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98화 (98/200)

98화 정말 채택하겠어요?

일단 대화리조트와 김규완에게 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진욱은 다시 강남 사옥으로 돌아와 남은 업무를 준비했고, 대부분은 대리점 문제와 신제품 개발 진행에 관한 것이었다.

“흐음, 이건 새 기획안이네?”

진욱은 많은 사업 건 중에서도 특이한 자료가 하나 있어서 살펴봤다.

그것은 아성펫푸드 내의 펫 용품사업부의 기획서였다.

펫푸드라는 이름대로 건식, 습식, 각종 수제 간식 등의 먹는 사업 위주였지만, 그 외에도 못 먹는 걸 만드는 곳도 있었다.

“뭐,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두긴 하는 거지만…….”

진욱은 일단 식품 외에 새 아이디어로 만든 기획안을 한번 천천히 읽어 봤다.

그러다가 가슴팍에 꽂힌 만년필을 뽑아서 서류의 글자를 하나하나 밑줄을 치고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혹은 이건 무리가 있을 수 있으니 컷트 식으로 지워 나갔다.

그리고서 끝까지 읽은 다음 지운 부분을 제치고, 강조한 부분을 강조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진욱은 다 읽은 뒤로 그 기획안을 보인 인물에 대해 살폈다.

“용품사업부의 최현규 부장이라… 맞아! 이 사람 서울 애견 박람회 이후로 영입한 사람이었지?”

원래는 행사 전문으로 뛰어난 기획력을 보여 줘서 진욱이 직접 스카우트한 인재였다.

“본인 아이디어인가, 아니면…….”

그 밑에서 팀 단위로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진욱은 어느 쪽이 됐건 간에 재밌는 사업이 될 거 같아서 한번 세이브해 보기로 했다.

이걸 진행할지, 아니면 시장 조사를 해서 접을지는 이사회를 통해 결정되겠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밀려 있는 서류들을 하나둘씩 진행하다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으- 드드드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진욱은 집무실 한쪽에 있는 샤워실로 들어가려다가 그냥 옷걸이에 걸린 재킷을 입었다.

“사우나 가야겠다.”

이틀 동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대충 씻었는데, 피로가 슬슬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남은 직원들 퇴근시키고, 자신도 서류를 챙기고 돌아가려고 할 때, 갑자기 전화가 왔다.

“뭐야? 집인가?”

아침에도 몇 번 통화했는데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받으려고 했는데, 전화를 건 것은 집이 아니었다.

“응?”

김규완이었다.

“원주 건 이야기는 다 끝났는데 또 무슨…….”

진욱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받았다.

“네, 형님. 무슨 일이세요?”

[형님이래~ 형님… 크하하하하!!!]

“…술 드셨어요?”

[응, 조금~.]

요새 진짜 술 먹고 전화하는 일이 잦는데, 이 사람 정말로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한 진욱이었다.

생각 같아선 자신한테 여자 소개해 준 거 말고, 먼저 좀 여친을 만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진욱이 어디야?]

“이제 퇴근하려고요.”

[서울이란 말이네? 잘됐다. 너 좀 나와라. 나 2차 가려고 하는데.]

“아니, 어제 그렇게 드시고 또요?”

[넌 어제 한 잔도 안 먹었잖아? 형이 술 살 테니까 나와. 예비 매제!]

이젠 대놓고 매제라고 부르는 규완의 말에 진욱은 눈을 꽉 감았다가 결국 움직이기로 했다.

만약 이 자리에 또 세화를 부른다면, 뭐라도 한마디 해야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어디야? 강남이야? 상록이야.]

“강남 사옥이요.”

[응~ 차 보낼테 니까 기다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진욱은 휴대폰을 집은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우나는 내일 아침에 가야겠다.”

진욱은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고, 얼마 안 있어 성우영 본부장이 직접 그를 픽업하러 왔다.

“잘 지내셨습니까, 부사장님.”

“네, 이사님도요?”

“하하하, 저야 뭐 주야장천으로 일을 하는 몸이니까요.”

성 이사가 바로 말하고 수행비서가 출발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도착한 곳은 종로에 있는 고급 요정이었다.

고풍스러운 한옥풍 장식에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인사하는 게, 진짜 부자들이나 올 수 있는 곳 같았다.

진욱이 안내를 받고 방 한곳에 들어왔을 때, 그곳에서는 화로 위에 철판을 깔고 새빨간 한우를 구우면서 그 자리에 올리고 있었다.

“어~ 어서와. 예비 매제.”

“아, 네…….”

규완은 얼마나 마셨는지 넥타이도 풀어 헤치고, 편하게 앉은 상태로 벽에 기댄 채 도자기 술잔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앉어, 앉어.”

“아, 네. 형님.”

“그래, 이제부터는 그냥 형님이라고 해 줘라. 응? 편하게 말이야.”

“네, 형님.”

“하하하! 그래! 그래! 한잔 받아!”

규완은 술을 따라주면서, 기분 좋게 잔을 나눴다.

그리고는 진욱을 유심히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 있어야 이 시간에 부를까?”

“죄송합니다.”

“아니야, 맞아! 무슨 일 있어.”

“……!”

규완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담배를 꺼냈다.

“안 피시지 않았습니까?”

“오늘까지 그랬지. 근데 결국 물게 되네. 후~ 우리 아부지도 하루에 두 갑 태우시는데.”

뜯은 지 얼마 안 된 담배를 꺼내서 물고 불을 붙이자 옆에서 고기를 굽던 직원이 재빨리 종이컵에 물에 적신 휴지를 넣어 재떨이로 테이블 위에 올려 놨다.

진욱은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급속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술담배를 달고 있는 걸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번에 1조 원짜리 복합 리조트 만들려고 했어.”

“으음…….”

“내가 중국을 밀어붙였지, 수 년간의 중국 증시를 확인했고 부동산 경기를 보고서 측근들 총동원해 기획한 프로젝트야.”

말하자면, 대관식을 위한 사업이었다.

지난번에는 계열사 돌면서 주력사업을 어디로 할지 모른다고 했으면서, 이제와서 말을 바꾼 걸 보니 확실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는 것 같았다.

“진욱아. 우리 회사가 원래 뭐 하는 곳인지 잘 알지?”

“대한화학으로 군수업 공장을 하시다가, 이내 대화로 이름이 바뀌었죠?”

“맞았어! 그래서 석유화학이니, 방산이니, 건설이니 그런 선 굵은 곳을 추천받았지만! 나는 이쪽이 좋다. 호텔, 리조트, 유통, 무역! 그러니까 내 체제에서는 대화그룹의 2기 역사가 시작되는 거란 말이다!”

저렇게 떠벌리는 걸 보니 진짜로 취했으면서, 본심을 듣고 싶은 것 같았다.

진욱은 자기 사업하기도 바쁜데 여기서 또 다른 회사 조언까지 해 줘야 하겠냐며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규완은 여기까지 온 이상 뭔가 확답을 듣기 위해 진욱을 붙잡고서 말했다.

“말해 봐. 아까 중국 이야기할 때 계속 언짢아하더라?”

“아니, 형님. 대화같이 큰 재벌 기업이 제 조언으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나, 지금 초읽기 중이야. 최종 결정 앞두고 이사회에서 계속 중국 진출 신중론이 나오고 있거든?”

말인즉슨 회장 장남이니 밀어붙이면 이사회고 뭐고 다 밀어붙일 수 있지만, 내부에서 반대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진욱은 잠시 대화그룹과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사람을 잘 믿는 편이고, 운이 좋게도 살다 보니 재벌가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편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가족들과 자기 사업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미래를 알면서 맘만 먹는다면 개인사업으로 일가족 먹고살 돈은 넘치도록 마련할 수 있는 그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적당히 물러날 수는 없어, 진욱은 결심했다.

“오늘 이 자리는 술만 마시고 가겠습니다.”

“아~ 서운하네, 뭐 좀 들어보려고 기다린 건데.”

“술 깨시고 내일 점심 때 뵙죠.”

“……!”

“원래 사업이란 건 또렷한 정신에서 결정해도 나머지를 운에 맡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음, 그래… 좋아, 그럼 내일 속풀이할 점심 메뉴나 정해야겠다. 어디서 볼까?”

“여의도 본사로 제가 가지요.”

“좋다! 약속한 거야!”

빈 술잔을 들어 올린 규완을 보고서 진욱은 피식 웃으며 주전자를 들고 천천히 채워 줬다.

그리고 먼저 일어나 상록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성 이사는 넌지시 진욱을 향해 말했다.

“부사장님.”

“네?”

“이사님께서는… 부사장님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아시겠지만, 오늘 일은…….”

“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예비 처형이니까요.”

진욱은 혹시라도 지금 일에 대해 누설할 일 없다며 뒷좌석에 차를 타고 수행비서에게 운전을 맡겼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바로 씻고서 방에서 컴퓨터를 켰다.

“에구구, 졸지에 남의 회사 일까지 다 해 주… 아니다.”

생각해 보면 이걸 조언만 줄게 아니라 자신들도 투자해서 쥐꼬리만큼이라도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기회였다.

진욱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고, 졸린 상황에서도 밤새 기획안을 만들었다.

* * *

“으으으- 죽겠다.”

여의도역 근처의 한정식집에서 만난 규완은 어제의 과음으로 인해 숙취로 다 죽어 가고 있었다.

“쭉 드시고 푸세요.”

“으음, 그래.”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탕을 먹으면서 속을 달래는 규완, 그리고 진욱은 반쯤 먹었을 때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

“이게 뭐야?”

“어제 중국 진출에 대한 답이요.”

“…음?”

규완은 황급히 그 봉투를 집고 안에 있는 서류를 꺼냈으나 두툼한 양에 빼곡히 적힌 글은 도저히 여기서 다 읽을 수 없었다.

“그동안 중국 진출에 대해 통계를 내고, 현재 중국 정부에 대한 움직임, 그리고 중국시장 포기 시 대안으로 내놓을 수 있는 시장까지도 분석했어요.”

“이걸… 어제 다 만든 거야?”

“사실 저희도 중국 진출 앞두면서 판매는 하지만, 현지 법인 만들고 공장 준비하려는 거 포기했거든요. 그때 리스크에 대한 자료들 참조했어요.”

공식적으로 대화그룹과는 직책이 없는 외부인이 컨설팅 회사처럼 이걸 만들어 줬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지만, 적어도 저대로만 참조한다면 내년에 벌어질 대참사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중국시장 리조트 관광단지 사업 준비를 위해서 쓴 돈이 있을 텐데, 그거에 대해서는 저희가 메꾸죠.”

“뭐?”

“아버지하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 해외 리조트 사업 진출에 저희도 같이 참가할 수 있을가요? 컨소시엄으로요.”

“아, 상관은 없지만… 아니, 음. 그렇지. AD 건도 있고 애견 호텔이나 용품점은 있어도 상관없지.”

대화그룹의 장남이 준비하는 조 단위의 거대 프로젝트에 아성사료가 숟가락을 얹는다.

물론 단순 숟가락뿐만이 아니라 본인들이 준비한 밑반찬도 조금 거드는 식으로 말이다.

둘은 갈비탕으로 해장 식사를 마친 뒤에 다시 각자의 회사로 돌아갔고, 진욱은 오자마자 어제 세이브해 뒀던 자료를 다시 살펴봤다.

“애완용품 제작 공방, 이게 괜찮기는 한데 손이 너무 가고 수요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단 말이지…….”

어제 내놓은 것은 개집, 쿠션, 소형 반려동물을 담고 다닐 수 있는 이동식 가방, 새장, 수족관 큐브 등의 제품을 수제공방으로 만들어서 예약판매로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욱은 대량생산을 배제한 것에 X자를 쳤고, 흔히 양반장사라 불리는 공방제작 프리미엄 판매는 강조하면서 그 딜레마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양적으로 만들기엔 중국산에 밀린 데다가 제품군도 너무 난잡하고, 질적으로 비싸게 팔기엔 수요 예측이 힘들고…….”

진욱이 그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오늘도 퇴근 시간이 지났다.

아무래도 다음 주 모여서 기획안 올린사람 불러 회의를 한번 해야 했다.

그렇게 한 주간 야근이 가득한 나날을 보냈고, 상록본사와 강남지사 두 곳을 오가며 바쁘게 지낼 때였다.

진욱이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규완이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진욱아, 이번 건. 된 거 같다.]

“네?”

[지난번 네가 준 안건 있잖아. 중국 시장은 그 규모를 줄여서 일단 복합관광단지 대신 아쿠아리움 진출 하나로 끝낼 거 같아.]

“그렇군요.”

이거 그룹 내 수뇌부 정보인데, 본인이 이렇게 들어도 되나 싶었지만, 규완은 그 뒤로 다음 이야기로 쐐기타를 박았다.

[네가 보낸 안건으로 다른 곳을 정했다. 베트남 시장 한번 분석 중이야.]

“오…….”

[컨소시엄 제안했고, 이사회 통과되는 대로 부를 테니까 같이 이야기해 보자고.]

규완과의 통화를 마친 진욱은 휴대폰을 들고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중국의 대한국 경제 제재 때문에 난리났던 대기업들이 눈을 돌려 찾아낸 약속의 땅.

삼정전자, 포철산업, 현기자동차 등의 공장들이 막 자리를 잡고 있을 때, 대화와 아성사료 역시도 선구자 라인에 서서 베트남 시장을 개척할 기회가 된 순간이었다.

“동남아 위생… 그때보단 괜찮겠지 뭐.”

지난날 태국발 사료 대장균 사건을 생각했던 진욱은 이번엔 좀 다를 거라며 본격적으로 진출 준비를 위해 아성사료 그룹 내에서도 회의를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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