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개밥 팔아 강남 빌딩
“이긴 건 이긴 거고 앞으로가 중요한데…….”
진욱의 중얼거림에 상만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4분기 판매량과 매출과 수익 재무제표를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었다.
“일단 이름은 알렸고, 내년부터는 내실을 좀 다져야겠어.”
“네, 회장님.”
“뭐? 회장?”
“이젠 회장 직함 쓰셔야죠?”
“허어…….”
중견기업 승격 이후로는 아성사료의 대표이사 직함을 사장에서 회장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 진욱이었다.
“이미 큰아버지도 아성금융그룹이라고 아예 회장 직함 쓰시는데, 아버지도 충분히 가능하죠.”
“아이고, 회장이라고 하니 좀 낮간지러운 단어인데.”
“차차 익숙해지셔야죠. 회사가 커지는 만큼 이제는 수행 비서도 여러 명 고용하셔야 하고요. 그 다음에…….”
“그 다음에는?”
“부동산 사업도 좀 해야겠습니다.”
“뭐?!”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어리둥절하는 상만 앞에서 진욱은 미리 찍어 둔 사진들을 하나하나 올려놨다.
그것은 강남 일대에 있는 고층 빌딩 리스트였고, 한눈에 봐도 살 떨리는 가격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하 상무. 이게 다 뭐야? 어쩌자고 서울에 빌딩들을 이렇게 많이 찍었어?”
“이 중에 하나 사려고요. 서울 진출을 위해 쓸 겁니다.”
“…허, 참.”
언제나 뜬금없는 것을 보여 줬지만,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당장에 이번 매출 대비 수익으로 재미를 못 봤는데, 그 와중에 사내 현금 좀 모으려고 하니까 몇백억에서 몇천억이 될지 모르는 대형 고층 빌딩, 그것도 강남에 있는 걸 구매하겠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그래, 말이나 들어보자. 이유가 뭐냐?”
“서울 진출, 그리고 랜드마크를 만드는 게 가장 큰 이유죠.”
“이 건물 완공한 게 몇 년 된지는 잘 알잖아.”
“네, 본사는 계속 상록에 있는 이곳을 쓸 겁니다. 하지만 일부 계열사를 옮기고 차차 빌딩을 채워 나가는 거죠. 다른 회사 들여서 세도 받고요.”
“그거 너무 무리수 아니냐?”
“아니요. 꼭 해야 합니다.”
진욱은 또다시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보고는 퇴근 후 집에서도 계속 이야기할 것을 선언했다.
* * *
“일단은 투자 목적이지만, 추후 회사 성장에 따라서 써먹을 수 있는 건물이죠.”
“무슨 말인지 잘 알겠는데, 왜 하필이면 강남이야? 차라리 더 싼 곳을 알아볼 수 있지 않냐?”
“상징성이 크잖아요? 게다가 이걸 한번 봐주세요.”
“으음, 어디…….”
진욱이 내민 빌딩들은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서초-강남-송파 등의 서울 내 손꼽히는 부촌에 있는 건물이면서 2호선이나 3호선 등의 대중적인 라인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7호선이나 8호선, 이후 새로 개통할 9호선 등의 강남 내에서는 외곽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두 번째로 규모 대비 공실이 큰 곳들이었다.
00년대 이후로 유리궁전 스타일이나, 각종 건축가들이 휘황찬란하게 디자인해서 볼거리는 좋았지만, 평범한 아파트들과 오피스 건물들이 가득한 곳이어서 대중적인 동네는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래서 저평가된 건물들이었다.
진욱이 현대에 살았던 2020년대라면 상상도 못 하겠지만, 강남구청역, 학동, 양재, 잠원 이런 곳들의 15~20층 규모의 사무용 빌딩들이 200억 내외로 구매할 수 있는 곳들이 상당히 많았다.
물론 그 200억도 큰돈이긴 했지만, 강남 일대의 이름난 동네에서 유리궁전 빌딩을 랜드마크로 가지는 것은 확실히 회사 이미지에서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당장에 200억 마련하기 힘들 텐데…….”
“에이, 저희가 무슨 건물을 일시불로 삽니까? 절반은 대출 끼고, 분납으로 준비하는 거죠. 준비할 것도 많고요.”
“준비라니?”
“건물 위에 주식회사 아성사료에 대한 CI로고 장식해야죠. 나중에는 아성사료 빌딩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게요.”
“흐으음.”
결국 또 상만은 아들의 세 치 혀에 넘어가서 승낙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부동산에 있어서는 전문가인 큰아버지쪽과 이야기하겠다는 진욱을 보고서 상만은 넌지시 중얼거렸다.
“아까 회장 이야기도 그렇고… 진짜 회사를 제대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데 말이지…….”
상만은 그것을 보고서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CEO는 정해진 것 같구만.”
아직 서른도 안 된 아들인지라 너무 이른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움직임을 보면 나쁠 게 없어 보였다.
그렇게 진욱은 아버지이자, 또 차기 회장에게 확실하게 승낙을 받고 건물 매입에 들어갔다.
* * *
“근처에 있는게 강남구청, 세무서, 세관이 있고, 연면적 1,300평에 대지면적은 143평 정도 된다.”
“어우, 딱 좋네?”
지상 18층에 지하 3층으로 이뤄진 학동로의 빌딩 메가타워.
진욱이 알아본 곳 중에서 가장 꽂히는 곳이었는데, 옆에 있는 사촌 형 진성 역시도 추천하는 곳이었다.
“안에 들어가 볼까?”
“그러자.”
때마침 상가 1층은 프랜차이즈 카페인 스타벅스였어서 내부 분위기 보기에도 괜찮았다.
커피를 시킨 뒤로 마시며 진욱은 가장 중요한 금액 문제에 대해 말했다.
“건물주가 250억 불렀어.”
“그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비싸네?”
“얼마 생각했는데?”
“220억.”
“흐으음.”
“공실 생각하고, 확실한 캐쉬카우라고 해도 여기 카페하고 약국 하나, 치과랑 병원 하나가 전부야. 그 위에 아직도 비어 있는 건물들 생각하면 아무리 강남이라도 좀 비싸지.”
“30억 차이면 애매하긴 하네.”
진욱은 거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다가 어떻게 건물주랑 직접 협상을 해서 풀어 나가기로 했다.
“형네 회사도 여기에 입점 생각 있어?”
“흐음, 안 그래도 을지로에 하나 있는 거 빼고 이런 자리라면 저축은행 들어가도 괜찮기는 한데…….”
진성은 이거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말해 보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욱은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이 다른 빌딩들의 답사는 넘어가고 이곳을 픽하기로 했다.
그리고 부동산 방면에 있어서는 전문가인 큰아버지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건물주와 부동산 법인과의 협상을 수월하게 진행했고, 최종 가격 231억 7,500만 원에 이걸 매입하기로 했다.
* * *
커팅식을 마치고 최상층에 아성사료의 자회사 아성펫푸드의 법인이 정식으로 생겼다.
기념 공연으로는 아성사료의 전속모델이었던 아이즈가 자신의 신곡 ‘하이힐’을 부르면서 임직원들에게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자, 모두 박수!”
진욱의 박수와 함께 아이즈가 공손하게 인사했고, 그 뒤로 회사 개업식에서 모두가 새 건물을 둘러봤다.
“여기 완전 맘에 드네? 주차장도 넓고.”
언제나 서울을 부르짖었던 둘째 누나 진영은 바로 아래층에서 ‘아성펫드레스’의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고, 그 밑으로 유대수 이사의 아성 IT팀 역시도 입주했다.
“펫푸드 대리점 하나랑 대화랑 말해서 여기다가 아쿠아리움 카페도 만들 거예요. 지하에다가요.”
“거 1층에 스타벅스 있는데 괜찮겠어?”
“이미 내용에 대해서도 말했어요. 저희가 적당히 임대료 조정해서 일단은 고정으로 만들어 놨어요.”
“그렇구만. 그럼 뭐 할 말 없지.”
상만은 이 거대한 빌딩을 의욕 있게 추진해서 매입한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봤다.
지금이야 지어진 지 5년도 안 된 상록의 본사에서 일부 계열사만 이곳으로 옮겼지만, 정말 아들이 말한대로 앞으로 성장할 때 ‘강남 사옥 본사’라는 상징성은 정말 어마어마하리라는 것을 안 것이다.
“남은 건물에다가 동물병원 입점하면 좋겠는데, 그거 학교에 이야기해야겠네요.”
“내년이면 어떻게 졸업 가능하겠어?”
“네, 본격적으로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진욱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상만은 그저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좋은 날에는 또 냄새를 맡고 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하 사장님?”
“아, 네! 누구신……?”
“인사드리겠습니다. 쥬신일보 경제부의 양현국 기자라고 합니다.”
“아이고, 쥬신일보요?”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중원일보에서 왔습니다.”
“YTV의 이아현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이런 일에 있어선 정말 빠른 이들이 바로 기자였다.
그것도 겨우겨우 사정해서 공장 위생 상태 우수하다고 알려 주며 고기 몇 점 먹이던 지역지 기자나, 제대로 된 보도를 하려면 적어도 지면광고 하나 올리고서 다시 연락하라고 했던 콧대 센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
그런 이들이 이제는 모두가 앞다퉈서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아성사료에 집중했다.
“혹시 하 상무님 되시나요?”
“네, 맞습니다.”
“사장님 대신 같이 인터뷰 진행할 수 있을까요?”
“하 상무님! 이쪽 한 번만 봐 주세요.”
진욱은 몇몇의 기자가 사장인 아버지 대신에 언론을 몇 번 탔던 진욱을 보면서 누가 실세라는 것을 안다는 듯이 달려왔고, 상만은 그러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뭐… 밑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에 디저트 하나씩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해 볼까요?”
기자들에게 커피와 디저트 하나씩 돌리는 거 정도야 별문제될 것도 없었고, 그들에게 있어선 오히려 그게 더 그들에게 임팩트가 있었다.
이미 그들에게 있어서 기사 거리는 한 트럭이었다.
허름한 공장장 아들로 시작해서 수많은 수출탑 트로피와 장관, 총리 표창을 여러 개 타게 만든 기업으로 만든 킹 메이커.
차세대 벤처산업 리더로 뽑히면서 방송에도 자주 나왔던 프로 경영인.
그리고 자신들에게 하청을 줬던 대기업과 제품 경쟁을 해서 마케팅과 품질로 제쳐 버린 능력자.
진욱 역시도 그런 것에 대한 질문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유창한 언변을 뽐내기 위해 입안부터 적셨다.
* * *
[밑에서 부리던 머슴한테 대감이 도끼를 맞았다.]
진욱은 언론에서 쓰는 ‘머슴’이란 단어를 두고서 쓴웃음을 지었지만, 갑과 을의 원청과 하청 사이를 그렇게 표현하는데 뭐 정정보도를 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언더독의 신화나, 자이언트 킬링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됐어. 이 정도로 판 키워 준 것만 해도 어디냐?”
“이건 더 심하네요? 개밥 팔아 강남 빌딩?”
‘개밥’이라는 말은 참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강아지 사료나 펫푸드라는 단어가 있는데, 굳이 개밥이라고 쓴 것은 아마 기자들의 화제성을 위해 만든 제목 어그로일 것이다.
“다음에 기자들 만나면 펫푸드나 사료라는 말을 좀 쓰라고 해야겠어요.”
“근데, 기사 제목이 웃기기는 하다! 개밥 팔아 강남 빌딩이라니… 하하하하!!!”
상만은 크게 웃다가 눈물을 훔쳤고, 그 기사들을 하나하나 잘라다가 비서에게 연락해 전부 코팅해 오라고 보냈다.
그리고는 나라에서 준 트로피가 가득한 진열장 옆에 알림판을 설치하고 표창 받을 때 찍은 사진들 옆에 하나하나 핀으로 꽂아 그 기사들을 장식했다.
진욱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뿌듯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계속 올게요.”
“몸 생각해. 일단 강남 빌딩은 네가 산 거니까 거기 계열사들은 잘 맡기마. 부사장.”
“…부사장이요?”
진욱은 순간 그 칭호에 대해서 머리를 긁적였고, 상만은 크게 웃으면서 신임 부사장의 손을 잡았다.
“회사 일하면서 보너스랑 승진 말고 더 중요한게 있나? 앞으로도 잘하라고, 하진욱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