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일단 영양가 있게 만들어 보자
진욱은 이번 채식사료 문제로 임원 회의 안건에 올려놨다.
이미 이야기를 들은 상만은 싱글벙글했고, 재무이사 이정열 역시도 큰 건을 받았다면서 올해 매출 정말로 잘 나올 거라 기대했지만, 실무진인 진욱과 당장 연구개발을 해야 하는 진미는 진짜 죽을 맛이었다.
“아니, 어떻게 강아지들에게 육류를 안 먹이고 키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진미.
그리고 진욱 역시도 고기 떼고, 뼈 떼고, 이거저거 다 빠진 걸로 무슨 영양식을 만들라는 건지 너무 난이도가 빡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만은 그런 두 자녀를 보고서 이번에 받은 제안서를 보여 줬다.
“ODM 방식에 연구개발비도 이쪽이 내줬어.”
그리고 금액과 예상수출 생산량 금액을 보자 진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어떻게 보면 진짜 말도 안 되고, 생소한 개념의 채식사료였는데, 덕분에 연구개발에 관한 금액도 세고, 수출시 판매도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도 가격 대비 엄청난 수익을 부를 제품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제대로 개발하고, 제일식품과 유럽의 바이어들도 인정한다는 조건이 있겠지만 말이다.
진욱은 일단 사료에 대해 연구해 볼 누나의 반응을 지켜봤다.
시댁과 남편도 허락해서 둘 다 맞벌이로 상록에서 살림집을 차렸는데, 앞으로 큰누나가 신혼에 야근이 잦아질 것 같았다.
“연구라는 게 그렇게 뚝딱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사실 제가 이쪽 일 처음 해 봤지만, 후우…….”
진미는 손가락으로 셈을 세 보면서 대략적으로 계산했다.
“지난번에 희귀 관상어와 해수어 사료 같은 경우는 전남대 농생명연구소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거하고, 국립수산원이 도와줘서 빠르게 진행한 건데 지금은 맨땅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누나, 일단 내가 해외에서 현재 팔고 있는 비건 사료 바로 구매하고, 성분분석표도 보낼게.”
“그럼 좀 빠르긴 해도… 으음, 일단 맨 처음 해야 할 건 우리가 만들 제품의 원료부터 준비해야겠고, 그런 다음에 필수 영양분이 필요한 원재료를 찾아야 해.”
진미는 그걸 다 계산에 넣고 탁상 캘린더를 가져와 하나하나 말했다.
“그리고 영양분도 인공으로 쓸지 천연식품으로 쓸지 알아봐야 하고, 거기서 동물성이 나오면 안 된다고 했으니 그것도 감안해야 하고 말이야.”
“어우, 빡세겠다. 그래도 어떻게 안 되겠니? 아빠가 이렇게 부탁한다.”
가격 협상에 대해서는 향후 제일과 좀 더 유리한 방식으로 이끌 수 있다며 자신하는 상만을 보자 진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는 저도 여기 회사 사람이니까 한번 해볼게요.”
“그래, 믿는다! 하 연구팀장, 본부장!”
그렇게 가족 같은 회사에서 또 한번 가족들이 움직이게 됐다.
그리고 진욱은 저녁 회의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 차 안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 저도 한번 체험해 봐야겠네요.”
“체험하다니, 뭘?”
“채식이요.”
“……?!”
순간 상만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진욱을 바라봤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어린 시절 소고기 없으면 밥을 안 먹던 녀석이었는데, 정말 이 녀석이 그걸 할 수가 있나 싶어서 바라봤다.
* * *
“채식도 여러 종류가 있더라고.”
“그래, 나도 이야기는 들었어.”
진욱이 말한 대로 채식주의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었다.
먼저 육고기만 먹지 않고 생선과 어패류랑 계란은 섭취할 수 있는 페스코 채식.
그 다음으로 어패류와 생선도 먹지 않고 동물성은 오직 난류만 먹을 수 있는 락토-오보 채식.
그리고 난류도 제외하고 유제품이 최소한의 단백질인 락토 채식.
그리고 흔히 채식주의 하면 떠올리는 정말 식물류만 먹을 수 있는 비건 채식, 마지막으로 그것도 넘어서 오직 과일과 견과류만 먹을 수 있는 프루테리언 채식이다.
다른 건 몰라도 맨 마지막에 프루테리언은 진짜로 오래 먹으면 사람 건강 망가진다고 의사들도 만류했고, 동물도 저 식단 먹을 수 있는 건 메뚜기 아니고서야 거의 불가능할 거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건?”
진미의 물음에 진욱은 예시표를 보고서 하나하나 표시하고는 말했다.
“유지류까지는 허용되는 락토.”
“빡세네… 계란까지만 해도 어떻게 가능성이 있겠는데.”
난이도가 헬이라며 한숨을 쉬는 진미.
그녀 역시도 집에서 관련 논문을 찾아보고 많은 자료를 찾아봤지만, 일단 못 쓰는 재료가 너무 많았다.
“일단은 다른 건 몰라도 두 개가 필수인데, 그게 채식으로는 찾기 힘들어.”
“그 두 개가 뭔데?”
“타우린하고, 비타민D.”
“그건 가공영양제로 할 수 없을까?”
“FDA 어떻게 통과하고?”
“으음.”
진욱은 머리를 싸매면서 고민에 빠졌고, 진미는 일단 움직여 보기로 했다.
“일단 연구팀하고 같이 만들어는 볼게. 하지만, 지금은 기본적으로 베이스 사료 샘플을 만들어볼게. 이제 거기서 필요 영양분을 넣을 거야.”
진욱은 그 말을 듣고 결심한 듯 말했다.
“좋아. 그럼 제일하고 협상을 할게.”
“그래, 최소한 생선이라도 어떻게 넣게 해 줘.”
진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회의실에서 나와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제일식품의 아는 형님과 약속을 잡고서 식사 자리나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 * *
“메소드 연기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가 있어?”
“아니요. 한번 체험해 봐야죠.”
용철을 부른 자리에서 진욱은 지금 그 사료 만드느라 자신도 채식을 시작했다고 알리며, 식당도 그곳으로 잡았다.
확실히 채식은 돈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반적인 레스토랑보다도 비싼 값이었고, 그것도 강남 같은 부촌에서 하나 겨우 예약한 채식 레스토랑이었다.
“뭐, 그런 모습이 믿을 만은 하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방송 하나 찍을래?”
“네?”
용철은 지금의 진욱의 모습을 보고 넌지시 하나 제안했다.
“우리 회사 방송국에 얘기 한번 해볼게. 너 이번 거 주인공으로 나가 봐라.”
“아니 뭐, 개발 과정 다큐로 찍는 거는 상관이 없는데요.”
진욱은 좋은 제안이긴 해도 어디까지나 여기에 와서 협상을 하기 위해 말했다.
“형님, 해외수출 거래처가 확실히 잡혀 있는 것 맞죠?”
“엉, 삼정물산에서 확실히 거래업체 리스트 받았고, 사내 임원들도 확실히 해볼 만한 사업이라고 해서 푸쉬해 준 거잖아.”
“그럼 진짜 딱 하나만 추가할 수 있을까요?”
“흐음.”
어차피 여러 종류가 있는 채식인데, 딱 하나만 추가해도 확실히 이야기가 달랐다.
“멸치나 조개류까지 협상하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게 페스코인가 락토인가?”
“페스코요.”
“흐음. 일단 전화는 해 볼게.”
채식 레스토랑에서 먹는 파스타는 영 맛이 없는지 반 정도 먹고는 오히려 디저트로 온 케이크를 더 많이 먹는 용철이었다.
진욱 역시도 요새 고기가 미치도록 땡겼지만, 이거 개발이 끝난 다음에 원없이 먹겠다고 다짐했다.
* * *
그리고 얼마 뒤 아성사료 식품개발 연구실.
“네, 아… 그런가요?”
진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을 살짝 쉬자 진미 외 연구팀들도 역시 안 되나 싶어서 쓴맛이었다.
진짜 극한의 난이도로 된 것 같았는데, 전화 중에서 갑자기 진욱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 거기까진 된대요? 그것도 참… 네, 알겠습니다. 차라리 잘됐네요.”
진욱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가락 두 개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었고, 그게 뭔 뜻인지 아는 연구팀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네, 네! 이렇게까지 편의 봐 주셨으니 저희도 그만큼 해야죠. 감사합니다. 그럼 그때 이야기도 바로 진행할게요. 아닙니다. 이사님. 네!”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최근 고기를 끊은 뒤로 얼굴 살이 좀 빠져서 헬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떻게 됐어?”
“어패류는 절대 안 된대.”
“그건 어쩔 수 없고, 다른건?”
“난류 허락받았어. 대신에 전 제품 무정란으로 해야 된대.”
“그리고 또?”
“우유의 경우 치즈나 분유 같은 가공식은 될 것 같대. 그쪽에서도 상품에서 반려견 영양이 중요하다고 설득한 게 먹혔다나 봐.”
“휴우-.”
진미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래도 한 고비는 넘겼다고 안도했다.
이렇게 해서 채식사료는 무정란으로 쓸 수 있는 닭, 오리알과 일부 가공식품에 한해서 조건부 승낙을 받은 유제품이 들어갔다.
“어후~ 그나마 다행이다.”
“팀장님, 그럼 지금 베이스에 당장 달걀 노른자부터 준비해야겠습니다.”
“네, 연구원 분들 다 들으셨죠? 달걀은 돼요. 그리고 유제품도 분말식품 말하는 거 보니까 일단 타우린은 해결됐고, 비타민도 우유로 해결하자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개발에 대해서는 한층 더 진도가 나가게 돼서 연구에 진척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조건부로 허락된 추가 재료로 어느 쪽이 더 영양분이 잘 나올지에 대해 연구를 계산하고, 다양한 샘플을 만들어 여러 견종들에게 먹여 보고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다들 연구복 새로 준비하고, 스타일링 준비하세요.”
“뭐야 그건?”
“우리 다음 주부터 방송 촬영한대.”
“……!?”
이미 아성사료와 제일그룹 미디어사업부와의 이야기가 거의 진행됐고, 이번 사업에 대해서는 진짜 언론부터 제대로 탈 것 같았다.
* * *
“어머, 고기를 안 드시나요?”
“네, 다 뺐습니다. 저희가 채식사료를 만드는데, 그걸 두고서 저만 먹겠습니까?”
진욱은 구내식당에서 고기 반찬만 빠진 식사를 하면서 방송국 PD의 말에 대답했다.
이미 제일그룹 미디어사업부의 방송국 JVN의 다큐멘터리 팀이 찾아와 미리 셋팅을 한 상태였고, 진욱은 오늘의 반찬으로 제육볶음이랑 삼치구이가 나왔는데, 아쉽게도 그건 못 먹고 콩나물국, 김치, 그리고 매점에서 준비한 식물성 단백질 바를 먹고 있었다.
아마 여기에서 나레이션을 하는 아나운서가 ‘우리 아이들에게 먹일 제품을 개발하는데, 자신도 행동으로 보인다는 철학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뭐 이런 식으로 멋들어지게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방송국 카메라들이 진욱을 따라 무균실 안에서 방진복을 입고 안에서 연구하는 것을 보여 줬다.
오늘을 위해서 원래도 깨끗했지만, 아예 낡은 장비들까지 싹 다 치워 버리고 안에서 사료 기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여 줬다.
그날 밤에 퇴근하는것까지 보이면서 자택에서 진욱이 키우는 강아지 요키를 맞이하고, 자사의 수제 간식인 고구마스틱과 호박 스틱을 건네주는 것도 찍었다.
물론 이건 원래부터 요키가 좋아하던 제품이었고, 오히려 너무 많이 먹어서 배만 땅땅하게 불었다며 수의사가 운동 자주 시키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집에서도 계속 사업 이야기를 하는 근엄한 아버지이자 사장님 연기를 하는 상만, 그리고 묵묵히 아들딸과 남편을 바라보는 어머니 원숙.
이렇게 해서 그럴듯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찍었고, 제목부터가 ‘채식은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될까?’라는 이름으로 방영된다고 한다.
물론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해야 되고, 그래야 이 연구개발에 대해 ‘열린 결말’로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잊혀지면 그때 국내 출시를 하는 거다.
촬영도, 연구도 그리고 국내의 판매처 루트를 위해서 제일식품과 로타유통 사이에 이번에는 아성사료가 중개인이 되어 협상을 시작했다.
진욱은 로타와의 약속으로 신제품이 나오면 오프라인 유통마켓에 우선 납품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그리고 단순 ‘채식 사료’라고 하면 생소할 수 있는 고객들을 위해 아이디어도 제안했다.
“한국에서는 ‘웰빙 사료’ 혹은 ‘내추럴 다이어트 사료’ 이런 식으로 내거는 게 어떨까 합니다.”
“아, 안 그래도 그런 마케팅을 준비하긴 했어요. 로타 쪽은 어떻습니까?”
“흐음, 뭐 저희야 나쁘진 않습니다.”
로타 MD는 제일과 아성사료가 제안한 마케팅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이번에 개발될 채식사료는 동물성 건식 사료에 비해 영양분은 비슷했지만, 칼로리가 약간 부족했고, 그래서 오히려 더 내용물을 줄여 팔면서 바로바로 추가 구매를 할 수 있게 판을 짰다.
“뭐, 판촉행사도 다 그쪽에서 해 주시고, 저희는 진열장에 올려놓는 거니 일단 믿고 맏기죠.”
로타 MD로 온 박 차장과 제일 쪽 영업담당자 김 차장.
둘이 악수를 하면서, 진욱은 이 건 잘 해결되면 진짜 동네 고깃집부터 예약할 거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유럽과 미국 바이어 업체들의 테스트에서, 결과는 제일식품을 통해 먼저 밝혀졌다고 한다.
결과는 납품 승낙.
진욱은 그 말을 제일식품을 통해 들었을 때, 일 년에 절반을 고기 안 먹고도 사람이 살 수 있었다면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나중에 강아지용 영양제 만들어서 같이 팔게 해야지.”
어쨌건 이번 ODM은 가까스로 성공이었고, 다큐까지 타고 들어간 수출용 채식사료는… 굉장한 히트를 치면서 아성사료와 추가 협상을 할 때, 엄청난 선물을 주었다.
이것으로 천만 불 훈장과 그 이상의 트로피들도 산업통상자원부에 예약하게 된 아성사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