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국내사업과 해외사업
“어머머, 그게 웬 거야?”
집에 새로운 식구를 들여온 것을 보고 원숙이 놀라 진욱에게 물었다.
강아지가 달려와 진욱의 다리에 부비대면서 그가 들고 있던 새장을 보고 짖어 댔다.
“흐음, 어디에 설치하면 좋으려나?”
진욱은 거실 한곳에 빈티지 앤틱 새장을 걸어 놓고, 그 안에 있는 유황앵무를 위해 먹이로 해바라기 씨와 각종 잡곡을 물과 같이 넣어 줬다.
“갑자기 앵무새라니, 어디서 사 왔어?”
“데이트 갔다가 어쩌다 보니 한쌍 사서 한 마리씩 데려왔네요.”
“어머머, 데이트라면 그 세화랑?”
“네~.”
원숙은 잘됐다면서 아들에게 이것저것을 물었지만, 진욱은 새장을 설치하고, 낮설어 하는 앵무새를 위해 스마트폰으로 습성을 확인하면서, 안심할 수 있게 새장 한곳을 천으로 덮어 그늘을 만들어줬다.
잠시 후 크게 지저귀던 앵무새가 그늘진 곳에서 조용히 쉬다가 바닥에 놓인 해바라기 씨 하나를 집어 까먹었다.
진욱은 새장을 보면서 거실 테이블에 서류들과 노트북을 가져와서 주말 동안 월요일에 가져갈 업무 기획안에 대해 만들었다.
“흐음, OEM을 맡긴 다음에 관련 제품들을 모아서 아예 독립 브랜드를 만들자.”
이름에 대해서는 ‘아성 펫’까지만 생각하고, 그 뒤로 무슨 단어를 만들어 줄지 생각했다.
저녁이 지나고, 골프 가방을 든 채로 돌아온 상만은 거실에 있는 앵무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저거?”
처음 보는 애완동물에 원숙이 속삭이면서 이야기를 해 줬고, 상만은 세화랑 같이 산 한쌍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욱에게 다가왔다.
“요새 애들이 커플 강아지나 고양이 분양한다고 하더니, 너희들은 새야?”
“네, 겸사겸사 새 사업도 준비하고요.”
“아니 베트남 건으로 다들 바빠 죽겠는데, 또 무슨…….”
“이건 국내 사업입니다.”
진욱은 지금 노트북에 작성한 내용을 아버지에게 보여 줬다.
“아성 펫토이?”
“반려동물에 대한 주변 상품을 파는 겁니다.”
“흐으음?”
“이걸 보시면 크게 포유류/파충류/어류/조류로 나누어서 제품 제작해서 판매하게 됩니다.”
진욱은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이것을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펫코너, 그리고 기존의 대리점 사업을 늘여서 펫푸드와 펫토이를 같이 파는 복합 매장 계획을 알렸다.
“하네스 등의 개 목줄, 목걸이, 케이지, 메는 이동 가방 등을 준비하고 있고요. 다른 쪽도 수조, 새장, 장난감 등을 만들 거고요.”
“그거 다 만드려면 전문 공장이 필요하겠는데?”
“그래서 OEM 방식으로 업체들을 알아보고 있어요. 이거 한번 보시겠어요?”
진욱은 인근 서해안 공단 쪽에 있는 제조업체 리스트들을 보여 주면서 이 사업에 대해 의욕적으로 추진할 준비를 했다.
“근데, 이게 괜찮을지 모르겠네? 아무리 봐도 잔잔바리 장사밖에는 안 될 것 같은데.”
“네, 일단 저가 공세와 고가 공세를 합치려고요. 저런 것도 많이 만들고요.”
상당한 크기의 앤틱 새장을 보고 저것만 10만 원 들였는데, 집안의 장식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아보였다.
물론 안에 있는 앵무새도 잘 키우고 말이다.
“어항 같은 경우는 인테리어 업체들하고 협업해서 하면 효과가 상당히 좋을 겁니다. 큰집 쪽에서 특히 좋아할 걸요?”
“그래, 그쪽도 중국과 베트남 아쿠아리움공장 건설에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네, 진성이 형이 인테리어 업체 만든다고 하던데, 딱 거기에 쓰이면 될 거예요.”
“허 참, 진짜 뭐가 됐든 애완동물 위주로 진행하는구만.”
“우리 사업의 모토이니까요.”
하기사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건, 동물을 상대로 장사하건 돈은 돈이다.
게다가 남들이 그동안 신경 안 쓰던 사료부터 반려동물 용품까지 착실히 개발하면서 지금까지 성장한 회사이니 진욱의 말이 맞았다.
“일단 진행해 봐. 위에서 기획안 확인하고, 결재해 줄 테니까.”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아들의 펫푸드를 밀어주기 위해 상만은 구두로 오케이 싸인을 해 줬다.
그렇게 허락은 받았으니 이제 월요일부터 바빠질 거다.
* * *
그리고 월요일.
아침부터 상록 본사 임원 회의 이후, 바로 강남 사옥으로 온 진욱은 아성펫푸드 내 용품사업부 간부들을 불러 회의에 들어갔다.
“이번에 기획안 나온거, 상당히 괜찮았어요.”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그래서 말인데, 이거 누구 아이디어예요?”
최 부장을 포함한 용품사업부 간부들은 한쪽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아, 저 그… 네, 제가 디자인을 하긴 했습니다만…….”
우물쭈물하면서 손을 든 작은 체구의 남성이 있었다.
진욱은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봤다.
“아, 이은식 대리 작품이군요.”
“네… 네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H대 디자인과를 나온 스펙이 괜찮았던 직원이라 아성이 중소기업 시절 바로 승진을 시켜 줬던 것이 기억났다.
진욱은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긴장하지 마시고, 이 아이디어 좋으니까 편하게 말해 주세요.”
“네, 그, 그러면…….”
일은 잘하는데 긴장을 심하게 하고, 다른 임원들 앞에서 자기 할 말을 쉽게 못 하는 이 대리를 향해 진욱은 편하게 대했다.
그리고 그가 직접 서류를 진욱에게 넘겼고,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하니 애완용품들을 디자인한 포트폴리오가 가득했다.
“오, 직접 디자인하신 겁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진욱은 그것들을 확인하며 흥미를 보였고, 이 정도면 충분히 국내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데 문제없을 것 같았다.
“최 부장님.”
“네, 부사장님.”
“이거 진행하시죠.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서는 이 대리에게 전부 맡기겠습니다.”
“네, 넷?!”
“이번에 서울 펫 박람회에 전용 부스 하나 추가로 만들 테니까 그 전에 한번 샘플 부탁드립니다. 저는 관련 자료 본사에 바로 올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동안 다른 팀에 비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용품사업부는 부사장이 직접 기획안을 통과시키고, 큰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어 모두 안도했다.
특히 자신이 디자인한 포트폴리오가 전부 통과돼서 앞으로 제품 총괄디자인을 맡은 이 대리는 우물쭈물하는 가운데도 진욱을 향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샘플 빨리 만들어 줘요.”
“네! 알겠습니다.”
용품사업부는 회의가 끝난 뒤로 바로 사무실로 달려갔고, 진욱은 사업자 등록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SNS 마케팅도 준비해야 하고, 서울 펫 박람회 등록할 때, 애완용품 부스 따로 만든다고 했으니, 그것도 준비하고… 이후로 몬스터티켓 통해서 한정 판매 해 본 다음에 반응 보고서 대리점을 본격적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진욱은 그것을 위해서 일단 큰 틀을 잡고서 관련 업무를 각각의 임원들에게 맡길 셈이었다.
그렇게 집무실에서 업무에 몰두하고 있을 때, 책상 위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세화: 이제 적응했나봐요. 노래 부르는게 예뻐서 올려 봐요.]
클릭하니 감미로운 소리로 울어 대는 앵무새를 보고서 절로 웃음이 나오는 진욱이었다.
* * *
그동안 아성펫푸드는 진욱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상황에서 빠르게 사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그동안 진욱은 대화그룹과의 컨소시엄으로 베트남 진출과 중국 아쿠아리움 공사에도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해외사업에도 직접 움직였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용품사업부를 밀어줘서 탄탄대로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 하하…….”
“저 부사장님. 이건…….”
이번에도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서울 펫 박람회는 여느 때보다 더 화려한 규모로 수많은 업체들의 주력 제품 전시회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아성펫푸드는 아성사료와 아성펫드레스와 같이 1층에서 부스전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용품사업부 임직원들이 만든 제품들이 있었으나, 진욱을 허탈하게 만든 건 경쟁사의 제품이었다.
“어서오세요! 고메코리아의 애완용품 기획전입니다.”
“어머, 강아지용 유모차도 있어요?”
“네~ 손으로 들고 다니는 이동식 케이지 대신에 디자인된 제품입니다.”
수제 간식으로 한바탕 경쟁했던 고메코리아는 본사에서 직수입한 제품들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제품으로 고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성 쪽도 준비를 많이 하긴 했지만, 이미 그쪽 사업으로는 수십 년간 앞서 있던 유럽발 애완용품들은 그 디자인부터가 달랐다.
“세상에, 이거 진짜 루이비통 맞죠?”
“네~ 네~ 루이비통사와 콜라보를 해서 만든 케네스 제품입니다.”
급기야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패션 사와 콜라보를 해서 만들어 낸 제품은 특히 여성층의 고객을 확실히 끌어모았다.
고메뿐만이 아니었다.
“자, 이 제품으로 말씀드린다면 딱딱한 케이지가 아니라 폴리에스테르로 된 이동 캐리어입니다.”
“너무 약해 보이는데, 아이들 데리고 다닐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재질은 가벼우면서 내구성은 튼튼합니다. 여기 예시를 들자면…….”
같은 소형견 사이즈의 인형을 넣고서 시범을 보이는 부스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기업 한국 마쓰모토였다.
마쓰모토가 그동안 제일사료의 OEM을 받아서 그쪽 경쟁만 하고 있었는데, 반려동물 용품을 만들어서 부스로 올릴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분명 저쪽에서 같은 제품을 낼지는 몰랐습니다.”
최 부장이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이건 진욱도 예상하지 못해 쓴웃음만 나왔다.
분명 그들이 마케팅으로 내놓은 것은 아직까지도 아성펫푸드와 양분하는 신형 수제간식과 고급 브랜드 사료였다고 들었는데, 박람회가 오픈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펫용품을 전시하는 부스를 추가 설치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단정한 정장 차림의 금발의 여성이 진욱을 보고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고메코리아의 샤를로트라고 합니다.”
“아, 고메 담당자분이시군요.”
샤를과 악수를 했을 때, 그녀의 미소는 자신들이 승기를 잡았다는 비웃음이 묻어 났다.
“이번에 저희가 한국 시장에 펫을 위한 주변용품을 준비했는데, 같은 것을 노리실 줄 몰랐습니다.”
사료 이후로 산책과 운동, 그리고 각종 편의용품들을 두고서 착실하게 준비해와 한 번에 터트린 것 같았다.
진욱은 나름 시장조사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패를 가지고 올 것을 생각 못한 것에 대해 속이 타들어 갔다.
“남은 박람회 기간 동안 좋은 경쟁이 되길 바랍니다.”
“아, 네.”
프랑스인이 유창한 한국말로 격려의 말을 한 순간 진욱은 앞으로 제품 판매를 앞두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중국이나 동남아산 OEM 제품 가득한 시장에서 국산으로 승기를 잡나 했더니만 경쟁자가 둘이나 있네.’
한국 마쓰모토에서는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많이 봤던 이영남 사장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직수입한 애완용품들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일본은 아이디어 상품에 대해서는 정말 대국이었다.
진욱이 채택하고, 아성펫푸드 내에서도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제품이지만, 그쪽에서도 생각 못한 신박한 제품들이 상당했다.
특히 애견/애묘용 물티슈나 전자동 방식의 변기는 대소변을 가리기 힘들어하는 반려동물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었고, 샤워하고 털을 말리는 애견전용 스탠드 드라이어나 호스에 연결해서 밟을 때마다 물이 나오는 급수 호스 등은 진욱이 보고서도 이건 국내에서 디자인하면 대박 날 것 같은 상품이라고 인정했다.
그렇게 국외 사업을 신경쓰며, 덤으로 국내 수익을 올리려고 했던 애완용품들은 부스전 이후로 치열한 3파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