“뭐, 이번 게 아이디어가 좋아. 냉혹한 재벌가 내부의 암투극을 만든 거거든? 캐스팅도 기가 막히고, 제작예산도 200억 정도 된다.”
진욱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혹시 자신이 아는 그 작품인가 싶어 넌지시 물었다.
“제목 정해졌나요?”
“황금의 옥좌.”
‘역시나!’
이전 삶에서도 엄청나게 히트친 작품이라 드라마 잘 안 보던 진욱도 나중에 몰아서 OTT로 보게 된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단순 재벌물의 남주와 가난하지만 착한 여주의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돈의 암투와 회장 자리를 위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긴장에 긴장을 연속하게 해서 본방사수를 하게 했었다.
“제작 중인 작품에 지금 PPL 하면 작품성이 깨지려나요?”
“아이고, 뭐가 있어? 우리야 언제든 환영이지.”
드라마 제작국에서 PPL 없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뛰는 제작비 감당을 못하니, 진욱이 내거는 조건을 보고서 바로 반색하는 차 국장이었다.
진욱은 메가히트작 드라마의 PPL를 기회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준비한 제안을 했다.
“이 작품 주인공 역이 말이죠. 외로운 절대자의 이미지니…….”
“흐음?”
진욱은 거기에 대해서 몇 가지 제안을 내놨고, 차 국장은 흥미를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PPL에 대해서 각본진과 프로듀서의 협의 끝에 장면마다 나올 수 있었다.
* * *
“잘돼라! 여기부터 시작이다!”
진욱이 강남 사옥에 직접 1호점을 만든 아성 펫스타일.
용품사업부를 격상시켜서 만든 이 지점은 애완동물에 필요한 관련 제품을 한 곳에 모아 파는 곳이었다.
그동안 애완동물에 관련된 용품들은 동네 동물병원이나, 철물점이나 잡화상 등에서 겸사겸사 사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전문 판매점을 만들며, 고객들이 가볍게 커피 한잔하면서 매장을 둘러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 강남 주민들부터 관심을 가지며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김 이사님, 스타벅스 건은 어떻게 됐어요?”
강남 사옥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반려동물 사업 외 다른 업종으로 들어온 곳들이 아성펫푸드를 향해 항의한 것이 있었다.
커피숍과 병원, 약국 등의 일반적인 이용을 하는 시설에 반려동물 관련 판매가 너무 많아서 동물을 동반하고 온 사람들과 일반 손님들간의 트러블이 조금씩 생기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성사료가 인수하기 전부터 있었던 업체들을 버릴 수 없었고, 이들의 임대료를 생각해서 진욱은 임원들에게 협상 오더를 내렸다.
“저쪽에서 원하는 게 역시 청소 문제이고, 공기청정기 설치와 공공 케이지 증설로 협의를 보기로 했습니다.”
“뭐, 그정도면 양호하네요. 본사랑 협상하면 좋은데, 그건 힘드니.”
특히 커피숍이 애완동물 출입이 금지된다면서 커피 한잔 테이크 아웃 하려고 해도, 복도에서 개들을 묶어 놓고 기다리는 일이 많았었다.
거기에 대한 해결책만 제시한 것으로 협의를 했다고 하니 진욱은 잘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주변에 트러블 없게 하자고요. 우리 사업이 특수성이 있어서 특히 고객 신경 써야 됩니다.”
“네, 부사장님. 그리고 오늘 저녁에 하 전무가 온다고 합니다.”
“누나가요? 도쿄까지 들르고 온다더만 바로 오네?”
대화그룹이 스폰서까지 해 줘서 일본 애견 패션쇼가 성황리에 끝나고 한국산 제품들도 인기를 끌었다는 보도는 들었다.
진영 역시도 일본 내에서 성과가 좋아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시장 조사한다고 도쿄 좀 머물겠다고 했는데 일찍 온다는 말에 무슨 일이 또 있는지 살펴야겠다.
“뭐, 좋은 소식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 * *
[다음 소식입니다. 국내 반려동물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기업 간의 펫용품 판매의 경쟁이 불이 붙고 있습니다.]
공중파 뉴스에 오랜만에 반려동물 사업에 대해 나오고 있었다.
[고메코리아는 루이비통과 샤넬 등의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를 이루어 호화 케네스나 목걸이 등을 출시했는데요? 한정 판매지만, 상당한 인기로 매진 행렬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진짜 개줄도 명품인 시대라니까.”
[반면 한국 마쓰모토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승부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주인이 없을 때도 알아서 반려동물이 이용할 수 있는 급수기와 대소변을 가릴 수 있는 전자 화장실 등인데요?]
한국 마쓰모토의 제품은 특히 고양이 집사들과 마당에서 풀어 기를 수 있는 중형견 이상의 개들을 키우는 견주들의 인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아성펫푸드 역시도 질 수 없다는 듯 반려동물 용품 종합 상가인 아성 펫스타일을 개점하여 고객들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언론에서도 이번 승부는 3파전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고급화에 양반장사를 준비하는 고메, 아이디어 상품으로 승부하는 마쓰모토, 그리고 모든 제품을 한곳에 모은 종합선물세트의 매장을 운영하는 아성.
불은 당겨졌고, 그 상황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을 때, 조만간 아성펫푸드가 PPL한 드라마도 개봉할 것이다.
* * *
[후우-.]
손 회장은 한숨을 내쉬면서 집무실 안에 있는 클래식 앤틱 새장으로 다가가 해바라기 씨를 넣어 줬다.
큰 새장 안에 있는 노란색의 모란앵무는 능숙하게 그것을 받아먹으며 새장 문을 열고 나와 손 회장의 손위에서 놀거나 어깨 위로 올라와 비비댔고, 거대 재벌의 총수는 그 상황에서 안정을 찾았다.
“자연스러운 연출이에요.”
“흐으음.”
가족들이 같이 보고 있는 드라마 ‘황금의 옥좌’.
거기에서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시는 미노년 배우인 이덕수가 자신의 회사를 지키기 위해 아들딸들과 오른팔, 왼팔이라 할 수 있는 가신들과 한바탕 한 뒤로 외로운 상황에서 앵무새 한 마리에게 위로를 받는 모습.
그 뒤로 서울 전역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집무실의 열대어 큐브 어항도 눈에 들어왔다.
“PPL이 저게…… 맞는 거야?”
엄숙한 분위기에서 새와 열대어를 데리고 노는 분위기에 상만이 얼굴을 긁적이고 물었지만, 진욱은 뒷이야기를 알아서 바로 답했다.
“원래는 개인 저택에서 연못에 잉어들에게 사료 뿌려 주는 장면이었대요. 근데, 그건 일본에서나 자주 보이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문화라고 저게 낫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애초에 컨셉이 외로운 회장님이 동물 빼고는 마음을 안 연다는 거니까요.”
진욱이 알고 있는 과거의 삶에서는 진짜로 개량한복 차림에 세트장에 꾸민 비단잉어를 보면서 청승맞게 대화를 하는 이야기였지만, 오히려 바뀐 이 장면이 더 연출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걸 누가 PPL로 생각하겠냐고?’
진욱의 예상대로 드라마 내에서 새장과 어항은 시청자들에게 ‘훌륭한 장치’가 되어서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2~30대 커뮤니티에서는 노년미 뿜뿜하면서 작은 앵무새 키우는 모습이 갭이 있다면서 실시간으로 SNS에 올라오곤 했다.
“그리고 여기에 맞춰서.”
진욱은 몬스터티켓 쪽에 연락을 하면서 최근 상황에 대해 통화했다.
“최 사장님, 지난번 헤네스 제품 완판 어땠나요?”
[그것 때문에 말인데, 혹시 다음번에 새장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얘기 다 들었어요. 황금의 옥좌에 나온 새장, 아성펫푸드가 PPL한 거라면서요?]
이미 시청자들에게 빠르게 퍼지고 지금 한국에선 오랜만에 시청률 20%을 돌파한 드라마의 영향으로 인해 때아닌 애완조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배우 이덕수가 애지중지하는 모란앵무 종은 각종 조류원에서 분양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며, 그중에서도 반무테 노란색 앵무가 특히 인기라고 한다.
거기에 맞춰 반려조 상품이 때아닌 블루오션이 되었으며, 애견/애묘 용품만이 아니라 수조와 새장 등의 제품을 같이 만들던 아성펫푸드를 향해 유통사들이 물건 주문을 요청했다.
“에, 지금 만드는 게 수량이 부족해서 일단 5,000개 한정으로 팔게요.”
[5,000개? 택도 없어요! 50만 개를 가져와 봐 내가 완판 전부 해 줄 테니!]
단순 국내 수요만이 아니었다.
동남아와 중국 등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황금의 제국으로 인해 넘쳐 나는 앵무새 시장.
그리고 원래 앵무새를 사육해서 수출하는 호주 역시도 때아닌 수요 폭발로 인해서 반려조 시장에 소형 앵무새 분양이 폭주하게 되었다.
진욱이 준비한 PPL이 나비효과가 된 순간이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로타마트에서 앤틱 새장 주문 들어왔습니다.”
“부사장님, 갤럭시아에서 가구 전시전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 쪽 새장도 장식용으로 판매하고 싶다고 합니다.”
“부사장님! 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조류 사료 생산 준비한다고 수량 파악에 대해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용품 주력으로 생각하고 경쟁을 하는 와중에 때 아닌 조류 제품으로 대박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자~ 자~ 하나하나 해결해 보자고요. 일단 관련 서류 전부 보내 주세요.”
진욱은 그 상황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방식으로 타 제품에 대한 끼워 팔기와 마케팅 확대를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아성 펫스타일은 경쟁의 과도기 속에서 순조롭게 첫 단추를 끼웠고, 고메와 마쓰모토는 뒤늦게 애완조 시장을 노리려고 하청업체들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