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96화 (96/200)

96화 엄청나게 큰 건 하나

진욱이 그림이 맘에 들어 두 번이나 미술관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화가 아가씨, 그리고 때마침 그녀를 보러 왔던 대화그룹의 황태자.

셋은 그렇게 기묘한 만남을 가지고 인근의 호텔 커피숍으로 향했다.

“어떻게 그렇게 만났어? 그거 참 신기하네.”

“아니, 뭐 딱히 신기한 건 없지만…….”

진욱이 얼굴을 긁적이고 있을 때, 맞은편에 있는 여성 세화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규완이 그 분위기를 알고서 정식으로 소개했다.

“이쪽은 사촌 여동생인 세화야.”

“김세화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고모님의 따님이지.”

대화그룹 회장인 김승열에게는 밑으로 두 형제가 있었는데, 차남인 김승호 온누리그룹 회장과 막내딸인 김승아 대화문화재단 이사장이 있었다.

세화는 김승아 이사장의 장녀였고, 아들만 있는 김 회장이 매우 아끼는 조카딸이라고 한다.

“우리는 삼정이나 현기같이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없는데 굳이 그림 그린다고 대학원까지 가서 말이지.”

“아, 그래도 나 놀고먹지는 않거든?”

세화의 말에 크게 웃는 규완.

진욱은 두 사촌남매를 보고서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때 세화가 진욱을 보고서 넌지시 물었다.

“TV로 몇 번 봤어요. 그 강아지 간식 만드시는 사업 하시죠?”

“아, 네. 펫푸드 수제간식 사업을 좀 하고 있습니다.”

그때 규완이 한마디 더 거들었다.

“세화야. 이 친구는 진짜 동물에 진심이다? 저기 동물원 운영도 이 친구가 했고, 아쿠아리움 카페도 나랑 같이 운영하잖아.”

“아, 신촌에 있던 거기! 완전 예쁘던데! 거기서 사진 찍고 그림도 몇 점 그렸어.”

“그래~ 그거 만든 게 이 친구야.”

규완이 적절하게 띄워 주니 세화는 진욱에게 흥미를 가지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동물 진짜 좋아하시나 봐요?”

“네? 아, 하하- 저희 사업 논의도 있지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집에도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요.”

“그렇구나, 저는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세화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자기 휴대폰에서 앨범을 열고 진욱에게 보였다.

치즈태비의 고양이가 어린 시절부터 성장할 때까지 전부 담겨 있었고, 한눈에 봐도 애정을 가지고 키웠다는 게 느껴졌다.

“저도 아성에 그거는 많이 입혀 봤어요. 고양이 옷.”

“그거 저희 누나가 만든 거네요.”

“네~ 어쩜 동물 옷을 그렇게 이쁘게 디자인한 거예요? 그분도 뵙고 싶다.”

가볍게 차를 마시고서 규완과 추가 협상을 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계속 이것저것 묻는 세화로 인해 진욱은 당황하면서도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줬다.

그리고 사업 짬밥을 키우고 있던 규완이 저 상황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저 녀석이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네?”

“그, 고양이 옷 몇 개 구할 수 있을까요? 인터넷에 본 거 중에서 진짜 가지고 싶은 게 있는데요.”

“아… 네. 사진 보내 주시면, 제가 구해 보죠.”

“번호 알려 주세요!”

눈을 반짝이는 여동생을 보고서 규완은 이거 잘하면 앞으로의 그룹 경영에서 엄청난 힘이 될 수도 있었다.

‘의외로… 괜찮아 보이는데?’

생각해 보면 둘 다 서울대 동문에 자신과도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왔던 경영 능력이 검증된 사업가.

게다가 기업 규모야 지금은 적어도, 추후 1조 원대 그룹으로는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집안의 차기 오너.

그리고 맨날 미술도구 가지고 바람처럼 싸돌아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거 가지고 고모님이 뭐라고 하던 것도 생각하면 둘의 만남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 * *

세화가 잠시 나갔을 때, 규완은 커피를 마시면서 진욱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봤어?”

원래였다면 며칠간 생각을 하고, 대화쪽에서도 천천히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하루만에 이런 상황이 와 버렸다.

이미 진욱의 계획에는 큰집과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고 각각 협상해서 대화리조트가 위약금을 챙겨 주는 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진욱 본인의 의사로 인해서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했는데 그게 어긋나버렸다.

“후우… 원래는 가족 단위의 관광지로 동물원이랑 글램핑장이랑, 치악산 케이블카까지 해서 자연 친화적인 관광단지를 생각했는데요.”

“응, 나쁘지 않아. 그리고 그런 자연 친화적인 관광단지를 위한 글램핑 부지도 우리가 위약금으로 준다고 했잖아요, 하진욱 부사장님?”

“드림월드는요?”

“동물원? 그거는 계속 아성사료가 운영할 수 있게 우리랑 협상하면 돼. 솔직히 우리가 아쿠아리움 말고 일반 동물원에 대해서 뭐 노하우가 있어? 그냥 아성이 계속해 주면 우리야 좋지.”

“집안에서 큰아버지 일가의 지분도 있다고 이야기 드렸죠?”

“아성금융그룹! 그래 그렇지 않아도 이라크에 큰 공사 준비하고 있는데, 아성산업개발이라고 거기도 건설사 있지? 이라크 신도시 공사에 파트너로 추천해 볼게.”

규완이 내건 조건은 진짜 거절하는 쪽이 바보일 정도로 후하게 퍼주는 거였다.

진짜 진욱의 큰 그림의 자존심만 조금 굽히면 아성사료와 큰집인 아성금융그룹까지 노다지가 터지는 일이었다.

“흐으음.”

“하나 더 추가해 줘?”

“아니, 그…….”

“아까 세화 걔 어떻게 봤어? 원한다면 내가 주선해서 정식으로 만나 볼래?”

“아, 아니! 잠깐만요! 초면에 만난 분한테요?”

“초면에 전번 교환하고, 고양이 옷도 챙겨 준다며? 게임 끝났네?”

“…….”

“내가 봤을 때 둘 다 잘 어울리더라.”

진욱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 내에 협상할게요.”

“오, 이번 주!”

“회사를 운영하시는 건 저희 아버지니, 이야기를 드리고 제대로 논의를 해야겠죠.”

“음~ 맞는 말이야. 원한다면 내가 가서 인사 한번 드릴게.”

“일단 상록으로 돌아가서 바로 연락드릴게요.”

“좋아! 승낙한 걸로 칠게.”

그때 바깥에서 오랜 통화를 하던 세화가 들어올 때, 규완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둘이 잘해 봐. 두 살밖에 차이 안나.”

“아, 형님…….”

“뭐야? 둘이 무슨 얘기해요?”

“아, 얘 이제 갈 때 돼서.”

“어머, 정말요? 일 때문에 그러시구나.”

“네, 회사로 들어가야 해서요. 하하하-.”

진욱이 멋쩍게 웃을 때, 세화는 아까 줬던 명함 이후로 진욱에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음 주에 꼭 연락 주세요. 보여 주시는 대로 다 살게요.”

“네~ 고양이 옷 신제품 모델 있는 거 다 준비할게요.”

진욱은 규완과 세화에게 인사한 뒤로 원주에서의 일은 정리하고 상록으로 향했다.

2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는데, 공교롭게도 집에 오자마자 잘 도착했냐고 물어보는 세화 덕분에 몇 시간 카톡을 같이했다.

* * *

그날 저녁은 퇴근한 아버지와 큰아버지까지 와서 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진욱은 원주에서 김규완 이사가 내건 조건에 대해 전부 털어놨다.

“그래서 이런 조건을 내걸었더라고요.”

“미친, 야! 그건 진짜 거절하는 놈이 병신이지!”

“큰아버지 말 좀…….”

“시끄럽고! 그래서 당연히 한다고 했지?”

“이번 주에 최종 협상하기로 했어요. 특히 큰아버지 쪽은 대화그룹에서 명함 따로 받았어요.”

“이야~ 이게 재벌 3세 연락처야?”

동네에서는 수천억대 갑부라고는 해도 서울에 계신 10대그룹 재벌하고 만나서 사업 논의를 한다는 이야기에 흡족한 큰아버지 상규였다.

그리고 아성사료의 상만 역시도 이번 조건에 대해서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두 어른이 승낙한 뒤로 대화그룹과 아성일가와의 계약은 사실상 확정.

그다음으로 두 아성가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번에 아버지 묘소 금칠 한번 하려고 하는데, 국가하고 이야기를 좀 해야 되거든? 이 건은 진욱이가 잘하지?”

“네? 금칠이요?”

진욱에게는 얼굴도 잘 모르고, 예전에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 하경태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진욱이 이 삶을 살면서 족보는 어느 정도 외우고 제사는 착실히 치렀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말이야. 독립유공자라고 하시는데 너무 대우가 안 돼지 않았어?”

“아, 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하셨어요?”

진욱은 잘 몰랐던 사실에 눈이 커졌고, 거기에 대해선 아버지 상만이 설명해 줬다.

“일제시대 때 중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자금 대주시다가 외화관리법 위반인가로 붙잡혀 가셨었어.”

“그때, 면장하고 친해서 돈 엄청 주고 집행유예로 풀리셨다고 하던데, 어떻게 대통령 표창은 받았지.”

그 뒤로는 진욱이 알고 있는 대로였다.

군부정권 시절 뒤늦게 독립유공자 기록으로 인정되어 대통령 훈장을 받고, 거기에서 수출주도 경제계획 때 경기도에 설립한 지방 공기업 ‘아시아합성사료’의 초대 사장 자리를 맡게 되었던 것이 아성사료의 전신.

사실 스토리텔링만 잘 만든다면, 앞으로 아성가에 있어서 선조 대한 금칠에, 국가보훈처와 상록시, 그리고 경기도청에 연락하면 묘소를 명당에다가 제대로 가꿔 낼 수 있을 거다.

“그거 어떻게 진욱이가 알아봐 줄래? 재단에 관련된 거니 이것도 올해 안에 끝내긴 해야 해.”

“국가보훈처가 국무총리 직속기관이고… 기록도 충분하니 그거 일처리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제가 가서 해결할게요.”

“그래! 잘해 봐라!”

“진성이도 같이 가야 되는거 아니야? 그래도 그놈이 명색이 장손인데…….”

“네, 뭐…….”

진욱은 아버지와 큰아버지 두 분이 대화그룹과 협상을 할 때, 세종으로 출장 가서 국가보훈처에 인정받고 할아버지에 대한 연대기도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건 전형적인 기업이 성장하면서 혈족 경영의 재벌가가 될 때마다 선친 묘소에 대한 금칠로 시작하는 거지만, 배경이 괜찮다 보니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얼굴은 못 본 분이지만, 독립운동 이후 사료생산 공기업 지원받아서 키운 게 지금의 전신이라니… 참 운명이라는 게…….’

3대에 걸친 사료회사의 인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얼마 후.

정부세종청사.

“서류는 금방 처리될 겁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국가보훈처 내에서도 예우정책과 담당자인 김 계장은 금방 끝낼 수 있을 거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진욱의 할아버지의 경우 대통령 표창 기록이 있는 애국지사로 되어 있고, 거기에 따른 농토와 묘소 조성에 대한 부지 용도 변경은 금방 끝날 일이었다.

이곳 예우정책과는 돌아가신 독립유공자들을 위해 묘소를 국립묘지로 이장지원을 해 주거나, 기존의 묘소를 지원하여 벌초부터 잔디에 비석까지 전부 다 해 주는 조건이었다.

“훌륭하신 조부님을 두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보훈처 내의 공무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온 진욱은 할아버지의 묘소를 옛날 왕실 능 수준으로 꾸며 드리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건은 금방 처리됐고, 아마 지금쯤 상록에서도 대화리조트하고 이야기 잘 끝났겠지?”

이번 건에 계약은 예우 차원으로 김규완 이사가 직접 온다고 했으니 두 분 다 엄청 준비를 했을 거다.

진욱은 남은 시간 동안 여기서 밥 먹고 천천히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품 안에 있던 스마트폰이 마구 울렸다.

“응? 갑자기?”

회사 일인 줄 알았는데, 엄마였다.

진욱은 차에 탄 채로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진욱아! 너 지금 어디야?!]

“세종이죠. 보훈처하고 이야기 마치고 슬슬 올라가려고요.”

[오는 데 얼마나 걸려? 너 지금 집으로 빨리 와!]

“아니, 갑자기 왜요…….”

아버지 전화라면 많이 받았어도, 어머니가 지금 당장 집으로 오라는 말에 어리둥절한 진욱이었다.

[이 녀석아! 지금 대화그룹에서 회장님 아들 와 있단 말이야!]

“아, 김규완 이사요? 그분하고는 따로 이야기하면 되는……”

[너 소개시켜 준다고 여자까지 데려왔어!!!]

“푸웁! 쿨럭! 쿨럭!!”

순간 사례가 들려서 마구 기침을 한 진욱.

어머니는 지금 집에 며느리가 될 수 있는 재벌가 아가씨가 있고, 진욱이 올 때까지 붙잡고 있겠다고 선언했다.

[빨리 와! 너 이번 기회 놓치면 진짜…….]

“아, 알았어요. 갈게요. 가!”

진욱은 바로 시동을 걸고서 네비에 집을 찍어 놓고 세종에서 상록까지 미친 듯이 밟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