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86화 (86/200)

86화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냐?

진욱은 지금 가져온 기획안을 모두 고용노동부가 채택해 주길 바랐다.

실제로 거를 게 없는 데다가 하나라도 반려되면 인터넷에 슬슬 흘려서 아성사료의 착한기업 이미지는 만들 수 있으니 다음 정권 생각해서 키핑해 둘 수도 있었다.

“되도록 빨리 해결해 줘라. 이거 빨리 끝내고 또 일하러 가야 한다고…….”

이미 진욱의 노트북과 태블릿 안에는 세종에서 고용노동부 관련 PPT 외에 추가로 가야 할 곳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 진욱은 스케줄을 확인하던 중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네, 하진욱입니다.”

[하 상무님? 저 이 과장입니다.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아, 네. 말씀하시죠.”

이 과장은 헛기침을 하면서 진욱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리고 진욱은 호텔 방 안에서 눈이 커질 정도로 놀라다가 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습니까?”

[갑작스럽지만, 판이 너무 커진 것 같습니다. 이미 장관님도 이 소식을 듣고 각 부처마다 PPT를 하던 하 상무님이 눈에 띄인 모양입니다.]

“반가운 소식이군요. 그럼 그분 앞에서 PPT 준비하겠습니다.”

[네, 상세 일정을 바로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확인하시고 답장 문자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진욱은 스마트폰을 보고는 그대로 기지개를 켰다.

“장관이 이 자료 가지고 바로 국무회의에 들어간다고? 이것 참.”

장관 만나는 거야 이미 아버지에게도 연락했지만, 그 이상으로 높으신 분들이 본다는 말에 진욱은 머리를 톡톡 쳤다.

“세종에서 며칠 더 있어야겠다.”

* * *

PPT를 마친 진욱을 보고 고용노동부 장관 방하윤은 박수를 크게 쳤다.

“잘 봤습니다. 대통령님이 말하시는 ‘창조경제’에 큰 아이디어가 되겠군요.”

자신이 힘들게 만든 PPT 자료를 보고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에 대한 양념을 치는 와중에 진욱은 미소로 화답했다.

‘맘대로 갖다 붙이라지. 우린 지원만 해 주면 어따 써도 상관없으니까.’

방 장관은 안경을 고쳐 쓰면서 옆에 있는 보좌관들과 고위 공무원들과 이것저것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진욱에게 말했다.

“곧바로 안건 올린 다음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만약 성사된다면 인천에서 다시 뵐 수 있겠군요.”

“기다리겠습니다.”

방 장관이 인천을 언급한 것은 노동부 산하의 한국폴리텍대학 본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 폴리텍 이사장과도 기자들 앞에서 사진 같이 찍으면서 같이 서류에 싸인하는 퍼포먼스 한번 보일 것이다.

물론 그걸 주최한 방 장관도 웃으면서 같이 사진 찍고 자신의 업무 추진 내용으로 공을 세우고 말이다.

“식사 같이하시죠? 이 근처에 좋은 한정식집이 많이 있습니다.”

“하하, 네. 저도 몇 시간 발표를 했더니 슬슬 배가 고프네요.”

진욱은 장관 외 고용노동부 고위간부들과 같이 식사 자리를 가졌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서 그날밤 바로 차를 몰고서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 * *

“이게 뭡니까?”

“산삼입니다. 그것도 천연이죠.”

“아, 아니. 이걸 왜 저에게…….”

중안무역 박 사장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진욱의 선물을 보고서 멋쩍게 웃었다.

“원래 선물용으로 여러 개 사 놨는데, 개한테 준 뒤로 그냥 주변 신세진 분들에게 나눠 드립니다.”

“네? 개한테 줘요?”

“있어요. 제일그룹의 노친네.”

진욱의 말에 박 사장은 무슨 상황인지 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상당히 비싸 보이는데,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거 드시고 힘내셔서 새 수출 루트 만들어 주셔야죠?”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 사장이 집무실 책상에 산삼을 내려놓고 커피가 나와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가 시작됐다.

“제일식품 OEM 끝난 뒤로 당장에 위탁생산 물량이 필요한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해외 사료회사의 OEM을 받을 용의가 있으신거죠?”

“네, 이왕이면 계약 문제 지저분하지 않고, 저희 위탁생산 커리어는 이미 국내 대기업들과 농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채식사료 이야기도 있고 해서 확실히 아성사료를 괜찮게 볼 기업은 있을 겁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계약 이후로 든든한 파트너가 된 중안무역에게 다시 의뢰한 진욱.

박 사장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진욱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욱은 그분들의 알선을 좀 더 쉽게 해 주기 위해 위탁생산에 대한 아성사료의 포트폴리오를 내밀었다.

“만드는 데 고생 좀 했습니다.”

“아이구, 제대로 준비해 주셨네?”

“여러모로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진욱이 고개 숙여 간곡히 부탁했을 때, 박 사장은 곧바로 자신도 맞인사를 하면서 꼭 노력하겠다면서 악수했다.

그리고 진욱이 떠난 자리에서 박 사장은 아까 그가 주고 간 나무 상자를 열어 천연 산삼 10뿌리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이거 진짜 우리가 대기업 상사맨이 된 거 같네?”

뭐, 그들 입장에서는 믿어 준 만큼 제대로 움직여 주기로 했다.

안 그래도 아성사료 일가하고, 정부 내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한다고 하니 그게 바로 커리어이기도 했다.

* * *

그 뒤로 진욱은 그야말로 남부 지역을 훑어 나갔다.

부산 공장에서 이번에 새로 들여온 얼룩말 고기 품질을 확인하고, 바로 제조하는 현장에 대해서도 시찰한 다음에 경남주파크와의 추가 사료용 고기 계약, 이후 바로 전라도로 넘어가 여수 대화 아쿠아리움에 들른 다음, 광주로 올라가 전남대 농수산식품 연구소 담당 교수와도 만나면서 겨우 상록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잘됐어?”

상만은 고생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푸짐한 상을 차려 주며 넌지시 물었다.

“장관님이 국무회의 올린다고 하더군요. 조만간 뉴스에서 반려동물 사업이 뜬다고 별별 기사 다 나올 겁니다.”

“후우, 다행이구나.”

“하지만 이것도 급한 불이에요. 초반에는 저희쪽 사람들이 사료협회 사람들이랑 같이 움직이겠지만, 역시 다음 분기를 위한 대형 계약은 필요해요.”

전남대 연구소, 동물원 고기 납품, 거기에 중안무역을 통한 거래처 확보까지 정신없이 움직인 진욱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지금 사료협회장 하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그쪽이 알아봐 준다고는 하는데…….”

“바로 자리가 안 나오죠?”

진욱의 물음에 상만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이 다른 기업에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죄다 난색을 표하네. 대다수의 기업은 이미 협력업체 사이가 견고하고, 농협에게 기대려고 했는데, 농협사료도 지금 물량 오버래.”

“그럴겁니다. 갑 회사한테 찍힌 하청업체라고 색안경 끼는 놈들도 많을걸요?”

이 바닥은 좁다.

이건 어느 영역에서나 짬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만, 사료업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대기업 브랜드로 대규모 공장을 굴리는 사료 회사 같은 경우는 지역별로 로비 잘하는 중소협력체들이 견고한 상태.

여기서 당장 제일에게 팽당한 아성사료가 다급하게 다른 곳을 찾는다 하더라도 새 거래처 계약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릴 거다.

“난감하네. 지금 계속 할인 이벤트 돌려서 잔돈 긁어모으고는 있는데, 큰 한 방이 안 나와.”

“그래서 말인데, 아성사료 이름으로 새 거래처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음? 어떻게? 네가 직접 힘들다고 한 말이잖아?”

진욱은 상만의 말에 뭔가 생각한 게 있다는 투로 말했다.

“아성사료가 지금까지 성장하면서, 꼭 사료업으로만 성공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

“꼭 사료생산 계약만이 아니더라도 파고들 곳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진욱은 거기에 대한 기획안을 올리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원숙은 혀를 끌끌 차면서 아들이 먹던 밥그릇을 들었다.

“세상에, 기껏 갈비찜이다, 잡채다 준비했는데, 밥은 반도 안 먹고…….”

“저 녀석 너무 바쁘게 움직이는 거 같구만. 내가 사장인데 부끄러워 죽겠네.”

“여보, 그러지 말고 진욱이 보약 하나 준비해야겠어요.”

상만은 사실상 사장보다 더욱 바쁘게 움직이는 아들을 보고서는 안쓰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 * *

“이게 뭡니까?”

“저희 아성사료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 꼭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이거 좀… 글쎄요. 뜬금없긴 한데.”

홀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만난 인물은 대화리조트 사업부 임병호 부장이었다.

최근 대화그룹은 여기저기에서 고용승계 문제로 어수선한 상태였다.

대화그룹 김 회장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승마 선수로 활동하는 셋째와, 아직 기업 일을 하지 않는 둘째와 다르게 첫째 김규완이 에너지 사업부 차장 입사 이후 3년의 기간을 거쳐 리조트 사업부 부장으로 온 것이다.

그런 아들을 밀어주기 위해 리조트 사업 부문에서 각종 아이디어 응모를 받았고, 이 점에 있어서는 제일그룹의 이 회장과 이성철 녀석과 같은 상황이었다.

“최근에 황태자께서 리조트 사업부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에이~ 그런 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짜고짜 차기 회장인 후계자에게 이 아이디어를 전하고 싶다는 당돌한 하청업체 사장 아들.

“물론 그분이 지금 아이디어 공모전 한다고, 그룹 이름으로 받기는 하지만…….”

“그래서 혹시나 했죠. 뭐, 안 되면 민간인 신분으로 직접 대화리조트 아이디어 공모전에 넣어 볼까요?”

“그거 심사도 제가 합니다~.”

임 부장은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지만, 일단 그룹 내 절차에 따라서 윗선에서 돌려는 보겠다며 간부회의부터 시작해 임원에게 올리는 방식으로 FM적인 답변만 해 줬다.

하지만 진욱은 잘 검토해 보겠다는 말만으로도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대화그룹과의 거래를 생각하면, 은인 중에 하나입니다.”

“하하, 그런 말은 저한테 하지 마시고 담당 MD들하고 해 보세요.”

진욱은 그 말에도 싱글벙글한 채로 돌아갔고, 임 부장은 남은 자리에서 그가 주고간 기획안을 보면서 넌지시 중얼거렸다.

“아성이 제일식품한테 소박맞았더만, 여기저기 들쑤시고 난리도 아니구만, 우리 회사가 은인이라고?”

중소기업 협력업체들 앓는 소리하면서, 대기업 찬스 쓰는 건 많이 봤지만 아성사료는 좀 특별했다.

“그나저나 이거… 나쁘진 않아 보이는데?”

* * *

그리고 또 4분기를 앞두고 정신없이 움직일 때, 진욱에게 한 가지 연락이 왔다.

다른 거 필요 없이 어디에도 말하지 않고 혼자 서라벌 호텔로 오라는 제일식품의 말.

부른 인물은 다름아닌 ‘이성철’ 부사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 앉아.”

서류를 보면서 턱짓으로 알아서 앉으라는 고압적인 상황에 진욱은 한숨을 내쉬면서 왜 불렀나 제안을 기다렸다.

“거래 끝난다는 말 이후로 발에 불이 붙었나봐? 노동부에 폴리텍에 대화에 여기저기 손바닥 비비러 잘 다녔더구만.”

“비즈니스 일인데, 열심히 해야죠.”

“킥.”

성철은 대놓고 비웃으며 들고 있던 서류를 진욱 앞에 내던졌다.

거기에 쓰인 내용은 ‘아성사료 수제 간식 사업부 인수제안서’였다.

“……!?”

“6백억 정도 쳐주지. 수제 간식하고, 기존의 대리점 전부 넘겨.”

하 청관련 생산공장만 남기고 아성사료의 아이디어로 유명한 수제 간식과 관련 대리점, 그리고 동물 카페와 애견호텔 등의 사업부는 전부 넘기라는 것이었다.

진욱은 그것을 두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일식품은 처음부터 아성의 기술만 노리는 거였고, 적당히 목돈 쥐여 줘서 손에 넣은 다음 앞으로 제일의 이름으로 이 사업을 독점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 공은 이성철이 가지면서 안정적인 고용 승계를 위해서 말이다.

진욱은 여기 있어 봤자 더 이득될 게 없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실례지만,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하청따리가 대가리 한번 더럽게 빳빳하네? 이게 마지막 제안이라는 거 눈치 못 챙겨?”

“…….”

“그나마 그동안 거래가 있으니 선심 써서 챙겨 준 거야. 그냥 하던 대로 공장 돌리면서 이 사업부만 곱게 넘겨.”

진욱은 그 순간 이성의 끈이 풀어졌다.

“거 이젠 대놓고 반말이네?”

“…뭐?”

“제일그룹한테는 우리 회사가 얼마나 같잖게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죠. 6백억 정도로 흔들릴 회사가 아니거든요?”

“훗~ 쫀심 부리는 거 하고는.”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입니까?”

“뭐? 아니 근데 이놈이 진짜.”

성철이 일어나 진욱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절대 물러나지 않고 대치했다.

성철이 그대로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던지려고 할 때, 그 살기 돋친 대치 속에서 누군가가 난입했다.

“맞아요. 그건 내가 들어도 좀 심한 말 같네요.”

“……?!”

“……!”

진욱과 성철의 대치 속에서 제3의 인물이 서서히 다가올 때, 둘의 희비가 확연하게 갈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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