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이걸로 악연을 청산한다
진욱은 여전히 바빴다.
아버지 상만과 같이 대화리조트 아쿠아리움 프랜차이즈 카페 사업과 세부 조율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렸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이 손잡고 하는 사업이다 보니 이름에 대해서도 협상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둘을 붙여 대화-아성 아쿠아리움 카페라고 했다간 단번에 ‘아성사료 대화에 인수됐나?’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대화의 이름만으로 하기에는 또,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결국 이 방법을 선택하려면 새 브랜드를 만들고 투자를 대화그룹이 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아성사료가 움직여야 했다.
그 상황에서 진욱은 협상 테이블에서 대화리조트 쪽으로 온 김규완 팀장을 향해 말했다.
“일단 저희도 아성사료 내에서 원래 동물 카페를 운영하던 계열사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아마 상장은 안 했을 테고, 법인만 존재하는 거겠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우리도 대화리조트 내에서 신규 법인을 만들 테니 아쿠아리움 카페를 위해서 지금 가지고 있다는 그 계열사랑 같이 통합을 합시다.”
“네. 팀장님. 그리고 그 다음은요?”
“새 브랜드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일단 우리 쪽에서 이름을 만들 테니, 아성 쪽에서 CI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경영 대해서는 일단 우리 계열사 임원들이 와 주시겠지만, 운영에 대해서는 아성사료가 맡아 주면 되지 않겠습니다?”
“아, 운영은 확실히 저희가 잘 맡겠습니다.”
진욱은 일방적으로 대화그룹이 투자만 해 주고 100% 자신이 운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나을 거라며 속으로 안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충 아이디어만 갈취한 다음에 무의미한 임원 자리 몇 개 주고서 입 싹 닦는 상황도 방지한 것 같아서 운영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같이 협상해서 좋은 인물을 보내면 됐다.
“그렇다면 그쪽에서는 전문 경영인, 저희 쪽에서는 아쿠아리움을 운영할 수 있는 관상어 전문가를 섭외하겠습니다.”
“네, 그게 좋겠네요. 어디까지나 동물과 관련된 사업이니까 말이죠.”
협상은 점점 끝물이었고, 마침내 타결된 순간 모두가 일어나 악수를 했다.
상만은 차에 타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진욱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신사업을 제대로 만들은 것에 대해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 * *
“이번 분기에 꼭 성공시켜야 하는 게 있습니다.”
“꼭 성공시켜야 하는 거라니?”
“올해의 마지막인 4분기 매출, 애완사료 업계에서 제일 잡는 겁니다.”
“……!”
“뭐?”
“허어-.”
이번에 제일식품을 잡는다는 말에 아성사료의 임원들은 이번에도 또 태풍이 불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찌 보면 갑과을 사이에서 을이 갑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로 복수하기 위해 뺨따구를 한 방 크게 날려 버리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제일을 잡는다라… 엄청 추상적인 말이니까 정확히 말해 보라고, 우리가 어떻게 잡을 수 있지?”
“일단은 습식입니다.”
“하, 습식!”
건식 사료야 한국 레슬리와의 위탁생산으로 인해 돈과 물량에 대해서 공장을 풀가동해서 뽑아낼 수 있다.
그리고 습식 사료는 지난번 대장균 파동으로 인해 춘추전국시대가 된 상황이었다.
진욱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판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2분기 애완사료업체 습식 사료의 제품 판매 순위와 점유율 리스트입니다.”
진욱이 보여주는 표는 모두 대한사료협회에서 제공한 자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회사 제품의 순위권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보고 흡족했지만, 이제부터 대기업과 싸움을 한다는 말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했다.
“네, 보시면 알겠지만, 지난 마스터 푸드의 습식 사료 브랜드 ‘카이저’의 ‘대장균 파동 사건’이후로 절대적인 왕좌가 무너졌습니다.”
“그렇지. 걔네 1위 내려온지 오래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그 뒤로 1위 자리는 레슬리와 제일식품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3분기까지의 습식 사료 판매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레슬리코리아
2-제일식품 사료사업부
3-마스터 푸드
4-한국마쓰모토
5-아성펫푸드
6-P리나 코리아.
7-로타내츄럴
국내 재벌 대기업 집단에서 이 업계에 있는 것은 제일그룹과 로타그룹.
참고로 제일식품 사료사업부의 순위는 아성사료의 OEM도 포함된 것이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제일식품이 1위를 올리고 있는 와중에 우리 회사 뒤통수를 쳤습니다.”
뒤통수라는 말에 씁쓸해하는 사장 상만 이래 임원들.
덕분에 거래는 끊겼지만, 역으로 그래서 아성사료 자체의 브랜드로 올인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대화리조트와의 협상으로 인해 대화유통 내의 갤럭시아 백화점이 저희를 푸쉬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럼, 진짜로 우리가 습식 사료 점유율로 제일을 잡는다는 말입니까?”
이 이사의 말에 진욱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먼저 해야 할 것은 습식 사료 브랜드입니다.”
“후우- 그렇군요.”
“영끌하면 확실히 탑3까지는 어떻게 되겠어요. 근데, 제일하고 마쓰모토가 손잡았는데, 될지 모르겠네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많은 준비를 할 겁니다.”
“어떻게?”
상만의 물음에 진욱은 아버지를 향해 먼저 물었다.
“밑의 순위의 회사가 위에 있는 회사를 잡고 올라가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뭐? 어, 일단은… 판매량이 확 떠서 점유율을 올리는 거겠지.”
“그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서는요?”
“압도적인 히트 상품을 개발해 내거나, 아니면…….”
“기존의 물량을 높여서 판매처를 늘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 상무!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우리 이제 재무 상태 숨 돌렸는데 말이야.”
“아니요. 오히려 그래서 다른 업계가 방심하고 있습니다.”
“뭐?”
진욱은 바로 다음 자료를 보였다.
“이번에 우리 아성사료가 사내 현금을 모으기 위해서 덤핑 공세를 마구 했습니다. 덕분에 매출은 유지했어도, 수익에 대해서는 재미를 많이 못 봤죠. 실제로 몇몇 금융권 융자 못 댔으면 디폴트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네, 그래서 다른 업계가 방심을 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저희 저가 공세에 맞춰서 같이 할인을 하기보다는 그냥 생산물량을 그대로 현상 유지를 했습니다. 아마도 알아서 고꾸라질 것이라 생각했겠죠.”
제일식품 같은 경우는 자기들이 손절 치고, 뒤에 와서 슬며시 펫푸드 사업 부문만 600억을 제안해서 인수하려고 했고, 한국 마쓰모토 같은 경우는 눈치를 보다가 아예 제일식품 사료사업부로 가서 안전빵인 OEM 쪽으로 갔다.
“저희가 고꾸라지면, 그제야 천천히 물량 올려서 공세하려고 했겠죠. 하지만 이제는 상황 바뀌었습니다. 여기에서 펫푸드 습식 사료 생산량을 더 늘이겠습니다.”
“아니!”
“상무님! 그렇게 덤핑하다간 점유율 올리겠다고 수익 바닥납니다!”
싸게 팔아서 잔뜩 매출을 올린다고 해도 남는게 별로 안 나온다는 건 장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게다가 본인들이 직접 파는 것도 아니고, 유통업체들과의 수수료 문제도 생각하면 여기서 더 생산량 늘이는 건 무리수였다.
하지만 진욱은 단호하게 의지를 표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기회라는 겁니다. 만약 예산 문제라면 제가 예산을 위해서 타 금융사와의 추가 융자도 해결하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말입니까?”
재무팀이 전부 들고 일어나 물을 때, 거기에 대해서는 상만이 손을 들었다.
“그건 내가 설명하지. 대화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유리금융지주에서 아성사료에 대한 융자도 검토한다고 했어. 아마 영업부에서 직접 올 테고 그쪽을 통해서도 PF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
“사장님, 유리은행 쪽하고 거래가 터집니까?”
“어, 틀 수 있어.”
보통의 중소기업이었다면, 지역 상호금고나 담당은행에서 소규모 거래로 끝난다.
하지만 유리은행, 그것도 금융지주 영업부가 직접 나서서 융자 논의를 할 수 있다고 하니 확실히 아성사료가 상당히 성장했다는 것을 간부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이미 돈 문제, 생산 문제가 해결되었고 속으로는 모두가 대기업 갑질로 인해 공장 위기가 쌓인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었다.
그리하여 을이 갑에 대해 복수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 * *
한편 4분기를 진행하면서 제일식품 내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꼈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어디 금광이라도 캤대?”
부사장실 안에서 상당히 저렴한 말투가 나올 때, 보고를 올린 전무이사 박현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난 분기 덤핑 공세를 하더니, 거기서 생산량을 두 배로 늘인다고 합니다. 전년 대비 40% 할인이라 판매율 또한 상당하다고 합니다.”
“중소따리가 폭탄 세일해 봤자 짤짤이나 긁는 줄 알았더만, 대화그룹 뒷배로 잡았다 이거지?”
자신이 제일식품 부사장이 된 이후, 제일의 수많은 외식사업 브랜드와 식품에 대해서도 순풍을 달고 있었는데, 이놈의 사료사업부가 계속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성철의 성격상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었고, 그는 바로 박 전무에게 말했다.
“박 전무! 우리도 그냥 덤핑해 버려요. 그깟놈들을 못 말려 죽이겠어?”
“부사장님, 하지만 한국마쓰모토와 계약 문제가.”
“아, 그놈들한테도 따로 추가 협상하면 되잖아요?”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애초에 아성사료의 펫푸드 사업부를 먹어 치울 셈으로 위탁생산 물량은 모두 한국 마쓰모토에 밀어줬던 제일식품이었다.
그런데 금방 말라죽을 것 같은 아성사료가 바겐세일을 막 해대서 고꾸라지는 줄 알았더니, 별안간 4분기부터 생산량을 2배나 올리는 미친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고, 기존 계약을 넘어서 추가계약까지 해서 어떻게든 아성사료를 포위하려 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던진 장갑을 받아들이고 친히 치킨레이스를 시작한 것이었다.
* * *
“감사합니다. 상무님!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됐습니다.”
“아이고, 이제 우리 살았습니다. 아성사료가 저희를 구해 주셨습니다.”
진욱은 상록시와 시흥, 아산 등의 서해안 일대의 영세한 사료공장들에게 추가 생산을 위한 OEM을 맡겼다.
본격적으로 생산량을 확 늘릴 셈으로 습식 사료 하청을 엄청나게 맡겼고, 영세한 공장들은 때아닌 돈폭탄에 바로 움직였다.
대형금융사와 중기청 지원, 외국계 회사들이 지원해 주는 금액.
그리고 그 금액을 받은 아성사료의 무한한 생산.
또 남는 것을 바로 밑에 있는 중소/영세기업들에게 물량을 넘겨 그쪽의 자금 흐름을 돌리기.
전형적인 갑-을-병-정 식이었지만, 이게 손발이 맞으니까 정말 착착 움직였다.
“개인적으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네?”
공장 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욱은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넌지시 말했다.
“뭐, 옛날에 그 말 있었잖아요? ‘만들어라 그러면 팔릴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 악성 재고 다 어쩌려고…….”
“아, 대윤그룹의 말이었죠.”
“네, 그때 그래서 부도 나지 않았습니까?”
진욱은 연배 있는 사장들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고기 한 점을 집어 먹고는 다시 맥주를 따르며 말했다.
“근데 말이죠. 진짜 만드는 만큼 마구 팔려요. 진짜 마구마구 팔려요!”
“……!!!”
“안 그랬으면 저희가 사장님들에게 도움 요청했겠습니까?”
“그, 그렇습니까?”
정말로 지금 국내 애견 시장에서는 대격변에 가깝게 움직이고 있었다.
[A님의 글입니다: 요새 습식 사료가 너무 싼데, 아예 강아지 급식을 습식으로만 할 수 있나요?]
[B님의 글입니다: 네, 요새 너무 싸요. 저도 잔뜩 주문했어요. 할인전 11월까지 한대요. 다들 사 놓으셨죠?]
[C님의 글입니다: 악성 재고 터는 거 아니에요? 지난번에 카이저 사건으로 전 아직도 불안해요.]
실시간으로 반려견이나 반려묘 커뮤니티에는 이제껏 사료하면 떠올리는 동네 마트나 펫숍에서 사는 두툼한 자루에 담긴 건식 알곡사료를 생각했다.
하지만, 캔과 튜브형의 습식이 건식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지니, 점점 소비자들도 ‘그냥 건식 없이 습식으로만 애들 먹여도 되지 않나?’라는 말이 많았다.
그 상황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아성 펫푸드였다.
[A님의 글입니다: 저희 애는 아성 것만 먹더라고요. 제일이나 레슬리 꺼는 쌓아 놔도 잘 안 먹어요.]
[C님의 글입니다: 아성 게 가성비가 좋아요. 조금 적기는 해도 그만큼 싸거든요.]
[D님의 글입니다: 그냥 우리 댕댕이도 습식으로만 줄까? 막 많이 준다고 설사하고 그러진 않죠?]
소비자들이 점점 습식을 선택하고 선빵을 치면서 공세를 펼쳤던 아성사료는 점점 빛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11월에 일어난 결전의 4분기 판매 점유율 예측.
제일식품에서는 명패 집어던지는 소리가, 아성사료에서는 환호와 함께 오늘 또 회식한다는 사장님의 외침이 상록시 전체를 울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