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95화 (95/200)

95화 그런다고 내가 넘길……?!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 원주 드림월드 일대를 다시 돌았다.

동물원 폐장 시간에 맞춰 여기 아이들도 아는 건지 호랑이는 철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사자는 별안간 가족 단위로 포효해 대고, 사슴이나 곰도 이리저리 다닌다.

그리고 폐장시간 10분 전에 하나하나 철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쏙 들어가는 동물들.

그들 역시도 퇴근 시간을 맞추고, 사무실에서 형광조끼를 입은 수많은 직원이 나와 동물원 청소를 준비하고 있다.

“저기, 영업 종료 준비해야 합니다.”

“아, 네! 슬슬 나가야죠.”

“오늘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원교육이 돼 있는 건지 바로 인사하는 아주머니 청소부의 인사를 받고 같이 고개를 숙인 진욱은 바로 나와서 근처에 있는 미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늦은 저녁까지도 운영하는 곳이라고 하며, 다양한 전시전이 있어서 데이트 코스로도 각광받는 곳이라고 한다.

진욱이 티켓을 사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 안에는 다양한 미술품들이 있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이 다 그렇듯이 공립 유치원과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린 동물원 그림들, 그리고 각종 조각품인데 어디 협회, 혹은 어디 재단에서 기증한 물품들.

평범하지만, 그래도 한껏 꾸미기는 한 미술관 안에서 진욱은 벽에 걸린 그림 하나를 보고 멈칫했다.

“오~.”

미술에 대해 조예가 깊지는 않았고, 현대미술은 큐레이터가 알려 줘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그림은 그런 난해함도 없이 상황 그대로를 그려서 상당히 맘에 들었다.

뒷모습으로 두 남녀가 손을 잡은 모습인데, 그 사이로 바라보는 철창 안의 호랑이가 눈이 번득였다.

“잘 그렸네? 누구지?”

진욱이 작가명을 찾아보자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김세화’라는 이름이 있었다.

같은 학교라는 생각에 반가움도 있었고,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몸이었지만 언젠가 다시 전시전을 한다면 보기 위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놨다.

그렇게 미술품들을 둘러보던 진욱은 바로 나와서 근처에 있는 치악산 캠프장을 걸었다.

원래는 호텔이나 리조트 개발을 하려다가 강원도의 관광 수요 문제로 인해서 번번이 나가떨어진 곳.

심지어 조폭도 낀 상황에서 진욱이 동물원과 미술관, 그리고 글램핑 전용 캠핑장으로 만들어 아성사료그룹 산하의 캐쉬카우로 만들려고 했는데 그게 어긋날 상황이었다.

진욱이 청승맞게 원주 드림월드 일대의 관광단지를 다니면서 한숨이 나왔다.

지난 생을 마지막으로 한 대도 안 폈던 담배가 격하게 땡기는 순간에 진욱은 품 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어~ 진욱아! 어디야아~?]

술 한잔 거나하게 마신 상태의 김규완의 목소리에 진욱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드림월드요.”

[오~ 거기 좋지. 여기 시티즌 원주인데, 어여 와!]

“좋습니다. 가지요.”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 차에 타 운전 준비를 했다.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규완이 말해 봤자, 기껏해야 ‘웃돈 얼마 주면 되겠냐?’라는 해답이 전부일거다.

* * *

“그래서, 얼마면 될까?”

역시나였다.

규완은 진욱에게 술상을 차려 주며 달래 주겠다는 듯이 제안을 했다.

그 옆에서는 대화리조트 개발이사 성우영이 있었는데, 대화그룹 전체에서도 회장 비자금 문제 때 대신해서 국정감사에 참여하며 최대한 주군을 커버쳤고, TV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 핵심 임원 중 한 명이었다.

“후우, 몇 년을 공을 들인 건데 말이죠.”

“드림월드에만 479억을 투자했다고 들었습니다. 도 예산 279억에 아성사료가 200억을 투자했다고 들었습니다?”

“우수리 떼면 딱 그 정도죠. 물론 인근에 있는 미술관하고, 글램핑 생각하면…….”

성 이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진욱, 그리고 규완이 술잔을 쭉 비웠다.

“도지사하고, 원주 지역구 국회의원들하고 식사 좀 했어. 그 양반들 당은 달라도 동네 개발에는 진심이더라고.”

이미 한잔 거하게 마시고 온 상태에서 얼굴이 붉어진 규완은 진욱이 키우려는 사업에 대해 언급했다.

“글램핑 사업… 그걸 몇 년전부터 구상했다는 거 괜찮았어. 이야~ 자갈밭에다가 그걸 생각한 건 진짜 대단해. 안 그렇습니까, 이사님?”

“네,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다만, 캠핑장으로 계속 쓰기에는 조금 아쉬운 땅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리는 차라리 인제나 횡성 같은 곳에 있는 게 나을 텐데요.”

진욱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았다.

대화그룹이 여길 노리는 목적이야 강원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서 대규모 관광단지를 개발할 계획.

지금 김규완이 왕권을 확실히 굳히기 위해서는 KTX역까지 들어오는 원주시에 리조트 개발, 그리고 올림픽을 앞두고서 각종 사업에 투자하여 지자체와 같이 뽕을 뽑아 낼 셈이었다.

그 상황에서 ‘위탁 경영 종료 시 민간에 내놓을 관광단지 부지는 아성사료가 우선협상대상자가 된다.’라는 계약을 백지화시킬 거다.

물론 거기에 따라서 글램핑과 동물원을 지을 수 있는 새 부지를 위약금이랑 같이 줄 텐데, 언급한 걸 보니 횡성이나 인제 쪽인가 보다.

“부사장님, 아니 진욱아. 그동안 우리 사업 잘해 왔잖아? 난 솔직히 그룹 내에서 첫 단추 잘 끼운 게 네 덕도 많다고 생각해.”

“…….”

“솔직히 군대 장교 전역하고서 회사는 들어왔는데, 뭐부터 할지 몰라서 계열사 여기저기 다니면서 적응하는데, 네 덕분에 리조트, 관광 산업 진짜 재미 들렸어. 그러니까 이번에 한 번만 양보해 줘라.”

“…….”

“성 이사한테 말해서. 내가 새 글램핑 부지 더 크고 좋은 곳으로 확실하게 챙겨 줄게! 그래, 그 동물원도 경영은 맡길게.”

아성사료 입장에서는 경영위탁을 맡기는게 강원도청에서 대화리조트로 바뀐다는 것.

하지만 진욱은 그 제안에도 속이 쓰렸다.

여기 차지하고 중요 포인트로 삼으려고 큰집 자본까지 끌어들여서 가족들과 큰 개들이 달빛을 보는 모두의 글램핑 문화를 만드려고 했는데, 그걸 콘크리트 가득한 성으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기 지분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큰집도 엮여 있어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 하더라도 집안 전체의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처음으로 형님 앞에서 먼저 일어나네요.”

“아, 그러지 말고~ 더 놀다가. 아직 할 말도 많은데.”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납니다.”

진욱이 자리에 일어나 돌아가자 성 이사가 황급히 뒤따라갔다.

호텔로 돌아가려는 진욱을 따라온 성 이사.

“부사장님.”

“……!”

진욱이 돌아봤을 때, 그는 황급히 달려와 조용히 뭔가를 건넸다.

“명함이라면, 지금…….”

“명함만이 아닙니다.”

“……?”

명함과 같이 USB메모리 스틱을 조용히 건넨 성 이사.

그는 중견기업 자제인 진욱 앞에서도 고개 숙여 예를 표한 다음 미소로 배웅했다.

진욱이 돌아간 뒤로 성 이사는 바로 김규완에게 인사하며 술을 따라드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친구 몇 년을 봐 왔는데요? 지금 조금 서운해서 그래요. 나한테 통수 맞았다고 생각할 테고.”

규완은 쭉 비운 다음, 진욱이 반쯤 마신 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걸로 그렇게 갈라질 사이도 아닐 테고…….”

규완은 적당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 * *

숙소에 돌아온 진욱은 노트북으로 메모리를 꽂은 뒤에 거기에 있는 자료들을 하나하나 읽어 봤다.

“하…….”

확실히 재벌은 재벌이었다.

강원도청 내에서 기획하고 있는 도로와 관광단지에 대한 계획, 그리고 아까 그렇게 말한 인제나 횡성, 그 외에 화천이나, 양양 등의 영동 일대의 글램핑장 부지와 개발 계획에 대해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대화 쪽에서 진심으로 위약금을 통해 이걸 준다는 거지?”

진욱은 이 건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다가 바로 문자를 보내고, 그 다음 다른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으으음~ 여보세요?]

“어, 형. 자고 있었어? 미안해.”

[아니야. 무슨 일이니? 말해 봐.]

“저기, 다름이 아니라 뭐 하나 물어볼게 있어서.”

진욱은 일단 진성을 통해 큰집에 지금 상황에 대해 알렸다.

긴 통화를 마친 뒤로, 아까 보낸 문자에 [얘기 끝나면 연락해라.]라는 아버지의 답장을 확인한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연락했다.

* * *

[위약금이 투자금 이상이라면 우린 불만 없다. 어차피 개발로 차익을 노리고 투자한 건데, 그쪽에서 대준다면 상관없다고 하신다.]

“큰집은 이런 반응이고…….”

[상관없지 않아? 동물원 문제라면 그쪽에서 경영권은 계속 맡긴다며? 우리가 연투가 되면 수익이나 매출은 문제없고, 캠핑장 개발 문제는 큰집하고 얘기 잘될 거 아니야? 굳이 대화하고 갈라질 거 있어? 계약대로 돈 받고 양보인데.]

“역시나…….”

아버지는 여전히 대기업과 사업을 하면서 ‘괜히 그쪽이랑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냉정하게 본다면 대화가 제시하는 계약 위약금, 잘 협상만 하면 실리는 전부 챙기면서 스무스하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진욱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뭔가 감성 넘치는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친한 형님과 엮인 것에 대해 뭔가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아직도 뭔가 좀 그래…….”

왠지 여기서 ‘생각해 본 결과 김 이사님 말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한 순간 바로 벌어질 일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진욱은 지자체나 문광부, 새 정권 들어서 갈라진 해양수산부와 농림축산식품부와 같이 사업을 하려면 이런 좋은 건이 많이 나올 텐데 그때마다 또 위약금 줄 테니 선점한다고 하면, 아성사료그룹과 진욱의 입장은 어부의 명령을 받고 차가운 물속을 직접 헤집는 가마우지 꼴이 될 것이다.

가마우지가 물고기 잡는 순간 바로 그것은 어부인 대기업 재벌들에게 갈 테고 말이다.

규완은 여기 일주일 정도 묵는다고 했고,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면서 연락 기다린다는 카톡을 보냈다.

진욱은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약속의 장소로 향했다.

오늘은 평일 오후 개장을 한다고 해서 아직 시간이 걸렸고, 대신 미술관에 가서 어제 봤던 그 그림을 보게 됐다.

그때 오전의 미술관 안에는 진욱이 인상깊게 봤던 그림을 지켜보는 여성이 있었다.

길게 기른 검은 머리에, 단정한 정장, 명품백을 두르고 있는 하이힐 차림의 차분한 인상의 미인이었다.

“흐음.”

진욱은 조용히 헛기침을 하면서 그녀의 옆에서 그 그림을 지켜보다 결심한 듯 미술관 안의 직원을 불렀다.

“네, 사장님.”

“혹시 이 그림… 구매 가능합니까?”

“네? 아, 죄송합니다. 저희는 전시용으로만 있고, 따로 판매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아쉽네.”

열받아서 쇼핑이라도 해 볼까 했는데 그것도 안 됐고, 도립미술관 직원은 미소 지으며 조용히 물러났다.

그때 뒤에 있던 여성이 진욱을 보면서 조용히 물었다.

“이건 못 팔아도… 하나 그려 드려요?”

“……?”

진욱이 돌아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림 밑에 있는 프로필을 가리켰다.

“제 그림을 구매해 주신다니, 감사한 일이네요.”

“…아!”

“이 그림 그린 작가에요. 김세화라고 합니다.”

“아, 네! 실례했습니다. 저는 그…….”

진욱은 초면에 만난 화가 아가씨에게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줬다.

그녀는 그 명함을 보고서 눈이 점점 커지더니 진욱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성사료… 아아, 그 아성사료…….”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미술관 안에서 한 무리의 정장 차림 일행이 우루루 들어오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선 인물은 화가를 보고서 반갑게 인사했다.

“세화야!”

“아, 오빠!”

그녀가 반갑게 달려갔을 때, 진욱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진욱은 두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

“아이고, 하 부사장. 여기 어떻게 왔어요? 예술 활동 하러 왔나?”

화가가 오빠라고 부르면서 달려간 인물, 그러면서 진욱도 알아본 인물은 대화그룹의 김규완 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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