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밥 공장의 천재 아들-80화 (80/200)

80화 그래서 물건 안 받을 거야?

진욱의 자신만만함은 다른 부서의 임직원들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미 로타그룹이라는 재계서열 5위의 대기업을 상대로 깃발을 꽂은 짓이었고, 잘못하면 회사 존립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욱은 주변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대기업 유통들과 납품 계약을 차례차례 진행했고, 로타는 계속해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자 업무도 마친 진욱이 퇴근 준비를 할 때, 아버지 상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 식사하고는 다시 일 이야기가 나왔다.

“어쩌려고 로타를 그렇게 물 먹였냐?”

이미 주변에 이야기를 들었던 상만은 진욱의 저 위험천만한 행동을 두고 물었다.

하지만 진욱은 뺨을 긁적이면서 상만에게 물었다.

“로타에서 아버지에게 직접 전화는 안 했나 보네요?”

“아직은.”

“그럼 됐어요.”

“뭐?”

“그쪽에서 진짜로 빡쳤으면 벌써 아버지에게 연락했겠죠.”

중소기업 사장이라 해도, 대기업에서 과장~차장급, 심지어 더 작은 곳이면 평사원이 직접 가서 거래 이야기하면서 갑을 관계의 확실함을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로타는 지금 아성사료를 두고 들들 볶는 게 거래 창구가 있는 아성사료 영업부지, 사장한테 다이렉트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어차피 로타도 이제는 펫사업 장사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협상하려고 할걸요?”

“알지. 하지만 그놈들 방식 알잖아? 분명 비슷한 제품 내놓고 우리 제칠걸? 대기업이 그냥 대기업인 줄 아냐?”

“네, 물론 그것도 알고 있죠.”

진욱은 지금은 옛날 00년대가 아닌 2013년이라는 것을 아버지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2013년이라면 대기업이 한번 오금이 저릴 폭탄이 터진 해이기도 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아버지가 사장님으로서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 또 뭐냐고?”

“이게 말이죠. 내일부터 아버지가 전화 걸어 주실 곳이고요. 미담에 대한 내용 의뢰입니다.”

“……!?”

진욱이 준비한 내용을 보고서 상만은 천천히 읽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 이걸 그대로 기사화할 수 있겠냐는 말에 진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이 돼서 진짜로 출근하자마자 사장실에서는 통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진욱도 영업 판매에 대한 전화를 하고 있었다.

“네~ 아, 수원이요? 금방이네요. 그곳에서 특별전을 한단 말이죠? 알겠습니다. 저희 영업팀하고 홍보팀 직원 보내서 같이 진행하겠습니다. 네~ 네~.”

진욱은 통화를 마치고 바로 팀원들에게 말했다.

“NK백화점 수원점에서 반려동물상품 전시전 다음 달부터 1주일 동안 한답니다! 그거 준비해야겠어요!”

“다음 달이요? 아이고, 이거 또 야근해야겠네.”

“저희 제품이 메인이라고 하니 플래그십 모델 전부 준비하세요!”

김 부장과 표 차장이 바로 관련 자료를 인트라넷에서 확인하고 홍보팀에 연락을 돌렸다.

한편 그 상황에도 계속 로타 이야기는 없었지만, 이제부터 재밌어질 것이다.

[우웅- 우우웅-]

“음?”

[한누리신문 최 기자: 올라왔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오케이! 빠르기도 하구나!”

진욱은 바로 집무실 컴퓨터에서 포털 사이트를 열고 실시간으로 뉴스를 봤고, 갓 올라온 따끈따끈한 기사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경제민주화! ‘갑의 횡포’낙인에 떠는 대기업? 협력사 계약에 쩔쩔맨다.]

[NK프라자. ‘중소기업과 상생을 선두하겠다.’ 유통납품 수수료 파격 인하!]

[대기업 유통의 고질병인 납품 수수료 문제, 중소기업 등골이 휜다.]

“아따, 빠르기도 하네?”

진욱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보고서 크게 웃었다.

본부장님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서 어리둥절할 때, 진욱이 보내는 기사 내용들을 보고는 일제히 진보권 언론이 내거는 기사를 보고 잘하면 호재가 될 수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경제민주화.

당시 정권의 초기 슬로건이었고, 덕분에 언론에서는 좋든 싫든 간에 대기업의 갑질 사례들을 여기저기에서 보도해 댔다.

기내에서 난동 피우다가 스튜어디스를 폭행한 모 철강그룹 상무.

밀어내기라고 강제로 물량을 대리점에 떠넘겼다가 피 보고 있는 모 유제품 업체.

편의점 프랜차이즈 대기업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

정말 이런저런 기사들이 올라와 기업 이미지가 시궁창으로 떨어지는 곳들이 많았고, 덕분에 지금은 하청업체 계약 잘못하다가 9시 뉴스에 나오는 대기업들이 아주 뒷목을 잡았다.

진욱은 이것을 확인하고는 특히 한누리 신문에 이어 각종 인터넷 신문이 퍼가면서 ‘NK프라자 납품수수료 전격 인하. 중소기업 상생’에 대한 내용을 키우고 있었다.

이건 굳이 아성사료 같은 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정권 눈치 보는 기자들이 알아서 올려 주고 조회수를 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진욱은 점점 순위권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두 간부를 불렀다.

“김 부장님, 표 차장님. 잠깐 회의 좀 합시다!”

진욱은 파티션 한곳으로 정해 놓은 회의실로 둘을 불렀고, 바로 일어나 달려온 간부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 부장님이 딱 한 시간 뒤에 로타 MD 쪽에 연락하세요. 이거 아마 그쪽에서도 보고 있을 겁니다.”

“그게, 괜찮습니까?”

“어차피 금요일 안에 계약한다고 했는데, 이쪽에서 만나자고 하면 내일이라도 바로 달려올 겁니다.”

“이번 협상은 그럼 본부장님이 직접하실 겁니까?”

“네에~ 그렇게 할 겁니다. 옆에 같이 계셔 주시면요.”

김 부장은 진짜배기 협상이 되겠다면서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 차장님은 지금 부산 공장에 연락하셔서 현재 생산 라인표 보내 달라고 하고, 추가 라인 알아봐 주세요.”

“네, 본부장님.”

“그쪽에 보험 들어 놓은 게 있으니까 오버해서 납품 계약해도 생산은 문제없을 겁니다.”

수도권에서는 아직 규제 문제로 OEM 생산이 힘들었지만, 다른 지방은 달랐다.

그쪽은 얼마든지 추가 생산을 위한 공장 계약을 할 수 있고, 지금 기업 관련 유통 납품을 하더라도 충분히 부족한 수량을 메꿔 낼 수 있었다.

“자~ 움직여 주세요. 이번 주 안에 계약들 다 끝냅시다.”

진욱이 박수를 치면서 말하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두 간부였고, 전화를 하면서 로타와의 협상이 이번 주의 메인이벤트로 정해졌다.

* * *

진욱이 예상한 대로 전화를 걸어 협상 논의를 하자 바로 달려온 박 차장.

그의 얼굴은 지난번과 다르게 다크써클이 강하게 진 채로 퀭해진 모습이었다.

‘장난 아니게 시달렸나 보네, 괜히 미안해지는걸?’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대기업 걱정이니 일단 이쪽이 언더독이 되어서 다시 협상을 해야 했다.

회의실에서 커피를 대접하며 박 차장이 한 첫마디는 진욱에 대한 원망이다.

“저희랑 거리 두시더니 대단한 계약을 많이 하셨더군요?”

“하하, 죄송합니다. 우리 회사에 대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너무 받았습니다.”

“남의 회사 이야기라도 일단 들어보고 싶네요. NK가 얼마 제안했습니까?”

“백화점과 마트 모두 25% 이하입니다.”

“……!?”

박 차장은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신제품 몇 개 깔짝여서 온라인 여론 좋은 유망 회사 적당하게 납품받아서 매출 챙기려고 했는데, 이놈들이 이중 삼중으로 판을 깔아 놓고서 수수료 비싸다고 계약을 뜸 들이는 짓을 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PB사업부에 얘기해서 인원을 빼가고, 이놈들 진짜 마이너로 처박고 싶었지만, 경제민주화다 갑의 횡포다 별별 기사가 다 나와, 본사에서도 계약할 때 이미지 관리 잘하라고 사내 공문이 왔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애새끼들 진짜 똥배짱은… 그래, 좋아! 적당히 깎아 주자.’

박 차장은 어차피 본사 공문도 왔으니 적당히 물러나 주기로 했다.

“좋습니다. 저희 역시도 지난번 28% 넘는 납품수수료는 과하다고 인정하겠습니다.”

“아이고, 그럼 저희야 감사하죠. 유통업계 1위인 로타유통이 배려해 주시는 게 아닙니까?”

“네, 그렇게 해서 협상을 해 봅시다.”

진욱은 이 상황에서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생각하고서 다음 밑밥을 던졌다.

“저희가 지난번부터 로타유통과 이야기할 때, 전임 MD들에게 들은 말이 많았습니다.”

“저와는 상관없는 말 아닙니까?”

“네, 한국 마쓰모토 제품에 대한 건입니다.”

“……!?”

“거기가 우수 협력사라고 상당히 저렴한 납품수수료를 받는 기사를 많이 봤습니다.”

그 순간 박 차장은 아성사료, 그리고 하진욱이 왜 이렇게 뻐기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아성사료는 경제민주화다 갑의 횡포다 하는 언론이 시끄러운 틈을 타서 어떻게든 한국 마쓰모토 수준의 수수료 인하를 생각하는 거다.

“그곳은… 저희와 벌써 5년 이상 계약한 우수 협력업체여서 편의를 제공한 겁니다. 제1협력사의 중요성을 로타가 신경 쓰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는 로타를 믿고서 5년이 아니라 10년이고 20년이고 맏기고 싶습니다.”

“…….”

“그리고 지금 잘나가는 안심캔 습식 사료, 동결건조 사료, 그리고 모 의원님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이 잘 먹는다고 얼룩말 수제 간식에 대한 게 있지 않습니까? 차기 신제품은 오프라인 시장에서 로타 우선으로 저희가 납품하겠습니다.”

“……!”

채찍 속에 당근이었다.

아성이 지금은 중소 따리라고 해도, 자금 흐름을 보면 조만간 중견기업까지 올라갈 덩치에, 온라인에서 여론이 워낙 좋기 때문에 얘네 물건은 내부 위생 이슈만 터지지 않으면 안전빵이 가능한 회사였다.

거기에 신제품 우선 납품 계약은 적어도 이 회사의 지난 히트 상품인 얼룩말 사료만 한 것만 하나 더 나와도 애완동물사업부 1년 매출이 달라질 수 있었다.

“후우, 좋습니다. 단 그렇게까지 저희와 계약하신다면 하나 해 주셔야 하는 게 있습니다.”

“네, 뭐죠?”

“저희도 애완동물상품 특별전시전을 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직접 부스 만들고 홍보팀 보내 주세요.”

“아, 네! 그거야 뭐 문제없습니다만…….”

“하 본부장이 직접 올 수 있습니까?”

“네?”

진욱은 그 말을 듣고서 웃음을 겨우 참았다.

로타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너무 뻔하게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성이 다른 기업들과 선순위 계약하고, 로타가 제일 늦게 협상한 당위성을 만드려고 하는 거겠지. 그리고 그때 기자들 불러서 로타유통의 임원 하나랑 나랑 사진 찍으면서 내가 고객들 앞에 PR하라고 시키는 걸 테고.’

엄연히 이미지 마케팅용 섭외라 생각이 드는 제안이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진욱이 흔쾌히 승낙하자 박 차장은 적어도 늦은 협상에서 제대로 뽕을 뽑을 수 있겠다며 안도했다.

그렇게 가계약을 이 자리에서 마치고 정식계약은 진욱이 로타유통 소공동 본사로 가서 직접 계약서에 싸인하면서 기자들과 사진을 찍었다.

계약 내용의 주요 사항은.

1. 아성사료의 신제품은 타 유통업체보다 먼저 오프라인으로 로타가 판매한다.

2.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납품수수료는 제1 협력사인 한국 마쓰모토와 동일한 27.1%로 하고, 추후 신제품 등록 시 전격 인하한다.

3. 마지막으로 계약 이후 기자회견에서 공동으로 나오고, 로타유통 애완동물 상품 기획전에서 진욱이 로타마트 우수지점 순회로 제품 PR을 한다.

이것으로 국내 대형 3대유통사와 준대기업의 대형유통매장에 아성사료의 제품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대한 내년 예상매출은 전년대비 최소 500억은 늘어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진욱은 조금의 불리함 없이 엄청난 협상으로 계약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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