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자꾸 뒤통수가 따갑네?
진욱은 고메코리아와의 대결을 위해 판매점을 늘려 나가고,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의 납품을 늘려 나갔다.
“전부 소화가 되려나 모르겠네요. 밀어내기를 할 수도 없고…….”
“밀어내기라니,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요.”
대리점 밀어내기 했다가 작년에 차례차례 나락간 기업이 한둘이 아닌데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를 들은 진욱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죄송합니다.”
“김 팀장님. 그런 소리 하지 마시고 앞으로 품질 문제없게 해 주세요. 생산 라인은 제가 직접 공장 가서 확인합니다.”
“알겠습니다.”
김 팀장이 돌아간 뒤로 진욱은 실시간으로 고메코리아가 확장하고 있는 지점들을 눈여겨 봤다.
“강남, 반포, 분당, 해운대, 수성이라…….”
진짜 알짜배기 부촌 일대에 계속해서 알박기를 하면서 양반 장사 직진으로 끊임없이 가는 고메를 보고서 진욱 역시도 이곳저곳 대비를 했다.
그곳에서 진욱이 생각한 곳은 명동이었다.
“월 임대료만 1억 7천… 이게 진짜 미친 거지…….”
연 임대료도 아니고, 월 임대료다.
1제곱미터당 88만 원, 평당 255만 원 남짓의 엄청난 임대료였지만, 진욱은 의욕 있게 밀어붙여 아성펫푸드 명동점에 사활을 걸었다.
그곳에 주력 제품들을 그곳으로 몰빵하고, 핵심 지점으로 케어할 것이다.
물론 새 지점 하나를 가지고 상황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성사료 역시도 캐쉬카우 하나는 마련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진욱이 준비한 곳은 제주도였다.
제주도의 대리점을 크게 키우면서 관광단지에 올렸고, 도민 자체의 수요로는 감당 못 할 많은 양의 제품을 쏟아부었다.
둘 다 ‘왜 하필 거기냐?’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진욱은 의욕 있게 밀어붙였고 결과는 오픈 이후 나올 것이다.
“지점 계속 늘이고, 할인전 하면서 점유율을 올리고, 수익 증대를 위해서 신제품 개발하고…….”
빡센 상황이었지만, 진욱은 계속해서 액셀을 밟아 댔다.
고메가 안착한 뒤로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건 전쟁이다.
잘못하면 겨우 반려동물 시장 블루오션 노려서 캐쉬카우를 만들었는데, 엉뚱한 외래종이 와서 다 처먹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진욱은 그 상황에서 잠깐 컴퓨터로 아성사료의 주가를 살폈다.
현재 주가는 증자 이후로 조금씩 상승하면서 숨 고르기 하고, 시가총액은 3,300억에서 계속 오르내리고 있었다.
모든 자본을 합치면 벌써 5천억을 넘은 알토란같은 기업이었으나 아직도 부족했다.
“슬슬 주식 관리도 해야 하는데…….”
상장 이후로 최대주주는 아버지지만, 이후로 큰아버지 일가, 그리고 진욱이 각각 지분을 가지고, 나머지는 각종 대기업들이 초반 협업 때 투자를 했었는데 그 금액이 어떻게 움직일지 몰랐다.
* * *
“감사합니다. 마담 샤를.”
“아닙니다. 미스터 리.”
서라벌 호텔 내에서 제일식품 부사장 이성철이 정장 차림의 백인 여성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었다.
단정한 정장에 굳은 의지가 가득한 올림머리의 여성은 성철이 건네준 차를 마시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어를 정말 잘하시는군요?”
“이곳은 제게 익숙한 땅입니다. 이미 예전에도 몇 번 일한 적이 있었죠.”
“아, 그렇군요.”
“처음에는 카르푸, 그 이후로는 악사 쪽이었습니다.”
둘 다 한국에서도 참으로 많이 알려진 프랑스 기업이었다.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통으로 불리는 고메코리아 대표이사 샤를로트 프레드릭.
그녀는 이번 한국 진출에서 제일식품과 손을 잡고 시장에 아주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었다.
라이벌이라고 해야 미국이나 스위스의 레슬리나 마스터, P리나는 이런 고급화 전략에 어울리지 않는 곳들이었고, 그나마 수제 간식으로 아성사료라는 곳이 있었지만, 노하우는 이쪽이 몇 갑절은 더 많았다.
이미 펫푸드 시장에서 업계 1위 선점은 시간 문제였고, 그 이후로 제일과의 거래에 대해서 그들이 내건 조건은 또 하나가 있었다.
“결국은 다 한지붕 식구가 될 겁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저쪽에서 제풀에 쓰러져요.”
“그쪽이 그렇게 불안한 상태인가요?”
“하하하, 지금 그 녀석들 덤핑 공세에 무리하게 지점 늘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정면 승부를 하려는데 한참 멀었죠.”
성철의 말에 샤를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그쪽 지분을 사들이지요. 얼마 되지 않겠지만, 제일과 함께한다면 CEO는 금방 바꿀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샤를은 성철과 악수를 하고는 조용히 대기하는 비서들과 함께 호텔을 나왔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조용히 손거울을 꺼내 화장 상태를 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뭐가 됐든, 인센티브는 두둑하겠군. 여기 시장은 언제 와도 기회의 땅이라니까?”
“Comment?(네?)”
“C'est coréen.(이거 한국말이야.)”
비서에게 일갈한 샤를 대표는 곧바로 강남 사옥으로 향했다.
* * *
아성사료 임원 회의에서는 올해 1분기부터 시작할 대형 이벤트에 재무 상태가 신경 쓰이는 상만의 말로 시작했다.
“매출 대비 수익이 점점 안 좋아지는데 이거 괜찮을지 모르겠구만.”
“거기에 맞춰 사내유보금을 모으고, 추가 융자 금융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 상무의 말에 상만도 고개는 끄덕였지만, 그래도 걸리는 게 많았다.
하필 3분기부터 여기저기에 돈을 끌어모으느라고 매출 대비 수익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거기에 신사업으로 대화그룹과 같이 추진하는 AD아쿠아리움 건은 초기 건설과 체인점 사업 때문에 바로 돈이 들어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단 이번 건만 버티면 큰 위기는 따로 없을 겁니다. 그리고 기업 인지도가 계속 상승하고 있으니까 성장통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 부사장, 그 말도 맡긴 한데, 이럴 때 일수록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해. 진짜 무슨 리스크가 생길지 모르는 게 사업이야.”
상만이 그렇게 말하는 건 IMF다, 동업자의 뒤통수다 수많은 상황을 겪어 봤던 진짜 뼈저린 충고였다.
진욱 역시도 그것을 알고 있어서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면서 계속해서 마케팅에 힘을 쓰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 명동에 들어간 거 말이야. 그거 임대료만 잘 메꿔도 좋겠지만.”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리해서라도 그곳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충분하니까요.”
그때 이 상무도 거들었다.
“사장님, 최근에 중국발 관광객들 증가로 인해서 그 일대 수요가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보통은 화장품이나 영양제 등을 고르지만, 중국의 펫코노미 사업은 200억불에 육박하니 앞으로 그쪽 수출에도 몰두해야 할 겁니다.”
중국 진출을 앞두고서 준비했던 명동과 제주 지점.
이해는 가지만 ‘꼭 지금이어야 했냐?’라는 찜찜함이 있었지만, 일단 이것도 아들에게 전권을 준 것이니 지켜보기로 한 상만이었다.
어차피 순리대로 간다면 신제품 개발 → 중국시장 진출 → 박람회 고정 참여로 세계적으로 마케팅 → 생산 라인 증대 및 공장증설 → 기업성장으로 차례차례 진행될 것이니 말이다.
회의는 계속 이어졌고, 추가 융자와 신제품 출시시 바로 신누리유통과 로타유통에 납품을 영업팀에서 MD들과 협상을 해 시장 개척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어느 정도 상만의 불안감을 지울 수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모두가 나왔을 때, 이 상무가 잠시 진욱을 불렀다.
“부사장님.”
“네?”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흐음, 네. 지금은 괜찮을 것 같네요.”
* * *
둘은 차를 타고 본사에서 조금 떨어진 커피숍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커피를 마시면서 최근 벌어지는 동향에 대해 이정열이 먼저 말을 꺼냈다.
“최근에 주식으로 뭐 들으신 게 있습니까?”
“주식이요? 아니요.”
“흐으음, 이게 좀 이상합니다.”
스마트폰으로 현재 아성사료의 거래량을 볼 때, 진욱이 봐도 뭔가 그래프가 좀 난잡해진 것 같았다.
“누가 계속 매수를 시도하는 것 같은데, 사장님께 보고드리자 자사주를 매입하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어이구, 국민연금이 벌써 관심가지기라도 했나요?”
국민연금이 우량기업들 지분 모아가면서 주주권을 가지던 것이 생각나는 움직임이었다.
“대화에서는 별 이야기 없었는데요. 그리고 제가 그쪽 담당자와 계속 사업 논의해도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재벌을 두고서 ‘그럴 사람 아닙니다.’ 라고 평가하는 게 우습게 보일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진짜 그런 낌새가 보였다면 진욱이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럼 설마… 제일 아니겠습니까?”
“가능성은 있지만, 이건 그 정도의 규모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제일그룹이 아성사료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건 알았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일을 하진 않는다.
차라리 대놓고 ‘아성사료 인수를 논의하겠다!’ 라고 뒤흔든 다음에 이쪽에서 ‘사실이 아니다!’ 라고 정정보도를 해도 그냥 매수 계속하면서 천천히 지분을 늘려 서서히 잠식할 것이다.
대다수의 재벌이 00년대 초 벤처기업 열풍이 불었을 때, 유망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먹어 치우던 방식이었고, 스마트폰 시대의 IT업계 회사들이 이름만 바뀐 스타트업 회사들에 그런 짓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했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로펌이나 회계, 투자은행 낀 인수합병 팀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건 진짜 들어본 적이 없네요.”
“제 기우일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 물 밑에서 누가 우리 회사를 두고서 지분을 잠식해 나가는 게 아닌지 신경이 쓰입니다.”
이제는 아성사료의 한 중역으로써 회사를 지키기 위해 이것을 진욱에게 말해 준 이정열 상무.
진욱은 이 사람이 아버지와 자신에게 이 말을 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대처를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 유리금융지주랑 손 잡은 게 이럴 때 써 먹을 수 있겠군요.”
“아, 부사장님이 직접 움직이실 겁니까?”
“어차피 서울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그러려고요.”
진욱은 이 상무가 제보해 준 이 내용을 가지고, 유리금융 산하의 기업컨설팅을 알아보기로 했다.
만약 정말로 누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노리고서 달려든다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최대한 백기사를 끌어모아야 한다.
일단 가장 도와줄 분들은 큰아버지 댁일 테고, 대화의 경우에는 장남이 직접 나서서 공동 사업하는 걸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으니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백기사가 되어 줄 거다.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하네요. 진짜 어떤 놈이 계속 주식 이렇게 긁어모으지?”
개미 치고는 여기저기 분산해서 거래량을 늘이는 상황에 대해서 진욱은 확실히 대비책을 세워 보기로 했다.
얼마 후 진욱은 전혀 뜬금없는 곳에서 전화를 받고서 황당해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희가 뭘 팔아요?”
[아니죠? 제가 부사장님 만난 인연이 있는데, 조금 성장했다고 황금알을 매각합니까?]
“아니, 사장님! 진짜 그 얘기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아성의 수출파트를 담당해 주고 있는 중안무역, 박 사장이 직접 걸어서 진욱에게 물은 말이 충격이었다.
‘아성사료가 외국계 기업하고 지분거래해서 외국계 된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이냐?’
진욱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외치면서 그 썰 퍼트린 놈을 요청했다.
[이게 저희가 중개인 하면서, 유럽쪽 알아봤는데, 그쪽에 있는 직원이 들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뭐요?”
[그, 고메인가 고멘네인가 하는 기업 있지 않습니까? 그 외에 다른 펫푸드 기업들도 한국 진출하는데 교두보로 아성과 합작을 노린다고 하더군요.]
“하~ 어떤 놈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제 멋대로 한국에 있는 아성사료 지분 가지고 여기 진출한다?
증권가 찌라시치고는 좀 불쾌한 내용이었고, 진욱은 진짜 아성사료를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다음에 부산 갈 때, 이야기 드리겠지만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아성은 아성의 길을 가니까요.”
[아, 네.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상사맨이 물건이나 잘 팔아야 하는데. 허허……]
“아닙니다. 유럽 수출 건 잘 진행해 주시고 다음에 뵙죠.”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바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현재 아성사료 주가를 찾아봤다.
“미친… 그 와중에 또 상한가를 치고 있어? 게다가 거래량은… 지난주 대비… 이거 얼마야?”
회사가 성장하고, 주가가 오른다는 건 좋은 일인데 뭔가 계속 찝찝한 소리가 나돌자 점점 신경이 쓰이는 진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