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91화 (91/200)

91화 냄새 맡고 물 건너온 자들

진욱은 강남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임원 회의가 정해진 날에만 아성사료 상록 본사로 도착했다.

“아, 부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이 상무님!”

대대적인 인사 개편 이후로 많은 임원과 간부가 승진길에 올랐다.

영업 본부장에서 바로 총괄부사장 자리에 오른 진욱은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워커홀릭의 움직임을 보여 줬고, 이제는 대립보다는 재무팀에서 서포트를 확실히 해 줬다.

이정열 상무는 이번에 기부 목록으로 따로 제품을 빼 달라는 것의 리스트를 만들어 건넸다.

“지난번 말하신 것 전부 빼놨습니다.”

“감사합니다. 품질은 유 팀장님에게 여쭤보면 되겠군요.”

“그런데, 이게 어디로 기부를 가는 겁니까?”

가뜩이나 출혈이 큰 한 해였는데, 기부 금액까지 늘린다고 하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진욱은 그것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하던 대로 기부하는 곳에 가는 거죠?”

“네? 아니, 부사장님. 저희가 기부하던 곳이라고 하면…….”

진욱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거 사장님도 잘 아시는 일입니다?”

마법의 말인 ‘사장님도 아는 일’이라고 하니 월급쟁이 임원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될 일이었다.

이정열 상무는 진욱이 자재팀으로 들어갈 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상에 거기가 어디라고 또 간다는 건지…….”

* * *

얼마 후.

삼정문화재단 안내견 학교로 수많은 기부 물품이 들어왔다.

“이거는 애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특별히 챙긴거고요. 또 이거는 유기견들 먹일 수 있는 건식 사료인데, 저희 이름으로 전부 결제한 겁니다.”

“하, 하하. 감사할 일이긴 하지만…….”

지금 이곳 재단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이곳은 제일, 삼정, 신누리, 제이 등의 범삼정가 사람들이 모두 모이고 재벌가 사람들도 눈도장을 찍기 위해 오는 곳.

그런데 불과 얼마 전에 제일식품하고 장갑 던지고 대판 붙었던 장본인인 아성사료 사람이 오자 싸늘한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욱은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고서 반려견학교 신임 소장인 이현종 소장에게 제품을 기증하며 말했다.

“회사는 회사 일이고, 후원은 후원이죠. 나라 대신에 삼정이 시각장애인 안내견 육성 사업 하는 건 정말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제일하고 한따까리 했던 아성사료 임원이 아니라, 안내견 자원봉사에 기부를 하러 온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린 뒤에 사진까지 찍으면서 SNS에 올렸다.

[삼정화재재단 안내견 학교, 수많은 분들의 눈과 발이 될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삑-

진욱은 재빨리 트윗을 한 번 올린 다음에 삼정문화재단에 인증샷을 한 번 박고 실시간 반응을 지켜봤다.

그리고 본관에 있다가 그 소식을 들은 성철은 순간 마시고 있던 캔을 집어던질 뻔했다.

쾅-

“그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야, 임마! 이성철!!”

집무실에 있던 작업복 차림의 이현욱 회장이 크게 소리 치며 당장이라도 치고 가려고 하는 아들을 말렸다.

“미쳤어? 천지분간이 안 돼냐? 큰형님이 여기 계신데 뭐 하는 짓거리야?”

“하지만 회장님! 우리 회사 그렇게 긁어 놓고 표절 시비로 합의금까지 긁어간 놈들입니다! 무슨 낮짝으로 여길 온단 말입니까? 특히 하진욱이 그 새끼요!”

“말 좀 막 하지 마라. 머리 좀 식혀!”

이 회장은 끓어오른 아들을 만류한 다음 자신이 직접 비서실 간부들을 데리고 나갔다.

“아성사료 하 사장이랑 같이 온 거야?”

“그,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진욱이 단독으로 왔다고는 하는데… 매달 기부하는 품목이라고…….”

“하, 기부하러 온 놈 쫒아 낼 수도 없고. 뭐, 대충 잘 모셔서 보내.”

“네, 회장님!”

괜히 본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재단에 분가의 회장이라고 해도 구설수 만들었다가는 지금 사업 지분 문제에 트러블이 생길수도 있어 일단은 한발 빠지기로 한 제일그룹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철판 깔고 왔다는 진욱에 대해서는 조금 흥미가 생겼다.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구만, 쬐깐이 사업으로 끝날 녀석은 아니야.”

자기 아들한테 엿을 먹인 일은 기억해도, 이렇게까지 나간다면 기업인으로써 진욱은 인정할 만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인정 수준이고, 조만간 그놈들을 다시 원래 자리로 떨어트리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 * *

“고메코퍼레이션?”

“네, 그쪽 썰이 엄청 퍼지네요.”

새해가 되었을 때, 아성사료는 때 아닌 경쟁자의 등장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고메면, 일본어냐?”

“고메를 일본어로 구르메라 부른대요.”

“그렇구만.”

진욱은 뭐라 말하려 하다가 확실히 아시아에서는 생소한 브랜드인지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고메(gourmet).

진욱이 그 이름을 들었던 것은 처음 슈투트가르트 반려동물용품 박람회 이후로 분기별로 갔던 국제 애견용품 박람회에서였다.

건사료부터 습식 사료와 수제 간식까지 다양한 반려동물 식품을 파는 회사인데, 독일과 쌍벽을 이루는 프랑스 애완용품 시장에서 유럽 내에서 손꼽히는 알짜 식품 기업으로 유명하다.

“아무튼 걔들이 들어온다 이거지?”

“네, 신경 많이 써야 될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기업이야?”

“뭔가 좀, 냄새가 나서요.”

“냄새라니?”

진욱은 고메코퍼레이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생각에 잠겼다.

안 그래도 나날이 커지는 국내의 반려동물용품 시장으로 인해 유럽과 미국의 이름난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진출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고급화된 브랜드의 제품들이 많았는데, ‘수제 간식 스틱 하나가 반도체보다도 가성비가 좋다!’라고 할 정도로 고부가가치 상품이 많았다.

“냄새가 난다는 건 무슨 말이냐?”

“마쓰모토 때가 생각나서요.”

“흐으음…….”

마쓰모토가 한국 내의 적당한 기업 하나랑 합작 법인 해서 들어오고 지금은 제일 쪽과 손을 잡아 가축 사료에 대해서 1인자를 노리며 달렸다.

만약 제일식품과 마찬가지로 다른 대기업, 그중에서도 유통이나 식품쪽의 회사가 합작 법인 만들어서 진출한다면 그거 진짜로 골치 아파질거다.

“이제는 반려동물 시장이 진짜 커진 걸 모두 알고 있어요.”

“그, 그렇긴 하더라. 사료협회 세미나 갈 때 봤는데 이제는 사료도 애완용이랑 가축용을 따로 나눴어.”

“네, 그중에서도 대형견용이랑 소형견용, 거기에 펫푸드와 사료를 따로 나눠서 그것만 해도 10억 달러가 넘는 시장이라고 언플을 해 대더군요.”

“히야- 요 쪼끄만 게 전국에서 10억 불이란 말이지.”

현재 자사에서 OEM 사료만큼이나 잘나가는 아성펫푸드의 수제 간식 제품을 든 상만은 진짜 시장이 상전벽해가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진욱은 그 시장의 선두를 노리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렇게 신문에서 특정 시장이 이만큼 돈이 된다는 걸 알리는 게 뭔지 아세요?”

“돈 냄새 나니까 마음껏 들어오라고 하거나, 아니면…….”

“네, 진출각을 본 다른 기업이 움직이는 걸 겁니다.”

“흐음,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이야? 제일 때처럼 정면으로 들이받을 거냐?”

“그래야겠죠.”

진욱을 부사장으로 앉힌 뒤로 상만은 기존의 상록에 2개 공장과 휘하 하청 공장 등의 굵직굵직한 가축용 사료 위탁 생산 쪽에 집중했다.

애견 옷이나, 수제 간식 등의 사업들은 진욱과 진영에게 맡긴 뒤고 큰딸은 기존 사료 중에서도 환경 문제에 쓸 수 있는 천연사료 쪽 개발에 몰두했다.

“뭐, 이제는 전권을 가졌으니 어디 마음껏 해봐라.”

“네, 아버지.”

진욱은 아버지가 말한대로 마음껏 움직여 보기로 했다.

그리고 고메가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은 일이었다.

* * *

[프랑스 명품 수제 간식이 온다!]

[우리 아이 먹이는 프랑스제 사료.]

[고메코리아!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강남대로라는 노른자 땅에 1호 대리점을 오픈한 고메코리아.

이미 오픈 전부터 반려동물 커뮤니티 내에서 상당한 관심을 가진 곳이었다.

질 좋은 국산품을 놔두고 해외, 그것도 유럽 명품에 대한 소비 의욕이 가득한 게 대다수 소비자의 마음이었다.

특히 SNS 시대에 그것은 더욱 심해졌고, 그들의 진출 이후로 정보를 실시간으로 듣던 진욱은 그야말로 혀를 찼다.

“얘들 미쳤네. 진짜.”

“저희도 눈을 의심했습니다. 시장 조사를 잘못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걸 이 가격에…….”

진욱이 처음 수제 간식을 만들고 2~30그램 짜리 오리 목뼈 간식을 하나 팔 때 5천 원 받는 것도 신경을 썼었다.

지금도 그 가격대를 유지해서 겨우 500원 올렸는데, 고메코리아는 같은 무게의 오리 목뼈 간식을 1만 6천 원씩 받아먹는다.

오리 목뼈뿐만이 아니었다.

진욱이 개발하는 데 그렇게 신경 썼던 비건 간식, 그리고 돼지 등뼈나 얼룩말 사료 역시도 똑같이 나왔고, 가격을 비교하면 3배에서 최대 5배까지 비싼 가격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웃긴 건 그들은 현재 대리점 직영으로만 판매하고, 일반 마트나 슈퍼마켓, 편의점 등에는 진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건 대놓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노린다는 것이었고, 진욱은 그것을 두고 굉장히 신경 쓰였다.

“부사장님, 저희도 프리미엄 브랜드 하나 만들까요?”

이번에 아성펫푸드 강남사옥에 입주하면서 새로 영입한 인물 김상우 팀장.

수제 간식 전문가로 일본까지 다녀와 그쪽 시장에서도 사료연구가로 활약했던 인물이라 지금 시장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었다.

“아뇨, 저도 그쪽을 생각하긴 했는데, 시기상조입니다.”

“네?”

“적어도 2년, 그 정도 시간은 지난 다음에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드려고 했어요. 근데 이건…….”

“차라리 지금에 맞춰서 경쟁자랑 같이 움직이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개발하기도 전에 브랜드부터 만드는 건 역효과예요. 잘못하면 이미지만 안 좋아집니다.”

진욱은 아쉽지만 지금은 판세가 딱 갈라진 상황에서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아성사료가 중소기업 아이디어 상품으로 가성비를 앞세운 대중적인 수제 간식.

그리고 거기에 맞춰 고메코리아는 프랑스라는 네임드에 프리미엄 브랜드로 대놓고 양반 장사를 노리는 고급화 수제 간식.

오픈 이후 연일 매진 사례를 보고 있는 고메코리아를 보고서 진욱은 그들을 상대할 방법을 계속 생각해야 했다.

* * *

[손가락 만한 스틱 하나가 반도체와 자동차보다 고부가가치?]

[브랜드의 승리. 반려동물의 밥그릇 위에 명품 수제 간식!]

신문사들이 마치 짜고 올리는 것처럼 일제히 고메코리아에 대해 연이어 찬사하는 보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무서운 것은 기존에 있던 시장의 대중화된 제품들을 순식간에 ‘싸구려’로 만든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애견인&애묘인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을 앞세워 CF를 찍고 공격적으로 진출하는 고메코리아의 행동에 진욱은 실시간으로 이 시장에 안착한 프랑스발 침공에 머리가 시큰거렸다.

“김 팀장님. 일단 이거 모두 추진해야 할 겁니다.”

직접 기획안을 올린 것은 기존의 판매점 매장을 더 늘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존에 좋은 목과는 다른 조금은 생소한 곳들이 많았다.

“부사장님, 이건…….”

“장군 받았으니 멍군 해야죠. 저쪽에서 저렇게 늘리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기획안 서류에 있는 모든 것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진욱의 의지에 김 팀장은 바로 직원들을 소집했다.

그동안 일본발 침공, 대기업발 통수에 이어 이번에는 유럽 브랜드와의 싸움이 진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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