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아니, 개한테 고기를 주지 말자고요?
아성사료는 그야말로 순풍으로 회사가 꾸준히 성장했다.
로타유통과의 계약을 마지막으로 네임드 유통업체에는 전부 납품을 성공해서, 이제는 동네 마트나 슈퍼마켓, 편의점에서까지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판매대리점 사업을 줄인 것도 아니었다.
스마트폰으로 아성사료의 앱을 만들고 실시간으로 수제 간식과 강아지 옷 등의 자사 제품을 파는 곳을 바로바로 알려 주고, 수의사협회와 협력하여 실시간으로 반려동물의 치료가 가능한 동물병원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줬다.
이 아성펫 앱 역시도 굉장한 히트를 쳐서 수많은 관련 업계의 광고 문의가 들어왔고, 진욱은 적절한 가격으로 협상을 하면서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회사에 들어오는 돈을 세면서 그야말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간간이 대기업과 협업을 해서 대형마트 반려동물 기획전 홍보나, 대기업 복지재단 내에서 제1협력사로 삼정이나 대화그룹 등의 움직임에도 직접 얼굴마담으로 움직이면서 언론과 재벌가 사람들과의 인연도 톡톡히 채우게 됐다.
그리고 오늘 역시도 유기견 구조재단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돌아온 뒤에 호텔 지하 바에서 조용한 자리를 가졌다.
“아, 하 상무. 신제품 언제 줄 거야?”
“아이고 형님, 지금 제일에서 OEM 물량 받는 거 다 되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제일식품 이용철 이사와는 이제 형동생하는 사이가 되었고, 진욱의 가장 큰 인맥이 되어 줬다.
심지어 큰누나 진미의 결혼식 때 직접 찾아와서 제일그룹 이름으로 큰 화환 하나 준 다음에 사진까지 같이 찍어 줘서 몇몇 기자나 증권가 내에서는 그룹 내에서 대놓고 핵심 계열사로 두고 있으니 아성사료가 테마주로 괜찮을 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지난번에 표창 받으실 때 못 가서 죄송해요. 제가 그때 수출 문제로 부산에 있었어서요.”
“응, 아니야. 왔으면 너무 노골적으로 보였을 거야. 하하하하하!!!”
용철이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것은 당시에 협소한 규모였던 아성사료를 직감적으로 배팅해서 우수협력사까지 키워 줬고, 그 덕분에 지금 정권의 ‘대기업-중소기업 상생’과 ‘갑의 횡포가 없는 착한기업’ 이미지로 제일식품이 우수경영자상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 위주로 판을 짜는 것과, 초면에 툭툭 내뱉는 게 좀 당황스럽기는 해도 이 사람은 진심으로 제일그룹, 그리고 삼정가의 대권을 노리는지라 앞으로도 계속 발로 뛸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 진심인지는 몰라도 한번 꽂혀서 자기 편이다 싶으면 무한한 푸쉬를 준다는 것도 상당한 혜택이고 말이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배운 건데 요새 그쪽이 ESG를 점점 시행하고 있더라고.”
“네, 저도 그쪽 자료는 보고 있습니다.”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두고 만든 신조어 ESG경영.
국내에서는 경제민주화 붐 이후로 기업이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투명경영에 대해서 여론 신경을 쓰는 게 더 민감해질 사회였다.
그 상황에서 그걸 직접 도입해서 실행할 거라고 당당하게 만드는 이상주의자 이용철은 진욱에 대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더도 말고 지난번 곤충식 같은 친환경 사료 하나만 더 만들어 줘 봐.”
“하하, 네.”
“솔직히 나도 개나 고양이 입맛이 화학조미료 가지고 얼마나 민감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거 쓴다고 동물권이다 뭐다 해서 미국이나 유럽 새끼들 쫑코 주는 거 진짜 견디기 힘들더라.”
“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온라인 상품은 예외니 바로 제일홈쇼핑이랑 오픈마켓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로타와의 계약 때문에 오프라인 마트 유통은 우선순위로 신제품이 초반 독점 판매를 하게 됐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일반 백화점, 마트, 슈퍼마켓뿐이었다.
애초에 제일그룹은 유통사업에서 마트나 백화점 등을 운영하는 게 없고, 판매처 대다수가 온라인 시장이다 보니 신제품을 계약해도 로타와의 이야기는 하등 문제될 게 없다.
“몬스터티켓하고도 교류 좀 해야 하고요.”
“그 새끼 투자받는다고 일본 가더니만 돌아올 생각을 안 해.”
최한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디캔팅된 와인을 쭉 들이켜는 용철.
진욱은 소셜커머스 회사가 일본에서 투자를 받는다고 하니 어딘가 짐작가는 게 있었다.
“일본에서 투자요?”
“음, 그래.”
“B소프트겠네요.”
“어떻게 알아? 그거 기사로도 안 나왔는데?”
용철이 짐짓 놀랍다는 투로 말하자 진욱은 역시나 그랬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B소프트.
한국계 일본인인 시마 마사요시가 만든 이동통신사 겸 소프트웨어 회사의 투자 전문 회사로, 그의 손길을 통해서 벤처 대박을 일으킨 회사는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 이후에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미국, 유럽 등지에 있는 IT 관련 오픈마켓 회사나 메신저와 SNS 회사 등이 그들의 투자를 받고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을 때, 그 지분에 따른 대규모 주식으로 시마 회장이 몇 년 내 일본 제일의 거부가 되기도 했다.
‘거기 투자가 원래 역사에서도 있었던가? 아니지… 그때는 아성사료가 없을 때고, 이미 3대 소셜커머스에서 지금은 몬스터티켓이 제일 잘나가. 역사가 바뀌었어.’
진욱은 그것을 생각하면서 최한성이 돌아온다면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따로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그날은 밤늦게까지 와인을 즐겼고, ‘신제품 빨리 만들고, OEM 품질 좀 신경 써 달라.’라는 용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일그룹 경호팀의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진짜 신제품을 만들 기회가 되었다.
* * *
“네? 고기 재료 없이 사료를 만들 수 있냐고요?”
“그렇습니다.”
진욱은 부산공장 시찰을 왔다가 중안무역 박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아니, 당연히 개라는 동물은 잡식성이고,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말이 돼요?”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채식 사료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늘고 있어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진욱 역시도 실시간으로 해외에 있는 반려동물 식품에 대해서는 많이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채식 사료라는 것은 정말 생소한 이야기였고, 혹시나 해서 박 사장에게 물었다.
“어떤 회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노트북으로 직접 보시죠.”
박 사장이 능숙한 영어로 미국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을 하니 정말로 그 안에서 채식사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채식주의자가 늘어간다. 이제는 소수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
[환경을 위해 스스로 움직인다. 채식을 선언한 사람들.]
“아이고야.”
진욱은 그 내용을 보고서는 순간 머리를 긁적이고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쓴웃음을 지었다.
현재 미국 인구가 반올림해서 3억 1,500만 명 정도.
그중에서 채식주의자의 비율은 5% 남짓이고, 몇몇은 아예 극단적인 채식으로 과일과 견과류 종류로만 먹는 프루테리언도 상당했다.
진욱은 고기를 좋아하고, 언제나 육식주의자라고 자부해서 이해는 잘 못 하겠지만, 현재 미국 내에서 5%, 그것도 상류층이 대다수였고, 유럽의 경우에는 더 심해서 독일은 15%, 이탈리아나 영국도 비율은 적지만 수백만 명이 채식을 선언했다.
“아니, 하려면 본인이나 하라지 왜 애꿎은 강아지들한테까지 이런답니까?”
“그렇긴 하지만… 확실한 건 이로 인해서 채식 사료에 대한 수요가 늘어서 거기에 대해 미국과 독일 기업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중개인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아성사료가 거기에 대해 내놓기만 하면, 확실한 수요를 두고서 수출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
진욱은 여기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그리고는 고기가 아닌 저가형으로 만들었던 수제 간식으로 고구마, 호박, 건바나나 등으로 만든 제품들이 떠올랐다.
“간식용으로는 몇 개 모델이 있지만, 그거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쓰고 있을 텐데요?”
“아, 그러면 일단 그쪽에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일단 샘플을 몇 개 확인하고 바이어에게 알아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일단은 기존 제품을 가지고 수출을 맡긴 다음 상록과 부산공장에 식품건조기를 몇 개 추가 구비해서 일단 만들어는 놓기로 했다.
사실 채소 간식의 경우 일단 가져오는 제품들 자체가 사료용이기 때문에 그럭저럭한 품질로 손이 많이 가서 그렇지 원가가 굉장히 싼 편이었다.
그리고 수제 간식을 입문하는 반려묘, 반려견 주들이 샘플용으로 사서 먹이는 경우가 많아서 상당히 대중적이었다.
진욱은 그게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존에 있는 물량에 대해서 만들어 내기로 했고 덕분에 어찌어찌 수출 품목이 늘기는 했다.
얼마 후 상록으로 돌아온 진욱은 뜻밖의 이야기를 제일식품을 통해 들었다.
“네, 채식사료요?”
“그래, 혹시 그거 가능해? 간식용이 아니라 아예 건사료용으로 말이야.”
“…….”
용철을 통한 제일식품의 위탁생산 제안을 받은 진욱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중안무역 박 사장이 채식 이야기를 할 때만 하더라도 뭘 모르는 놈들이 신념 가지고 그러나 보다 했는데, 이걸 제일식품이라는 대기업까지 물어서 수출용 채식사료를 만들 수 있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아니, 대체 개한테 풀때기 먹여서 힘이나 나겠어요?”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게 원하는 수요가 장난 아니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 통해서 들은 건데, 삼정물산도 지금 채식사료 위탁공장 찾는다고 돌아다니는데, 지난번에 태국에서 말고기 대장균 때문에 동남아 쪽을 아예 꺼려하고 있어.”
“그렇군요.”
“지금 채식사료 만드는 곳이라고 해야 독일 정도인데, 이거 잘만 하면 진짜 생각도 못한 시장에서 파고 들 거란 말이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하나였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희들이 만들어 봐라.
그것도 위탁생산이니 일단 오더는 제일식품이 내리는 거고, 제품 설계부터 생산까지는 하도급 업체가 맡게 되는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er)방식으로 아성사료가 준비하는 것이다.
진욱은 이쯤 되면 채식과 반려식품의 관계에서 발을 뺄 수 없겠다면서 조용히 물었다.
“거래는 제대로 쳐 주시나요?”
“내가 언제 아성이랑 거래하면서 돈 서운하게 준 적 있나? 새삼스럽게 뭔 말하는 거야?”
대화그룹의 희귀 관상어 사료에 이어서 이번에는 제일그룹의 수출용 채식사료 생산 위탁생산 계약을 해야 될 것 같았다.
여기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연락하니 처음에는 ‘무슨 풀때기 가지고 개 사료를 만드냐?’라고 방방 뛰시다가 제일식품이 제안한 위탁생산 금액을 듣고는 침을 삼키면서 승낙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고, 이번 건 해결하면 국내 생산 판매권은 아성이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진욱은 졸지에 환경주의자가 되어서 사람과 같이 공존하는 반려동물들이 먹는 채식사료를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대기업 사람들하고 ESG로 환경과 윤리경영을 한다고 했는데, 졸지에 본인도 그걸 하게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